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요설교WednesdaySermon/사도행전

소망으로 쇠사슬에 매인 바(행28:17-20)

by 권또또 2023. 7. 19.
728x90
반응형

소망으로 매인바.hwp
0.19MB

 

(설교열기)(예화) 오늘 지방회 어떤 목사님이 교회 사무실에 들렀습니다.

평소 친분이 있는 분인데 얼마 전에 인공심장 때문에 후유증이 생겨 죽다 살아난 분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오셔서 그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비만 오면 최근에 교회 예배당 바닥이 신발을 다 적실 정도로 차오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것이 은혜가 되지 않을까봐 교인들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토요일날 저녁에도 비가 많이 와서 주일날 아침에도 물을 퍼내기에 바빴죠.

 

다행히 주일날 오전에 비가 오지 않아 물을 다 퍼내고 이제 예배를 드리는데 예배 도중에 비가 쏟아졌고 빗물은 순식간에 예배당에 가득 차게 됐습니다.

그때 성도들이 예배를 중단하고 물을 퍼 날라야 되지 않겠냐고 했는데 그 목사님은 의자에 양반자세로 앉아서 예배를 드린 다음에 하자고 했죠.

그런데 물이 차오르는 환경 속에서 기도를 하는데 성도들이 평소와 달리 더욱 뜨겁게 기도하고 아멘 소리도 더욱 컸습니다.

 

이제 예배가 끝나고 남자 집사님들이 과연 원인이 무엇인지 목사님께 물어봤습니다.

목사님은 그때까지도 긴가민가 하면서 물받이 한 것 때문이지 않냐고 추측을 했죠.

그랬더니 그 집사님들이 즉시로 그 물받이 통을 잘라버렸습니다.

그리고 연결된 통은 윗부분을 막아 아예 물이 내려가지 않도록 막아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예배 후에 모두가 집으로 갔고, 목사님 내외도 집으로 갔죠.

그런데 그날 저녁에 비가 또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어떻게 됐을까, 하는 심정으로 월요일날 교회 예배당을 찾았는데, 포송포송한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두 부부가 함께 춤을 췄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깨달음)그때 그 목사님이 깨달은 게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은 물론이고 교회 예배당의 연약함도 감추거나 숨길 게 아니라는 것 말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하나님께 내어드리면 하나님께서 소망 중에 그 문제를 해결해주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적용)이것은 우리 자신의 모습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아시기에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기를 원하시는 분 아니겠습니까?

그 모습 그대로를 하나님 아버지께 아뢰고 간구하면 하나님께서는 부족함 가운데서도 절대적인 소망과 평강을 안겨주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0620580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product.kyobobook.co.kr

(역배)바울은 지금 황제에게 상소한 미결수 신분으로 로마에 입성한 상황입니다.

그때 바울은 당시 관례에 따라 황제의 근위대장에게 인계되었죠.

그렇다면 근위대장은 근위대 감옥인 프레토기움에 바울을 감금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근위대장은 바울을 감옥 밖에서 따로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줬습니다.

바울을 근위대장에게 인계한 백부장 율리오가 바울에 대해서 좋게 말했던지, 아니면 가이샤라 총독의 서신 때문에 바울을 배려했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그 모든 게 하나님의 섭리임을 알 수 있죠.

왜냐하면 바울이 감옥 밖 세를 주고 얻은 헛간에서 지낼 수 있기 때문에 바울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바울이 혼자 그 헛간에서 지낸 건 아니었습니다.

근위대장은 바울이 혹시라도 도망칠 것을 염려해 군인 한 명과 함께 손목에 쇠고랑을 차고서 살게 했습니다.

바울은 2년간 군인 한 명과 함께 쇠고랑을 찬 해 먹고 자고 해야 하는 불편함과 고단한 생활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만큼 근위대장은 바울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편이었습니다.

 

(깨달음)하지만 바울의 그 불편함과 고단함을 통해 지난 시간에 깨닫게 된 바가 무엇이었습니까?

당시 50이 넘은 바울은 노년의 나이로 늙은이의 제어력을 상실할 수 있는 나이였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어린 아이처럼 욕심이 생긴다고 하지 않습니까?

만약 군인 한 사람과 쇠고랑을 차지 않았다면 바울이 그 로마의 한복판에서 어떤 유혹에 빠져들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바울의 손목과 군인 한 명의 손목에 찬 쇠고랑은 바울이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차단해 준 하나님의 은혜의 사슬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오늘 본문은 그 이후의 상황을 증언해주는 말씀인데 17-20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로마의 헛간에 임시장막을 삼은 바울은 사흘이 지난 뒤에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자신의 거처로 초청한 것입니다.

왜 사흘이 지나서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한 것이겠습니까?

그 사흘 동안 바울을 환영하기 위해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에서 온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지냈다는 걸 알 수 있죠.

