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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황제노역논란으로 사람들의 입에 회자된 재판 판결이 있었습니다. 2008년 횡령과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된 전 대주그룹 허모 회장이 1심 재판에서 징역3년, 벌금 508역을 선고받았죠. 그런데 2심재판부는 2010년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으로 감면하는 선고를 했고, 2011년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법 집행과정에서 허회장은 해외로 도피했다가 최근에서야 체포되었는데 벌금집행을 노역으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노역 일당이 5억원으로 책정된 사실 때문에 많은 국민들의 비난을 받았죠. 수백억의 벌금을 내야되는데 그것을 하루 5억원의 노역으로 대체하게 해 준 꼴이었죠. 결국 봐주기 판결이라는 여론의 뭇매를 받은 담당 판사는 사표를 내야만 했습니다. 법 집행의 공정성이란 죄를 지은 사람이라면 응분의 댓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죠. 그런 생각은 성경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죄에 대한 언급과 같습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끊임없이 용서해주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은혜의 하나님, 용서의 하나님을 접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죄에 대하 댓가를 지불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이 내포돼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비와 용서의 하나님이시지만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그것은 유다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심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들의 발을 멈추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이제’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으로 유다백성들에게 다가가셨는데, 그들은 거듭거듭 죄악으로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더 이상 눈감아주지 않으시고 그 죄를 벌하시기로 결정하신 것이죠. 계속 그들이 처한 형편을 살펴주고 사정을 감안해줬어도 아무런 개선의 조짐이나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을 때, 이제는 그들을 향해 공정한 재판을 하나님께서 행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정상참작이나 봐주기 판결은 없다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잘라 말씀하십니다. 본문 11절에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내가 그들을 멸하리라” 이제는 더 이상 참지 않으시고, 심판하시겠다는 작정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까지나 내 잘못을 용서해주시고 참아주시는 분으로 생각하는 것 말입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잘못과 죄악된 일들을 행하는 모습, 그런 유대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지금 우리 귓전에도 들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죠. 이 시대에 다들 자기 소견에 좋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인생들인데, 분명코 그런 인생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확정하고 계신 것입니다.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다. 이제 내가 너희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 죄를 심판하겠다.”하고 말입니다.
과연 그들을 향한 심판의 도구가 무엇입니까? 본문 14장 3절-6절에서 비가 없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줍니다. “귀인들은 자기 사환들을 보내어 물을 얻으려 하였으나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하여 빈 그릇으로 돌아오니 부끄럽고 근심하여 그들의 머리를 가리며 땅에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지니 밭 가는 자가 부끄러워서 그의 머리를 가리는 도다 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버리며 들 나귀들은 벗은 산 위에 서서 승냥이 같이 헐떡이며 풀이 없으므로 눈이 흐려지는도다” 그들이 당한 가뭄은 당시 농경 가축사회에서 치명적인 재앙이었습니다. 귀족에서부터 일반 백성들과 종들, 농사꾼들, 그리고 짐승과 자연환경에까지 가뭄은 그들의 삶과 가축, 환경에 심각한 어려움을 야기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레미야와 유다백성들은 자신들의 가뭄의 재앙이 결코 우연히 일어난 게 아님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본문 7절에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언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극심한 가뭄 속에서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기도드렸던 것입니다. ‘주님 우리가 범죄하였습니다.’ ‘우리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재앙이 우리에게 미쳤습니다.’ ‘주님, 우리를 버리지 말아주십시오. 버려두지 마십시요'
예레미야의 눈물의 탄원을 듣고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심판의 뜻을 돌이키지 않으십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 땅을 향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드렸던 그 모습, 그렇게 기도해도 심판의 칼날을 거두지 않으시는 모습 말입니다. 이때 예레미야는 13절을 통해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어떤 선지자들은 주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이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리라’고 예언을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기근이 오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이곳에 평화를 주신다’”하고 말이죠. 이 선지자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러한 가뭄은 하나님의 심판이 맞습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145절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령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점술과 헛된 것과 자기 마음의 거짓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는도다”
그처럼 거짓 선지자들, 어용 선지자들이 백성들을 획책하고 거짓을 유포하면서, 그래도 평안할 것이다, 하는 지도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몇몇 선지자들은 ‘너희에게 잠깐 가뭄이 있을 지라도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요, 잠시 지나가는 고난일 뿐이다. 전쟁이 일어나는 일도 없을 것이요, 가뭄이 기근으로 이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이 너희에게 확실한 평화를 가져다 주실 것이다' 하고서 예언을 했다는 것이죠. 백성들의 죄악의 결과로 빚어진 재앙의 현실 앞에서도 안전하다, 평안하다, 잘될 것이다, 하고 말하는 자들의 메시지는 결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게 아니죠.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거짓 계시일 뿐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행위였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사회적으로 욕을 많이 먹고 있습니다. 온갖 비난과 욕설로 가득차죠. 이런 현실이 단지 세상이 악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우리가 하나님과 상관없이 세상의 길, 어그러진 길로, 행하며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하며 살아왔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평안할 것이다, 곧 회복될 것이다. 다시 일어날 것이다’하고 막연한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결코 하나님에게 나오는 메시지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허락한 가뭄의 재앙과 심판의 엄중한 메시지 앞에 예레미야는 유대백성을 위한 눈물의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본문 20-21절입니다. “여호와여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보좌를 욕되게 마옵소서 주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 이 예레미야의 기도가, 조국의 땅에서 우리가 당하는 한국교회의 현실, 깨어진 가정의 현실, 무너진 교육의 현실, 피폐해진 인생들을 생각하며, 우리 자신이 드려야할 기도가 아닐까 합니다. 무너진 교회의 모습을 참회하며, 우리 가정과 사회의 모습을 보며 가슴을 치며, 참회하며 눈물을 흘리는 기도 말입니다. 예레미야의 맨 마지막 기도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 이 참혹한 현실 앞에서 그래도 우리가 희망을 걸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뿐이라는 고백입니다. 교회와 가정과 사회의 회복도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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