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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사도행전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행26:24-29)

by 똑똑이채널 2022.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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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미쳤도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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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성화) 모세는 어린 시절 물에서 건짐받은 아이였죠.

애굽의 파라오가 사내 아이들을 모조리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자 그 어머니 요게벳이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보냈죠.

그때 파라오의 딸이 울음소리를 듣고 애굽 궁궐로 데려가 양 아들로 키웠죠.

 

그때부터 40살이 되기까지 애굽의 학문과 정치와 경제와 군사학까지 다 마스터했죠.

물론 파라오의 아들로 자랐지만 그의 유모가 그의 어머니였던 까닭에 겉모습은 애굽인이었지만 속사람은 히브리 사람이었죠.

그 까닭에 애굽 병사가 히브리인을 괴롭힐 때 그 군사를 때려죽였고, 다음날은 히브리 동족끼리 다툴 때 그 일을 중재했죠.

그런데 그 일로 자신이 히브리인임이 탄로났고 곧장 미디안 광야로 줄행랑쳤죠.

그로부터 40년간 빈털터리로 미디안의 양치기로 살았는데, 그곳에서 장인 이드로 밑에서 십보라와 결혼해서 살았죠.

 

그런데 그 무렵에 전능하신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찾아오셨죠.

불가항력적인 모습으로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지만 사라지지 않는 그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이었죠.

그때가지 그런 역사를 본 적이 없었는데 심지어 음성까지 모세에게 들렸죠.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고 나가도록 해라”하고 말이죠.

 

그리고는 형 아론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사실을 알릴 때 모두가 고통 중에 있는 애굽에서 떠날 것을 기대했죠.

그리고는 모세가 파라오 앞에 서서 우리 히브리 민족이 광야로 나가 하나님께 경배하기를 원한다고 말했죠.

그때 파라오가 보인 반응이 무엇입니까?

순순히 히브리 민족을 애굽에서 내 보내겠다고 했습니까?

그때까지 히브리 민족을 노예로 부리면서 온갖 고된 일을 시키고 있었는데 그들이 떠나간다면 그 일을 누가 대신하겠습니까?

 

그때 파라오가 한 말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5:2)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불가항력적인 사건으로 나타나셨지만 파라오에게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애굽의 신들도 많은데 굳이 히브리인들이 전통적으로 섬겨온 그 하나님의 말을 듣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거죠.

한 마디로 말하면 그런 뜻이지 않겠습니까?

“모세야. 웃기지 말아라. 니가 미쳤냐. 애굽의 신들도 많은데. 내가 왜 하나님이란 신이 말한 걸 들어야 하냐?”

“괜히 일을 잘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선동하지 말고, 가서 너는 네 할이나 해라.”

 

(적용)이것을 우리 시대에 적용하면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만나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겠죠.

성령님을 체험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의 모습으로 환상 가운데 또 꿈으로도 그리고 음성으로도 찾아오시는 분이시죠.

그때 그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한 이들은 그와 같은 불가항력적인 역사 앞에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러나 그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한 이들, 성령님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안하무인처럼 하나님을 무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데도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한 이들, 성령님의 동행하심을 경험한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절대복종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세계에 미쳤다고 조롱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을 체험하고 성령님을 경험한 이들은 그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섬길 수밖에 없고 남에게 증언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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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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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아그립바 왕의 요청으로 베스도 총독이 개최한 청문회장에서 바울은 변증을 했습니다.

그 변증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변론이 아니라 청문회장에 참석한 이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변론이었죠.

바울은 그 변증을 통해 자신이 허상에 사로잡혀 예수 믿는 자들을 억압한 세월을 살아온 이야기를 전했죠.

하지만 모세에게 찾아왔듯이 자신에게도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찾아오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에 그 삶이 달라졌음을 변론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산 것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가 곧 자기 자신에게 찾아오신 예수 그리그스도 임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죠.

바울은 구약의 이사야서와 호세야서를 통해 예언된 고난받는 메시야, 3일만에 부활하신 메시아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게 되었죠.

그때부터 그는 유대인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메시아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임을 전하며 살았던 것이죠.

 

물론 그런 바울에게 행복한 꽃길만 놓여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유대인들이 핍박을 가했고 돌로 쳐 죽이기도 했죠.

심지어 자객을 동원해 바울을 쥐도새도 모르게 죽이려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그 길목에서 포기치 않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며 살아온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에 가능했음을 증언했죠.

