본문 바로가기
수요설교WednesdaySermon/사도행전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행28:30-31)

by 권또또 2023. 8. 23.
728x90
반응형

모든 것을 담대하게.hwp
0.15MB

 

(설교열기)(성화)요한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화를 내신 적이 있습니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다 내쫓았죠.

그리고 돈 바꾸는 환전상의 상을 엎으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2:16)

 

그만큼 예수님께서는 성전은 하나님께 제사드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곳인데, 왜 장사치들이 판을 치는 것이냐, 하는 거였죠.

왜 그 성전을 이용해 자기 배를 채우는 이들이 득실대는 것이냐, 하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짐승들도 내쫓았고 성전에서 통용되는 돈으로 환전하여 이득을 챙기는 이들까지 다 상을 엎어버렸죠.

 

이것을 일컬어 성전정화사건이라고 칭하죠.

성전을 인간의 욕망의 장소로 만들어버리는 그곳을 정결케 하신 사건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성전정화사건은 그때 한 번 뿐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요한복음 2장의 성전정화사건은 공생애 사역 초기에 행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사건이 마태복음 21장에도 나옵니다.

그때도 예수님께서는 매매하는 자들과 돈 바꾸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셨죠.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고 있구나.”(21:13)

 

요한복음 2장의 사건은 공생애 사역 마지막에 행하신 일읿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불과 나흘 전의 일이었죠.

그만큼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 초기에도 성전정화사건을 일으켰고 공생애 사역 마지막에도 성전정화사건을 행한 것입니다.

 

(깨달음)그렇기에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서 한 때 한 순간으로 정화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끊임없이 말씀과 기도로 자기 자신을 정결케하지 않으면 이 세상의 온간 눈에 보이는 것에 휩쓸려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거죠.

그를 위해 예수님께서 친히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필요한 게 있지 않습니까?

용기죠.

믿음은 예수님과 같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 온갖 불의와 욕망이 가득한 데 그런 곳에서 믿음과 정의를 좇아 사는데는 그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법이죠.

믿음은 그래서 용기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이죠.

 

(적용)이것은 마리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베들레헴 촌동네에 살던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아기를 잉태할 것이고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말하죠.

그때 마리아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단 말입니까’하고 대답했죠.

그러자 천사 가브리엘은 ‘지극히 큰 성령의 능력이 더를 덮으면 가능한 일이다. 네 사촌 엘리사벳도 낳지 않았더냐’하고 말했죠.

그때서야 마리아가 그렇게 대답하죠.

주님의 여종이오니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나이다”(1:38)

 

(깨달음)그런데 이런 대답이 쉬운 대답이겠습니까?

그 당시 처녀가 아이를 낳으면 돌팔매질로 죽임당해야 하는 입장이었죠.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한 사이지만 둘 사이에 관계를 맺지 않는 동정녀였습니다.

그런 자신에게 아이가 잉태되고 낳는다면 분명코 돌팔매질로 죽음당할 것을 알고 있던 그녀였죠.

 

하지만 그녀 역시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성령님의 능력으로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에 순종하는 종의 자세로서 주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하고 대답한 것이었죠.

그만큼 그 믿음에도 용기가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적용)어떻습니까?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들도 믿음에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수 있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 살아갈 때 신앙인에게는 믿음의 용기가 필요한 법이죠.

세상에 속하지만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나라에 속한 자로 살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 세상의 온갖 유혹과 거짓이 넘쳐나는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 위해서는 믿음의 용기가 필요한 법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0527332 

 

[전자책]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BR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BR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BR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

www.aladin.co.kr

(역배)로마의 헛간과 같은 집에 바울이 머물고 있을 때 유대 지도자들이 더 많은 무리를 이끌고 바울을 찾아왔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바울이 지금 사슬에 매여 있다고 했는데 그분이 누구인지 더 알고 싶어서 말입니다.

그때 바울은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그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했죠.

그런데 그들이 집에 돌아갈 때는 서로 나뉘어 갈라서고 말았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영생을 위한 소망의 복음으로 받아들인 유대인들이 있었는가 하면 그저 헛소리라고 생각한 유대인들이 있었던 것이죠.

 

그만큼 그 심령이 열린 심령이 있었는가 하면, 그 심령을 닫아버린 이들이 있었던 것이죠.

구원받기로 작정된 주님의 영혼이 있었는가 하면 율법의 관습에 얽매인 유대인들도 많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 중에 대다수가 바울의 복음을 거부한 이들이었죠.

 

그런 그들을 향해 바울은 선지자 이사야가 전한 말씀을 떠올리면서 그들에게 전해줬죠.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귀로 듣긴 듣지만 그 마음의 눈은 감아버린 자들이구나.”

“너희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깨닫기를 원한다면 내가 주님의 도구가 되어 너희 심령을 고쳐줄까 했다.”

“하지만 너희가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으니 이제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향한 줄을 알아라.”

 

(깨달음)바울은 이전에 1차와 2차와 3차 전도여행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었죠.

어느 곳을 가든지 유대인 회당을 찾아 먼저 유대인에게 예수님의 생명의 복음을 전했죠.

그 중에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아예 거부하는 이들이 태반이었죠.

그때마다 바울은 그곳을 떠나 이방인에게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지금 로마의 헛간과 같은 그곳에서 쇠사슬에 매인채 자신을 찾아온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때도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그만큼 자기 동족과 자기 혈족과 같은 유대인들이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랐던 바울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이 원해도 거부한다면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로마에 있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바울이 결정한 게 아니라 예수님의 당부요 명령을 따른 길이라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을 택하여 부르실 때 사도행전 9장 15절을 통해 하신 말씀이 있었죠.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바울은 지금까지 주님의 말씀을 받들어 주님의 복음을 전해왔던 것입니다.

