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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예배당 옆 텃밭에서 키우고 있는 사과나무 가지에 접을 붙였다. 동네에서 전도하다가 만난 어느 집 주인에게 요청해서 사과나무 가지를 꺾어온 것이다. 내가 텃밭에서 키우던 사과 품종은 루비에스로 사과 열매가 작게 열린다. 이번에 그 밑동만 남기고 전부를 잘라냈다. 그 자리에 동네에서 꺾어 온 가지를 접붙인 것이다.
녀석들이 어떤 열매를 내놓게 될지는 적어도 3년은 지켜봐야 알 수 있다. 다른 사과 품종 한 그루도 3년 전에 접을 붙인 적이 있다. 녀석들도 그때 가지접을 붙였는데 여태껏 잘 살고 있다. 물론 작년에는 열매를 내놓지 못했지만 3년이 되는 올해에는 좋은 열매를 기대해도 될 것 같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환란과 역경을 통해 만나주신다.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김칫독을 된장독으로 삼고자 해도 김치를 비워낸 뒤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그만큼 루비에스 사과나무는 자기 가지를 잘라내는 아픔을 겪을 수 있지만 더 큰 열매를 맺기 위한 어루만짐의 과정을 받아들이면 충분할 것이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고관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를 내게 보이셨는데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나빠서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가 있더라”(렘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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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605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대왕은 남왕국 유다를 정복했다. 그때 남왕국 유다의 18대 왕 여호야김을 비롯해 다니엘과 같은 젊은 인재를 끌고 갔다. 8년 뒤인 B.C.597년 느부갓네살은 남왕국 유다의 19대 왕 여호야긴 곧 여고냐와 방백들과 에스겔 선지자도 끌고 갔다. 11년 뒤인 B.C.586년 느부갓네살은 3차 공격을 통해 예루살렘 성전과 성읍과 성벽을 초토화했다. 그날 남왕국 유다의 하층민만 남겨둔 채 시드기야 왕과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끌고 갔다. 역사적인 계산에 따르면 바벨론 포로 유수기는 B.C.605년에 시작돼 B.C.535년에 끝났다.1)
예레미야 24장의 배경은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방백들과 기술자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B.C.597년 이후의 일이다. 그때 예레미야는 두 광주리의 무화과를 본 것이다. 하나는 좋은 무과화로 먹을 수 있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쁜 무화과로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
좋은 무화과는 누굴 가리키는 것일까?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는 또 누굴 말하는 걸까? B.C.597년의 관점에서 보면 좋은 무화과로 칭한 사람들은 그 당시 2차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유다 백성들을 말한다. 나쁜 무화과로 지칭된 사람들은 그때까지도 남왕국 유다에 남아 있던 시드기야 왕과 고관대작들과 예루살렘 사람들과 애굽 땅에 거하는 자들을 가리킨다.2)
왜 그럴까? 바벨론에 끌려가 포로생활을 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수치와 고통을 통해 다시금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교만하고 나태했던 그들이 환란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돌보심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시드기야와 방백들과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떠난 채 평안만 외쳐댔으니 그 어찌 썩은 무화과였지 않았겠는가?
봄철에 불이 날 수 있다. 무성하게 자란 가지들도 잘려나가는 아픔을 겪을 수 있다. 때로는 더 좋은 사과나무 가지를 접붙이고자 루비에스 품종 같은 가지를 잘라내는 고통도 감내해야 한다. 사과나무 입장에서는 아픔이고 고통일 수 있지만 주인인 내가 보기에는 그야말로 따스한 어루만짐의 과정이다.
삶 속에서 기고만장한 내 가지를 꺾으시고 다시금 새롭게 접붙여주시는 하나님의 어루만지심을 경험하고 있는가? 그것이야말로 좋은 무화과 나무와 같은 신앙인으로 변화시켜주시려는 하나님의 봄날 같은 은혜다.
1)https://torahclass.com/daniel-and-the-messiah-part-1-daniel-9-24-27-by-rabbi-bar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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