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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에스겔 9장 말씀도 어제 읽은 8장과 연장선에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 행위를 지극히 미워하시고, 그 까닭에 분을 참지 못하고 심판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이 무슨 우상을 숭배했습니까? 성전의 북문에서 여인들이 ‘담무스’ 곧 바벨론의 곡물의 신 담무스를 위해 구하고 비는 행위였고, 성전의 동쪽에서는 동쪽에 떠오르는 태양을 숭배했습니다. 이른바 하나님께서 태양을 창조하셨는데도 그 피조물인 태양을 신으로 떠받드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보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징계하시고, 치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른바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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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YES24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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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곧 유다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읽은 8장 1절의 상황을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됩니다. 지금 8장도 그렇고, 본문 9장도 그렇고, 이 내용들이 ‘환상 가운데서 보는 내용’입니다.
8장 3절에 “그가 손 같은 것을 펴서 내 머리털 한 모숨을 잡으며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천지 사이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환상 가운데에 나를 이끌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환상가운데 끌어 올려서,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신 것이죠. 그곳에서 지금 온갖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유다 백성들의 실상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는 모습도 환상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곧 에스겔이 포로로 끌려오게 된 그 이유를 밝혀주는 환상이기도 하고, 머잖아 3차 바벨론 침략 속에서 남은 유다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갈 것을 암시한 환상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8장 1절의 말씀을 보면 에스겔이 이 환상을 보게 된 때가 언제냐 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해 여섯째 달 초닷새에 나는 집에 앉았고 유다의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아 있는데 주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에서 내게 내리기로.” 여섯 째 해 여섯째 달 초닷새에 에스겔이 환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섯째 해 여섯째 달이란 어느 때를 두고 하는 상황입니까? 이 때는 유다 왕 여호야긴이 18살에 왕위에 오른 지 3달 만에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느부갓네살 왕에게 포로로 끌려간 지 6년 6월 5일이 지난 때입니다. 다시 말해 에스겔이 포로로 끌려 온 지가 1년 6개월 전이었고, 지금은 1년이 지난 상황에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예루살렘의 실상을 보여주고 계신 것이고, 그로 인해 심판하시는 모습을 환상 가운데 보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환상을 보여주신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왜 에스겔에게 예루살렘 성전의 우상숭배 행위와, 그를 향한 심판의 환상을 생생하게 보여주신 것입니까? 사실 에스겔은 제사장이 되려고 준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른바 레위지파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 길을 준비한 젊은이였죠.
민수기 민수기 8장 24-25절을 보면 제사장의 기간을 25세부터 50세까지로 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5살에 달한 에스겔도 이제 곧 제사장으로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고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고,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레위지파의 명예도 땅바닥에 떨어졌고, 가족과 헤어져 어떤 생과 사를 넘나들지 전혀 알 수 없는 처지의 포로 신세를 겪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5년의 터널을 지날 때,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셔서 선지자로 활동케 하셨고, 그리고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은, 그 환상 가운데 불러서 예루살렘 성전의 우상숭배 행위와 그들을 향한 심판과 눈물과 탄식소리를 보게 하신 것이죠.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그 환상 가운데 끌어올리셔서 그 모든 비참한 상황을 보게 하시는 것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에스겔의 시선을 보다 확고히 하기 위함이고,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너의 초심을 잃지 않고, 늘 그 초심 속에서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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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YES24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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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세상은 어떤 시선을 갖고 사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시선을 함께 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죠. 부부가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다른 곳을 볼 때, 불륜의 길로 들어서게 되죠. 학생이 자기 시험지가 아닌 옆 사람의 답지를 볼 때, 부정행위를 저지르게 되죠. 나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에 시선이 고정될 때, 탐욕과 연관이 되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만을 바라보길 원하시는데, 아담이 하나님의 시선을 떠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인 하와의 시선을 따라 살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선악과를 따 먹고 저주가 시작되었죠. 사막을 지나 전진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을 향한 눈을 돌려 세상의 상황이라는 걸 보기 시작할 때는 어떻게 됐습니까? 하나님 앞에 언약의 말씀을 거역하는 반역을 저질렀죠. 다윗도 하나님의 시각을 따라 전쟁터를 바라보던 것을 멈추고 한눈을 팔 때 어떻게 됐습니까? 밧세바를 바라보고 죄악을 저질렀죠.
에스겔의 사역이 1년 6개월이 지나, 예루살렘 성전의 타락과 우상숭배 행위, 그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과 온갖 곡하는 소리가 난무하게 되는 그 환상을 보여주신 것 역시, 에스겔의 시선, 그의 초심을 점검토록 하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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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YES24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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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 본문 8절을 보면 홀로 엎드려 부르짖는 에스겔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었는지라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아하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 얼마나 극심하게 심판하시고 후려치시는지, 에스겔이 부르짖으며 탄식하시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어찌보면 에스겔은 인간적인 측은지심으로, 예루살렘 성읍이 남아 있어야, 자신이 돌아갈 고국도, 가족과 혈육도 있고, 고향 사람들도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은 거기에 있지 않는 것이죠.
하나님의 시선은 에스겔처럼 개인적인 인간의 모습에 연연해하시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예루살렘 백성들의 전체 방향과 그들의 전적인 타락의 주목하고 계신 것이죠. 사람은 각자의 이해타산에 얽혀 거기에 국한된 시선만 갖추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죄악상에 당신의 시선을 두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 에스겔이 하나님께 멈춰달라고 탄식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진노를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
그런데 본문 4절 마지막 부분에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6절에서는 그 성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다시 말해 그 표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죽이거나 멸하지 말도록 하신 것이죠. 이를 통해 무엇을 생각하게 됩니까?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서도 구원받을 자는 구원받게 된다는 점이고, 이 표가 계시록에서 14만 4천명의 이마에 표시된 표와 연결이 되는 것이죠. 물론 계시록에 나오는 14만 4천명의 표는 유대인들 가운데 구원받은 자들의 수이고 우리나라와 아시아 유럽 사람들은 ‘허다하게 셀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계시록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런데도 신천지 집단은 그것을 자기들에게 꿰맞춰 해석해 버렸죠. 어찌됐든 본문에서 표를 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 속에서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나에게도 이 세상이 멸망 받고, 이 세상이 심판받을 때, 저렇게 이마에 표를 받을 수 있도록 은총을 부어 달라고’ 기도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이것은 어찌 보면 에스겔과 같은 인간의 자기 이기심을 들여다보게 하는 모습이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나 자신이 내가 아는 누군에게만 ‘이마의 표’를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할 게 아니라, 지금 예루살렘에서 우상숭배 행위 때문에 다 멸망받는 모든 유다 민족에게 하나님의 눈길이 쏠린 것처럼, 나의 시선도 거기에 쏠려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에스겔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초심이요, 곧 우리를 향해 바라시는 하나님의 초심일 것입니다.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받기까지, 쉬지 않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그래서 오늘도 저와 여러분이 전할 수 있는 하루의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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