더욱이 로마에 첫 발을 내딘 바울은 로마가 생소한 곳이기에 어느 곳에 임시장막을 삼아야 할지도 그들이 도와주었겠죠.

그렇게 로마의 그리스도인들과 3일을 지낸 뒤에 비로소 유대인 중에 높은 사람들을 청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2세기 말 소아시아의 장로가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바울행전〉에 나와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3일 뒤에 초청한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유대인으로서 로마에서 고위직 자리를 잡은 고위 인사들을 말하는 것일까요?

2천 년 전 로마에 거주하던 유대인 대부분은 하층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이 초청한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란 사회적으로 출세한 유대인들이 아니라 로마에 살고 있는 유대교 공동체 내의 영향력을 지닌 어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성인 남자 10명만 있으면 세계 도처에 유대인 회당을 갖추고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로마의 유대인 회당 지도자 그룹에 속한 이들을 자기 헛간에 초청한 셈이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유대 지도자 그룹에 자신이 지금 붙잡혀 온 과정을 설명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무리들은 자신을 배교자로 간주해서 집요하게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제사장 무리들은 2년간의 시차를 두고 유대총독 벨릭스와 베스도에게 두 번이나 거짓 모함으로 바울을 고발했죠.

더욱이 유대인 중 40명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을 것도 먹지 않겠다고 하면서 암살단을 조직하기도 했죠.

그래서 바울은 무죄로 풀려나봤자 자신을 죽일 게 뻔하니 로마의 황제에게 상소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무리는 바울이 로마로 간다는 것을 알고 로마의 유대인 지도자 그룹에게 이미 편지를 보냈을 수 있죠.

바울은 그 사실을 내다보면서 로마의 유대인 지도자 그룹에게 왜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게 됐는지 밝히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바울은 자신의 억울함 때문에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다고 밝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다고 그들 앞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소망이란 두말할 것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 곧 메시에 대한 소망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물론 바울이 소망하는 메시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망하는 메시아 곧 유대인들이 소망하는 메시아는 다릅니다.

이스라엘이 소망하는 메시아는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하는 정치적인 메시아를 소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소망하는 메시아는 유대인들의 죄와 사망에서 자유케 하는 죄의 사슬로부터 해방시켜주시는 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소망하는 메시아는 불사조인데 반해 바울이 소망하는 메시아 예수는 인간의 죄악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나난 부활의 주님이시죠.

바로 그 분안에 거하는 삶이 참된 소망의 삶이기에 바울은 지금 쇠사슬에 매인 바 된 삶을 살고 있다고 기쁨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싸구려 셋집으로 얻은 그 헛간과 같은 곳에서 유대 지도자 그룹을 향해 그런 영원한 소망을 누리고 있다고 말하는 거죠.

 

(깨달음)바울의 그 고백을 들을 때 주일날 나눈 호레이쇼 스패포드가 소망하는 것과 똑같은 소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스패포드는 성공한 법률가였고 절친인 무디의 후원자요 주일학교 교사요 재정집사였죠.

그런데 시카고 북쪽의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화재로 몽땅 잃었고 그 전에 급성 전염선 피부질환을 앓은 아들도 잃었죠.

절대적인 휴식이 필요한 스패포드는 아내와 네 딸을 대리고 여행을 가려고 했는데 자신은 일이 생겨 배에서 내렸죠.

그런데 그 배가 그만 새벽 2시에 대서양 한 가운데서 철갑선 호와 정면으로 충돌해 226명의 생명이 바다속으로 빠졌죠.

그때 아내와 몇 명의 사람들만 구명정에 구조되었고 ‘홀로 살아남았음’이란 전보를 남편에게 부쳤고 남편이 곧장 아내에게 가고자 배를 탔죠.

그 대서양 한 복판을 통과할 때 선장은 “바로 이곳이 당신의 딸들이 묻힌 곳입니다”하고 말했는데 그때 스패포드는 방안에 들어가 탄식하며 울부짖었죠.

제가 여태껏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고 섬겼는데 왜 이런 고통을 주시냐고 말이죠.

그런데 새벽녘에 하나님께서 그의 심령에 평안을 불어넣어주셔서 ‘내 영혼이 평안해’하는 찬송가 가사를 작사할 수 있었죠.

 

그만큼 이 땅 위의 험한 길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참된 평안과 소망은 아래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위로부터 곧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예배당 바닦에 물이 흥건하게 차오르는 그 때도 주님을 붙잡고 기도하는 성도들의 심령에 평강을 불어넣어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차오르는 물의 근원지를 차단하게 하시는 은혜도 부어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바울이 지금 로마의 한복판에 헛간과 같은 그곳에서, 쇠사슬에 매인 상태 속에서, 유대 지도자 그룹에게 말하는 참된 소망도 마찬가지죠.

