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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사도행전

구브로 해안을 항해하여(행27:3-8)

by 똑똑이채널 2023.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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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브로 해안을 항해하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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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나예)오늘까지 3일째 강단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공사가 끝나면 강단이 한결 산뜻하고 밝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공사하고 있는 분은 우리 지방회 목사님입니다.

그 분은 개척할 때 상가 리모델링을 본인이 하셨고, 건축할 때도 손수 예배당을 지은 분입니다.

 

공사를 하면서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눌 때 존경스런 부분이 있었습니다.

본인이 헌신해서 교회 땅과 건물을 지었는데 은퇴할 때 교회에 헌납한다는 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나이가 62세라, 70세에 은퇴할 때까지 그런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하는데, 하고 본인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만큼 사람은 누구든지 간에, 어떤 위치에 있든지 간에, 그 초심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깨달음)그 초심을 다른 말로 하면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함께 일을 하는데 어제 점심 때는 목포에 있는 또 다른 부부 목사님이 와서 들여다봤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이 점심을 샀는데 총 네명이서 식사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분이 하는 이야기가 있었죠.

고향이 암태라고 하는데 젊었을 땐 부흥회란 부흥회를 죄다 좇아다녔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은혜를 받았다고 말이죠.

 

그런데 지금은 그런 부흥회를 쫓아다니는 열정도 사라졌고, 기도에 대한 열정도 사라졌다고, 본인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만큼 그 초심을 지키는 것, 주님을 향한 첫사랑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적용)오늘 우리를 향한 주님의 초심, 주님을 향한 첫사랑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습니다.

처음 주님 만났을 때 눈물 콧물 다 쏟고 회개하면서 이 세상에 주님밖에 없습니다, 하고 고백하던 그 초심과 첫사랑 말이죠.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런 초심과 첫사랑을 잃지 말도록 주님은 그런 환경으로 이끌어서 그걸 깨닫게 하실 때가 있다는 거죠.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아그립바 왕의 요청으로 베스도 총독이 주선한 청문회장에서 바울은 무죄로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미 로마 황제의 법정에 상소한 까닭에 그곳에서 곧장 로마로 출발하게 되었죠.

 

그때 바울과 다른 죄수 몇 명을 인솔한 책임자는 백부장 율리오였습니다.

로마 황제의 직속부대인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가 휘하의 군사들과 함께 바울과 다른 죄수 몇 명을 보호하여 이송한 것입니다.

 

하지만 구원의 섭리에 관한 관점으로 보면 그 모습은 정반대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백부장 율리오와 휘하의 군사들이 바울과 다른 죄수 몇 명을 보호하여 인솔하는 것 같지만 그 반대라는 것 말입니다.

백부장 율리오와 휘하의 군사들을 구원코자 그들의 영혼을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맡기셨다는 것 말입니다.

 

(깨달음)이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도 같은 이치라고 했습니다.

때로 나를 이끌어주기 위해 누군가를 내 곁에 붙여줬다고 세상 사람들은 생각할지 모르지만 영적인 관점에서는 정 반대라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믿지 않는 자를 내게 붙여주신 것은 그들의 영혼을 내게 맡겨주셨다는 것 말입니다.

 

바로 그것이 주일날 나눈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우리를 부르신 것인 줄 믿습니다.

 

(본문)오늘 본문은 그 이후의 상황인데 본문 3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하더니

 

(원해)바울 일행이 가이사랴 항구에서 탄 배는 로마로 직행하는 배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탄 배는 ‘아드라뭇데노 배’로서 여러 항구들을 왕래하는 무역선이었습니다.

바로 그 배가 출발한 지 이튿날에 시돈에 당도한 것입니다.

시돈에서 무역품을 하역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때 백부장 율리오가 어떻게 했습니까?

바울에게 친절을 베풀었죠.

그 배에서 며칠에 걸쳐 짐을 푸는 동안 시돈에 사는 바울의 친구들, 곧 동역자들에게 대접받고 오는 걸 허락해준 것입니다.