그만큼 바울은 자기 자신을 드러낸 복음전도자가 아니라 오직 말씀에 순종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본문)오늘 본문 29-31절은 사도행전 최후의 단락인데 29절은 “없음”이라고 나와 있는데 각주를 보면 다르죠.

어떤 사본에는 “그가 이 일을 마칠때에 유대인들이 서로 큰 쟁론을 하며 물러가더라”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죠.

그만큼 누가가 이 내용을 기록할 때는 아무런 내용이 없었지만 나중에 사본을 베껴쓰면서 그 내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넣은 기록이라는 점이죠.

실은 그 내용이 필요치 않기 때문에 누가가 기록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실질적인 마지막 말씀은 30-31절입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원해)바울은 자기 셋집을 찾아온 사람들을 다 영접했습니다.

‘영접하다’는 헬라어 동사 ‘아포데코마이’(ἀποδέχομαι)는 미완료형으로 끊임없이 찾아온 이들을 환영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에 목말라 하고 궁금한 유대인들이 많았다는 뜻이죠.

그런 그들에게 바울은 사도행전이 끝나기까지 자기 생명이 다하기까지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두 가지 단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담대하게’ 그리고 ‘거침없이’입니다.

‘담대하게’로 번역된 헬라어 ‘파르레시아’(παρρησία)는 ‘용기있게’(cheerful courage)하는 뜻입니다.

‘거침없이’라는 헬라어 ‘아코뤼토스’(ἀκωλύτως)는 ‘방해받지 않고’(without hindrances)라는 뜻입니다.

 

(깨달음)바울은 사도행전이 끝날때까지, 자기 인생이 끝날때까지 유대인은 물론이고 이방인에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용기를 가지고 그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전했다는 뜻입니다.

그를 위해 필요한 게 무엇입니까?

용기죠.

바울도 믿음의 용기를 갖고 그렇게 담대하게 거침없이 주님의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 초기에 성전에 들어가 짐승을 내쫓과 장사치들과 환전상의 상을 엎으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공생애 마지막에도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성전정화사건을 벌이셨는데 그때도 담대하게 거침없이 그 모습을 보여주셨죠.

그것은 마리아도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어려웠지만 주님의 말씀에 확신이 선 뒤에는 그녀도 담대하게 거침없이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종으로 내어드렸죠.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2142807 

 

[전자책]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BR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BR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BR 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

www.aladin.co.kr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주님께서는 믿음의 삶을 살도록 우리에게 믿음의 용기를 불어넣어주시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주님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예수님께서 공생을 사역을 시작하면부터 끝마칠때까지 성전을 정화한 사건이 있지 않았더냐?”

그 당시에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과 성전경비병과 성전에 짐승파는 자들과 환전상 앞에 그 모습을 보이려면 믿음의 용기가 필요한 것 아니었더냐?”

사내를 알지 아니한 마리아가 아이를 낳으면 돌팔매질을 당하는데 그런 걸 알면서도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할때도 믿음의 용기가 필요한 것 아니었더냐?”

본문의 바울이 사도행전이 끝날때까지 자기 생이 끝나기까지 담대하게 거침없이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데도 믿음의 용기를 갖고 행한 일이지 않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도 이 험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도록 주님께서 너에게 믿음의 용기를 불어넣어주지 않겠느냐?”

이 세상에 유혹과 거짓과 불의앞에서 진실되게 살도록 유혹을 뿌리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도록 믿음의 용기를 불어넣어주지 않겠느냐?”

너 보기에 좋은 것을 취할때는 믿음의 용기가 필요하지 않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일을 취하고자 할때는 믿음의 용기가 필요한 법이니 말이다.”

당장 지난 한 주간의 삶만 돌아봐도 너의 삶에 믿음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너는 알고 있지 않느냐?”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네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신실하고 거짓없는 주님의 자녀로 살도록 너에게 믿음의 용기를 불어넣는 아바 아버지이지 않더냐?”

 

(찬양)나는 거짓을 기뻐할 수 없어서 매를 맞으면서도 외면했건만 너희는 담대하여 거짓 속에 사는구나

나는 거짓을 기뻐할 수 없어서 창을 맞으면서도 외면했건만 너희는 거짓과 함께 손을 잡고 사는구나

정직하라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내 딸들아 정직하라 나의 가슴을 치며 너희에게 구하노니 구하노니

 

나는 불의를 기뻐할 수 없어서 온갖 조롱받으며 외면했건만 너희는 담대하여 불의 속에 사는구나

나는 불의를 기뻐할 수 없어서 침 뱉음을 받으며 외면했건만 너희는 불의와 함께 손을 잡고 사는구나

진실하라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내 딸들아 진실하라 나의 가슴을 치며 너희에게 구하노니 구하노니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8679116 

 

[전자책]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BR 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www.aladin.co.kr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이를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이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좇아 살기 위해서는, 나 보기에 좋은 길이 아니라 하나님보시기에 좋은 길을 좇아 살기 위해서는 믿음의 용기가 필요한 법입니다.

마리아도 바울도 믿음의 용기를 갖고 살았듯이 말입니다.

사도행전 끝부분에 이르러서, 바울의 생애 마지막에 다다르기까지 바울이 담대하게 거침없이 주님의 복음을 전하도록 우리 주님께서 믿음의 용기를 불어넣어주셨습니다.

 

우리의 남은 인생에서도 주님께서 불어넣어주시는 믿음의 용기를 갖고 담대하게 거침없이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8679122 

 

[전자책] 야긴과 보아스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BR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BR 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

www.aladin.co.kr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