그것은 지금까지도 어둠에 사로잡힌 자들을 빛 가운데로 인도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도 사탄의 세력에게 붙잡혀 있는 자들이 영생의 선물을 받도록 하기 위함 말이죠.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곧 유대인들은 물론이고 이방인들에게 생명의 빛을 전하기 위한 일이었죠.

그것은 곧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을 비롯한 그 청문회장에 있는 모든 이들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깨달음)그만큼 바울이 살아가는 목적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이전에는 세상의 허상에 사로잡혀 성공과 출세만 바라봤지만 불가항력적인 주님을 체험한 이후에는 그 삶이 달라진 것이죠.

그야말로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그 삶을 올인한 바울이죠.

 

(적용)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도 불가항력적인 주님을 체험했다면 그와 같은 삶에 초점을 맞추며 살지 않겠습니까?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본문)오늘 본문은 바울의 증언이 끝날 때 베스도 총독이 큰 소리로 외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본문 24절을 같이 읽어보실까요?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원해)여기에 ‘미쳤다’는 헬라어는 ‘마니아’(μανία)입니다.

‘미침’(madness), ‘격분’(frenzy)이란 뜻인데 ‘광적으로 빠져 있다’하는 의미죠.

 

(원성)이 단어의 어근이 요한복음 10장 20절, 사도행전 12장 15절, 오늘 본문, 그리고 고린도전서 14장 23절에 사용됐죠.

이 단어는 귀신이 들려 미쳤다고 할 때,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말할 때, 그리고 인간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할 때 미쳤다고 하는 것이죠.

 

일례로 야고보를 참수시킨 헤롯 아그립바가 베드로도 참수시킬려고 감옥에 붙잡아뒀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보낸 사자가 찾아와 베드로의 차꼬를 다 풀어주고 옥문도 열어주는 것이었죠.

그러자 베드로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베드로가 풀려나길 기도하고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찾아가 대문을 두드리죠.

그때 로데라는 계집 아이 하나가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나가봤는데 베드로의 목소리인 걸 알게 됐죠.

그래서 문도 열어주지 않고 그 기쁜 소식을 전하고자 다락방에 있는 성도들에게 말해주죠.

그때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바로 ‘마니아’, “네가 미쳤냐?”하는데, 로데는 “참말입니다”하고 대답하죠.

 

(깨달음)오늘 본문의 베스도 총독이 바울에게 ‘네가 미쳤구나’하는 말도 바로 그와 같은 의미입니다.

로마 사람인 그는 바울이 구약성경을 너무 몰두해서 연구하다보니 그렇게 정신 나간 소리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어떻게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냐는 것이죠.

어떻게 그 분이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는 분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믿지 못할 소리를 한다면서, 정신 나간 소리나 한다고, 무시한 것이죠.

 

(본문2)그때 바울이 어떻게 대답합니까?

본문 25-29절을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원해) 바울은 투 트랙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5절은 베스도 총독을 향해서 한 말이고 나머지 구절은 아그립바 왕을 위해서죠.

물론 이 구절은 그들 두 사람만 들으라는 게 아니라 청문회장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향한 말이죠.

 

바울은 베스도 총독을 향해 미친 게 아니라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하고 대답하죠.

여기에 ‘하나이다’는 말은 겸손하게 표현한 것 같지만 당당하게 ‘선언한다’(ἀποφθέγγομαι pronounce)는 뜻입니다.

결코 미친 게 아니라는 것, 정신 나간 소리가 아니라는 것이죠.

 

그리고 아그립바 왕에게는 뭐라고 말합니까?

왕도 이 모든 일을 잘 안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본문의 아그립바 왕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헤롯 대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2세입니다.

헤롯 대왕은 에돔의 후예인데 로마 제국의 보호 속에서 유대인의 왕좌에 올라 헤롯 왕조를 창시한 자죠.

본문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2세는 갈릴리와 베뢰아 지방의 분봉왕이지만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 임명권을 갖고 있었죠.

그러니 아그립바 왕도 구약성경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자로서, 선지자를 믿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죠.

그래야 아그립바 왕도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바울이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러자 아그립바 왕은 베스도 총독과 똑같은 말은 아니지만 속으로 바울이 미쳤다고 생각을 했겠죠.

그래서 “바울아.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해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고 하느냐?”하는 것이죠.

그때 바울은 그 청문회장에서 그렇게 결론을 내리죠.

내가 미친 것도 아니고, 내가 말이 적으나 적으나 당신은 물론이고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나처럼 결박당한 것 외에는 모두가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하고 말이죠.

