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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예레미야 11장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내용은 한 가지입니다. 바로 언약이 그것이죠.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땅은 언약의 땅입니다. 언약의 땅이란 언약으로 주어진 땅이라는 의미이죠. 그러므로 언약의 땅에서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언약을 지켜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럼 그 언약이 무엇입니까? 집주인과 세입자가 계약을 합니다. 깨끗하게 잘 살겠다는 계약을 하고 세입자는 집주인이 제공한 집에서 살게 되죠. 그런데 그 계약과는 달리, 세입자가 들어간 날부터 그 집을 망가뜨리기 시작하면 어떻게 됩니까? 집주인의 허락도 없이 정성껏 심어 놓은 나무를 뽑아버리고, 마당도 시멘트로 포장해 버린다면 말입니다. 또 벽이란 벽에는 온통 못질을 해댑니다. 그야말로 집 주인의 집을 자기 맘대로 개조해 버린다면 말입니다. 더욱이 쓰레기는 버리지 않아서 오물 냄새로 온 집안이 진동하면 어떻겠습니까?
그토록 깨끗했던 집이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고 더럽혀졌다면 결국 집 주인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세입자에게 원상복구를 요구하고, 또한 세입자와 계약기간이 끝나면 세입자를 내 좇아버릴 것입니다. 그것은 집주인이 잘못한 게 아니라 세입자가 집 주인과 맺은 계약대로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바로 그런 것처럼 계약 곧 ‘언약’이란 약속 맺은 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좇겨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3절입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시되 이 언약의 말을 따르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니라”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과연 누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습니까? 하나님의 언약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죠. 그들이 누군가요?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 곧 예루살렘의 유다 백성들을 가리키는 거죠. 하나님께서 그들과 맺은 언약이 무엇인지 본문 4절에서 일깨워줍니다. “이 언약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쇠풀무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던 날에 그들에게 명령한 것이라 곧 내가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순종하고 나의 모든 명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우리는 이미 출애굽기를 읽은 바 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몇 년 동안 종살이 곧 노예살이를 해야 했습니까? 400년 동안이었죠. 어떤 이들은 430년이라고도 하는데, 정확히는 430년이고, 보통 400년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 400년 동안 노예로 산다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노예에게는 자유도 없고, 자기 시간도 없고, 자기 의사도 없습니다. 오직 주인이 하라는 대로, 주인이 명령한 대로, 주인이 시키는 대로만 할 뿐입니다. 그런 삶을 400년 동안 살아왔으니 어떠했겠습니까? 한 세대가 100년이라면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손주와 증손주 세대까지, 그야말로 4세대가 그렇게 종살이를 해 온 것입니다. 주인이 때리면 맞아야 하고, 주인이 학대하면 학대를 받아야 하고, 주인이 온갖 수모를 주면 그 수모를 참고 견뎌야 하는 게 노예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노예살이란 짐승과 같은 삶, 짐승보다 못한 삶입니다. 그런 삶을 400년 넘게, 430년 동안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와 유월절 은혜로 자유를 주시고, 해방을 주셨습니다. 더욱이 그들이 애굽에서 해방을 맞아 애굽을 빠져나갈 때, 온갖 은금패물까지 다 가지고 나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홍해에서 길이 막혔을 때 하나님께서 바다를 가르시고 바람을 보내 그 바다를 좌우 벽이 되게 하시고, 바닷길을 마른 땅처럼 통과하게 해 주셨습니다. 더욱이 빈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고, 반석에서 생수를 터서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런 기적과 능력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을 보여주신 뒤에, 드디어 애굽에서 빠져 나온지 40일째 되는 날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식을 체결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간의 쌍방의 언약식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면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희들이 내 율례와 법도를 지켜 나아가면 너희들이 살아가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영원토록 평안할 것이라, 너희 열이 천명을 쫓아낼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죠.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 가나안 땅에 살면서 풍요와 번영을 누리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언약 곧 율례와 법도대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 4절에서 상기시켜주고 계신 것입니다. “이 언약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쇠풀무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던 날에 그들에게 명령한 것이라 곧 내가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순종하고 나의 모든 명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B.C.1500여년 전의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그 언약을, 그로부터 세월이 흐른 B.C600년의 때, 다시 말해 출애굽의 시간으로부터 900년 거의 1천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 말씀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의 언약을 상기하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너희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줄 테니, 그 땅에서 내 모든 명령을 지켜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냥 잘 먹고 잘 살라는 게 아니었습니다. 너희들이 언약백성답게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좇아 살면, 그 약속대로 너희들의 삶에 평강과 복을 내려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900년이 흐른 지금, 거의 천년이 흐른 지금 어떻게 그들이 돌변했습니까? 그들은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는 것만 기억하고 붙잡을 뿐, 그들이 세입자로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켜야 할 율례와 법도를 완전히 망각해 버린 것입니다. 그야말로 자기 좋은 부분만 취하고, 나머지는 한쪽 귀로 흘려버린 것이죠.
물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한 그 가나안 땅은 사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다면, 아브라함의 대에서 그 약속을 성취해 주셨으면 좋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그로부터 수백년이 지난 후에 그 약속이 성취해주셨습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 이유를 창세기 15장 16절은 이렇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이 그때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뒤집어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을 차지한 때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가득 찼을 때라는 것이죠.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아모리 족속에게 내려졌을 때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찰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다려주셨다는 의미입니다. 기다렸다는 말씀은 그들의 죄가 극에 달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죄를 지었지만 회개하기를 기다리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참고 또 참으셨는데도, 그들은 끝내 회개치 않고 더 큰 악을 행하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의 도구로 삼아 아모리 족속을 멸하셨고, 그리고 그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백성으로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들어 그들을 심판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물론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가득 찰 때까지 기다리셨던 것처럼, 바꿔 말해 유다 백성들의 죄악이 가득 찰 때까지, 그것을 거꾸로 생각하면,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할 때까지 기다리셨는데, 그들이 회개하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눈에 보이는 약속의 땅만을 사모하고 살지는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 약속의 땅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우리의 친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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