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초대 왕에 이어 다윗이 2대 왕국을 건설한 이후에 그 아들 솔로몬 때에 이스라엘의 통일왕국은 가장 강성한 왕국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솔로몬이 통치를 잘 해서가 아니라 그 아버지 다윗이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잘 지켰던 까닭입니다. 물론 다윗도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최전방에 보내서 적의 갈에 죽게 만드는 살인죄까지 저질렀지만, 정말로 그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하며 다시금 하나님 앞에 바른 길을 좇았던 다윗이었기에, 그 후대를 영원토록 견고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바로 그 언약에 기초하여 솔로몬의 시대에 세계 최강의 왕국을 세워주셨던 것입니다. 문제는 그 아들 솔로몬이 집정 후반기에 물질적인 타락, 도덕적인 타락, 그리고 영적인 타락의 길에 들어섰을 때, 통일왕국 이스라엘은 남쪽 유다 왕국과 북쪽 이스라엘 왕국으로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북왕국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왕에 올라 22년간을 통치했고, 남왕국 유다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어 17년간을 다스렸습니다.
그것이 어제 살펴본 내용이라면, 오늘 읽은 본문에는 모두 4명의 왕들에 대한 활동이 기술돼 있습니다. 이른바 1-24절까지는 남 유다의 아비얌 왕과 그 아들 아사 왕에 관한 기록이 들어 있고, 25-34절까지는 북 이스라엘의 나답 왕과 그 뒤를 이은 바아사 왕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남왕국 유다의 아비야 왕과 그 아들 아사 왕은 모두 솔로몬의 아들이자 손자로 이어지는 왕위 계승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에 나오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나답 왕과 그 뒤를 이은 바아사 왕은 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왕권을 휘어잡은 격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아버지의 왕위를 아들이 그대로 이어받은 게 아니라 쿠데타를 일으켜 왕위에 오른 정권이 북 이스라엘의 왕정사입니다. 이미 우리가 주일오후 시간에 파노라마 성경을 통해 배우면서 알게 된 것이 있었죠. 남왕국의 20명의 왕들 가운데 선한 왕, 곧 다윗처럼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좇은 왕은 8명이 있었고, 북 왕국의 19명의 왕들 가운에 다윗처럼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좇은 왕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남 왕국의 20명의 왕들은 북 왕국 이스라엘처럼 쿠데타를 일으켜서 왕권을 잡은 게 아니라 아버지의 아들로 계속 이어지는 왕위였음을 말입니다.
그처럼 오늘 본문의 남왕국 유다의 왕 아비얌, 다른 말로 아비야라고도 하는데, 그 아비얌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17년간 다스린 후 죽을 때 다윗의 왕권을 계속 물려받은 다윗의 증손자이지 않습니까? 그 아비얌은 본문 2절에서처럼 3년간 나라를 다스렸다고 밝혀주는데, 그가 행한 업적은 단지 3절 한 구절로 끝나버립니다. 3절에서 그를 향해 뭐라고 평가하는가?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하고 평가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원하신 길을 좇지 않았다는 평가죠.
