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벽묵상DewSermon/열왕기상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 머뭇머뭇 하려느냐(왕상18:1-21)

by 권또또 2021. 7. 12.
728x90
반응형

 

온 세상을 주름잡던 아합 왕의 시대에, 출신도, 성분도, 족보도, 그리고 소명에 관한 내용도 없던 엘리야가 갑자기 등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 내용이 있었죠. 이른바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린 너희들에게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란, 말씀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뭄이 왔는데, 그때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릿 시냇가에 머물고 있을 때 까마귀를 통해 먹을 것을 공급받았고, 그 시내가 말랐을 때엔 사르밧 과부의 집에 가서 떡 한 조각을 먹게 되었는데, 사르밧 과부는 그때 엘리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마음으로 엘리야에게 먹을 떡을 공궤했을 때 그 떡그릇과 기름 그릇이 떨어지지 않는 은총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죽은 아들을 엘리야 선지자가 다락방, 곧 하나님의 보좌와 부활 승천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 다락방에 올라가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할 때 그 아들의 혼이 다시금 살아 돌아오는 은총도 맛보게 해 주셨죠. 그 모두가 하나님과의 친밀함,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자들에게 그런 역사를 맛보게 하신 은혜였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이 갈멜산에서 대결하게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 과정 속에서 엘리야와 왕궁을 맡은 자 오바댜의 만남, 그리고 엘리야와 아합 왕의 만남을 주목하게 해 줍니다. 본문 1절에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비가 오지 않는 지 3년이 넘어가는 시점입니다. 누가복음 425절과 야고보서 517절에서는 사마리아 땅에 비가 오지 않는 기간이 36개월이라고 밝혀주기도 합니다. 어찌됐든 그 3년이 지나는 동안 비가 계속 오지 않아, 사마리아 전역이 극심한 물 부족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합 왕이 어떻게 합니까? 3절에 왕궁 맡은 자 오바댜를 부릅니다. ‘왕궁 맡은 자궁내대신’, 다른 말로 비서실장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죠. 그래서 5절에 보면 그 오바댜와 함께 아합 왕이 물 근원을 찾고자 전국 각지를 돌고자 그를 불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궁내대신, 곧 비서실장인 오바댜를 성경은 어떻게 평가합니까? 3절 하반절에 이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백 명을 가지고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더라.” 오바댜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한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아합 왕 밑에서 아합의 녹을 받을지라도, 이세벨이 선지자들을 박해할 때에 100명을 숨겨주고 보호하고 돌봐 준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실은 오바댜와 같은 인물들이 필요합니다. 세상 권력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자신 자신의 신앙심도 굳게 지키고, 또 하나님의 역사를 주도해 나가는 인물들 말입니다. 나라의 올바른 정책을 아랫 사람들, 민중들이 해 내기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경호실장이나 비서실장과 같은 위치에 있으면 좀 더 쉽게 해 나갈 수 있는 게 사실이죠. 물론 그 위치에서 추진하는 일들이 자기 사욕을 챙기는 데로 흘러간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거두게 될 뿐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함께 공감할만한 정책들을 추진해야 하죠. 그렇게 할 경우에 백성들에게는 물론 한 나라의 지도자도 그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신임을 하기 때문이죠. 오바댜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 악한 아합이 인정하고, 신임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왕은 왕대로, 또 오바댜는 오바댜대로, 전 국토를 순례하는데, 그 길목에서 오바댜가 엘리야 선지자를 만납니다. 그런데 둘 사이의 만남을 전해주는 본문 7절이 어떻게 증거합니까? 오바댜가 길에 있을 때에 엘리야가 그를 만난지라 그가 알아보고 엎드려 말하되 내 주 엘리야여 당신이시니이까.” 오바댜는 엘리야를 보자마자 단번에 엘리야인 줄 알아보고’, 곧 하나님의 선지자인 줄 알아고서 엎드렸던 것입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오바댜에게 자신을 아합 왕에게 소개하라고 명령하죠. 물론 오바댜는 그렇게 하길 거부하죠. 왜냐하면 이전에 아합이 그 엘리야, 자신 앞에 태풍처럼 나타났던 엘리야를 죽이고자 혈안이 돼 온 사방을 찾고 찾았지만 그때마다 흔적조차 찾지 못했기 때문에 다들 씁쓸했죠. 그리고 어딘가 나타났다고 해서 찾아가면 또 없었으니, 왕이 그때마다 진노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만약 당신이 여기 있다고 내가 아합 왕에게 가서 보고한다 한들, 당신이 여기 계시지 않을 텐데, 내가 어찌 그 사실을 고할 수 있겠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그때 엘리야는 아니다, 내가 오늘 반드시 아합 왕을 만나야 하겠다고 말합니다.

