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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이셨습니다. 애굽에서 핍박과 고통으로 저물어 가던 이스라엘의 탄식 소를 들으시고, 그들의 아픔과 눈물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해내셨죠. 또 광야 길을 걷는 동안 그들의 눈과 발이 되어 주셨습니다. 비록 메마른 광야를 걸었지만, 주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그들에게 광야는 부족함 없는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와 같았습니다.
마침내 때가 되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얻게 하셨고, 그로 통해 하나님만을 그 땅의 주인, 그들의 소유의 주인으로 삼아 섬기게 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로 살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방 세력들이 쳐들어오는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연계를 동원해서 승리케 해 주셨죠. 그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하나님의 대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그런 은혜와 은총을 경험한 그들이요, 그들이 부르짖고 도움을 구할때마다 도와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배가 불렀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교만하여 하나님을 잊고 우상숭배자들로 전락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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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절 말씀도 그것을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표준새번역 성경으로 읽으면 이렇습니다. “에브라임이 말만 하면 모두 떨었다. 온 이스라엘이 그렇게 에브라임을 우러러보았는데, 바알 신을 섬겨 죄를 짓고 말았으므로, 이제 망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거듭 죄를 짓고 있다. 은을 녹여 거푸집에 부어서 우상들을 만든다. 재주껏 만든 은 신상들, 그것들은 모두 세공업자들이 만든 것인데도, 그들은 이 신상 앞에 제물을 바치라고 하면서, 송아지 신상들에게 입을 맞춘다.”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매우 주목받는 지파였습니다. 여호수아, 사사 드보라, 사무엘이 이 지파 출신이었고, 북이스라엘 왕국의 초대 왕이었던 여로보암 역시 에브라임 출신이었습니다. 에브라임이라는 명칭은 보통 북 왕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쓰일 정도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에브라임은 스스로 자랑할 만한 위치에 이르렀다고 자부할지 모르겠지만, 바알을 숭배하는 그들의 실상은 죽음 자체였죠. 그야말로 영혼없는 무뇌아였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마치 우상이 생명을 주고, 더 풍성한 삶을 보장해 주는 것처럼 더욱도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죄악을 향해 치닫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님은 심판을 선언하시죠. 본문 3절입니다. “이러므로 그들은 아침 구름 같으며 쉬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 마당에서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 마치 자신들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인생의 최후 결정권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는 것처럼, 자신들의 연약함을 모른 채 한없이 교만한 그들에게 하나님은 순식간에 종말을 들이닥치게 하신다는 걸 경고하죠.
본문 7-8절은 네 가지 동물을 비유로 삼아 혹독한 심판이 올 걸 경고합니다. 그중에서도 8절에 나오는 “새끼 잃은 곰 같이 그들을 만나 그의 염통 꺼풀을 찢고”라는 말이 하나님의 심정을 잘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은 바로 새끼를 잃은 암곰이 이성을 잃어버린 채 닥치는 대로 찢고 파괴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이가 없습니다.
본문 9-11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역시 이스라엘이 의존했던 자가 설사 왕이라 할지라도 절대 하나님의 심판에서 그들을 구원할 수 없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결국 그 어떤 소망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12-16절도 결국 죄에 의해 참담한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16절 말씀도 그렇죠. “사마리아가 그들의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므로 형벌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어린 아이는 부서뜨려지며 아이 밴 여인은 배가 갈라지리라.” 북이스라엘의 대표지파가 에브라임이요, 북이스라엘의 수도가 사마리아인데, 그곳이 모두 형벌을 당해 앗수르의 칼에 쓰러지고, 어린 아이들도 다 끌려가고, 아이를 가진 엄마들도 배가 갈라질 것이다, 그야말로 이방 세력들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칼을 휘두르는데, 그 앞에 당해 낼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말씀입니다.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시겠다는 강한 의지죠. 물론 하나님은 심판만 내비치는 하나님이 아니라, 호세아서를 통해서 끊임없이 보여주는 심판과 사랑의 하나님, 그 공의와 자비의 하나님을 동시에 보여준 것처럼, 왜 그토록 강력한 심판과 멸망을 선포하시는가? 그만큼 그들이 늦지 않게 돌아서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것이 헤세드 곧 하나님의 사랑이시죠.
주님은 죄로 가득한 이스라엘을 기다리고, 기회를 주시며 기다리고, 여러 선지자를 보내 권고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원함은 인생을 살리기 위함이지 죽이기 위함이 아니시죠. 주께서 인생으로 하여금 고생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라, 미래와 희망을 주게 하려는 게 본심 아닙니까? 하지만 그 기다림의 시간 앞에서도 끝내 돌아오지 않자, 그들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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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죠. 그리스도인이 죄 가운데 살면서도 인생이 순조롭게 풀린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죄를 용납해 주시거나, 내가 철저히 숨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죠.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다려주심의 시간이죠. 주어진 기회의 시간에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아서는 지혜가 필요한 법입니다. 그 기다림은 결코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럼 어떻게 죄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요? 본문 4절에 “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 외에 다른 신에게 눈을 돌리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이스라엘의 죄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자,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도 그 문제를 해결하는 길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3절에 한 비유가 나오죠. 임금에게 일만 달란트 빚 진 종이 있었는데, 당시 한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이었고, 1데나리온은 성인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죠. 그러니 일만 달란트는 평생을 벌어도 벌 수 없을 만큼의 큰 돈이었습니다.
결산 때가 되어 임금은 그 빚진 종을 불러 아내와 자식들과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빚을 다 갚도록 명령했죠. 그런 위기에 처한 그 종은 임금 앞에 엎드려 반드시 갚을 테니 자비를 베푸셔서 조금만 참아주시기를 간곡히 간청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갚을 수 있는 기간만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을 뿐인데도, 그 임금은 그 종을 불쌍히 그의 채무를 전부 탕감해줬습니다. 임금의 큰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그 엄청난 빚을 탕감 받은 그 종이,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의 빚을 진 동료를 만나자 어떻게 합니까? 당장 자기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죠. 그때 그 동료는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곡히 간청하지만 끝내 묵살한 채 감옥에 가둬버리죠. 그 소식을 전해들은 임금이 어떻게 합니까? 자신의 빚을 탕감해 준 그 종을 불러 악한 종이라 부르며,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옥졸들에게 넘기게 했죠.
무엇을 일깨워주는 비유입니까?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그 종은 임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원래 어떤 존재였었는지, 그런 자신들을 향한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랍고 큰 은혜였는지 전혀 생각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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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오늘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토록 부패하고 연약한 나 자신인데도, 주님께서 친히 찾아와 주셔서, 값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그 사랑을 저와 여러분들은 일평생 잊지 않는, 그래서 세상의 헛된 탐욕과 우상으로부터 자유하여 온전히 하나님만 일편단심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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