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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유다 백성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의 죄악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죠. 그렇게 멸망당할 유다 백성들, 폐허더미가 될 예루살렘 성읍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예레미야의 심정은 또 어떻겠습니까? 속이 타들어가겠죠. 자기 동족이 비참한 현실을 맞이하는데, 누가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설령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기회를 붙잡지 않는다 해도, 얼씨구나 잘 됐다, 한 번 당해 봐라, 너희들은 심판을 받아도 싸다, 고 이야기할 선지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레미야 선지자도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을 통해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죠.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머리가 물이 되고, 눈물의 근원이 되고, 곧 죽게 될 유다 백성들을 바라보니 저절로 눈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들이 심판을 왜 당하는 것입니까? 왜 바벨론 제국의 칼날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까? 그 이유에 대해 본문 2-9절까지, 유다 백성들 다시 말해 예루살렘 성읍의 사람들이 행한 타락상을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2절 후반부 말씀처럼 “다 간음한 자요 반역한 자의 무리”라고 밝혀줍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간음과 반역이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이방 신과 우상을 섬기느라 하나님을 경배하지 못한 죄악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또 3절에서는 “그들의 혀를 놀려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또 4절에서는 “형제마다 속이고 이웃마다 비방하”고 다니는 모습, 다시 말해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지 못한 죄악을 꾸짖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형제 자매를 속이는 그 삶일 일상이 되어 버렸는지, 본문 6절 말씀에서는 “나를 알기를 싫어하느니라.” 다시 말해 하나님조차도 알기 싫어하는 삶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런 거짓의 삶이 일상화되어 버렸으니, 하나님을 아는 것조차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요, 그 이웃에게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예레미야 선지자 같은 진실되고 신실한 선지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도 않는 그런 삶을 하나님께서 분명코 심판하신다고 선포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이웃에 대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기 때문에, 그들의 혀로 평화를 말하지만, 그 속으로는 온갖 탐욕이 들끓고 있다고, 8절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혀는 죽이는 화살이라 거짓을 말하며 입으로는 그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마음으로는 해를 꾸미는도다.”
그처럼 위로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온갖 이방 신과 우상을 숭배하고 있고, 또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데, 더욱이 아래로 공동체에 함께 사는 사람들을 속이고 거짓말을 일삼고 서로가 서로를 비방하고 살아가는데, 그것이 어찌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의 모습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0-20절까지 유다의 멸망, 다시 말해 예루살렘 백성들의 폐허에 대한 메시지를 선포하게 하신 것입니다. 10절에서는 그들의 가축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요, 11절에서는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어 승냥이들의 소굴이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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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성읍이 그렇게 황폐하게 변하게 된 까닭은 13-14절에서 극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그들이 내가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율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그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그 조상들이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따랐음이라.”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순종하지 않는 것, 다시 말해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삶을 살았던 까닭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알들 다시 말해 이방신들을 숭배하는 그들의 죄악 때문에, 그들의 가축소리도 사라질 것이고, 예루살렘 성읍은 폐허가 되어 승냥이의 소굴이 될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고 15-16절에서도 그렇게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이 백성에게 쓴 쑥을 먹이며, 독을 탄 물을 마시게 하겠다. 또 내가, 그들도 모르고 그들의 조상도 알지 못하던 이방 민족 가운데 그들을 흩어 놓고, 내가 그들을 전멸시킬 때까지 칼이 그들을 뒤쫓게 하겠다.” 그들이 쑥을 먹고 독을 탄 물을 마실 것이고, 이방 민족이 칼로 그들을 좇아와 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가 하면 22절은 또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너는 이같이 말하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시체가 분토 같이 들에 떨어질 것이며 추수하는 자의 뒤에 버러져 거두지 못한 곡식단 같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유다 백성들, 예루살렘 성읍의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의지는 아주 냉정하고 잔혹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완악하고 잔혹해서가 아닙니다. 도무지 변화할 기미가 없는 유다 백성들의 죄악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모든 죄악에서 바로 설 수 있는 길, 다시 말해 하나님 앞에 참회해야 할 길이 무엇인지, 본문 23-24절을 통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이 자랑하지 말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때의 자랑이란 스스로 높아지고 교만하게 구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고,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고,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고 말씀한 게 그것이죠.
그렇게 교만하지 말고, 대신에 너희들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게 있음을 그 다음 구절에서 일깨워줍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너희들이 명철해서 “나를 아는 것” 다시 말해 하나님을 아는 것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여기에서 ‘알다’는 히브리어 동사 ‘야다’는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걸 뛰어넘는 것입니다. 함께 생활하면서, 속속들이 깊이 아는 것을 뜻하는 말이죠. 하나님을 율례와 법도를 통해 알되, 그것을 자기 삶으로 구현하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알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알고 있는 바를 자랑하라는 것이죠.
그리고 또 무엇을 알기 원하며, 무엇을 깊이 있게 구현하길 원하십니까?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잘 알아, 너희들이 하나님의 자녀처럼 행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삶이 없는 앎은 단순한 공기의 진동과 똑같습니다. 그것은 행함이 없는 믿음이죠.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는 앎, 지식적으로만 아는 앎은 진정한 ‘야다’ 인격적인 ‘앎’이 될 수 없죠. 그것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섬기는 게 아니라, 단순한 자기 믿음이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아니죠.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경험치 못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이 땅에 구현하지 못한다면, 할례받은 자와 할례받지 못한 자를 다 벌하신다고 25절에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할례받은 자는 누굽니까? 유다 백성들이죠. 그럼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은 또 누구입니까? 26절에 나오는 ‘애굽 사람들’, ‘에돔 사람들’, 그리고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들’ 다시 말해 이방인들입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느 부분까지 할례를 받기를 원하신지 알 수 있습니다. 26절 끝부분에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그들은 겉모습은 하나님의 자녀같이 행동하지만, 속 중심은 하나님을 떠나 있는 상태라는 지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험코자 한 삶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것도 없는 것입니다. 허울만 하나님의 자녀였던 것이죠. 그러니 어찌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쏟아 붓지 않을 수 있겠으며, 어찌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들을 바라보고서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들을 바라보는 주님의 심정이 이와 같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으로 바라보시겠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은 겉모습만 할례받은 자가 아니라 마음에까지 할례를 받는 자로, 다시 말해 하나님을 알되 그 삶으로 하나님을 아는 신실한 주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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