 

본문 16절은 그 오바댜가 엘리야의 소재지를 아합 왕에게 말해준 이후의 내용입니다. 오바댜의 말을 들은 아합 왕은 그 엘리야를 만나러 정한 장소로 가죠. 그러다가 두 사람이 마주쳤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만남을 어떻게 증언합니까? 16-17절에 오바댜가 가서 아합을 만나 그에게 말하매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러 가다가 엘리야를 볼 때에 아합이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오바댜와 달리, 아합은 엘리야를 향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하고 말하는 것이죠. 이른바 엘리야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아본 것도 아니고, 오히려 엘리야와 대결하려드는 형국입니다. 좀전에 오바댜는 궁내대신 곧 비시설장이지만 곧바로 엘리야를 알아보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듯이 머리를 조아렸는데, 그만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만 천하에 알리는 하나님의 선지자인줄 알았는데, 지금 아합은 그 오바댜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모습입니다. 그만큼 아합은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 중의 하나였던 것입니다. 비록 신분은 최고 높은 직책을 지녔을지 몰라도, 그의 영적인 수준은 완전히 밑바닥을 헤매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나라에 닥친 기근과 가뭄의 위기 속에서 그 원인이 근본적으로 어디에서 왔는지 깨닫지 못한 채 자기가 아는 인간적인, 경험적인 지식에 끌려 물을 찾으러 헤매고 다녔습니다. 기근, 국가적인 위기의 원인은 영적인 데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무지한 아합은 국가의 책임을 엘리야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하면서 말한 게 그것이죠. 진정한 책임은 그가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도록 한 데 있는데, 그 사실도 깨닫지 못한 채 오히려 그 책임을 엘리야에게 돌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때 엘리야가 어떻게 합니까? 분명하게 그 문제의 핵심을 짚어주죠. 18절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힌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을 따랐음이라.” 하나님의 명령을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게 한 책임이 바로 아합 왕, 당신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아합 왕은 자기가 누릴 권력을 다 누리고 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아내 이사벨의 영향력 아래 있었습니다. 그만큼 그녀가 가져 온 바알과 아세라 신을 숭배하며 종교적으로 타락했던 것이죠. 그 사실을 바르게 지적한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대결을 신청하죠. 바알을 섬기는 우상 지도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갈멜산으로 모아 오라고 말이죠. 과연 내가 섬기는 하나님과 그 우상들 가운데 누가 참 신인지 대결하자는 것이죠.

 

그래서 아합도 엘리야에게 질 수 없다는 심정으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갈멜산으로 보냈고, 또 엘리야도 그곳에 홀로 나타나 이제 대결을 벌이지 않습니까? 그때 21절에 엘리야가 뭐라고 말을 합니까?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지금 이 시대는 솔로몬이 죽은 지 60년 밖에 안 된 시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부분이 우상숭배로 가득했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오바댜와 같이 또 그가 숨겨준 100여명처럼 극소수에 불과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백성들에게 절규하는 순간에도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인지 확신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었고, 끝까지 망설였던 것입니다.

 

오늘 이 새벽에 저와 여러분들은 분명하게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나와 내 집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경외하겠노라고 말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주님께서 선한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어두운 시대에 영의 눈이 어두워진 아합처럼, 우리의 영의 눈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깨어 있게 하옵소서.

바알 신과 하나님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인생을 청산하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을 선택하며 믿음으로 살게 하시옵소서.

오바댜처럼 주어진 세상 위치에서 더욱 경건하게 살며 책임을 완수하며 살게 하시옵소서.

어려운 세상을 살아갈 때에도 주님의 영광을 위한 길에 온 의지를 다해 순종하며 살게 하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은 저주인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은 저주인가

www.aladin.co.kr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