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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사도행전

우리를 오르게 하니(행27:4-8)

by 똑똑이채널 2023.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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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성화)그리스도인 치고 주기도문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배때마다 주기도문을 암송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리기 때문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주님의기도를 새롭게 알려주신 이유를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많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왜 주님의기도를 새롭게 알려주셨습니까?

그 전에 기도하던 모습들이 세상의 이교도들의 기도와 다를 없었기 때문이죠.

그 당시의 이교도들은 세상의 잡신들에게 기도하는 것이지만 주님의기도는 그 대상이 명확한 것을 알고 하라는 것이었죠.

바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말이죠.

‘하늘에 계신 아버지’란 하늘에만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라 ‘하늘들’ 곧 하늘과 땅과 모든 시공간을 초월해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이죠.

 

그 외에도 중요한 기도 내용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게 하나 있죠.

주님께서 가르쳐준 주님의기도에는 ‘우리’라는 단어인 ‘헤몬’(ἡμῶν)이 6번이나 등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나’라는 단어는 몇 번이나 등장하고 있을까요?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깨달음)그러니 주님의기도를 통해 깨닫게 되는 바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당신의 기도를 알려주신 것은 그 첫 번째가 기도의 대상자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모든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라는 것을 명확하게 하신 것이죠.

또 하나 깨달으며 기도하라는 것은 ‘나만을 위한 기도’를 넘어 ‘우리를 위한 기도’를 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눈보라치는 눈을 내리게 하셨습니까?

나를 사랑하셔서 나쁜 벌레들이 모두 죽고, 농작물이 습기를 머금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시죠.

왜 하나님께서 그토록 매섭던 한파가 지나가고 햇볕이 들게 하신 것입니까?

나를 사랑하셔서 내가 추위에 떨지 않고 감기에 걸리지 않고 얼어붙지 않도록 하기 위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추운 겨울에도 왜 봄철의 꽃처럼 꽃을 볼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까?

나를 사랑하셔서 삭막한 삶의 상황속에서도 꽃을 보며 웃음을 잃지 않도록 배려하시는 것이죠.

 

이것이 하나님과 나 사이의 1대1의 관계 속에 주어진 믿음이요 하나님과 나의 사랑의 관계입니다.

하지만 주기도문은 나를 넘어 우리라는 관점으로 확대되도록 주님께서 원하신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나만의 구원자가 아니라 나와 관계 맺은 사람들, 심지어 나와 원수같은 이들에게도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만의 아버지가 아니라 나를 판단하는 이들까지도, 주일날 살펴봤듯이 바울을 판단하는 고린도교회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이죠.

 

(적용)그만큼 그리스도인의 삶은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삶임을 잊지 말라는 것이죠.

그리스도의 영어 표기는 Christ이지만 헬라어로는 X로 시작합니다.

X란 윗변의 길이와 아랫변의 길이가 똑같듯이,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바르면 바를수록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죠.

바로 그것이 ‘나의 하나님’에서 ‘우리의 하나님’으로 확장되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죠.

 

그리스도인들 중에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하고, 신비한 체험도 많이 하고, 음성도 듣는데, 주변 사람들과 관계가 좋지 못한 사람을 볼때도 있습니다.

자신이 주님의 환상도 보고, 음성도 들어서, 하나님과 1대1일의 관계는 잘 맺지만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 말이죠.

주님은 그런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도 더더욱 ‘작은 예수’ 곧 ‘크리스토스’ X의 삶을 살도록 원하시는 것이죠.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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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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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바울과 몇몇 죄수들은 백부장 율리오와 휘하 군사들의 보호 속에서 아드라뭇데노 배를 탔습니다.

그 배는 가이사랴에서 ‘아시아 해변 각처’를 항해하는 무역선이었죠.

그 배는 오늘날의 터키 대륙과 시리아와 레바논의 항구를 왕래하는 무역선이었습니다.

 

가이사랴에서 바울 일행이 승선한 그 배는 레바논의 시돈에 잠시 머물렀다가 통상적인 항로를 따라 북쪽으로 항해했죠.

아드라뭇데노 배의 목적지는 바울 일행이 이탈리아 반도로 직행하는 배를 갈아탈 수 있는 루기아의 무라였기 때문이죠.

평소대로라면 아드라뭇데노 배는 시돈에서 해안선을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꺾어 서쪽 무라에 도착했겠죠.

 

하지만 그날 아드라뭇데노 배는 평소처럼 북쪽 항로를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북쪽에서 불어닥치는 맞바람 때문에 곧바로 올라갈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그 배는 터기 대륙 남쪽 100km지점에 위치한 구브로 섬까지 밀려나 그 섬을 바람막이로 해서 북쪽 루기아의 무라로 서서히 올라갔던 것이죠.

