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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이제 에스겔을 살펴보게 됩니다. 에스겔서는 에스겔 선지자의 이름을 따서 책 제목으로 삼은 것입니다. ‘에스겔’이란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능력이 크시다’ ‘여호와여 강하게 하소서’하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선지자의 이름도 바로 그런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강하게 하소서’ 그런데 왜 그런 이름의 뜻을 지닌 것일까요? 예레미야도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름을 받을 때, “나는 아이라 말할 줄 알지 못하나이다.”(렘1:6)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표현은 모세도 마찬가지였죠. 하나님께서 너를 바로에게 보내고자 하노라 하니까, 모세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출6:30)하고 말이죠. 그만큼 예레미야도 그렇고 모세도 그렇고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또 바로 앞에 나서기 싫다는 표현을 그렇게 한 것이죠. 모세의 경우에 대해 스데반 집사는 산헤드린 공회원 앞에서 설교를 행하면서 그렇게 표현한 적이 있죠.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행7:22)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레미야도 진짜 아이라서 그런 게 아니고, 모세도 진짜 말을 못해서 그런 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나서면 분명코 힘들고 괴로운 일이 불어 닥칠 것을 생각해서 못하겠다는 뜻으로 그렇게 고백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에스겔 선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1장 1-2절을 볼 때 “서른 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년 그 달 초닷새라.”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미션이 주어진 때가 바로 여호야긴 왕 곧 유다 왕국의 19번째 왕인 여호야긴이 포로로 끌려간 지 5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부르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에스겔도 지금 포로로 끌려간 처지로서 바벨론의 그발강가에 있을 때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 아닙니까? 그만큼 에스겔로서도 예레미야나 모세처럼 두렵고 괴로운 상황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이죠. 그래서 만약 예레미야나 모세처럼 “에스겔아, 내가 너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고자 원하노라. 너를 바로 앞에 보내고자 원하노라. 너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보내고자 원하노라.”하고 말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에스겔도 당연히 ‘저는 말할 줄 알지 못하는데요. 저는 아이와 같은데요. 저는 무식합니다. 배운 게 없습니다.’하고 뒤로 발을 뺐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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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가? 에스겔 2장2-3절이 이렇습니다. “그가 내게 말씀하실 때에 그 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내 발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들과 그 조상들이 내게 범죄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나니.” 하나님의 영이 에스겔을 곧바로 일으켜 세우신 장면입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나를 배반하는 자들에게 너를 보내노라.”하고 선포하시는 장면입니다. 더 나아가 에스겔 2장 6-7절에서는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있으며 전갈 가운데에 거주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무슨 말씀입니까? 네가 생각하기를 그들이 가시와 찔레 같고 또 전갈 같은 족속들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어떤 말도 두려워하지 말도록 해라. 너는 오직 내가 네게 주는 말만 전하면 된다, 는 식이죠.
이해가 되십니까? 이전의 예레미야나 모세와 같은 상황이 아닙니다. 에스겔을 불러서 ‘내가 너를 패역한 족속에게 보내고자 하는데, 너는 어떻냐?’하는 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으로 일방적으로 에스겔을 부르신 것이고, 또 ‘너는 패역한 족속에게 가서 내 말만 전하면 된다’하고 일방적으로 에스겔을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왜 에스겔이란 이름의 뜻이 ‘여호와는 능력이 크시도다’ ‘여호와여 강하게 하소서’하는 뜻인지 이제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토록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좇지 않아 바벨론 제국을 들어 유다 백성들을 치시고, 이제 두 번째 포로로 끌려가는 그 백성들 중에 하나님의 선지자 에스겔을 당신의 메신저를 사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강하게 사용하기 위해’ ‘그 능력이 크시다’는 것을 만방에 보여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바꿔 말해 예레미야처럼 새가슴이 되거나, 모세처럼 주눅들지 말고, “너는 유다 백성들에게 강하고 담대하게 내 말을 전하도록 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고, 어디를 가든지 너를 지켜 줄 것이다”하는 뜻으로 에스겔을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에스겔이란 이름을 부여하신 것이고, 그것은 곧 유다 민족 전체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알리고자 하신 것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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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에스겔은 다른 선지자들과는 달리, 아내가 있었는데, 포로생활 가운데 죽은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에스겔서 24장 15-18절을 보면 나옵니다. “내가 아침에 백성에게 말하였더니 저녁에 내 아내가 죽었으므로 아침에 내가 받은 명령대로 행하매”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어떻게 죽었는지, 또 그의 자식들은 어떤 상황인지, 성경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까지는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가 죽게 된 부분도 그 한 절에 길게 설명하지 않고, 곧바로 이스라엘 백성들, 유다 백성들을 향한 사역의 장으로 연결시키고 있는 모습입니다.
무엇을 생각하게 합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마8:22) 제자 중 한 사람의 부모가 돌아가셔서, 그분을 장사하고 오겠다고 하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을 자칫 잘못하면 예수님은 윤리와 예절이 없는 분처럼 오해할 수 있죠. 하지만 그런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좇는 길에 더 우선순위를 두라는 의미입니다. 죽은 자들이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는 것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자들이 그 일을 행하도록 하고, 너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일에 더 중점을 두라고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에스겔도 자기 아내가 죽고, 자식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포로생활 속에서 굶어 죽었는지, 아니면 자식들과 이산가족으로 뿔뿔이 흩어졌는지 알 길이 없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일에 더 우선순위를 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슬퍼할 겨를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진력해야 했던 에스겔 선지자였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있는데, 그분도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전북 줄포에서 목회를 하는데, 당신의 어머니가 토요일 저녁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다음 날은 주일인데, 너무너무 슬펐지만, 눈물을 머금은 채 주일날에도 전혀 내색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는 주일 오후예배까지 마치고, 곧장 제천으로 향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목회자의 삶이구나, 사명자의 삶이구나, 하는 생각을 그때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에스겔은 어떤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선지자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까? 에스겔 1장 2-3절을 통해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끌려간 지 5년의 때 곧 B.C.573년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은 것이고 그때 그의 나이 “서른 째 해” 곧 30살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52살에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죠. 그렇다면 그가 태어난 해는 B.C.623년으로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을 일으킨 때였죠. 달리 말하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B.C.627년에 사역을 시작했으니까 에스겔은 그보다 20년 뒤에 사역을 시작한 셈입니다. 그리고 B.C.605년 곧 15살의 십대 시절에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보다 에스겔이 몇 살 더 많은 셈인데, 다니엘은 그로부터 70년 년 동안 선지자 활동을 했는데, 에스겔은 불과 22년의 활동으로 그 생을 마감한 것이죠. 그야말로 짧고 굵은 삶을 산 에스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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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내가 언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구원받은 자녀로 살든지 간에, 그 삶의 초점을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맞추며, 길게 살아도 좋고 짧고 굵게 살아도, 정말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에스겔과 같은 삶이 되게 하신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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