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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에스겔 23장도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제 읽은 22장처럼 그들의 죄악상을 고발하시는데, 북이스라엘과 함께 묶어서, 그들의 영적인 간음에 대해 지적하십니다. 이른바 오홀라와 오홀리바 이야기가 그것이죠. 오홀라는 사마리아를 빗댄 이름이고,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을 상징하는 이름이죠. 지금 에스겔서의 말씀은 포로생활 제 7년째 되는 상황에서 세 번째로 주시는 메시지요, 남유다의 멸망 곧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과 함께 묶어서 그들의 영적인 간음 상태에 대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과연 오홀라와 오홀리바의 죄목이 무엇입니까? 음행이죠. 음행이라는 것은 정당한 대상이 아닌 사람에게 자기 몸과 마음을 맡기고 즐기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오홀라와 오홀리바는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상징한다고 했죠. 그렇기에 오홀라와 오홀리바의 음행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 자신들의 마음과 몸을 맡기는 영적인 범죄 행위입니다. 그런 영적인 범죄의 내용을 인간의 육체에 빗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죠.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음행하는 그 시작과 진행 그리고 결과와 이유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범죄의 시작은 음행의 대상이 잘생기고 준수해 보이더라는 점에 있습니다. 먼저 북이스라엘이 음행한 대상을 6절과 7절에서 이렇게 밝혀줍니다. “그들은 다 자색 옷을 입은 고관과 감독이요 준수한 청년이요 말 타는 자들이라 그가 앗수르 사람들 가운데에 잘 생긴 그 모든 자들과 행음하고.” 이른바 그들은 준수한 청년이고 그 누구보다도 잘생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 12절에서 “그가 그의 이웃 앗수르 사람을 연애하였나니 그들은 화려한 의복을 입은 고관과 감독이요 말 타는 자들과 준수한 청년이었느니라.” 남 유다 또한 앗수르의 고관과 준수한 청년과 음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5절에서는 “그 형상은 허리를 띠로 동이고 머리를 긴 수건으로 쌌으며 그의 용모는 다 준수한 자 곧 그의 고향 갈대아 바벨론 사람 같은 것이라.” 갈대아 바벨론 사람과도 음행에 빠졌는데, 그들 역시 ‘준수한 자’ 곧 잘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사람들이 형제지간인데, 그들은 각각 앗수르와 바벨론 사람들의 멋지고 준수한 매력 때문에 음행에 빠져들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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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떻습니까? 과연 하나님의 자녀들이 앗수르와 바벨론 사람들을 연애하고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까? 아니죠. 그들은 하나님 자녀들에게는 대적해야할 대상입니다. 그런데 그 대상이 매우 매력적이고 멋있어 보이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하나님 백성들이 영적으로 음행하기 시작한 배경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죄가, 세상의 것들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멋있어 보이면 그때부터 영적인 음행이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 백성들의 눈에 이 세상의 부와, 이 세상의 행복이, 이 세상의 기쁨이, 이 세상의 내 이름값이, 좋아 보이면 그때부터 영적인 음행이 시작되는 것이죠. 그러면 그것을 가지기 위해 내 몸과 마음과 영혼을 거기에 바치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면 거기에 홀릭하는 것으로, 거기에 빠지는 것으로 모든 것이 진행됩니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은 일깨워줍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그토록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 세상의 것을 가지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는데,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그것으로 인해 즐거움을 가질 수 있지만, 반드시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들이 그의 하체를 드러내고 그의 자녀를 빼앗으며 칼로 그를 죽여 여인들에게 이야깃거리가 되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이 그에게 심판을 행함이니라.” 북이스라엘 곧 오홀 리가 앗수르에게 마음이 빼앗겨 영적인 간음을 저질렀는데, 결국은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 24절에 “그들이 무기와 병거와 수레와 크고 작은 방패를 이끌고 투구 쓴 군대를 거느리고 치러 와서 너를 에워싸리라 내가 재판을 그들에게 맡긴즉 그들이 그들의 법대로 너를 재판하리라.” 남유다 사람들이 바벨론의 준수함에 빠져 영적인 간음상태에 빠져들어갔는데, 결국은 그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자신이 사랑했던 그 대상을 통해 완전히 패망의 길을 걷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영적인 간음의 상태를 오늘 본문에서는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냥 추상적으로 적당하게 이야기해도 괜찮을 텐데, 오홀라와 오홀리바의 음행을 묘사할 때 여자로서 가장 은밀하고 소중한 것을 그 음행상대에게 어떻게 넘겨주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음행의 대상인 애굽과 앗수르와 바벨론이 그것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도 밝혀주죠.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대부분의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영적 간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남자들의 음행을 빗대어 말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여자에 빗대서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 본문도 북이스라엘을 오홀라라는 여자로, 남유다를 오홀리바로 묘사하여 음행을 저지른 것을 지적하죠.
왜 그렇겠습니까? 이들에게 몸과 마음을 맞길 정당한 대상인 남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여자들을 사랑하고 보호하고 아껴줄 정당한 대상인 남자가 있는데도, 엉뚱한 남자들과 음행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백성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보호해 줄 남자가 누구십니까? 영적으로 그 남자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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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 주님께만 드려야 할 가장 소중하고 은밀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 영혼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사랑 아닙니까? 신랑 되신 우리 주님께 드려야할 그 사랑을 신랑이 아닌 앗수르와 바벨론과 같은 세상의 것들에게 내줬던 것이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는 걸, 지금 오홀라와 오홀리바를 통해 표현한 것입니다. 그것도 적당하게 사랑한 게 아니라 온몸과 온 마음과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했다는 것을 그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 영적인 신랑되는 하나님을 떠나 이방 세력들의 것들을 그토록 사랑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비참함 뿐입니다. 그들에게 짓밟히고 빼앗기고 수치를 당하는 것들이죠.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을 사랑하면 세상에서 승승장구하는 게 아니라 철저히 패망한다는 것을 오늘 말씀이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심판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48-49절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같이 내가 이 땅에서 음란을 그치게 한즉 모든 여인이 정신이 깨어 너희 음행을 본받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너희 음란으로 너희에게 보응한즉 너희가 모든 우상을 위하던 죄를 담당할지라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심판하시는 목적이 두 가지임을 알게 하십니다. 첫째는 그들의 음행을 본받지 않게 하겠다는 것, 둘째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주인이심을 진정으로 천명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 본문은 남유다의 심판받는 이유, 다시 말해 예루살렘의 영적인 간음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도 되는데, 왜 굳이 북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죄악된 인간의 속성이 빤하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죄악의 공통분모가 있다는 것 말이죠. 그렇기에 본문의 지적은 곧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들에게도 하시는 말씀임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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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해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과녁을 놓치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만 진정한 신랑으로, 그래서 순결한 영적 신부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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