 

여기에 ‘대접을 받다’는 헬라어 ‘에피멜레이아’(ἐπιμέλεια)는 ‘돌봄’(care) ‘주의’(attention)를 뜻하는 말입니다.

바울이 가이사랴 지하 감옥에서 2년 동안 감금돼 있다가 풀려난 상태였으니, 시돈의 동료들에게 잘 쉬고 돌봄을 받고 오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백부장 율리오가 어떻게 바울에게 이런 혜택을 베풀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이틀 동안 배 안에서 지내면서 바울의 인격에 감동을 받은 까닭 아니겠습니까?

다른 죄수 몇 몇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인격을 지닌 믿음의 사람이었기에 그런 돌봄을 충분히 받도록 한 것이죠.

 

(전개)그런데 시돈에서 바울이 돌봄을 받은 이후, 그 배에서 무역품을 다 내린 후에 그 배가 어디로 행합니까?

본문 4-6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맞바람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항해하여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하역 작업을 끝내고 다시 시돈 항구에서 출발한 무역선 아드라뭇데노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라는 것입니까?

바울 일행이 로마로 직행할 수 있는 배를 갈아탈 수 있는 루기아의 무라였습니다.

‘무라’란 오늘날 터키 대륙의 서남쪽에 위치한 항구 도시입니다.

 

아드라뭇데노는 오늘날의 레바논과 시리아 그리고 터키 대륙의 해안을 항해하는 무역선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시돈을 출발한 아드라뭇데노 배가 레바논과 시리아의 항구를 따라 북상했다면 통상적인 경로는 그렇게 됩니다.

터키 대륙의 남쪽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길리기아와 밤빌리아의 항구들을 거쳐 무라 항구에 당도하는 것 말이죠.

 

하지만 터키 대륙을 향해 북상하던 아드라뭇데노 배가 갑자기 북쪽에서 몰아닥치는 맞바람을 거스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정상 항로에서 벗어나 터키 대륙에서 남쪽으로 100km 지점에 위치한 구브로 섬의 해안을 끼고 항해한 것입니다.

이를테면 구브로 섬을 바람막이로 삼아서 그 해안을 따라 터키 대륙 앞에 있는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무라 항구로 올라간 것이었죠.

 

(깨달음)그렇다면 왜 하필 그 배가 통상 항로를 이탈할 수밖에 없는 북쪽의 맞바람을 맞이해야 했을까요?

왜 그 배가 하필 구브로 섬의 해안을 끼고 서서히 무라 항구에 올라가야만 했을까요?

 

그 모든 게 실은 하나님께서는 거센 북풍을 불게 하셔서 바울이 탄 그 배의 항로를 구브로 섬쪽으로 모신 것이었습니다.

왜죠?

그곳 구브로 섬은 사도 바울에게 너무나도 큰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처음 선교지로 출발한 곳이 바로 그곳 구브로 섬이었습니다.

지금 바울은 그 첫 번째 선교지였던 구브로를 거쳐 2차와 3차 선교여행을 끝내고 마지막 종착지인 로마로 향하는 길목입니다.

그 길목에서 다시금 북쪽에서 부는 맞바람 때문에 구브로 해안을 끼고 서서히 올라가는 형국입니다.

그러면서 그곳 구브로를 다시금 바라보게 되었으니 적어도 13-15년만에 다시금 첫 번째 선교지를 바라보면서 로마로 가는 것입니다.

 

(적용)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북쪽의 맞바람을 일으켰는지, 왜 그 무역선이 구브로 해안가를 끼고 북쪽으로 올라가게 했는지 알 수 있죠.

바울의 첫 번째 선교지를 바라보면서 그 초심, 그 첫사랑을 잃지 말도록 하게 하신 주님의 뜻이라는 사실입니다.

 

지금 바울이 로마로 향하는 이 길목은 바울의 나이가 50대 후반으로 그 당시 관점으로는 늙은 나이입니다.

