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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열왕기상

아합이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악을 더욱 행하여(왕상16:1-34)

by 똑똑이채널 2021.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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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왕의 40년 통치, 다윗 왕의 40년 통치, 솔로몬 왕의 40년 통치, 그렇게 통일왕국은 120년을 끝으로 역사속에서 사라졌고, 이후 이스라엘은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분열왕국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그것이 B.C.931년의 일이었습니다. 그때 유다와 베냐민 지파로 구성된 남 왕국 유다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통치했고, 10개의 지파로 구성된 북왕국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왕으로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요구한 개혁의 열망을 저버린 채 자기 야욕을 채우기 위해 북 이스라엘의 최남단 벧엘과 최북단 단에 금송아지 신상과 그를 위한 신전을 따로 만들었고, 그곳에서 섬길 제사장도 일반 사람들로 세웠고, 하나님의 절기마저도 자기 멋대로 조정하여 그 절기를 지키게 했습니다. 그런 정책은 겉으로 보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하나님께 완전히 등을 돌리는 정책이었습니다. 그만큼 그가 세운 토대는 이후의 모든 왕들이 그 길을 따라 행하는 악행의 초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후에 등장하는 모든 왕들이 그릇되게 행할 때마다 그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 다니게 된 것입니다.

그만큼 선왕이 어떤 초석을 놓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가정의 부모가 어떤 믿음의 초석을 놓느냐에 따라 자식과 후손이 영향을 받는 것도 같은 이치죠.

 

그래서 그 여로보암이 왕에 올라 22년간을 통치했고, 그 후에 왕위에 오른 사람이 그 아들 나답이 왕권을 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은 2년밖에(왕상15:25) 나라를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이유인 즉 잇사갈 족속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 나답의 부하 장수였던 바아사가 모반을 일으켜 나답을 죽이고 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결코 우연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길을 좇지 않고 자기 욕망의 길, 마이웨이를 걸을 때 그 후대를 완전히 진멸할 것이라고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이미 선포(왕상14:10-11)하셨는데,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왕권을 쥐고 있을 때 그 부하 장수 바아사가 쿠데타를 일으켜 그 나답을 죽이고 왕권을 거머쥔 게 바로 그 말씀을 성취하게 하신 것이었죠.

그렇다면 쿠데타를 일으켜 왕권을 거머쥔 바아사는 왕이 된 후 24년간(왕상15:33) 북이스라엘을 다스리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신 길로 걸어갔나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역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을 좇아, 하나님께 등을 돌리며 살 뿐이었죠.

 

그렇다면 그 시기의 남 왕국 유다는 어떻게 흘러갔습니까?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올라 17년간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그 17년 동안 아버지 솔로몬과 달리 하나님을 온전히 좇기보다는 오히려 백성들로 하여금 산당에서 제사드리게 하며, 여러 우상과 아세라 상을 숭배하게 만든 장본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애굽 왕 시삭을 들어 예루살렘을 치도록 만들어버렸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아무리 왕권을 쥐고 있어도 그것이 가시방석이 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준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호보암이 17년간 왕으로 다스린 후에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얌은 어떻했습니까? 그는 3년간 왕으로 남유다 왕국을 다스렸지만 아비얌은 다윗의 길, 곧 하나님의 길을 좇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하나님 앞에 온전치 못한 아비얌이었던 것입니다.

그 아비얌에 뒤를 이어 그 아들 아사가 왕위에 오르는데, 그는 41년간 나라를 다스리게 됩니다. 그렇게 그가 길게 왕으로서 통치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다윗의 길, 곧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던 까닭이었습니다. 그는 남색하는 자 다시 말해 그 땅의 호모들을 다 몰아냈고, 조상들이 지은 우상들을 모두 없앴고, 심지어 자기 어머니가 만든 아세라 상까지 불살라 없앴으며, 어머니의 태후 자리도 폐위시킬 정도로 하나님을 온전히 좇은 왕이었습니다. 물론 그의 왕정 말미에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와 치르고 있던 내전 문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북이스라엘 국경 너머에 위치한 다메섹의 왕 벤하닷에게 원조를 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발에 병이 들게 하셔서, 그가 41년의 왕권을 누리다가 죽게 하셨죠.

8회말까지의 인생도 중요하지만, 9회말 인생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정리하자면 그렇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최초 여로보암이 22년 통치, 그 아들 나답이 2년 통치, 그러다가 그의 부하 장수 바아사의 쿠데타로 새로운 왕조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 유다는 어떻게 흘러갑니까? 최초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17년간 통치하다가 그 아들 아비얌이 3년간 통치했고, 그 뒤에 그 아들 아사가 41년간 다스린 것입니다.

