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벽묵상DewSermon/미가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미7:1-20)

by 권또또 2023. 8. 23.
728x90
반응형

오늘은 미가서 마지막 7장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미가서 7장은 재앙이로다 나여라는 탄식으로 시작을 하고 있죠. 미가 선지자가 ‘재앙이로다’하고 탄식하는데, 그 재앙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재앙이로다는 히브리어 ‘알라이’는 ‘화로다’ ‘슬프다’하는 뜻을 지닌 단어입니다. 미가 선지자에게 전쟁이나 기근이나 질병 등과 같은 재앙이 닥쳐서 슬프다는 뜻이 아니라, 무엇인가에 의해 극도의 슬픔에 빠졌다는 표현입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0527332 

 

[전자책]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BR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BR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BR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

www.aladin.co.kr

그렇다면 과연 미가 선지자가 그렇게 비통해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1절을 보면 “여름 과일을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같아서 먹을 포도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 미가 선지자가 비통해 한 이유는 포도송이가 없고 무화과가 없기 때문임을 고백하고 있죠. 물론 이것은 과실을 수확한 후에 더 이상 먹을 것이 없는 허망한 마음에서 나오는 슬픔이 아니죠. 포도송이가 없다는 것과 무화과가 없다는 것은 ‘의인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2절의 표현으로 그 이유를 말하자면, 경건한 자가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것, 곧 정직한 자가 세상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비통해하고 있는 모습이죠.

사실 미가 선지자는 이사야와 호세야와 아모스와 동시대 선지자죠. 차이가 있다면 다른 선지자들은 8세기 전반의 선지자들이고 미가 선지자는 후반부의 선지자죠. 그렇지만 미가서 1장 1절에서 밝히고 있듯이, 유다 왕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가 집권하던 그 흐름 속에서 선지자 활동을 했었죠. 그만큼 미가 선지자는 이사야나 호세야나 아모스의 그 흐름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던 선지자였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외치도록 하셨는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남왕국에 대해서, 호세야와 아모스가 북왕국에 대해서 예언할 때, 그는 남과 북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에게 바른 길을 제시했던 선지자였던 것이죠. 바꿔 말해 미가 선지자가 예언활동을 할 때 북이스라엘은 물론 남유다 백성들도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기는 마찬가지였다는 점입니다 .

그토록 의인이 없던 시대였습니다. 경건한 자들이 사라지고, 정직한 자들이 세상에서 사라지던 시대였습니다. 그 특징이 바로 2절 하반절에서 말씀하고 있죠.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하고 이른바 살인, 납치, 뇌물거래, 탐욕으로 인한 야합이 판을 치는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또 3절에는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는도다 그 지도자와 재판관은 뇌물을 구하며 권세자는 자기 마음의 욕심을 말하며 그들이 서로 결합하니하죠. 이른바 뇌물거래와 탐욕으로 인한 야합이 판을 치는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미가 선지자의 시대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사는 시대와 전혀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지금 이 땅에도 살인과 납치가 횡행하고 있죠. 지금 이 땅에서도 탐욕에 빠진 권세자들이 야합을 하며 지도자들과 법조인들의 뇌물 사건들이 들끓고 있죠.

이런 악행들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세월호와 같은 사건이 또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무전유죄와 유전무죄, 그리고 무권유죄(無權有罪)와 유권무죄(有權無罪)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미가 선지자가 죄악을 고발한 시대와 결코 차이가 있을 수 없죠.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2142807 

 

[전자책]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BR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BR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BR 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

www.aladin.co.kr

그래서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과연 이 땅에 의인이 살아 있는가, 하고 말이죠. 우리 대한민국에 의인이 살아 있는가, 하고 말이죠. 있다면 왜 미가 선지자 시대의 악행들이 여전히 이 시대, 이 땅에 일어나고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은 의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바른 삶을 제대로 살아가고 있다면 어떻게 이런 일들이 지속될 수 있을까요? 세상의 통치를 받는 세속인들과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공존하는 공간을 분리해야 한다고 핑계댈지 모릅니다. 교회는 거룩하고 세상은 다 악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교회도 세상 속에 존재하고 있고, 예수님도 더럽다는 세상 속으로 오셨습니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그리스도인들이 빛과 소금의 사명을 잘 감당치 못한 결과이지 않겠습니까?

