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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예레미야 10장도 이전의 말씀처럼 남유다의 심판, 곧 예루살렘에 대한 멸망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주된 이유가 무엇인가? 오늘 본문에 흐르는 가장 주된 이유는 우상숭배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 우상의 실체가 무엇인지, 우상을 좇는 자들의 종국이 어떻게 되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선 본문 1절입니다. “이스라엘 집이여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 곧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주시는 명령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의 율법을 주실 때에, 신명기에서 하신 명령과 똑같은 격입니다. “쉐마 이스라엘” 곧 “들으라 이스라엘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를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르지 말라.”(신6:4-14) 신앙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가? 믿음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걸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10장을 통해 들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본문 2-5절에 이렇게 말씀하죠.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여러 나라의 길을 배우지 말라 이방 사람들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여러 나라의 풍습은 헛된 것이니 삼림에서 벤 나무요 기술공의 두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나니 그것이 둥근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 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이 메어야 하느니라 그것이 그들에게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이방 나라의 길을 배우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 이방 나라의 길이란 다름 아닌 우상숭배의 길이죠. 한마디로 말해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신의 형상이라고 사람이 조각하고, 만든 나무나 돌조각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것에게서 복을 구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결국은 복을 받기 위함입니다. 나무나 돌이나 청동으로 만들어진 우상을 신으로 섬기는 것은, 결국은 복 받고 세상에서 편하고 안전하게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열망 때문이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우상 단지들이 인간에게 복을 주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사람을 안전하게 지켜주거나 참된 평화와 소망도 주지 못합니다.
그런 우상들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영혼과 그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죽음 후에 벌어질 일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실은 사람을 속이고 심판의 자리로 몰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본문 11절 말씀처럼 우상과 우상을 섬기던 자들은 망하고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11절에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에서 망하리라 하라.”
그렇기에 우리 인간에게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우리 영혼과 인생에 복을 내리시고, 죽음 이후에 복되고 영광된 약속을 주시는 분도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따르며,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이 복되고 지혜로운 인생입니다.
본문 6-16절은 하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6절에 “여호와여 주와 같은 이 없나이다 주는 크시니 주의 이름이 그 권능으로 말미암아 크시니이다” 10절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이방이 능히 당하지 못하느니라” 12-13절 “여호와께서 그의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의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의 명철로 하늘을 펴셨으며 그가 목소리를 내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 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 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16절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이스라엘은 그의 기업의 지파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라.” 이런 말씀들이 무엇을 일깨워주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살아계셔서 하나님의 완전하신 지혜와 명철과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로 거짓된 우상을 벌하시고 멸망시키시는 분이시고, 야곱 곧 이스라엘이게 기업이 되어 주시고, 주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며, 홀로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영원하신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 믿고 순종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복이요, 은혜 중에 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현재는 세상의 경계와 족속을 따라 한 민족과 나라의 국민으로 살고 있지만, 우리의 참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 된 자들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이요, 소속감이며, 실상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택하심과 부르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에 가장 큰 사건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는 나를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분의 말씀 속에서 더 깊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삶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 6장 3절과 6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오늘 본문 17-25절은 이스라엘의 탄식으로 다가오는 예루살렘의 파멸 곧 바벨론의 유배에 대한 예언입니다. 슬픔과 두려움이 전해지는 내용이죠. 예레미야 선지자의 이 예언 이후 약 40년 뒤에 남유다는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처절하고도 비참한 멸망이죠. 그 멸망의 이유는 바로 하나님 앞에 저지른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소홀히 여기며, 우상숭배을 숭배한 죄악 말입니다.
그래서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반드시 인간의 죄값을 물으신 분입니다. 은근슬쩍 죄를 넘어가는 게 아니죠. 죄를 지을 당시에는 즐겁고 때론 심판을 모면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언젠간 치러야 하는 것이 죄 값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원죄와 자범죄까지도 용서해주시는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시죠. 그렇기에 매일의 자범죄 앞에 긴장하고 훈련된 삶, 매일매일 묵상하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훈련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도 좇아 살 수 없고, 우상과 죄의 유혹을 이겨낼 수도 없고, 궁극적으로 심판을 받는 것이죠.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오직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존중하며, 그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며 참된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종국에 심판보다 천국의 은총을 덧입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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