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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열왕기상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왕상21:1-29)

by 권또또 2021.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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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 왕은 계속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며 자기 뜻대로 행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합에게 은총을 베풀어주셨죠. 이른바 이스라엘의 적이던 아람의 왕 벤하닷이 32명의 지역왕들과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쳐들어 올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지자를 통해 그 대적자들을 하나님께서 물리치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선포케 하셨습니다. 북이스라엘의 고관대작들의 아들 230, 또 군사들 7천명을 동원해 그 아람 왕과 연합군대 10만명을 하루 아침에 물리치게 하신 장면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은혜를 하나님께 덧입게 된 아합이라면 어떠했어야 합니까? 당연히 하나님께 그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아합은 그 벤 하닷의 군대를 완전히 물리쳤고, 심지어 벤 하닷마저 잡아서 죽을 기회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살려두고 맙니다. 이전에 자신과 형제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더 나아가 벤 하닷을 살려두는 댓가로 이전에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땅들을 되찾는다는 명목으로, 그리고 자신이 벤 하닷보다 더 관대하고 능력있는 왕임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자랑해보이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이 도둑질한 것입니다.

그만큼 그는 자기 보기에 좋은 길만 취하였을 뿐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아주 악한 길만 취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한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벤하닷을 죽이라고 했는데 살려뒀으니, 네가 그를 대신해 죽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본문 1절에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그 후에란 앞장에서 행한 아합의 죄를 상기시키는 것이죠. 벤 하닷을 살려둔 채 그 모든 공적으로 자기 것으로 삼은 아합을 심판하신다는 것 말이죠.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아합은 심히 괴롭고 불안했겠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불안과 근심도 다 사라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 값을 묻기 위해, 그를 심판하기 위해 한 사건을 보여주십니다. 과연 어떤 사건입니까? 아합 왕이 머무는 왕궁 근처에 나봇의 포도원이 있는데, 그걸 자기 것으로 삼고자 하는 아합 왕입니다. 그렇게 하려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 가져다준 두 번의 큰 승리를, 자기 힘으로 일군 것처럼 보이게 하려면, 외형적으로 더 많은 것들을 꾸며야 했기 때문이죠.

그때 그 포도원 주인인 나봇이 어떻게 답을 합니까? 3-4절에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나봇은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조상 대대로 주어진 유산을 함부로 사고 팔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권력으로 자기 밭을 다른 밭으로 바꾸어준다 해도, 하나님께서 금하신 법이니 따를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때 아합은 어떻게 합니까? 4절에 보면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얻지 못하자, 침대에 드러누워, 밥도 먹지 않습니다. 가히 어린이 같은 모습이죠. 그 모습을 바라본 아내 이세벨은 어떻게 합니까? 그녀는 음모를 꾸밉니다. 무슨 음모입니까? 그 착하고 선량한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을 방도입니다. 어떤 방도입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나붓을 죽이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그녀는 나봇이 살고 있던 지역 장로들과 귀족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이른바 서로 짜고 치는 편지입니다. 이 편지의 내용에는 나봇이 하나님과 아합을 모독했다면서, 불량배 곧 깡패를 동원해 증인으로 서게 해서, 결국 나봇을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처형을 하도록 하는 편지였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결국 힘없는 선량한 나봇이 돌팔매질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렇게 될 경우 그의 아내나 사랑하는 가족들은 하루 아침에 전답 곧 살아갈 거리를 다 잃게 되는 셈이죠. 그런데 그런 것에는 아랑곳없이 아합은 본문 16절의 말씀처럼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가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시는가? 엘리야를 다시금 아합에게 보내, 당신의 말씀을 전달케 합니다. 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만나라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나니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

한 마디로 그와 같은 악행을 저지른 아합이 죽을 것이고, 돌팔매질을 당한 나봇, 그 나봇의 피를 개들이 핥았는데, 그 개들이 너의 피도 핥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을 지금 아합 왕에게 전하라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엘리야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아합에게 당당하게 전달합니다. 본문 21-22절 말씀이 그것입니다. 분명코 너는 죽을 것이고, 너의 피를 나봇의 피를 핥았던 개들이 핥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아합 왕을 향해서만 그런 진노의 잔을 퍼부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의 아내 이세벨을 향해서도 하나님께서 진노의 잔을 퍼부을 것이라고 23절에서 말합니다.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 이세벨의 시신을 개들이 뜯어 먹을 것이란 말씀입니다.

왜 그와 같은 메시지를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전달케 하신 것입니까? 아합과 이세벨이 그만큼 북이스라엘 땅에 악행을 조장한 왕이고, 그것이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일임을 알려주기 위함에서입니다. 물론 그 악행도 아합 왕보다는 본문 25절의 말씀처럼 이세벨, 곧 아합의 왕비 이세벨이 아합을 충동질해서 저지른 일들이 훨씬 더 많았죠. 바꿔 말해 아합은 그 아내의 꼬드김을 이기지 못한 채 그녀가 요구한 대로 다 행했던 왕입니다.

이른바 수도 사마리아 성에 바알 신전과 아세라 상을 세우게 하여 백성들을 그 신전 앞으로 불러들여 경배하게 한 일도,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의 대적자인 하나님의 사람들 100명을 죽이려든 것도 그렇고, 심지어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죽이게 한 엘리야마저 잡아 죽이려 한 것도 그렇고, 아람 왕 벤하닷이 이끌고 온 10만명의 대군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물리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광을 자기 자신이 가로 챈 일도 그렇고, 오늘 본문에서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선량한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나봇을 돌로 쳐 죽이게 한 일도 그렇죠. 그 모두가 이세벨의 충동질에 아합이 넘어간 꼴이었습니다. 그것이 아합이 22년간 왕으로 재임하던 시절에 행한 일들인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고, 그래서 그가 온전한 모습을으로죽지 못할 것이고, 그의 피와 그 아내의 피를 개들이 핥을 것이라고 심판의 말씀을 다시금 내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심판의 메시지를 들은 아합이 어떻게 합니까? 본문 27절을 보면 아합은 그 때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일명 회개하는 모습입니다. 아합의 심령 속에는 적어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죠. 그도 그럴 것이 이전에 엘리야의 입술을 통해 36개월간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메시지 대로 되었고, 또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엘리야의 대결 속에서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하신 사건도 봤고, 그리고 아람 군대 10만명이 쳐들어왔을 때 청년들 7천명이 그들을 무찌르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봤기 때문에 그의 심령속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을 수 밖에 없죠. 그래서 그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들을 때 그가 취하려던 나봇의 포도원도 빼앗지 않고 멈춰섰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죠. 그렇게 될 경우 나봇의 가족과 자식들은 다시금 살아갈 터전을 되찾게 되었겠죠. 그런데 그와 같은 아합의 회개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29절에 내 앞에서 겸비했다하면서, 그의 시대에는 재앙을 내리지 않고, 그 아들의 시대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고 말씀하죠.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이 무엇이겠습니까? 아합 왕이나 이세벨을 보면서, 어찌도 이리 깨닫지 못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또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 속에 우리의 삶을 비춰본다면, 우리도 역시 실수하고 넘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아합처럼 하나님 앞에 겸비하는 모습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향한 방향성과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죠. 오늘도 그와 같은 주님의 은혜가 충만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아합과 이세벨이 악하고 또 어리석은 삶을 산다고는 하지만 우리도 실수하고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희들도 하나님 앞에 겸비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향한 방향성과 자세를 잃지 않는 저희들의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오늘도 그렇게 인도하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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