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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분노하는 경우는 이럴 때입니다. 누군가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위협을 받았을 때 분노합니다. 대부분 사람은 질투나 두려움, 원한 등 여러 가지 원인에 인하여 분노하죠. 사람의 분노는 개인적인 감정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리고 즉흥적이기도 하죠. 화를 잘 내는 사람을 보면, 사사로운 일에도 쉽게 분노하며 또한 쉽게 사그라집니다. 사람의 분노는 개인마다 다르며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누군가에겐 매우 화가 날만 한 일이지만, 또 누군가에겐 그냥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분노와 화는 옳고 그름을 측정할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직장에서 상사가 화가 났다고 해서 그의 분노가 항상 옳을 수만은 없고, 부모가 자녀에게 화를 내는 것 역시 마찬가지죠. 오히려 화낸 자신에게 더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쉽게 화를 내는 우리와 달리 주님은 은혜와 긍휼이 많으시며 화내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신 분이십니다. 시편 145편 8절입니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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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YES24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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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매우 크게 분노하십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바르며 거룩하십니다. 사람의 화냄과는 달리 주님의 분노는 의롭고 정당합니다. 그리고 그 분노를 자신의 백성에게 알리기 위해 에스겔이 장로들과 함께 있을 때 주님의 영이 임하였습니다. 장로들이 보는 가운데 에스겔은 하나님의 환상에 사로잡혔고 이는 하나님의 분노의 때에 일어납니다. 본문 1절에 “여섯째 해 여섯째 달 초닷새에 나는 집에 앉았고 유다의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아 있는데 주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에서 내게 내리기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환상을 보이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왜 분노하셨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주의 영은 에스겔을 하늘 높이 들어 예루살렘의 안뜰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것이며,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고 예배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곳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질투의 우상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본문 2절과 3절입니다. “내가 보니 불 같은 형상이 있더라 그 허리 아래의 모양은 불 같고 허리 위에는 광채가 나서 단 쇠 같은데 그가 손 같은 것을 펴서 내 머리털 한 모숨을 잡으며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천지 사이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환상 가운데에 나를 이끌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시니 거기에는 질투의 우상 곧 질투를 일어나게 하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불’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에스겔에게 임한 불같은 형상은 하나님의 분노를 그의 백성에게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 므낫세 왕이 이전에 세워둔 바알과 아세라 우상들은 하나님을 모독하며 그를 업신여기는 가증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주님을 경배하지 않고 자신들의 욕심을 따라 만든 우상은 이미 마음에서부터 세워졌고 행동으로 하나님의 안뜰에 흉측한 모습으로 더럽힌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배하여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버리고 비밀스럽고 은밀한 가운데 우상을 섬기며 더 큰 가증한 일을 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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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YES24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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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4절과 15절입니다.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에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그것을 보았느냐 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바벨론과 베니게에서 숭배한 곡신(穀神)인 담무스를 위해 애곡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풍요로움과 평안을 위해 가증한 일들을 행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시며 인도하셨습니다. 거룩한 언약을 세우시고 지키시며 보호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죄의 형상인 우상을 하나님의 성전 곳곳마다 세웁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가며 온갖 우상에 자신을 스스로 더럽힙니다. 이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거룩한 백성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피해 오히려 그분께 분노하며, 마음에 죄악인 우상을 세우는데 온 인생을 허비합니다. 이제 그들은 한술 더 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제단 사이에서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는 가장 흉측한 일을 행합니다.
본문 16절에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성전 안뜰에 들어가시니라 보라 여호와의 성전 문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스물다섯 명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더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농락하며 버렸습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좋은 것이 선하다 여겼고 자신이 만든 선으로 하나님을 농락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선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한 일이며, 가장 악한 죄인 우상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향하는 이스라엘의 가증스러운 행동에 에스겔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8절에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분노하십니다. 가증한 일을 행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더는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며 긍휼을 베풀지 않을 것이라 말씀합니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이 큰 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주님은 당신의 귀를 닫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분노는 괴로움과 동격인 감정입니다. 분노를 뜻하는 영어단어인 ‘anger’는 괴로움을 뜻하는 ‘anguish’와 같은 어원을 가집니다. 분노와 괴로움은 함께 수반되는 감정입니다. 따라서 분노가 크면 클수록 괴로움 또한 커집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그의 괴로움입니다. 그리고 결국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분노의 때에 불같은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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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YES24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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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과연 하나님의 성전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은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에 이렇게까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우리를 향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는데, 혹여라도 내 안에 풍요로움과 평안을 위하여 가증스러운 탐욕과 욕망, 욕심으로 들어찬 우상이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육체의 욕망을 따라 세속적인 안목의 우상이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다면 말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안에 가증스러운 우상이 세워져있다면 반드시 이를 제거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분노하실 것이며, 정의롭고 공평한 불의 심판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거룩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세워야 하며, 회개의 물로 우리의 안과 밖을 씻어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내 안의 욕심과 욕망을 무너트립시다. 주님의 성령이 거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스스로 구별되게 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 속의 유다 백성들, 그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우상들이 내 안에 들어차 있지는 않는지, 우리 각자가 살펴야 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분노하실 때 즉시 심판치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장로들이 보는 앞에서 에스겔에게 환상을 보여주셨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주의 백성에게 다시금 기회를 주시며, 인내하시는 그분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성전답게, 세상의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과는 달리, 구별된 삶, 거룩한 삶을 좇아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오늘도 말씀을 내 안에 차곡차곡 채워넣어, 성령님이 생각나고 기억하게 하시도록 할 때에 가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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