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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열왕기상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왕상17:1-7)

by 권또또 2021.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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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장을 읽을 때 열왕기상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고 했습니다. 전반부는 1-10장까지 솔로몬의 통일 왕국 시대, 11-22장까지는 분열왕국시대를 보여준다고 말이죠. 그래서 1-2장까지는 다윗 왕의 왕권을 솔로몬이 계승한 내용, 3-8장까지는 솔로몬이 통치한 모습, 9-10장까지는 솔로몬의 타락과 하나님의 징계를 보여줬습니다. 열왕기상 후반부는 11-22장까지 이어지는데 주된 흐름은 분열왕국의 모습이라 했습니다. 11-14장까지 남북분열 왕국의 과정을 그리고, 151-24절까지는 남 유다의 세명의 왕들에 대해, 1525-1628절까지는 북 왕국의 여섯 명의 왕들의 역사를, 1629-2240절까지는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에 관한 통치 모습, 그리고 2241-50절까지는 남왕국의 유다의 여호사밧 왕에 대해서, 그리고 22장 마지막 부분인 51-53절까지는 북 왕국 이스라엘 의 아하시야 왕에 관한 통치 내용을 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열왕기상 16장부터 마지막 22장의 초반부까지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는 점입니다. 물론 16장부터 22장 초반부까지의 중심인물은 세상 방식으로 왕권을 쥐고 있는 아합 왕이 분명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께서 보내서 활동하게 하신 인물이 있습니다. 이른바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입니다.

 

그렇다면 그 전에는 왕들이 통치할 때 열왕들이 통치할 때에는 그런 하나님의 사람이 없었는가? 아니죠. 있었죠. 통일왕국 시대의 사울이나 다윗이나 솔로몬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울 왕 때엔 사무엘 선지자가, 다윗 왕 때엔 나단 선지자와 갓 선지자가, 그리고 솔로몬 때엔 나단 선지자와 아히야 선지자 그리고 잇도 선지자(대하9:29)가 활약했죠.

그럼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로 갈라진 분열왕국시대엔 어땠을까요? 그때도 열왕들이 두각을 내며 세상을 주름잡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보내 당신의 뜻을 알게 하셨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통치할 땐 아히야 선지자를 사용하셨고, 더 나아가 남왕국 유다의 무명의 젊은 선지자까지 여로보암에게 보내 하나님의 뜻을 깨우치게 하셨죠. 물론 그가 돌아서지 않자 그가 22년간 왕으로 통치한 그 뒤를 이어 아들 나답이 2년간 왕으로 통치했는데, 그 나답의 부하 장수였던 바아사가 역모를 꾸며 왕위를 찬탈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바아사도 다윗의 길이 아닌 여로보암의 길을 좇아 악행을 저지를 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후(왕상16:12)를 보내 그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셨죠.