이 땅 위에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소망은 오직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주실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0619796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교보문고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

product.kyobobook.co.kr

(주문)그렇기에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잖습니까?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헛간과 쇠사슬에 매인 상황에서도 오직 주님께 소망이 있다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실까요?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그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 예배당에 물이 차오를 때마다 물을 퍼내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힘들고 당황스러운 일이었겠느냐?”

그러나 주님은 그 환경 그대로를 받으셔서 주님께 소망이 있음을 알게 하신 것 아니더냐?”

바울이 지금 로마의 화려한 한복판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도움을 받아 헛간을 얻고 쇠사슬에 매인 상태였지 않더냐?”

하지만 그런 연약하고 답답한 상황에서도 유대 지도층을 불러 오직 주님께 소망을 두고 있다고 말하지 않더냐?”

“2023년 하반기에 어떤 삶이 펼쳐질지라도 참된 소망은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하나님께 있지 않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세상에서 마주하는 일들이 바쁘고 때로는 힘에 부칠지라도 있는 모습 그대로를 주님께 올려드리길 원하지 않겠느냐?”

너 자신의 힘과 능력을 믿고 거기에 소망을 두기보다 연약함 그 자체를 하나님께 올려드릴 때 하나님께서 평강을 부어주실 것이니 말이다.”

바울이 헛간에 살고 있고 병사와 함께 쇠사슬에 매여 있어도 유대 지도층을 향해 참된 소망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려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2023년 하반기 임시장막과 같은 이 세상의 삶에서 오직 위로부터 평강을 불어넣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비록 그 삶이 우겨쌈을 당하고 삶의 환경이 쇠사슬에 매인 것처럼 복잡하고 고단할지라도 바울처럼 네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만 참된 소망이 있으니 말이다.”

 

(찬양) 이제 내가 살아도 주 위해 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 위해 죽네

하늘 영광 보여주며 날 오라 하네 할렐루야 찬송하며 주께 갑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이제 내가 떠나도 저 천국 가고 이제 내가 있어도 주 위해 있네

우리 예수 찬송하며 나는 가겠네 천군 천사 나팔 불며 마중 나오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예화)키에르 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에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병은 ‘절대 절망’이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항상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니죠.

문제를 만났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대하는 사람의 태도 아니겠습니까?

정약전은 신유박해 때 16년 동안 흑산도에 유배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는 흑산도 근해의 생물을 직접 채집하고 관찰해서 ‘자산어보’라는 책을 썼죠.

그것이 영화로도 나온 바가 있고 지방회 교역자 회의 때 도초에 있는 그 영화 세트장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예화2)제임스 와트라는 사람이 그린 ‘소망’ 이란 유명한 명화가 있습니다.

그 명화는 그 지구 위에 남루한 옷을 입은 한 소녀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 바이올린 줄을 가만히 보면 오직 한 줄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끊어져 있습니다.

그 소녀는 한 줄만 남은 바이올린을 가지고 열심히 연주하고 있는 모습이죠.

 

바로 그것이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가닥가닥들이 끊어지고 하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그 한줄을 가지고 연주를 하여 사람들에게 소망을 품게 한다는 뜻이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0619797

 

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이 책에는 사

product.kyobobook.co.kr

(내기도)그렇기에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물이 차오르는 예배당 안에서도 오직 주님께 소망을 둘 때 내주 예수 모신 곳이 하늘나라 천국에 되게 하시네요.”

허름한 헛간에서 바울이 지금 쇠고랑을 차고 있어도 부활하신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있기에 유대 지도자 그룹을 초청해 복음을 전하고 있네요.”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지에 끌려왔어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기에 바다 생물을 채취해 자산어보를 남겼네요.”

바이올린이 줄들이 다 끊어지고 한 줄이 남아 있어도 그 한줄로 연주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소망이 남아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네요.”

주님. 2023년 하반기에 어떤 상황에 제게 주어질지라도 오직 영원한 생명의 주님이신 주님만 소망하며 살게 해 주세요.”

 

(찬양) 이제 내가 살아도 주 위해 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 위해 죽네

하늘 영광 보여주며 날 오라 하네 할렐루야 찬송하며 주께 갑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이제 내가 떠나도 저 천국 가고 이제 내가 있어도 주 위해 있네

우리 예수 찬송하며 나는 가겠네 천군 천사 나팔 불며 마중 나오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으로 삼은 사람은 예배당에 물이 들어찰지라도 오직 그 분께 매여 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며 사는 사람은 헛간에서 쇠사슬에 매여 있어도 오직 주님께 붙들려 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으로 삼은 사람은 유배지에 끌려올지라도, 바이올린 줄이 하나밖에 없을지라도 그 분께 매여서 살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무엇을 소망하며 사는지에 따라 내 가족과 내 주변 사람들도 닮아갈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2023년 하반기에 어떤 삶의 환경이 우리에게 주어질지라도 설령 이 땅 위에 험한 길을 가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오직 주님께 소망을 두며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