 

여기에 ‘원합니다’ 하는 헬라어 ‘유코마이’(εὔχομαι)는 ‘하나님께 기도하다’(to pray to God)는 말입니다.

바울은 그 청문회장에 있는 베스도 총독이나 아그립바 왕이나 그 모든 자리에 있는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란다는 뜻입니다.

 

(깨달음)이를 통해 깨닫게 되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 청문회 장에서 모두가 바울이 미쳤다고 생각하지만, 진정으로 온전한 사람은 바울 한 사람 뿐이라는 것이죠.

바울도 전에는 청문회장에 있는 이들과 전혀 다를바 없었지만 불가항력적인 모습으로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 이후에 주님께 미친 것이죠.

미쳐도 실은 온전하게 미친 것이죠.

 

하지만 바울을 향해 미쳤다고 하는 베스도 총독이나 아그립바 왕이나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이 세상 권력과 욕망에 미친 자들 아닙니까?

모두가 그런 탐욕과 욕망에 미쳐 있기 때문에 누구도 미쳤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요, 바울이 그들의 마음을 주님께 되돌리고자 미쳐 있는 것이죠.

 

(적용)사람이 무엇에 미치게 되면 옆 사람이 붙잡아 보고자 해도 붙잡을 수가 없는 법이죠.

텔레비전이나 드라마를 봐도 무언가에 미치면 오직 그 한 가지 것에만 몰두하게 되죠.

실은 그것을 통해 뭔가를 개발하고 획기적인 결과를 도출하기도 하죠.

 

바다를 보고 바다에 미친 사람들에 의해서 해양 운송수단이 발전하게 되는 것과 같죠.

하늘을 보고 하늘에 미친 사람들 덕분에 비행기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예술에 미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정신 세계도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것이고요.

 

지금 바울이 불가항력적으로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온전하게 미쳐 있기 때문에 청문회장에서 주님의 복음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선언할 수 있는 것이고요.

마치 모세가 불가항력적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 애굽의 파라오 앞에서 담대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우리 백성을 보내라고 하십니다”하고 선전포고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나님께 미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껏 보고 들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불가항력적인 차원의 세계를 보고 들었을 때 어찌 미치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주문)그러니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우리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세계를 보여주고 듣게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미친 자로 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이죠.

 

(주음성)그래서 오늘 주님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미친 바울처럼 하나님의 뜻에 미친 모세처럼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이 세상만을 바라보고 사는 자들은 저 영원한 세상에 눈을 뜨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한 모세나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바울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뜻에 미쳐 살지 않았느냐?”

그러나 그 세계를 모르는 파라오는 모세를 향해 미친 자처럼 취급했고, 영원한 세계를 보지 못한 베스도나 아그립바도 바울을 미쳤다고 생각지 않았더냐?”

 

그러나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모세도 신비한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봤을 때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며 그 뜻을 받들며 미친 자처럼 살지 않았더냐?”

바울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뵈었을 때 그때부터 그 인생이 주님께 미친 자처럼 살지 않았더냐?”

이 세상도 무언가 미친 자에 의해서 뭔가 발전하고 이로움을 주듯이 너도 하나님 나라에 미친 자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이 세상에 한 눈을 뜨고 저 영원한 세상에 또 다른 눈을 뜨고 주님나라에 미친 자로 살 때 어찌 너를 귀하게 여기지 않겠느냐?”

 

(찬양)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

그 빛난 영광 온 하늘 덮고 그 찬송 온 땅 가득해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찬송 가운데 서신 주님

주님의 얼굴은 온 세상 향하네 권능의 팔을 드셨네

주의 영광 이곳에 가득해 우린 서네 주님과 함께

찬양하며 우리는 전진하리 모든 열방 주 볼 때까지

 

하늘 아버지 우릴 새롭게 하사 열방 중에서 주를 섬기게 하소서

모든 나라 일어나 찬송 부르며 영광의 주님을 보게 하소서

주의 영광 이곳에 가득해 우린 서네 주님과 함께

찬양하며 우리는 전진하리 모든 열방 주 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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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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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한비야가 쓴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녀는 그 책에서 사십대 중반의 케냐인 안과의사를 소개하죠.

그 의사를 만나려면 대통령도 며칠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유명한 의사라고 하죠.

그런데도 그 의사는 강촌에서 전염성 풍토병 환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만지면서 치료를 한다고 합니다.

 

그 사실이 궁금해진 한비야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아주 유명한 의사인데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 험한 곳에서 일을 하고 있나요?”