 

그렇다면 왜 평소와 달리 북쪽의 맞바람이 불어닥쳤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로 바울의 첫사랑과 초심을 잃지 않도록 다시금 가다듬도록 하신 뜻이었습니다.

그 배가 북쪽에서 밀려와 구브로섬 해안을 지날 때 바울은 13년 전 첫선교지 구브로를 바라봤지 않겠습니까?

지금 50대 후반인 바울이 로마에 가면 대접을 받고 어쩌면 왕노릇 할 수도 있는 입장이었죠.

하지만 주님께서는 바울이 왕처럼 대접받도록 로마로 보내신 게 아니라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보낸 것이었죠.

그러니 그곳에 가서도 13년전 첫 선교지처럼 주님을 향한 첫사랑과 초심을 지니며 복음을 전하도록 그 심령을 지펴주신 것이었죠.

 

그 후에 그 배는 구브로 해안가 위쪽을 향해 루기아의 무라시에 당도했습니다.

그렇다면 곧장 그곳에 당도했다고 해도 될 텐데,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그 배가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넜다고 기록하고 있었죠.

 

(깨달음)그 의도가 무엇이었습니까?

길리기아는 바울의 고향과 같은 곳이었지만, 유대인으로 태어난 바울이지만 헬라 문학과 철학과 언어를 익히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라는 것이었죠.

“네가 유대인이지만 너에게 헬라문화와 철학과 언어를 익히도록 하신 것은 너를 통해 세계를 향한 복음의 통로로 삼고자 하신 것이다”하는 것 말이죠.

“하나님께서 너를 유대인으로 태어나게 하신 것은 너만의 구원자 하나님이 아니라 전 세계인의 구원자임을 너를 통해 알게 하려 함이다”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 배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넜다고 굳이 밝힌 이유는 무엇입니까?

밤빌리아는 바울이 풍토병을 앓고서 버가를 거쳐 타우로스 산맥을 넘어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려는 곳이었죠.

그런데 그때 부잣집 아들 요한 마가가 수행원으로 따라나섰다가 그 길에서 이탈하고 말았죠.

자신으로서는 넘기 힘든 산맥이요 도적떼들이 들끓고 있다는 이유에서, 더욱이 무할례파와 같은 바울과 신앙노선이 달랐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의 이탈로 인해 2차 선교여행때 바나바와 갈라졌고 그로 인해 바울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유럽대륙으로 복음을 전하게 됐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뭔가 사이 좋은 관계였다가도 뜻하지 않는 상황에서 갈라서게 된다면 그를 통해 전화위복의 기회로, 더 선한 주님의 뜻을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또한 ‘나만 성공하는 선교역사’가 아니라 ‘그도 성공케 하려는 하나님의 선교역사’로 곧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로 받드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본문)오늘 본문은 그 이후의 상황을 전해주는데, 본문 6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원해)드디어 바울 일행이 탄 아드라뭇데노 배가 그들의 목적지인 루기아의 무라 시에 당도했습니다.

그 배가 그곳을 목적지로 삼은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았죠.

아드라뭇데노 배는 짐을 싣고 푸는 무역선이요. 바울 일행은 로마 이탈리아로 갈 수 있는 배로 갈아타고자 그곳에 당도한 것이죠.

 

그때 백명의 군사를 거느린 율리오 백부장이 어떻게 합니까?

바울과 몇몇 죄수는 물론이고 ‘우리’를 그 배에 오르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가리키는 헬라어 ‘헤마스’(ἡμᾶς)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할 때의 ‘헤몬’(ἡμῶν)과 같은 어근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기록된 ‘우리’는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사도행전 27장 1절에 ‘우리’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때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여기에 ‘우리’란 바울을 따르는 일행을 가리키는 말로, ‘바울과 누가와 아리스다고’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27장 4절에서는 그 범위가 확장이 되죠.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맞바람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항해하여

여기에 ‘우리’란 바울과 누가와 아리스다고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북쪽의 맞바람을 피해 구브로 해안가를 항해하는 모든 이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지금 그 배에서 맞바람을 맞이해 운명 공동체로 함께 배에 탄 사람들 모두 말이죠.

 

그런데 ‘우리’란 아드라뭇데노 배에 탄 사람들만 가리키는 게 아니죠.

본문 6절을 보면 아드라뭇데노 배가 루기아의 무라 항구에 당도해 이제 로마로 향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로 갈아탑니다.

그때 바울과 누가와 아리스다고가 그 배에 타게 되는데, 그때 알렉산드리아 배에 탄 사람이 몇 명인지 37절에 나와 있죠.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

 

(깨달음)그렇다면 ‘우리’라는 그 말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때 의원으로 일하다가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듣고 선교팀에 합류한 인물이죠.

그 이후 바울의 개인 주치의처럼 바울이 가는 곳마다 함께 따라다니며 의술을 펼치며 선교사역에 뛰어든 인물입니다.

