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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호세아

하나님께로 돌아와 인애를(호12:1-14)

by 권또또 2023.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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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사리분별은 눈에 보이는 것과 귀로 듣는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인간이라면 무릇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그 일의 깊은 의미를 추구하며 살아야 하죠.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향에는 그런 깊은 내용을 추구하는 이들이 많지 않죠.

더욱이 그 방향이 경제적인 부분과 맞물리면 더욱더 표면적인 것만 좇게 되죠. 경제 호황을 누리고 풍요롭게 되면 사람들은 그릇된 방향에 관대해지는 경향이 그것입니다. 굳이 과정과 방법론의 문제를 따지려고 하지 않죠. 결과가 좋은데도 불구하고, 과정의 문제를 거론하면, 꽉 막힌 사람처럼 취급받곤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실은 가벼운 세상이 보여주는 특징이죠. 사는 것의 참 의미보다 만족할 만한 결과만 보고 쫓아가는 세상 말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 모습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리와 생명의 법도를 좇기보다 그저 번영과 풍요의 결과만을 바라는 가벼운 삶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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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교보문고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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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절의 말씀에서도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내는 것이 바로 그런 삶이었습니다. 세상의 풍요에 취한 그들에게, 그런 행위가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게 무엇인지, 그런 뜻과 의미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7절에서도 거짓 저울을 가지고 속이기를 좋아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일명 땀 흘리지 않고도 부자가 될 방법만을 좇아 산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8절에서는 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내가 수고한 모든 것 중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내게서 찾아 낼 자 없으리라 하거니와 그야말로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 살아가는데도, 자신들의 삶에는 불의한 게 없다고 항변하는 꼴입니다. 그들의 삶은 한 마디로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은 ‘가벼운 인생’일 뿐입니다.

사실 인생은 묵직해야 좋은 것 아닙니까? 말도 묵직해야 무게가 있고, 뿌리도 묵직해야 오래 살 수 있고, 둥지도 묵직해야 바람에 쉽게 흩날리지 않죠.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그렇게 묵직해야 하는데, 하나님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1절에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는 삶이라고, 한없이 가벼운 삶을 산다고 평하십니다. 헛되고 소용없는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죠. 자신들의 느낌과 본능에 이끌려, 눈에 보이는 욕망대로 살아간다는 것이죠. 그 삶을 스스로 정당하다고 하지만, 지극히 가벼운 삶이라고 하나님은 평가하십니다. 하나님의 인식에 한없이 못 미치는 삶이라는 뜻이죠.

사실 하나님께서 인식하는 차이와 그들이 처할 심판의 크기는 정비례합니다. 하나님께서 무겁게 여기시고 소중히 여기시는 것만큼 사랑을 받지만, 가벼우면 가벼울수록 그 심판도 훨씬 가볍게 날아올 수 있다는 것이죠. 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에브라임이 격노하게 함이 극심하였으니 그의 주께서 그의 피로 그의 위에 머물러 있게 하시며 그의 수치를 그에게 돌리시리라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둔다면, 그들의 운명은 피할 길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신 하나님께서는 조상 야곱의 이야기를 들려주심으로서, 이스라엘이 죄악 속에서 바람을 먹으며 바람에 날려가는 헛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려고 하시는 것이죠.

본래 야곱은 연약한 인간의 표본이지 않습니까? 간계함과 비열함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간이죠. 태속에서부터 형의 발뒤꿈치 잡았던 야곱이고, 형의 장자권과 축복권을 가로챈 사기꾼 기질이 농후한 인간이죠. 그것이 그의 본성적이었죠. 그런데 그것이 본문의 이스라엘의 모습이고, 또 엄밀히 말하면 우리 자신의 속성도 이와 같다는 것이죠. 인간은 철저하게 부패한 본성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죠. 다윗도 그래서 자기 부패함을 알고 그렇게 고백을 했었죠. 자신의 죄악 됨이 이미 태어나기 이전 어머니의 모태에서부터 비롯된 것임을 말입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51:5)

이것이 바로 인간 스스로에게는 소망이 없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그 본성이 부패한 인간인데, 과연 누가 스스로에게 소망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부패한 본성은 야곱이 형의 장자권을 빼앗기 위해 보여준 비열한 간계로 발전합니다. 이것 때문에 형을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도 이런 행실을 버리지 못하고 라반을 상대로 사기를 칩니다. 또 얍복 나루에서는 인간적인 힘으로 하나님과 싸워 이기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참 비루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합니다.

야곱의 그런 모습 속에서 이스라엘은 자기 부패함을 들여다봐야 했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같지만 세상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소유보다 더 많은 것을 쌓기 위해 저울을 속이고 있고,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세상의 수단과 방법을 간구하며 기도하기보다 오직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애굽을 좇아가고 앗수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자기 방식만을 추구하는 모습들 말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의 모습이 실은 야곱의 본성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죠. 마치 온 인류의 부패함이 아담의 본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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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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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마찬가지죠. 야곱이나 이스라엘이나, 아담이나, 그들의 부패한 본성이 우리 자신의 본성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 비해, 오늘 우리 자신들은 그런 연약함과 부패함을 직시하고 있는 차이점이 있죠. 그걸 인식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며, 그만큼 주님의 보좌 앞에 나올 수 있게 하신 것도, 실은 주님의 은혜 아니겠습니까? 그 때에만 하나님과 우리의 인식의 차이가 좁혀지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이죠.

이스라엘은 야곱의 모습을 통해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탄식하며 하나님께 나아왔어야 했습니다. 그럴 때면 하나님께서는 일흔번에 일곱 번씩이라도 용서해 주시니 말입니다. 본문 4절 하반절부터 5절까지가 바로 그 말씀이죠. 하나님은 벧엘에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여호와는 만군의 하나님이시라 여호와는 그를 기억하게 하는 이름이니라 벧엘은 자신을 죽이려는 형을 피해 도망하던 때에 그가 지쳐 잠들게 된 장소였죠.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야곱을 만나 위로하셨고, 조상들의 하나님이 아닌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에게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로 기억해야할 그 이름으로 나타나 주신 곳입니다. 그 형편없는 사기꾼 야곱에게 말이죠. 그만큼 부패한 야곱, 사기꾼 기질의 야곱, 추악한 야곱에게 그렇게 찾아와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마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데 압장섰던 사울에게 주님께서 찾아와주셨던 것과 똑같은 모습이죠.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도 자신들의 부패함과 연약함 속에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바라보고 의지해야 했던 것 아닙니까? 그만큼 애굽과 앗수르라는 자기방식만을 고집할 게 아니라 말입니다.

그래서 6절에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이 말씀에 대오각성하고 돌이키는 인생의 대전환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야곱의 하나님이고, 아버지와 형에게 사기 칠 때부터, 아니 아직 눈도 뜨지 못한 모태에서부터 자신을 사랑하고 계셨음을 깨닫는다면, 그런 야곱의 후예가 곧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들임을 깨닫는다면,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바라야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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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교보문고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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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의 모습이 이스라엘의 모습이요, 그들의 모습이 곧 우리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죠. 우리도 본래 아담의 후예요, 본성에서부터 부패한 야곱의 기질, 그리고 다윗의 고백처럼 죄악 중에서 출생한 부패함과 연약함이 있는 우리 자신들 아닙니까? 그런 나 자신의 실상임에도 우리 각자를 사랑하여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오늘도 당신의 은혜의 손길로 우리들을 붙잡고 계시는 하나님의 진실과 사랑을 붙잡고 살아가는 하루의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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