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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는 요시야 왕 13년(BC626)에 예언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의 나이 16살 때의 일 곧 스무살 초반 무렵의 일이었죠. 그때로부터 근 40년 넘게 그의 나이 62세에 달하기까지 예언활동을 했습니다. 그때가 바로 유다의 멸망으로서 마지막 유다 왕인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끌려가는 상황인 B.C 581년의 때까지였죠.
한 사람이 40년 넘게 같은 직장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람이 40년 넘게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한다는 것도 더더욱 쉬운 일은 아닙니다.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한다면 차라리 낫겠는데, 전쟁과 심판으로 인해 멸망당한다는 메시지를 선포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그 일을 예레미야는 묵묵히 감당해왔습니다. 물론 중간에 매를 맞고 옥살이를 하고, 시위대 뜰에 갇히고, 거짓 선지자들에 의해 죽을 고비도 넘기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예레미야에게 그것이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자신이 괴롭힘을 당하고, 왕따를 당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는 것보다 더 중한 괴로움은 동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이었죠. 조금 있으면 멸망을 당해 포로로 끌려갈 터인데,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면서 살아가는 그 모습 때문에, 눈물로 탄식할 수밖에 없던 예레미야였습니다.
오늘 읽은 예레미야 39장 말씀은 예레미야가 평생 눈물로 외치고 다녔던 대로, 유다 나라 곧 이스라엘 나라가 멸망당하는 것이 실제로 일어난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과 그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쳐들어왔는데, 3년만에 예루살렘 성이 함락당하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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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2절을 통해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다의 시드기야 왕의 제구년 열째 달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모든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치더니 시드기야의 제십일년 넷째 달 아홉째 날에 성이 함락되니라 예루살렘이 함락되매.”
3년만에 예루살렘 성읍을 함락시킨 바벨론 군대 앞에, 유다의 마지막 왕이 어떤 액션을 취합니까?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의 말대로, 아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벨론의 왕과 군대 앞에 항복을 선언했습니까? 아니죠. 그 3년 동안 어떻게 해서든 애굽 군대를 불러오려고 했고, 세상의 방법을 동원해 바벨론 군대를 몰아내보려고 했죠. 하지만 그것이 어찌 그의 뜻대로 되는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일은 아무리 사람이 발버둥 쳐도 되지 않는 법이죠.
오히려 시드기야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은 놔두고, 다시 말해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은 놔두고, 그는 그 전쟁의 끝자락에 도저히 이길 수 없고,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어떤 선택을 합니까? 예루살렘 성읍의 문을 빠져나가 애굽으로 도망치는 작전을 펼쳤습니다. 본문 4절 말씀이 그것입니다. “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모든 군사가 그들을 보고 도망하되 밤에 왕의 동산 길을 따라 두 담 샛문을 통하여 성읍을 벗어나서 아라바로 갔더니.” 시드기야 왕은 군사를 이끌고 예루살렘 성읍을 내버려둔 채 샛문을 통해 도망치는 작전을 펼쳤던 것입니다. 좋게 말해 작전이지, 엄밀하게 말하면 달아나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자기 생명을 부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니죠.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 이미 그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갈 것을 수차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시드기야 왕은 뒤따르는 바벨론 군대에 붙잡히게 되죠. 물론 그것으로 끝이 아니죠. 본문 5-7절이 이렇게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갈대아인의 군대가 그들을 따라 여리고 평원에서 시드기야에게 미쳐 그를 잡아서 데리고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로 올라가매 왕이 그를 심문하였더라 바벨론의 왕이 립나에서 시드기야의 눈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였고 왕이 또 유다의 모든 귀족을 죽였으며 왕이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고 사슬로 결박하였더라.”
시드기야 왕은 만신창이가 된 것입니다. 자기가 보는 앞에서 자기 아들들이 죽어났고, 자신과 함께 도망쳤던 귀족들도 죽임을 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앞을 볼 수 없도록 그의 두 눈도 빼버리지 않습니까? 이것이 어찌 바벨론을 이기지 못해 생긴 일이겠습니까? 이것이 어찌 애굽 군대를 불러들이지 못해 벌어진 일입니까? 이것이 어찌 도망을 치지 못해서 맞이한 고초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 앞에 회개하고 돌이키지 못한 그의 죄값임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끝없이 무시하고, 자기 교만과, 애굽의 군사력만 있으면 바벨론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시드기야와는 다른 생각을 펼쳤던 한 인물을 후반부에서 조명해주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에벳멜렉’이 그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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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벳멜렉에 대해서 이미 38장에서 소개해 주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시드기야 왕을 떠받드는 궁중 내시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국적은 구스였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흑인 출신의 니그로와 같다고 할 수 있겠죠. 그야말로 하찮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 시드기야 왕에게 호소한 사람입니다. 예레미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 더 깊이 들어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시위대 뜰에서 건져낸 인물이 바로 그 에벳멜렉이었죠. 중요한 것은 왕과 궁내대신들이 모두 한통속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두루마리 말씀을 불태우며 짓밟고 있을 때, 유독 그 에벳멜렉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했다는 점입니다. 그렇지 않았던들 어찌 그가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심정으로 시드기야 왕에게 예레미야에 대해 호소하고 청을 넣을 수 있었겠습니까? 바꿔 말하면 구스인 에벳멜렉은 하나님을 만 왕으로 왕으로 존중해 드렸던 자요, 그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며 경외하던 인물임을 알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가 하나님을 존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할 때, 어떻게 귀결됩니까? 사무엘상 2장 30절 하반절의 말씀 그대로 성취되게 해 주십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하는 말씀 말입니다. 그것이 본문 11-18절에 나오는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확인시켜주는 바입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선포한 예레미야를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바벨론 왕이 명령을 내리고 있는 모습이 그것이고, 또 구스인 에벳멜렉 역시 바벨론의 손에 넘겨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는 장면이 그것입니다.
본문 11-14절 말씀, 그리고 18절 말씀만 봐도 환히 알 수 있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레미야에 대하여 사령관 느부사라단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를 데려다가 선대하고 해하지 말며 그가 네게 말하는 대로 행하라 이에 사령관 느부사라단과 내시장 느부사스반과 궁중 장관 네르갈사레셀과 바벨론 왕의 모든 장관이 사람을 보내어 예레미야를 감옥 뜰에서 데리고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넘겨서 그를 집으로 데려가게 하매 그가 백성 가운데에 사니라.”
바벨론 왕은 그 군대장관에게 예레미야를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보호해주도록 명령을 내립니다. 그리고 본문 17-18절에서는 그 에벳멜렉을 향해 이렇게 하나님께서 보증해 주고 계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 날에 너를 구원하리니 네가 그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지 아니하리라 내가 반드시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가 노략물 같이 네 목숨을 얻을 것이니 이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더라”
그렇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어떤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며 그대로 순종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친히 보호해주시고 친히 존중받도록 인도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 크리스천이 하나님의 말씀을 함부로 업신여길 때 그가 똑같이 하나님의 멸시를 받게 되지만, 그러나 깨어 있는 소수의 크리스천이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할 때 그 역시 존중받는 사실은 지금도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오늘날에도 시퍼렇게 살아 역사 하셔서 친히 그를 돕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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