사람이 늙으면 뭔가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이제껏 바울이 1차와 2차와 3차에 걸쳐 선교지를 누볐고 많은 공적을 올렸고 로마 교인들에게 편지도 쓴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로마로 가면 바울은 너무나도 융숭한 대접을 받고 거의 군림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우리 주님은 바로 그런 마음이 버리도록, 다시 말해서 안주하고 싶고 대접받고 싶은 그 마음을 버리고 초심을 회복하도록 구브로 섬을 끼고 올라가게 하신 것입니다.

 

(주문)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시는 주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우리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도 어떤 환경속에서도 초심과 첫사랑을 회복하며 사는 은혜를 베푸시길 원하신다는 거죠.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도 초심이 흔들릴 때가 있지 않느냐? 주님의 처사랑이 식어질 때가 있지 않느냐?”

교회 강단을 리모델링 하는 그 목사님도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하는데, 밥을 산 목사님도 지금 그 마음이 흐릿하다고 하는데, 너는 어떠하느냐?”

로마로 향하는 바울이 50대 초반의 늙은이로서 바울도 가는 곳마다 대접받고 안주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겠느냐?”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바울이 초심과 처사랑의 감격을 회복하도록 첫 번째 선교지였던 구브로를 바라보게 하신 것 아니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도 너의 삶에 환경 속에서 주님을 향한 초심과 그 첫사랑을 늘 잃지 않으면 좋겠구나.”

주님께서 너의 그 초심을 회복하도록, 그 첫사랑의 은혜를 회복하도록 특별한 환경으로 너를 몰아넣으실 때 감사해야 하지 않겠느냐?”

“50이 넘은 바울을 구브로 해안가를 끼고 항해할 때 그 초심과 첫사랑의 감격을 다시금 불러 일으켰듯이 말이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네가 그 초심과 첫사랑을 회복하도록 은혜의 구브로로 너를 이끌지 않겠느냐?”

 

(찬양)이제 내가 살아도 주 위해 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 위해 죽네

하늘 영광 보여주며 날 오라 하네

할렐루야 찬송하며 주께 갑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이제 내가 떠나도 저 천국 가고

이제 내가 있어도 주 위해 있네

우리 예수 찬송하며 나는 가겠네

천군 천사 나팔 불며 마중 나오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성화)초심과 첫사랑을 이야기했지만 우리가 늘 초심을 간직하거나 첫사랑을 유지할 수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주님의 십자가를 매번 묵상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왜 주님께서 손에 대못이 박혀 피를 흘려야 했습니까?

내가 손으로 지은 죗값을 대신 치러 주기 위함입니다.

왜 주님께서 두 발에 대 못이 박혀 피흘려야 했습니까?

내가 가서는 안 될 곳을 다니며 나의 두 발로 지은 죄값을 대신 치러주기 위함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허리에 창이 찔려 피를 다 쏟아야 했습니까?

내가 썩어 문드러질 내 몸둥이로 지은 죗값을 대신 치러 주기 위함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런 보혈의 피로 내 죄를 말갛게 씻어주기 위해 온 몸에 피를 흘리셨습니다.

 

바로 그 사실을 매번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살아야 우리는 초심과 첫사랑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가 사는 목적이 주님의 영광이요, 죽는 것도 주님을 위한 것임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주님의 일꾼으로 사는 것이요, 그것이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사는 길인 줄 믿습니다.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3년 한 해 동안 그런 초심과 그런 첫사랑을 회복하며 사는 그리스도의 일꾼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 길은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그 삶을 살아갈 때 가능한 줄 믿습니다.

50의 초로에 달한 바울은 가는 곳마다 대접받고 가는 곳마다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바울이 초심과 첫사랑을 잃지 않도록 첫 번째 선교지인 구브로의 모습을 13-15년이 지나 다시금 바라보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그런 초심과 처사랑의 감격을 회복하며 사는 2023년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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