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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사도행전

구원이 이방인에게로(행28:23-28)

by 권또또 2023.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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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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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성화)요즘 새벽에 묵상하는 말씀이 요나서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 전에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2세 때 왕정 자문관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해 구원받는 백성이 되라고 말씀하셨죠.

 

그때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죠.

때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편이 있어서 그 배에 올라탔는데 풍랑이 일자 요나를 바다에 빠트리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큰 고기를 준비해서 요나가 3일 동안 그 배 속에서 회개하며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되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요나에게 말씀하셔서 니느웨로 갔고 그 성읍의 중앙대로를 3일길을 걸어가면서 외쳤죠.

그때 왕과 고관대작들과 백성들은 물론이고 짐승들까지도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자 심판을 철회하셨죠.

 

그 모습을 바라본 요나가 어떤 마음이 들었습니까?

사실 요나는 앗수르 제국이 망해야만 자신의 입지가 공고해질 수 있는 입장이었죠.

그러니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해도 강하게 선포하게 아니었죠.

회개하려면 회개하고 회개하지 않으려면 회개하지 말라는 투였죠.

그런데 그 백성들과 짐승까지 금식하면서 회개하자 요나는 그들의 모습이 짜증났던 것이죠.

 

그때 요나가 성읍 동쪽에 초막을 짓고 니느웨 성읍을 지켜보는데 하나님께서 박넝쿨 하나를 보내 햇빛을 가리게 해주셨죠.

그런데 그 박넝쿨을 벌레가 다 닭아먹자 요나는 짜증을 내면서 죽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말하죠.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찾아와 이렇게 요나에게 말씀하셨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4:10-11)

 

(깨달음)무슨 말씀입니까?

너는 너를 위한 박넝쿨 하나 때문에 좋았다가 그것이 사라지니까 분을 내고 있는데, 저 니느웨 백성을 바라보는 내 심정은 어떻겠느냐, 하는 거죠.

 

그 성읍에 좌우를 분간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이 12만명이나 되는데 그 아이들이 다 멸망하는 걸 내가 기뻐하겠느냐, 하는 것이죠.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만 사랑하는 분이 아니라 이방 민족들도 구원받기를 원한다는 사실이죠.

그만큼 요나의 자기 주관적인 편협한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그 크신 뜻을 받아들이길 원하신 것이었죠.

 

(적용)이것은 마태복음 5장 45절의 말씀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한 자녀에게만 햇빛을 비추시고 비를 내려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식이 배고파 할 때 다른 자식의 배고픔에도 눈을 뜨고 살기를 바라시는 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녀만 구원하는 게 아니라 이방인들도 구원하길 원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요나의 복음선포를 듣고 회개한 니느웨 백성의 심판을 하나님께서 면하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고 선포한 요나의 순종을 통해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고 순종하는 자녀들이란 사실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할 때 그 말씀을 통해 지금도 역사하시는 아바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는 동안 어떤 인생의 위험이나 고난도 능히 이기게 하시는 빛되신 말씀인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길 원하시는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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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로마의 헛간과 같은 집에 바울이 머물고 있을 때 유대 지도자들이 더 많은 무리를 이끌고 바울을 찾아왔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바울이 지금 사슬에 매여 있다고 했는데 그분이 누구인지 더 알고 싶어서 찾아온 그들이었죠.

그때 바울은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그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했죠.

그런데 그들이 집에 돌아갈 때는 서로 나뉘어 갈라서고 말았습니다.

이른바 복음을 생명의 복음 영생의 복음 소망의 복음으로 받아들인 유대인들과 그저 헛소리라고 생각한 유대인들이었ㅈ.

 

그것은 두 가지 차원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심령이 구원받기로 작정된 이들에게는 바울이 전한 복음이 생명의 복음으로 다가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구원받기로 작정되지 않는 이들에게는 그들의 심령의 귀가 열리지 않고 닫힌 것이었죠.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는 로마서의 말씀이 바로 그런 연유입니다.

그만큼 바울이 전한 복음을 생명의 복음으로 받아들인 유대인들은 이제부터는 그 삶에 주님을 모시고 살겠다는 뜻이었죠.

그들의 귀가 열렸고 그들의 심령에 주님의 말씀을 깊이 받아들였고 이제부터는 그 삶에 복종하며 살겠다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본문)본문 25-28절은 그 이후의 상황을 전해 주는 말씀입니다.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원해)바울은 주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을 향해 구약의 이사야 6장 9-10절 말씀을 인용해 말한 것이었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처럼 지금 자신을 찾아와 복음을 듣고도 거부한 이들이 그렇다는 것이죠.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그만큼 바울의 강론을 들은 사람 중에 주님의 복음을 거부한 이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중요한 것은 사도행전의 결론이 이와 같다는 사실입니다.

유대인들이 주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로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향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이 1차 전도여행 때 비시디아 안디옥을 찾았을 때도 이방인의 구원을 선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유대인 회당에 모인 유대 지도자들이 질투심에 사로잡혀 바울을 배척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유대인 회당에 연연하지 않고 이방의 빛으로 삼아 땅끝까지 전하게 하시는 주님의 뜻을 받들어나갔죠.