우리 인생도 50세, 70세, 강건하면 80세, 그리고 100세 인생을 산다한들, 단 한 줄로 평가받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아비얌이 그 조상들과 함께 잘 때, 다시 말해 그가 3년간 통치하고 죽을 때 그 아들 아사가 유다의 왕이 됩니다. 그걸 9절에서 밝혀주는데, 다윗 왕국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아비얌의 아들 아사는 본문 10절 말씀처럼 41년간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꽤 긴 세월을 왕으로 통치한 것이죠. 그런데 아사 왕은 그 아버지 아비얌과는 달리 그의 왕정활동을 길게 평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는 것, 남색하는 자, 곧 호모들을 그 땅에서 좇아냈고, 조상들이 지은 우상들을 모두 없앴고, 심지어 그 어머니가 만든 아세라상을 다 불살랐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태후 자리도 폐위시켰고, 그래서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왕의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16절에 보면 아사 왕과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 사시에 내전에 있었다고 밝혀주는데, 바로 그 내전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 아사 왕이 누구의 힘을 의지하는가 하는 점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아사 왕은 북쪽의 다메섹의 왕 벤하닷에게 원조를 청하는 모습입니다. 그 벤하닷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그래서 그로 하여금 북이스라엘 왕국을 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 벤하닷에게 성전 곳간과 왕궁 곳간에 남은 은금을 모두 가져다 준 모습을 본문 18절에서 밝혀주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게 많은 은금보석들을 받게 된 다메섹의 벤하닷은 남 유다의 아사 왕의 바람대로 북 이스라엘 왕국을 치게 되죠. 그렇게 해서 아사 왕이 북이스라엘과의 내전없이 자기 왕권을 강화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이 아니라 인간 방백을 의지하는 길이라 하나님의 미움을 사게 되었고, 급기야 “그는 늘그막에 발에 병이 들어”(23), 그 후에 그 병으로 조상의 묘실에 장사되는 모습을(24)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사 왕은 아버지 아비얌과는 달리 초반부에는 정말로 우상과 신상들을 다 없애고 남색하는 자들까지 다 몰아내서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참 선한 왕으로 출발했는데, 그로 인해 하나님께 사랑을 받아 왕다운 왕이 되었는데, 41년의 그 막바지에 갈수록 하나님보다 이방 나라의 군사력을 의지하는 바람에 그가 발에 병이 들어 죽게 된 것을 성경이 증언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그 시절에 북 이스라엘의 왕은 누가 이어받고 있습니까? 본문 25-34절에 북 이스라엘도 두 명의 왕이 왕위를 누린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른바 북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22년간 통치하고 죽었는데, 그의 왕위는 그 아들 나답이 왕위를 잇게 되는데 나답은 본문 25절의 말씀처럼 2년간 다스렸고, 그 역시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길이 아니라 아버지 여로보암이 좇았던 악한 길을 추구했다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왕위는 27절 말씀처럼 잇사갈 족속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차지한 것으로 나옵니다. 이른바 나답의 부하 장수였던 바아사가 모반을 일으켜 나답을 죽이고서 대신 왕이 된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여로보암의 아들 대에서 그 명맥이 끊어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성취된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북이스라엘 백성의 열망을 좇아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처럼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좇아 살 것을 주문했고, 그렇게 하면 하면 그의 왕위를 영원토록 견고케 해 줄 것이라고 약속까지 하셨죠. 하지만 여로보암은 왕권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법도를 좇지 않고 어리석은 길만을 추구했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대에 모두 멸망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언약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2년간 통치하다가 그만 그의 부하 장수 바아사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고, 그래서 그 왕권이 바아사에게 넘어간 것입니다. 그 바아사는 왕이 되어 24년간 다스렸다고 33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답의 왕권을 가로챈 바아사는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길을 추구했는가, 다윗처럼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준수했는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북 이스라엘의 19명의 왕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준수한 왕은 없었습니다. 그것이 북 이스라엘의 열왕들의 행적입니다.
우리나라도 건국 이래로 12명의 대통령들이 다스렸습니다.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그리고 12번째 문재인 대통령입니다. 최근에 몇 해 전에 김대중 전대통령도 돌아가셨는데, 역대 대통령들을 기억하는 것은 단 몇 마디 말뿐입니다. 정말로 나라를 바르게 세웠는지, 그릇되게 이끌었는지,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4명의 왕들에 대한 성경의 평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왕국 유다의 왕 아비얌이 3년, 그 아들 아사가 41년을 다스렸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나답이 2년, 바아사가 24년을 다스렸는데, 과연 그들의 평가가 긴긴 장을 할애합니까? 아닙니다. 단 몇줄 뿐입니다. 그리고 그 몇줄의 평가와 기준은 그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다윗의 마음’처럼 하나님을 경외했는가? 그렇지 않았는가의 기준점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인생이 길든지 짧든지 단 한 줄로 평가받는다는 사실이요, 아무리 8회까지 잘 살아왔어도 9회 말에 어긋난 길로 들어서면 안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말씀이죠. 그것은 나의 평가가 아니라 머잖아 천국에서 생명록 책과 함께 행위록 책에 기록된대로 하나님께서 평가하실 것이요, 그에 따라 상급을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도 그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우리 인생을 무엇이라 정의할지,
이 세상에 살아남은 자들이 나를 몇 줄로 기억할지,
나의 묘비명엔 무엇이 기록될지,
늘 생각하며 살게 하시옵소서.
세상의 기준보다 오직 말씀을 붙들고 실천하는 신실한 인생과 가정과 자녀들을 이끌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오늘도 홍해를 가르신 주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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