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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은 고난을 받습니다. 하지만 악인은 심판을 받죠. 의인에게 고난을 주는 이들은 악인이지만, 그 악인을 심판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고난을 받는다고 해서 임기응변식의 땜빵식의 말을 하기보다, 보다 근원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대조되는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하죠. 한 명은 시드기야, 다른 한 명은 예레미야입니다. 시드기야는 권력의 상징인 왕이고,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의 상징인 선지자입니다. 본문 1절에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니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유다 땅의 왕으로 삼음이었더라.” 시드기야 왕을 왕으로 앉힌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예레미야는 누가 선지자로 세웠습니까? 예레미야 1장 4-5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리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예레미야는 이미 모태에서 짓기 전부터 하나님에 의해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였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부름받은 자죠. 그에 비해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심판의 끝에 다다른 유다의 마지막 왕으로서, 그들을 멸망시킬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통해 왕이 된 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의 뜻을 듣고 순종하여야 했지만, 귀로는 들었을지라도 절대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귀로만 들은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로 평가됩니다. 본문 2절에 “그와 그의 신하와 그의 땅 백성이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듣지 아니하니라.”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가볍게 여기며 순종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는 여후갈과 제사장 스바냐를 예레미야에게 보내며 자신들을 위해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기도하길 청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을 보호해줄 수호신으로 하나님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만큼 시드기야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의 군대와 손을 잡고 그 두려움의 대상인 바벨론 군대를 몰아내려 했던 것이죠.
시드기야 왕은 이중고를 겪고 있는 모습입니다. 밖으로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압박을 받고 있고, 안으로는 신하들에게 압박을 받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응당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하나님께 간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자신은 기도하지 않으면서 예레미야에게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죠. 그런 그에게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전합니다. 본문 7-8절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를 보내어 내게 구하게 한 유다의 왕에게 아뢰라 너희를 도우려고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가겠고 갈대아인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르리라”
예레이먀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시드기야 왕이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애굽 군대를 의지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하나님만을 두려워했습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처신하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드는 자였죠.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곧이 곧대로 시드기야 왕에게 전달했던 것입니다. 갈대아인들, 곧 바벨론 군대가 와서 이 성을 빼앗아 불사를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실 그것은 시드기야 왕과 그 신하들에게 완전히 찬물을 끼얹는 말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드기야 왕과 그 대신들은 친애굽정책을 펼쳐서 바벨론 군대를 몰아낼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바벨론 제국에 의해 몰락할 것이라고 전하고 있으니, 얼마나 괴로운 심정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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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0절에서는 아무리 너희들이 기를 쓴다고 해도, 그 판을 뒤엎지는 못할 것이라고까지 말을 하죠. “가령 너희가 너희를 치는 갈대아인의 온 군대를 쳐서 그중에 부상자만 남긴다 할지라도 그들이 각기 장막에서 일어나 이 성을 불사르리라” 이와 같은 말을 예레미야가 전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실 실제적인 일이고, 그렇기에 너희들은 애굽을 의지하거나 군사력이나 외부 세력에게 기댈 것이 아니라, 오직 천지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하고, 그 분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선포하는 격입니다.
그것은 시드기야 왕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신하들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당신이 이 나라의 왕으로서, 오직 하나님을 붙잡고 나가라고 말입니다. 그 분을 두려워해야지, 신하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렇게 시드기야 왕과 그 대신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곧이 곧대로 전한 예레미야는 곧장 예루살렘을 떠나 베냐민 땅으로 향하지 않습니까? 이른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만 전한 셈입니다. 그리고 이제 자기 고향 베냐민 땅으로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고자 가죠. 그런데 성전 문지기의 우두러미인 이리야가 예레미야를 붙잡아, 고관들에게 끌고 가죠. 그리고 예레미야를 옥에 가둬 버립니다. 그것이 본문 15-16절 말씀입니다. “고관들이 노여워하여 예레미야를 때려서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 집을 옥으로 삼았음이더라 예레미야가 뚜껑 씌운 웅덩이에 들어간 지 여러 날 만에” 그들로부터 모함과 학대를 받은 예레미야는 서기관 요나답의 집에 갇혀 버렸고, 그리고 그 집에서 뚜껑씌운 웅덩이에 처박히고 만 것입니다. 이를테면 집의 우물 웅덩이에 갇힌 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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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의 선한 사역을 위해 애쓰고 힘을 쓰는데, 엉뚱한 결과가 초래되는 현실 앞에, 억울하고 분하지 않겠습니까? 이 모습은 마치 사도 바울과 똑같은 격입니다. 그도 로마의 황제 앞에 서려고 하는데, 오히려 가택연금 상태로 2년을 지내야 했습니다. 그 얼마나 답답하고, 괴로운 일이었겠습니까?
그때 예레미야가 어떻게 합니까? 그렇게 예레미야가 집에 갇혀 있고, 또 웅덩이에 갇힌 사실을 왕이 알게 되었고, 그래서 예레미야를 왕궁으로 끌어내죠. 그런데 잘 보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를 그 집과 웅덩이에서 끌어낸 게 예레미야를 위한 것인지 말입니다.
본문 17절을 보면 그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이글어내고 왕궁에서 그에게 비밀히 물어 이르되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느냐 예레미야가 대답하되 있나이다 또 이르되 왕이 바벨론의 왕의 손에 넘겨지리이다.” 무엇을 말씀합니까?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를 그 집에서 건져 낸 것은 단순히 예레미야를 살려내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이 기도하지 못하는 그 사이에 혹시라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떤 말씀을 주셨을지, 다시 말해 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할 방도나, 아니면 자기 자신의 왕위나 목숨을 부지할 방법을 하나님께서 알려주지 않을지 생각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자기 목숨과 자기 왕위를 보존하고자 예레미야를 건져 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예레미야는 어떻게 처신하겠습니까? 우리 같으면, 나 같으면 어떤 처세술을 보이겠습니까? 서기관의 집에 갇히고, 그 집의 우물터 뚜껑으로 닫아버린 상태라, 어떻게 죽을지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었는데, 그런 자신을 왕이 구해내서, 지금 왕실에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다면, 우리 같으면 왕의 마음을 달래줄 이야기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레미야는 “왕이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지리이다.”하고 직언을 고하는 상황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예레미야는 왕을 두려워한 게 아니라 그보다 전능하신 만 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일시적인 땜 빵 식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죠. 그만큼 예레미야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분 곧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분을 의지하도록 직언을 고한 것입니다. 그것이 영원토록 사는 길이요, 나라를 구하는 길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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