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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열왕기상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왕상 19:1-21)

by 권또또 2021.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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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있었던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과의 대결에서 통쾌한 승리를 맛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기도에 불로 응답하셨고, 3년 동안 내리지 않았던 비도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만약, 저와 여러분들이 엘리야였다면 이때 어떻게 했을까요? 엄청난 승리와 기가 막힌 응답을 보고서, 몇 날 몇 일은 승리감과 성취감에 뿌듯해하며 가슴 벅차오르지 않았을까요? , 불이 두렵지 않을 만큼의 용기백배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엘리야의 모습은 조금 의아합니다. 본문 1-2절은 이세벨이 자신의 선지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상황입니다. 이때 엘리야가 어떻게 합니까? 본문 3절에 보면 자기 생명을 위해 도망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심지어 광야 깊숙히 들어가 로뎀나무 아래에서 하나님께 탄원까지 합니다. 하나님 저를 좀 죽여주세요하고 말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어루만져주셨고,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그리고 엘리야의 뒤를 이어 엘리사를 등장시키시는 것이 오늘 본문의 총체적인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이 주는 메시지를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이 1-8절의 내용입니다. 큰 승리를 경험한 엘리야가 이세벨의 위협 앞에 움츠려들었습니다. 850명의 이방 선지자들의 조롱과 야유에도 전혀 굴하지 않던 엘리야가 이세벨의 날카로운 소리 한 마디에, 그만 생명을 포기할 정도로 낙망에 빠져버립니다.