그때도 바울은 이사야 49장 6절 말씀을 인용하며서 이방인의 구원을 선포했습니다.

 

그것은 2차 전도여행 때도 마찬가지였죠.

계획에도 없던 유럽의 마게도냐 땅을 밟은 바울은 고린도까지 내려가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 바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했고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에게 복음으로 권면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회당에서 유대인들이 바울에게 적개심을 품으며 바울을 배척했죠.

그때도 바울은 미련 없이 회당을 떠나면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바울은 이처럼 어느 곳을 가든지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만큼 동족이자 혈족인 유대인들이 먼저 구원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뜻이었죠.

하지만 그들이 주님의 복음을 거부할 때면 즉시 이방인에게로 향한다고 선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사도행전 9장 15절에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눈먼 바울에게 안수하도록 하면서 하신 말씀때 문이죠.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주님께서는 부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서도 우물안 개구리처럼 예루살렘 밖을 향해 이방인들에게까지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바울을 택하여 이방인을 위한 복음을 전하는 당신의 그릇으로 택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때부터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고 유대인들이 거부할 때마다 이방인을 향해 나아갔죠.

 

그만큼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바울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에 인생이 끝날 때까지 주님의 말씀에 붙들려 사는 종이었음을 밝혀주는 것이죠.

우리의 일생도 실은 말씀에 붙잡힌 삶이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죠.

 

(원성)시편 119편 165절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깨달음)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에게 장애물이 아예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인생의 장애물도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사는 자에게는 결코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이죠.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을 주시는 말씀이요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죠.

광야 40년간 온갖 고생하며 살았지만 끝내는 가나안 땅에 입성하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죠.

그들에게 전갈의 위협과 도적 떼의 위협과 이방 족속의 위협과 먹을 게 없는 고통스런 상황이 왜 없었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러내신 이상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임져주시겠다고 말씀으로 약속해주셨죠.

그 약속의 말씀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이행코자 그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물을 공급해주셧죠.

그리고 그 어려움 속에서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입성하게 해 주셨고요.

 

(적용)오늘 본문의 바울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바울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에 유대인은 물론이고 이방인들에까지 나가 복음을 전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그를 택한 그릇으로 삼으면서 유대인과 임금들과 이방인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하도록 말씀하셨기 때문이죠.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 때 그 인생에 강도의 위협과 강의 위협과 죽음의 위협이 있었죠.

 

하지만 바울은 그때마 포기하지 않고 또 다시 그 길위에 나섰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 때 그에게 평안이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죠.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살 때 그 인생의 장애물도 장애물이 아니라 말씀의 훈련장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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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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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사명을 갖고 일하든지 말씀에 붙들린 인생을 살게 하셔서 세상의 장애물을 이기게 하시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말씀하시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요나가 악한 니느웨 백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게 싫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선포한 것 아니었더냐?”

그로 인해 좌우를 분별치 못하는 12만명의 어린아이들이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은 것 아니었더냐?”

바울이 사도행전 9장에서 주님의 부름을 받고 영생에 눈을 떴을 때 말씀에 붙들려 산 것 아니었더냐?”

그때부터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종으로 산 것 말이다.”

그를 위해 매도 맞고 강도도 만나고 강의 위협을 당하고 죽음을 겪는 인생의 장애물을 숱하게 만나지 않았더냐?”

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어려움 속에서도 기쁨으로 감당하며 살지 않았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의 지난 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얼마나 말씀에 순종하는 인생을 살아왔는지 점검해보면 좋지 않겠느냐?”

너 보기에 좋은 인생길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인생길 말이다.”

세상의 돈과 명예와 권력과 쾌락을 좋는 길은 당장에는 좋아보이지만 사망의 길이요 주님의 말씀을 좇는 길은 인생의 장애물도 나중엔 복된 길이니 말이다.”

바울이 그 고난과 죽음을 무릎쓰고 주님의 말씀에 붙들려 살아온 것도 모두 주의 말씀에 등이요 빛이기 때문이지 않았더냐?”

아무리 험난한 장애물도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면 그 길이 평안한 길로 역사해주시는 주님이시니 말이다.”

 

(찬양)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 없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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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교보문고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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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보기에 좋은 길을 택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길이 돈과 명예와 권력과 쾌락을 좇는 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린 생을 살아가는 자들 아니겠습니까?

설령 그 길 위에서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겪는다 할지라도 세상의 장애물들에 가로막힌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말씀이요 그 장애물들을 능히 이겨나가게 하시기 때문이죠.

 

사도 바울이 사도행전 9장에서 부름받은 이후 28장 마지막에 오기까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이유도 그렇습니다.

온갖 고난과 역경과 죽음을 무릎쓰고 이방인에까지 복음을 전한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린 삶이었기 때문이죠.

저와 여러분들도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에 붙들려 살아갈 때 이 세상의 장애물은 우리를 연단케 하는 훈련의 장이요 주님께서 정하신 때에 놀라운 역전을 일으키시는 은혜의 장이 될 줄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내 인생의 발에 등이요 내 인생의 발걸음에 빛임을 믿으시고 말씀에 순종하여 놀라운 축복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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