그러자 그 의사는 어금니가 보일 정도로 활짝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재능을 돈 버는 데만 쓰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일이 내 가슴을 몹시 뛰게 하기 때문이에요.”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합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특별한 은사인 의술을 돈 버는 데만 쓰지 않고 험지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게 가슴 뛰는 일이라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주셨으니 어찌 그 일에 미치지 않겠느냐, 하는 뜻이죠.

 

(예화2)예수전도단에서 파송한 이용주 선교사님이 있습니다.

본래 그분은 큰 배를 타는 마도로스였습니다.

1등 항해사였던 그에게 주님께서 찾아와 부르셨습니다.

그리고는 “아프리카 선교현장으로 가도록 해라”하는 부르심과 함께 그는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물 파는 NGO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보통 우물을 한 번 파고 나면 체중이 6kg 정도 줄어든다고 하죠.

그 정도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한번은 다른 지역보다 더 힘들고 어렵게 우물을 팠다고 합니다.

가뭄이 심해서 땅은 그대로 굳어 있고 사람들은 목마름에 힘들어하던 곳이었죠.

그런데 이용주 선교사님과 동역자들이 온 힘을 기울여 수고한 결과 그 우물에서 물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물이 나오는 것을 본 마을 사람들은 너무 좋아서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춤을 췄죠.

 

그때 그 사람들 틈 속에서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말씀하더라는 것입니다.

“용주야, 고맙다. 나는 네가 너무 고맙다!”하고 말읿니다.

그 음성을 듣는 순간 그 동안 힘들고 어려웠던 모든 것들이 다 녹고 감격과 기쁨이 솟아 올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고통과 고생이 뒤따를지라도 더욱더 주님의 부르심에 충성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분은 동역자들과 함께 세계의 분쟁 지역이나 전쟁 지역에 땀 흘리며 우물을 파는 일에 헌신을 하고 있다고 하죠.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합니까?

하나님께서 이용주 선교사에게 찾아와 말씀하신 그 부분에 미쳐있기 때문이죠.

불가항력적인 주님의 은혜로 “나는 네가 너무 고맙다”고 말씀하시는데 미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적용)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격려와 음성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어떤 형님과 만나서 길을 가다가 낯선 분에게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예수님 믿으세요”했더니 그 형님이 하는 말이 있었죠.

“그렇게 하면 교회에 나오냐?”

“아니요.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죠.”

“그런데도 왜 하는 거냐?”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 같아서 해요.”

 

(내기도)그렇기에 오늘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제가 잘 난 것도 없고 능력있는 것도 없어요.”

그러나 주님 저를 찾아와 만나주시고 제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주님께 미친 자로 살게 해 주세요.”

사십대 중반의 케냐 의사도 세상의 명성과 많은 부를 거머쥘 수 있지만 주님의 부르심 속에서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있어요.”

이용주 선교사님도 주님의 불가항력적인 부르심 앞에 세계 분쟁지역과 전쟁지역을 찾아 우물파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나는 네가 고맙다고 말씀하시는데, 저희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미친 자로 살게 해 주세요.”

그것이 이 시대에 사도 바울처럼 사는 길이요, 그것이 한 눈으로는 이 세상을 보고 다른 눈으로 영원한 세계를 준비하며 사는 길인 줄 믿어요.”

 

(찬양)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

그 빛난 영광 온 하늘 덮고 그 찬송 온 땅 가득해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찬송 가운데 서신 주님

주님의 얼굴은 온 세상 향하네 권능의 팔을 드셨네

주의 영광 이곳에 가득해 우린 서네 주님과 함께

찬양하며 우리는 전진하리 모든 열방 주 볼 때까지

 

하늘 아버지 우릴 새롭게 하사 열방 중에서 주를 섬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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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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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만나주신 모세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 바울도, 오직 미쳐 살았습니다.

정신이 돌아서 미친 게 아니라 정신이 멀쩡하지만 하나님나라 곧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며 천국을 소망하며 미친 자로 산 것이죠.

 

모세나 바울을 바라보던 파라오나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은 ‘미쳤다’하고 무시하고 조롱했겠죠.

하지만 모세도 바울도 정신이 온전한 가운데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세계 앞에 온전히 미친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세계보다 더 찬란한 천국의 세계, 곧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세계를 보고 들었기 때문이죠.

케냐의 안과의사가 가슴 뛰는 일에 미친 것도, 이용주 선교사님이 우물파는 일에 미친 것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도 이 세상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도 미친 자로 살 수 있는 은혜가 충만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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