그때는 바울 곁에 실라와 디모데 그리고 누가가 함께 했었죠.

그때도 누가는 ‘우리’(행16:9)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그것은 유럽대육에서 복음을 필요로 하는 대상자들에 비해 자신들을 주님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의미에서 ‘우리’라고 한 거죠.

하지만 지금 로마로 향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탄 사람들을 향해서도 그 배의 운명공동체로서 ‘우리’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더욱이 이제 본격적으로 로마 이탈리로 향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로 갈아탔을 때도 ‘우리’라고 운명공동체로 표현을 하고 있죠.

 

왜죠?

이제는 더 이상 나와 나로 구분된 사람들이 아니라 함께 로마로 항해해 나가야 할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바꿔 말해 바울과 함께 한 누가와 아리스다고는 물론이고 바울과 다른 죄수를 지키는 백부장과 100명의 군사들을 포함해 276명 모두가 한 배에 몸을 실은 ‘우리’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본문을 기록한 누가는 그 배에 탄 ‘우리’ 모두를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시기를 간절한 바라는 뜻으로 ‘우리’라고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죠.

 

(적용)이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주님의기도의 의미를 깊이 새길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바울과 누가와 아리스다고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은 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는 것 말이죠.

하나님은 그 배에서 바울의 일행한 지켜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 모든 일행들을 지켜주시고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분 말입니다.

 

설령 그 바다에 풍랑이 일어날 때 하나님은 바울과 그 일행만 살려주시려는 게 아니라 그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을 ‘우리 모두’ 깨닫게 하시려는 것 말이죠.

그러나 그 풍랑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 ‘네가 죽지 않고 살 것이다’하고 말하게 하신 것은 바울뿐만 아니라 그 배에 탄 276명 곧 ‘우리 모두를 살려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이죠.

그만큼 우리의 신앙도 ‘나만의 하나님’ ‘나만을 성공케 하시는 하나님’을 넘어 ‘우리의 하나님’을 인식하며 확장하며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우리의 신앙심을 ‘나의 하나님’에서 ‘우리의 하나님’으로 확장하며 사는 신앙의 은혜 속에 살게 하신다는 것이죠.

 

(주음성)오늘 이 시간에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가?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는 너를 만나주시고 너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이 너만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더냐?”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셔야 하고 나의 계획에 응답해주셔야 하고 나의 간구에 귀를 기울여주셔야 하는 하나님이라고 말이다.”

물론 그것이 신앙의 시발점이지만 그러나 참된 신앙의 본질은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되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셔서 너에게 응답하시고 너의 계획을 선하게 이끌지만 너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너와 함께 하는 이들의 하나님 아버지라는 것 말이다.”

누가도 바울과 그 일행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그 배에 탄 276명 모두의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 아버지라고 고백한 것 아니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고 너의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너의 아버지시지만 너와 어긋나 있는 이의 아버지라는 사실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하나님은 바울과 그 일행도 긍휼히 여기시지만 그 배에 탄 백부장 율리오와 100명의 군사들도 긍휼히 여기길 원치 않겠느냐?”

하나님은 우리나라 크리스천의 기도도 응답해주시길 원하지만 일본 크리스천의 기도에도 응답하길 원하는 분이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진보진영의 정치인들의 기도에도 응답해주길 원하지만 보수진영의 정치인들의 기도에도 응답해주길 원하는 분이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좌와 우를 편가르하고 나와 다른 이들을 무시하기보다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을 기억하며 사는 이들을 더 귀하게 여기지 않겠느냐?”

오늘 너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이를 향해서도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그의 기도에도 응답해주시라고 축복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하나님께서는 그런 너의 믿음과 신앙을 복되게 여기서 더 큰 그릇으로 더 큰 일꾼으로 너에게 더 큰 일을 맡기지 않겠느냐?”

 

(찬양)주님 예수 나의 동산 내 맘속에 동녘 하늘

아침햇살 가득 안고 활짝 피는 백합 같아

그 안에서 이 생명도 피어나는 꽃 되리라

오 하나님 이 꽃 바쳐 주의 재단 밝히리니

은혜로운 사랑으로 하늘 평안 내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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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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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1)어느 목사님이 신장기능이 약화되어 건강한 사람의 신장을 이식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주일 날 임시로 강단을 맡아 설교를 하게 된 다른 목사님이 그 교회 담임목사님의 전후사정을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리고서는 아무래도 교인들 가운데서 신장기증자가 나와야 될 것이라고 말을 했죠.

고통받는 주님의 종을 위해서 신장을 기증할 뜻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 표하라고 했습니다.

잠시 후 여기저기서 손을 들기 시작하더니 거기 모인 천여 명이 성도들이 거의 다 손을 드는 것이었죠.