그렇다면 북왕국 이스라엘에 그렇게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선지자를 보낼 때 남왕국 유다는 어떠했던가요? 최초 남 왕국 유다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어 다스렸는데, 그는 다윗의 길과는 달리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우상을 숭배하게 했죠. 그 뒤를 이은 아들 아비얌도 아버지 르호보암과 똑같았죠. 그런데 아비얌의 뒤를 이은 아들 아사는 왕위에 오른 뒤 모든 남색하는 자들을 좇아내고 우상의 제단까지 다 불태워버릴 정도로 개혁을 했죠. 그는 다윗의 길을 좇아 하나님을 섬긴 참된 왕이었죠. 물론 통치 말년에 인간적인 힘을 의지하다 발에 병이 들어 죽긴 했지만 그는 어떤 면에서 보면 다윗의 길목을 좇아 자정정화능력을 갖춘 왕이었죠. 어쩌면 남 유다에 특별한 선지자가 활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게 바로 그런 모습 때문이지 않나 싶습니다. 유다 왕국의 20명의 왕들 가운데는 그래도 8명의 왕들이 자정정화능력을 갖춰 하나님을 좇은 모습 때문에 말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북 이스라엘의 7번째 왕인 아합 왕 시절에 활약한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조명해 주는 말씀입니다. 이른바 최초 여로보암 왕으로 시작해 그 아들 나답이 정권을 이어받지만, 나답의 부하 장수 바아사가 역모를 꾀해 왕이 되죠. 그리고 바아사의 뒤를 이어 아들 엘라가 왕권을 잡습니다. 하지만 바아사의 부하장수 시므리가 또 반역하여 왕이 되지만 7일밖에 통치하지 못하죠. 그 부하 지휘관 오므리가 또 반역을 꾀해 왕권을 잡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왕위에 오르는데 그가 바로 이스라엘의 여덟 번째 왕이 된 것이죠. 중요한 것은 아합은 이스라엘에서 여로보암 보다 더 악한 왕으로 평가받는다는 점입니다. 사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여로보암이 기초석을 잘못 놓지 않았습니까? 북 이스라엘의 최남단 벧엘과 최북단 단에 금송아지 신상을 세우고 산당을 따로 세워 하나님을 경배케 만들었고, 제사장도 일반 사람으로 세웠고, 하나님의 절기마저 제 멋대로 바꾸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북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령을 흔들어놓았는데, 그 이후에 등극한 7명의 왕들도 모두 여로보암의 길을 좇았다고 성경은 평가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오므리 왕조가 시작된 후에 그 아들 아합이 왕위를 계승한 후에는 여로보암보다 더 악한 길을 좇았다고 성경이 증언합니다. 이른바 시돈 왕 엣바알의 빨 이세벨을 아내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온 백성들이 바알을 숭배하도록 만들었고, 그 바알과 쌍벽을 이루는 아세라 상을 만들어 온 백성들이 섬기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악행을 성경은 이렇게 평가하고 있죠.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왕상16:33)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북 왕국 이스라엘의 통치자 아합이 온 세상을 주관하고, 온 백성을 죄악으로 물들게 하던 그 시절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 선지자가 활약한 내용을 밝혀줍니다. 본문 1절은 너무너무 중요하여 이 시간에 한 절만 보려고 합니다.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엘리야에 대한 소개는 딱 한 줄입니다.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그가 몇 살인지, 어느 집안 출신인지, 누구 문하생인지,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한 인물을 소개할 때 보통 4-5대 조상들을 언급하는 게 관례인데, 엘리야가 어느 지파 사람이고 또 누구의 자손인지도 전혀 없습니다. 더욱이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부르심에 대한 소명기록이 있는데 엘리야는 그마저도 없습니다. 디셉이란 곳이 어느 지역인지도 지금까지 모르고 있습니다. 더욱이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라고 할 때 그 우거하다는 단어가 남의 집이나 타향에서 임시로 몸을 부쳐 살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처럼 엘리야는 머리 둘 곳 없이 동가식서가숙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갑작스레 등장한 엘리야, 출신도, 성분도, 분명하지 않는 그 엘리야가 요단강을 건너 북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성에 가서 아합 왕을 만난 것입니다. 당대에 모든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주름잡고 있던 아합 왕에게 엘리야가 담대하게 맞선 것입니다. 그의 첫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아니하리라입니다. 우상을 섬기고 절하면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할 것이라는 신명기1117절의 말씀을 그대로 전한 것입니다.

무모할 정도로 담대한 엘리야의 그 담대함은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본문 1절에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가 그 담대함의 출처입니다. 여기에서 내가 섬기다는 영어번역본(KJV)서다라는 번역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엘리야가 서 있다는 것은 엘리야가 창조주 하나님의 수종자라는 것,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충성스런 신하라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풍요를 얻기 위해 바알과 아세라에게 머리를 숙이며 우상을 좇고 왕의 길목으로 권력의 길목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나그네처럼 떠돌던빈곤의 삶을 산 엘리야는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을 받드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말씀 앞에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우리의 출신도 성분도 집안 족보도 내세울만한 게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정말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 한 가지를 붙잡아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알과 아세라를 좇듯 왕의 논리와 경제논리, 풍요의 논리를, 좇아 자기 욕망을 숭배한다할지라도,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전권대사요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서 있던 엘리야처럼 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때 저와 여러분들을 축복의 통로로, 이 세대를 새롭게 하는 도구로 친히 사용해 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이스라엘의 여덟 번째 왕 아합은 이전의 여로보암보다 더 악한 왕이었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왕의 논리, 풍요와 번영의 논리를 좇아 우상숭배를 자행케 했습니다.

바로 그때 출신도, 성분도, 배경도, 내세울 게 없던 엘리야를 통해 북이스라엘을 새롭게 하길 원하셨습니다.

저희들도 그런 통로로, 이 세대에 엘리야와 같은 주님의 도구로 살아가게 해 주시옵소서.

매일 매일 일상의 삶에서 주님 앞에 서 있는 자세로, 신전의식 속에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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