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벽묵상DewSermon/예레미야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렘17:1-27)

by 똑똑이채널 2023. 3. 3.
728x90
반응형
SMALL

흔히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고 의지하려 합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나의 힘으로 삼는다는 것이 쉬워 보이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 통장의 잔고는 많으면 많을수록 내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내 손아귀에 있는 권력은 쥐면 쥘수록 나의 영향력을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줄 수 있습니다. 내 머릿속에 지식은 쌓이면 쌓일수록 이 세상을 보다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리고 내 몸이 건강하면 건강할수록 이 모든 것들을 보다 풍성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건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 5-6절이 이와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눈에 보이는 것만을 힘으로 삼고 의지하는 사람은 마치 사막에 심겨진 떨기나무 같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막, 곧 광야는 간조, 즉 건조하기만 한 곳이 아니라 ‘건건한 땅’이기도 합니다. 소금기가 배여 있어서 도무지 경작이 불가능한 땅, 그래서 사람이 살지 않는, 아니 살 수 없는 땅이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의 삶은 그런 사막 한 가운데에 심겨진 떨기나무와도 같다는 뜻입니다.

‘후’ 하고 불면 날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 우리 자신들의 인생이지 않습니까? 제 아무리 많은 재산을 쌓아놓고 자신의 힘과 건강을 누린다고 한들, 그 모든 것들은 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풍요로운 삶을 산다 하더라도 그것은 떨어지는 봄꽃처럼 지나가는 영광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자의 삶은 그토록 건조하기 짝이 없는 사막에 심겨진 나무와 같다는 뜻입니다.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교보문고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product.kyobobook.co.kr

그런데 ‘망각’은 어떻습니까? 망각은 쓰라린 기억을 잊게 해준다는 의미에서 ‘치료제’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독’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은 쉽게 기억해내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면 쉽게 떠나보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나의 힘으로 삼고 신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망각의 DNA를 지니고 있는 인간으로서는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보다, 자신의 손에 있는 재물이나 권력이나 건강을 의지하는 것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안식일을 주신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기억’해내기 위함이죠. 내 존재가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기억해 내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졌음을 기억해 내며 사는 것, 그 진정한 실체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임을 기억해내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안식일을 주신 주님을 경배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product.kyobobook.co.kr

본문 27절입니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나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되게 아니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하시니라.”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성읍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뜻입니다. 안식일을 통해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는 백성이라면 하나님 역시 그 백성들을 기억하실 이유가 없다는 뜻이죠.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복이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본문 7-8절 말씀도 바로 그와 같습니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그런데 잎이 청청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은 시편 1편의 내용과 동일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시편 1편처럼 이 구절은 하나님을 의지하면 복이 쏟아지고 그렇지 않는 자에게는 저주가 쏟아진다는 도식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기억하기에, 그러한 사람은 물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이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말미암는 생명을 소유한 자로 산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한다고 한들 영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삶은 메마른 사막 한 가운데 심겨진 나무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 믿음의 삶은 나의 힘으로, 내가 능동형이 되어서 이 세상의 것들을 많이 소유하고 누리는 데 있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능동형으로, 나를 수동형으로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 이렇게 하나님을 흠모하고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이 구절을 원문의 의미를 살려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이여, 저를 고치십시오. 그러면 제가 고쳐지겠습니다. 저를 건져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건져지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의 찬송이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 예레미야는 이렇게 하나님을 능동형으로, 자신을 수동형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이 극심한 고난을 당하면서도 격변의 시대를 살아내었던 방식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생애의 모든 날들이 몽땅 주님을 기억하는 시간으로 삼을 수 있기를 발바니다.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철저히 수동형으로 당신을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주님은 하늘을 우러러 보시면서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능력을 의지하셨고,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셨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신앙의 본이라면, 우리 또한 하나님 앞에, 그리고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수동형으로 세움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교보문고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

product.kyobobook.co.kr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