그날 설교를 맡은 목사님은 감격하며 말했습니다.

 

“여러분, 참으로 감격스럽습니다. 이처럼 주의 종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는데 놀랐습니다.”

“그러나 신장은 한 사람 것이면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느 한 사람을 지적하는 것은 덕스럽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리털 하나를 꺼내 입으로 분 후, 이 오리털이 머리 위에 내려앉는 사람을 신장기증자로 선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뜻을 기다리며 조용히 기도하며 기다립시다.”

 

드디어 오리털 하나를 뽑아 회중석으로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오리털이 가까이 날아오면 사방에서 ‘주여, 할렐루야, 아멘’ 소리가 입바람에 섞여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오리털은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것이었죠.

결국 오리털은 누구 머리 위에도 내려앉지 못했습니다.

 

(깨달음)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에 일침을 가하는 이야기이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라는 기도를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예화2)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립니다.

하지만 미국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존경 받는 대통령을 꼽으라면 항상 3명 안에 들어가는 인물입니다.

 

그 링컨이 대통령에 선출됐을 때 링컨의 가난한 시절의 삶을 알게 된 상원의원들이 링컨을 비웃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고학력에 명문 귀족출신이었던 상원의원들에 비해 신발 제조공 출신에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링컨 밑에서 일 하는 게 너무나도 불쾌했던 것이죠.

 

이제 링컨이 대통령이 되어 상원의원들 앞에서 취임연설을 할 때였습니다.

막 연설을 하려는데 한 상원의원이 일어나 거만하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미국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날입니다.”

“저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의회 연설을 하다니요.”

“저런 사람을 우리가 대통령으로 모셔야 합니까?” 하면서 야유를 퍼부었습니다.

 

또 한 의원은 자기 구두를 벗어 들고말 했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다니 정말 놀랍소.”

“당신의 아버지가 신발 제조공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가끔 당신 아버지가 우리 집에 신발을 만들기 위해 찾아오곤 했소.”

“이 신발도 당신 아버지가 만든 것이오.”

그러자 의사당 안은 링컨을 조소하는 웃음소리로 가득했습니다.

 

그 순간 아버지를 생각하는 링컨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습니다.

그때 링컨은 전혀 동요함이 없이 단상으로 올라가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존경하는 의원님들, 여러 가지 바빠서 잠시 아버지를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께서 아버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구두를 만들고 수선도 하셨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한 번도 쉬지 않고 튼튼한 구두를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나도 아버지가 일할 때 어깨 너머로 보았습니다.”

“아까 의원님이 보여준 구두, 언젠가 수선할 일이 있으면 제게 갖다 주세요. 제가 수선해 드리겠습니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합니까?

평소에 대립관계 있는 사람을 공석에서 비난하지 않는 태도를 지니는 것, 이것이 실은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삶이지 않겠습니까?

이런 신앙의 모습을 우리의 삶 속에 펼쳐보이길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내기도)그렇기에 오늘 우리가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저의 신앙이 나의 하나님 아버지에서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로로 성숙한 신앙인이 되게 해주세요.”

내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나의 하나님 아버지는 나와 경쟁자로 사는 이, 나와 뜻을 달리하는 이에게도, ‘하나님 아버지임을 잊지 않고 살게 해주세요.”

하나님은 오늘도 나를 사랑하셔서 햇볕을 주시지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햇볕을 주시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링컨에게 그의 아버지를 비난할 때 공개적으로 그들을 감싼 모습처럼 저도 삶 속에 그런 신앙인으로 살게 해주세요.”

 

(찬양)주님 예수 나의 동산 내 맘속에 동녘 하늘

아침햇살 가득 안고 활짝 피는 백합 같아

그 안에서 이 생명도 피어나는 꽃 되리라

오 하나님 이 꽃 바쳐 주의 재단 밝히리니

은혜로운 사랑으로 하늘 평안 내리소서

 

주님 예수 나의 동산 내 맘속에 동녘 하늘

아침햇살 가득 안고 자라나는 나무 같아

그 안에서 이 생명도 귀한 재목 되겠어요

오 하나님 이 재목 바쳐 주의 재단 쌓으리니

은혜로운 사랑으로 하늘 평안 내리소서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내게 영생을 베푸시기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아 제물삼아주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와 반대편에 있는 자를 위한 하나님, 곧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은 나의 기도에도 응답해주시길 원하시지만 그가 하는 기도에도 응답해주길 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바울과 함께 한 누가와 아리스다고 뿐만 아니라 그 배에 탄 273명의 사람들을 구원하길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누가는 바로 그 사실을 알고 ‘나의 하나님’ ‘바울의 하나님’을 넘어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를 밝혀놨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도 ‘나를 사랑하시는 나의 하나님’을 넘어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를 삶 속에 펼쳐보이는 복된 2023년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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