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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1절에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순금이 변질하였으며 성소의 돌들이 거리 어귀마다 쏟아졌는고”하며 탄식합니다. 그야말로 전에는 금과같이 존귀하고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시온의 백성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나라를 빼앗기고 포로가 되었으니, 그걸 바라보는 선지자, 그걸 직접 몸소 겪고 있는 예레미야 선지자는 얼마나 고통스럽고 처절하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읽은 4장은 백성들의 죄로 인한 이스라엘의 비참한 모습과 함께 지도자들에 대한 책망과 그들의 멸망에 대해서 탄식으로 읊조리고 있습니다. 그 멸망의 대상은 1-10절까지 백성들의 멸망을 탄식하고 있고, 11-16절까지는 선지자와 제사장의 멸망을, 그리고 17-20절은 왕의 멸망을 탄식하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1-10절까지 그 첫 번째 부분은 백성들의 멸망당하는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도 비참합니다. 특별히 3-4절은 어린 아이들이 당한 고통을 ‘광야의 타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들개들도 젖을 주어 그들의 새끼를 먹이나 딸 내 백성은 잔인하여 마치 광야의 타조 같도다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 아이들이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 본래 타조는 동물이 갖는 본능적인 모성애가 없는 동물로 여기는데, 그런 타조보다 못한 들개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머니들이 지닌 잔인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어머니들이 잔인해진 이유가 무엇인가? 기아, 곧 굶주림 때문입니다.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어 울 수도 없는 비참한 상황입니다. 전에는 귀한 옷을 입고 자라던 그 백성들이 이제는 가축의 배설물들과 쓰레기 더미를 안고서 살아가는 형국이 된 것이죠.
본문 9-10절은 이스라엘의 기아로 인한 재해의 심각성을 읊조리고 있습니다. 그 재해가 칼로 인한 재해보다 더욱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10절에서는 “딸 내 백성이 멸망할 때에 자비로운 부녀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도다.” 부녀자들이 자기 자녀들을 삶아 먹는 형국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잔인한 어머니들이 어디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신명기 28장 57절이나 열왕기하6장 29절에서도 전쟁 가운데 먹을 것이 없어 부모가 자녀를 잡아먹는 그런 비극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유다 백성들이, 자기 자녀에게 젖을 물려할 형편인데, 그 자식들을 삶아 먹는 해괴한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얼마나 해괴하고, 비참한 모습인지, 얼마나 잔인하게 만드는 것인지 알려주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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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1-16절까지는 선지자와 제사장의 멸망에 대한 말씀입니다. 12절에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의 모든 왕들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 라고 말씀합니다.그처럼 예루살렘이 멸망당할 것을 아무도 믿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도 세상 왕들이나 백성들은 예루살렘은 절대불가침의 영역인 줄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이 신성한 도시를 감히 누가 침범하도록, 누가 침입하도록,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시겠느냐는 그런 식의 믿음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지키고, 위로 하나님을 경외하듯 아래로 백성들을 압제하지 않고 사랑하며 살았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고 하나님을 멸시면서 살았던 까닭에, 그들이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기던 그 예루살렘 성읍이 완전히 무너지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성전을 우상시한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그 예루살렘 성전과 성읍이 멸망하자, 그들은 극도의 충격에 빠져버린 것이었죠.
그런데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된 중요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의인의 피를 흘리게 하는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본문 13절은 선포하죠. “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니 그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도다.”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이 의인 아벨의 피를 흘리게 했을 때, 그가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쫓겨나 유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처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또한 의인들의 피를 흘리게 하여 결국은 예루살렘 성읍에서 쫓겨나 거리를 방황케 된 것입니다. 그들은 14-15절 말씀처럼 문둥병자들처럼 여러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당하고, 이방인들로부터도 무시당하며 사람들로부터 쫓겨나 방황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17-20절에서는 민족의 지도자 곧 왕에 대한 비참한 최후를 보여줍니다. 17절에서 “우리”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의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 여기에서 말하는 ‘우리’란 곧 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이 행한 가장 큰 잘못이 무엇입니까? 헛된 데 도움을 구한 것이었죠.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 앞에 잘못을 구하고 돌아오는 것인데도, 그들은 열방의 제국을 더더욱 의지했습니다. 이른바 아람 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앗수르를 의지했고, 바벨론 제국에 저항하기 위해 애굽을 의지했던 게 왕들이 보여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왕들이 이방 나라의 도움을 구하며 자기 나라의 위기에서 빠져나오고 싶었지만, 결국은 그 이방 나라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없는 존재들에게 그야말로 헛된 소망을 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헛된 소망 그대로 그들은 완전히 멸망을 당한 꼴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왕들을 하나님께서는 파멸시킨 것입니다. 비록 왕은 자기를 쳐들어오는 이방 제국을 피해 보려고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독수리보다 더 빨리 달려와, 도망치는 왕을 잡아 체포하게 되죠. 그것이 시드기야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과 그 군대장관들을 피해 애굽으로 도망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바벨론 군대는 독수리보다 더 빨리 쳐들어와서, 도망치는 그 시드기야 왕을 체포했고, 자신이 보는 앞에서 자기 자식들을 다 죽여버렸고, 심지어 자기 자신도 두 눈이 뽑힌 채 포로로 끌려갔죠. 그렇기에 한 나라의 지도자,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과 유다 민족의 왕들은 정말로 만 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붙잡고 의지하는 게 살길이었음을, 예레미야가 탄식하며 회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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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예레미야애가서의 4장 마지막 부분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을 인식시켜 줍니다. 시온의 백성들,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왕들을 멸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원하시는 것은 그들의 멸망이 아님을 21-22절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스 땅에 사는 딸 에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라 잔이 네게도 이를지니 네가 취하여 벌거벗으리라 딸 시온아 네 죄악의 형벌이 다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 가지 아니하게 하시리로다 딸 에돔아 주께서 네 죄악을 벌하시며 네 허물을 드러내시리로다.” 하나님께서 에돔의 멸망을 이야기하지만, 그 에돔은 시온과 대비되는 대상으로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고 즐거워하던 열방을 상징하는 백성들입니다. 시온의 멸망을 보며 즐거워하던 그 백성들은 마지막 때에 오히려 벌거벗겨지며 수치를 당하고 멸망당할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와는 반면에 시온은. 곧 유다 백성들은 구원을 얻을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그 백성들이 회복되어 어떻게 살 것인지를 말씀해 주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 대한 형벌을 끝내시고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도록 할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 가나안 땅에 남아 있는 자들, 혹독한 죄의 결과를 견디고 살아남은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로하시고 그들에게 은혜 베푸실 것을 약속한 말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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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오늘 읽은 예레미야애가 4장을 통해 깨닫는 게 무엇입니까? 아무리 하나님의 선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따르지 않으면 언제라도 성전이 무너지고, 백성들이 포로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깊이 자각하면서,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유다 백성들처럼 열방과 세상의 힘만을 의지할 게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포도원 농부되시는 그 아버지 하나님을 더더욱 의지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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