의인이 없어 악행이 만연하는 시대의 또 다른 특징이 무엇이겠습니까? 절대선의 기준이 허물어진다는 점이죠. 세속적인 가치관에 의해 일어나는 나쁜 습관과 관행이 만연하게 되면, 그릇된 행동이 그릇된 것인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속되면 좋지 못한 문화가 되어 버립니다. 한 마디로 ‘저속한 사회’, ‘저속한 나라’가 되는 것이죠.

그런 사회였기에 미가 선지자도 이스라엘 사회에서 의인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본문 4절 상반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

만약에 내가 누군가로부터 선하고 내가 정직하다고 평가를 받는다면 그것이 절대적으로 선한 기준이라 그렇겠습니까? 아니죠. 이 세상의 상대적인 선의 기준 때문에 그렇게 내가 평가받고 있는 것이죠.

예를 들어, 노예시대, 식민지배 시대, 독재시대에 즉 피지배계층의 인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대에, 지배계층의 사람이 피지배계층의 사람에게 빵 한 조각을 주게 되면 어떻겠습니까? 그 시대의 가치관의 기준으로 비춰봤을 때 그야말로 선한 자로 평가를 받게 되죠. 전두환 정권의 시대, 더 거슬러 올라가 박정희 정권의 시대에, 그와 결탁한 지도자들이 가난한 이들에게 떡을 주고 빵을 주는 모습이 언론에 비치면 그야말로 영웅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게 바로 그 시대의 상대적인 선한 기준의 평가라는 점입니다.

마찬가지죠. 지금 우리가 베풀고 있는 선과 나눔이 오늘날 가치관에 비추어 보면 그것이 선한 행위가 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절대선의 기준으로 보면 나의 자랑이나 나를 과시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죠. 그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가 미가 선지자 시대보다 더 좋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5절에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 이웃과 친구와 배우자를 믿지 못하는 사회를 결코 정상적인 사회라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믿지 말라’는 말이 신조가 되면, 그 사회는 분명히 병들어 있고, 불의가 판을 치는 사회죠.

본문 6절도 마찬가지죠. “아들이 아버지를 멸시하며 딸이 어머니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로다 가장 가깝게 지내는 가족들이 원수가 되는 시대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복음서를 통해 언급한 재난의 시대와 똑같습니다.(마10:21, 막13:12). 그것은 곧 의인이 없는 시대, 곧 세상의 마지막을 향한 시대의 모습입니다. 바로 그와 같은 시대가 미가 선지자가 활약하던 그 세상의 종국이고, 그래서 4절 말씀처럼 심판의 날, 곧 형벌의 날을 맞게 된다는 것입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8679116 

 

[전자책]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BR 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www.aladin.co.kr

그런데 과연 이 땅에 의인이 없습니까? 오늘날 세상이 모든 죄악 속에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의인은 존재합니다. 세상의 상대적인 의의 기준에 비춰봤을 때는 의인이 없지만, 절대적인 의의 기준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새롭게 된 자들은 주님의 은총 속에서 의인이 되는 것이죠. 주님의 은총으로 의롭게 된 우리들은 주님의 의로우신 빛을 등경 아래에 두지 말고 등경 위에 두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선으로 악을 물리치고, 진리로 거짓을 몰아내며, 생명을 좇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죠. 그 삶이 본문 7절에서 말씀하는 의인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로다 죄로 물든 이 세상에서 저와 여러분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 수 있는 이 시대의 빛, 이 시대의 등불, 이 시대의 생명의 통로로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8679122 

 

[전자책] 야긴과 보아스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BR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BR 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

www.aladin.co.kr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