이와 같은 왕정이 각각 남북으로 분열이 돼서 펼쳐지는데,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게 하나 있습니다. 남 왕국 유다의 20명의 왕들 가운데 그래도 8명의 선한 왕이 등장하는데 그 왕들을 기준점으로 삼은 왕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게 누구이겠습니까? 그렇죠. 바로 다윗이죠. 그래서 그 후대의 모든 왕들이 선한 왕이었다는 평가를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가? ‘그가 다윗의 길로 행하여하고 평가합니다. 그만큼 다윗은 선한 왕의 평가기준이요, 초석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남 유다 왕들은 모두 다윗의 정통성을 잇게 된 것입니다.

그때 북왕국 이스라엘은 모두 19명의 왕들이 다스렸죠. 하지만 한 명도 선한 왕은 없었죠. 모두가 악한 왕들뿐이었죠. 그 기준은 북 왕국의 초대 왕 여로보암을 초석으로 삼았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들이 악한 길을 걸을 때마다 뒤따라 붙는 수식어가 바로 그것이었죠.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여라는 평가가 그것입니다.

 

그것은 오늘 읽은 본문 말씀도 똑같습니다. 오늘 본문은 앞서 살핀 북이스라엘의 왕조에 관한 내용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의 22, 그리고 그 아들 나답의 2년이 통치하는데, 그때 나답의 부하 장수인 바아사가 역모를 꾸며 나답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로보암 왕조는 총 24년으로 끝이 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그 바아사가 왕이 되었을 때의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가 왕이 되었을 때 어떻게 합니까? 다윗처럼 하나님의 길을 좇은 게 아니라 여로보암의 길을 좇아 악행했다고 평가하고 있고, 그의 악행을 지적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나니의 아들 예후 선지자를 보내 꾸짖는 장면이죠. 너를 여로보암의 집처럼 너와 네 후대를 쓸어버릴 것이다,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가 죽고 그 아들 엘라가 왕이 되었는데, 그 엘라는 2년밖에 통치하지 못하죠. 왜냐하면 본문 9절의 말씀처럼 엘라의 부하 장수이자 지휘관인 시므리왕을 모반하고 쿠데타를 일으켜 왕위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아사가 쿠데타를 통해 왕위에 올라 24, 또 그 아들 엘라가 2, 그래서 바아사 왕조도 26년밖에 다스리지 못한 것이죠.

그렇다면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 시므리는 어떠합니까? 본문 15절에 의하면 그는 ‘7밖에 통치하지 못하죠. 왜냐하면 시므리 밑에 있던 군대 지휘관 오므리가 또다시 모반하여 왕위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오므리가 왕권을 잡은 다음에 본문 24절의 말씀처럼 사마리아 성을 건축하죠. 이른바 훗날 북 이스라엘의 수도가 된 곳이죠. 그런데 그 오므리도 26절의 말씀처럼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고, 그가 12년간 왕권(왕상16:23)을 누리다가 죽고, 그 아들 아합이 왕이 되죠. 그리고 그 아합이 왕이 되어 22년간(왕상16:29) 수도 사마리아에서 왕권을 누리는데, 본문 31-33절까지 증언한 바로는, 그는 여로보암과는 게임이 안 될 정도로 더욱 악을 조장한 왕이었다는 점입니다. 시돈 왕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는가 하면, 바알을 섬겼고, 사마리아 성에 바알을 위한 제단까지 축조했고, 또 바알과 짝이 되는 신상 아세라 상을 만들어 세울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북이스라엘은 어떤 희망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때 침묵만 하신 걸까요? 아니죠. 동트기 전에 가장 어둡다고 하듯이, 여로보암보다 더 극악무도한 아합이 역사 속에 등장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여러 왕들의 시대에 선지자들을 통해 바로 잡고자 하셨던 것처럼 아합의 시대에도 태풍과도 같은 선지자 엘리야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태풍 앞에서는 누구든지 서 있는 사람은 쓰러지고 맙니다. 태풍 앞에는 납작 엎드려야 삽니다. 모세가 신을 벗고 엎드린 것도, 다윗도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그 왕좌를 내놓고 사울 앞에 납작 엎드린 것도, 다메섹 도상의 바울도 그리스도 앞에 엎드린 것도 그런 연유였죠.

오늘도 믿음의 초석을 잘 놓을 수 있는 하루요, 언제나 9회말 인생이라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려 살아가는 하루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주님의 말씀이 태풍처럼 저희 인생에 관통할 때 엎드리는 자들 되게 하시옵소서.

그 길을 통해 저희 모두를 바르게 세워주시옵소서.

믿음의 부모로서 신앙의 초석을 잘 놓을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8회말 인생을 살아왔을지라도 매 순간순간 9회말 인생이라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려 살게 해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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