우리는 여기서 놀라게 됩니다. ‘세기의 대결에서 그렇게 우렁찼던 엘리야가 왜 이렇게 약해 빠지는가? 하고 말입니다. 왜 이렇게 못났을까? 엘리야가 이 정도 밖에 되지 않았나? 대선지자가 그것 하나 가지고 우울증에 빠진단 말인가?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이 엘리야의 모습이자, 모든 위대한 선지자들의 모습이요, 곧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는 점입니다. 엘리야를 거론 할 것도 없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약함과 녹록치 않은 삶의 자리에서 얼마든지 엘리야와 같은 상태에 노출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상황과 환경에 낙심하고 쓰러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것 밖에 안 되나?’, ‘나 믿음 있는 것 맞아’, ‘내가 명색이 하나님의 자녀인데, 이것 때문에 넘어져서 좌절하고 있나하는 모습들 말입니다. 엘리야의 그 못난 상태가 곧 우리 자신의 연약한 상태일 수 있기에, 우리는 엘리야의 연약한 상태에 놀라기에 앞서 인정해야 할 게 있습니다. 엘리야의 상태가 우리의 솔직한 실체라는 사실 말입니다. 850명 대 1에서 대승리를 경험한 그 엘리야, 불로 응답을 받고, 하늘의 비가 쏟아지는 응답을 경험한 그 엘리야가, 오늘 본문의 실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엘리야의 실존, 그 연약한 엘리야의 실체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그렇죠. 제 아무리 위대한 엘리야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인생이라는 점입니다. 그토록 약하고 못난 실존으로서 하나님의 은혜 앞에 다시 서야 할 존재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다시금 하나님께 기대를 걸고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이를 악 물고, 입술을 깨물고 악착같이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하는 다짐과 애씀보다, 더욱 철저히 더욱 절박하게 하나님의 은혜 앞에 기대고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나는 철저히 무능하고 무력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도움이 없이는 살 수도, 할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하고 간구하는 신앙의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정직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본래 실존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자만 하나님께서 생생하게 어루만져주시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상황은 본문 9-14절의 말씀입니다. 실의와 절망에 빠진 엘리야가 하나님의 어루만져 주심과 또 먹여주심의 은혜를 통해 낙망의 자리에서 겨우 일어섭니다. 그리고는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죠. 그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어떻게 만나주시는가, 하는 것이 두 번째 부분의 초점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본문 11절의 말씀처럼, 크고 강한 바람 가운데서도, 지진 가운데서도, 불 가운데서도 계시지 않습니다. 그 크고 강한 바람, 지진, 불 등은 하나님께서 현현하실 때 동반하는 장치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런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로 응답해 주는 게 아니라 세미한 소리로 만나주고 계십니다. 본문 13절에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바꿔 말해 엘리야야, 네가 여기 이렇게 주저앉아 있어야 할 것이 아니지 않느냐?’하는 말씀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오해하는 게 있죠. 특별한 가시적 능력이나 신비한 기적, 인생 역전의 문재해결이나 응답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만나려고만 하는 경우입니다. 그런 능력이나 기적, 그런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나타나주셔야만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구나','하나님이 나를 특별하게 사랑하시는구나'라고 인정하는 경우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크고 강한 바람, 지진, 불 가운데서 엘리야를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우렁찬 소리도 아닌, 세미한 음성으로 만나주셨습니다. 엘리야에게는 무엇보다 세미한 음성이 필요했습니다. 세미한 음성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의 속삭임입니다. 그 하나님의 속삭임이 엘리야를 다시 일으키고 살린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엘리야처럼 광야 깊은 곳까지 들어와 있다면, 로뎀 나무 아래에 있다면, 먼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 앞에 머무시길 바랍니다. 특별히 로뎀나무는 울창하고 커다란 나무가 아니란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로뎀나무교회라고도 이름을 짓고 있는데, 그 나무는 울창한 나무가 아니라 싸리 빗자루 같은 나무로서 결코 나무라고도 불릴 수 없는 나무일뿐입니다. 마치 요나가 태양열을 피하고자 호박덩굴에 기대는 모습과 똑같은 모습입니다. 나무라고도 할 수 없는 그 하잘 것 없는 것에 기대고 싶은 것처럼, 엘리야의 상황이 그런 비참한 상태인데, 저와 여러분들이 혹여라도 그런 자리에 처해 있다면, 우리 자신의 실체를 하나님 앞에 인정하고, 정말로 하나님의 음성 앞에 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때 당신의 자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듯이, 우리 자신에게도 세미하게 음성을 들려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내가 너를 잘 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하시면서 우리를 소생케 해 주실 것이요, 우리에게 은혜의 빛을 비춰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의 세 번째 상황은 15-21절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엘리야가 실의에 빠진 이유 중 하나는 그것입니다. ‘내가 큰일을 행했는데, 이제는 나만 남았다는 자세입니다. 이제는 자신에게 여력이 없어 그만 끝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합니까? ‘그래, 끝내자. 네 할일을 다 했으니, 너에게 무엇을 더 바라겠느냐? 수고했다.'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쳐 낙망한 엘리야를 설득하죠. 본문 엘리야야, 너만 남은 게 아니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이 있단다. 너를 이어 줄 엘리사도 있으니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하고 말씀하는 상황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영적 무력감과 외로움과 낙망에 빠진 엘리야를 내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는 쓸모가 없다고 제하지도 않습니다. 섬세하고 따스하고 세미한 음성으로 설득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없어서, 엘리야가 없으면 일이 안되기 때문에 그렇게 설득하고 계시는가? 아닙니다. 당신의 사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세우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통해 이루실 일을 성취하기까지 당신의 자녀들을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시는 성령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우리 자신의 절망적인 한계와 상황 속에서 한숨만 짓지 말고, 우리에게 찾아와 우리를 설득하시고, 격려하시면서, 어루만져 주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손길을 신뢰하라는 것이죠. 그때 주님께서 공급하시는 새 힘을 맛보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와 같은 은혜가 오늘도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자랑하는 자도,

폭풍우에도 굴하지 않고 단단하고 굳건하기만 해 보이는 자도,

때로는 몹시 흔들립니다.

나무라고도 할 수 없는 로뎀나무 아래서 말없이,

숨죽여 눈물을 흘리며 신음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가 엘리야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입니다.

그런 저희들을 내버려두지 않고 세미한 음성으로 말을 걸어주시고,

어루만져주시고,

일으켜 세워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이 새벽에 주님의 세미한 음성과 따사로운 손길로 저희들을 품어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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