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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목사님의 어릴 때 이야기입니다. 그 분의 어머니와 두 살 위 누나가 그 당시 이웃집에 함께 놀라갔습니다. 그런데 그 누나가 그 집에 있는 예쁜 지갑을 보고 들고 왔던 것입니다. 그때까지도 좀체 화를 낼 줄 모르던 그 어머니께서, 그 지갑을 가지고 온 누나를 보고서, 그날 엄청나게 매질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자신은 7살 정도, 누나는 8살 정도였는데, 때릴 곳도 없는 그 누나를 인정사정 없이 회초리와 빗자루로 엄하게 혼을 냈던 것이죠. 한참 혼을 내고, 잘못했다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빌며 우는 그 딸, 곧 자신의 누나를 붙잡고 어머니는 그때 딸과 함께 통곡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함께 가서 지갑을 돌려주었는데, 그 뒤로는 자기 누나가 어느 곳에서도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지고 온 일을 보지 못했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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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예레미아애가 2장도 그런 흐름 속에 있는 내용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딸 시온의 성벽을 무너뜨리시고 치시는 모습인데, 그렇게 멸망당하는 예루살렘과 그 성읍의 백성들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우시는 모습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본문 8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딸 시온의 성벽을 헐기로 결심하시고 줄을 띠고 무너뜨리는 일에서 손을 거두지 아니하사 성벽과 성곽으로 통곡하게 하였으매 그들이 함께 쇠하였도다” 그렇게 사랑하시는 유다 백성을 치시며 하나님께서는 이윽고 예레미야의 입술을 통해 함께 통곡하시는 당신의 애통하는 심정을 드러내 보여주십니다.
본문 11절에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딸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기절함이로다.” 사실 유다 백성들이 패망한 것, 그 어린 자녀들과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서 기절하는 그런 쑥대밭이 된 이유가 있었습니다. 어제도 살펴봤지만, 그것은 만 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버리고, 온갖 애굽의 우상과 이방신들을 숭배하며 살아갔던 까닭이었죠. 바꿔 말해 자신들의 인생 포도원의 농부되시는 그 하나님을 등지고 살았던 까닭에, 바벨론 제국을 통해 그런 심판과 고통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헛된 것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들을 파멸케 할 거짓 신들을 사랑하고, 미혹하게 하는 것들만 따라가는 그들을 누가 과연 고쳐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오히려 온 세상의 비웃음과 조롱거리가 뒤따르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질로 사용하신 바벨론이 유다 나라를 1,2,3차에 걸쳐 침공해 왔고, 그때 마다 1,2,3차에 걸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것이었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치셨을지라도, 당신의 언약을 맺으신 당신의 백성들이 고통 가운데 있는 그 모습을 내버려 둘 수만은 없었던 것입니다. 다시금 당신의 백성들이 돌이키길 원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것을 본문 18-19절을 통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들의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딸 시온의 성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를 쉬게 하지 말지어다 초저녁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 지어다 각 길 어귀에서 주려 기진한 네 어린 자녀들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하였도다.” 예루살렘 성읍이 무너지고, 성읍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이 이산가족이 되어 뿔뿔이 흩어지는 그 참상 앞에, 하나님은 함께 아파하고 애통해하시면서, 그들이 다시금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고 간구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오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이 부분을 생각하면 전도서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는 말씀 말이죠. 인생에 웃을 때와 울 때가 있다면, 지금 유다 백성들은 주님 앞에서 깨어 기도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보다 자신들이 크다고 생각했던 그 고집들을 내려놓고, 주의 얼굴 앞에 겸손하게 부르짖으며 쏟아놓을 때라는 것이죠. 시편 말씀에 빗댄다면, 시편 62편 8절 말씀처럼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시62:8)”하시는 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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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서 말씀드린 그 목사님이 이제 외국에 나가 신학공부를 하는데, 그 신학생 시절에 어느 성도님 댁에서 식사 대접을 받았는데, 감사하게도, 남은 음식 중에 제일 귀한 생 굴 무침을 싸주셨던 것이죠. 외국에서 맛보는 한국 음식이라 얼마나 귀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당시 기숙사에 냉장고도 없던 시절인데, 너무 귀한 음식이라 생각하여 기숙사 한 구석에 하루를 놔두었다가 다음 날 허겁지겁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먹은 뒤에 조금 지났는데, 갑자기 식은땀과 복통이 일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있다가 보니 손과 발도 잘 말을 듣지 않고, 조금씩 호흡곤란이 오는 것입니다. 그 분은 그 순간, 상한 어패류를 잘 못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어디에선가 들었던 말이 떠올라, 아무도 없던 그 기숙사에서 홀로 화장실에 들어가서 변기를 붙잡고 한참을 토해 냈다고 하죠. 그렇게 한 뒤에 몇 시간이 지나서 호흡이 부드러워지고, 몸도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하죠.
뭔가 상해서 독이 생기기 시작한 음식은 버려야 하고, 토해 내야 하는 것이죠. 그 상한 것, 독이 든 것을 삼키는 사람보다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죠. 죄악의 독을 품고 살아가는 인생은 고통 속에 신음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32편 3-5절 말씀도 그것입니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백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죄의 결과에 눌려 신음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그것입니다. 주님 앞에, 내 인생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앞에, 내 인생 포도원의 농부되시는 그 하나님 앞에, 내 마음을 온전히 쏟아내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주님 앞에서 울면 살게 됩니다. 주님 앞에 죄를 자백하고, 항복하고, 토해내면 그 영혼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 주님은 치셨지만 싸매어 주시는 분이시고, 혼 내시는 동시에 우리를 끌어안고 우시고, 그래서 돌이키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예레미야가 ‘애카’, ‘어찌하여 왜’라고 탄식하며 기록해 나간 예레미야애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죄악을 뒤집어쓰고 살았기에 심판을 받은 것이요, 그때 하나님 앞에 나아와 토해내는 길이 그들이 살 길임을 명시한 것이죠. 그래서 그들이 죄에 대해 신음하는 내용이 20절 후반부에 나옵니다. 늙은이와 젊은이가 길바닥에 엎드러지고, 처녀들과 청년들이 칼에 쓰러지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주의 성소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본문 17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시고, 옛날에 명령하신 말씀을 다 이루셨음이여” 이런 비참한 상태에 처하게 될 것을, 이미 주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과연 언제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 모세의 율법서인 신명기에 이미 밝혀놓으신 말씀입니다. 신명기 30장 15절은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7절에서는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19절은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절에서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하나님의 법도를 따르면 살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사망과 화를 당할 것을 이미 모세의 율법을 통해 밝혀놓으신 것이었죠.
그런데도 그 분의 율례와 법도를 그들이 무시하고 짓밟았기 때문에, 지금 이런 비극을 초래한 것 아닙니까? 마치 죄를 범한 그 딸, 자기 누나를 엄하게 벌한 그 어머니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 어머니도 함께 통곡하며, 그 딸을 데리고 가서 지갑을 돌려주게 한 것처럼, 그리고는 다시는 동일한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처럼, 하나님의 마음도 바로 여기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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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도 내 인생 포도원의 농부되시는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잘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오직 그 분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하루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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