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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사도행전

먼저 다시 살아나사(행26:19-23)

by 똑똑이채널 2022.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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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성화)우리가 새벽에 살펴보고 있는 말씀은 이사야 27장이었습니다.

이사야 27장은 이사야서의 묵시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사야 1-12장은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13-23장까지는 이방 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내용이죠.

바벨론, 블레셋, 모압, 다메섹, 구스, 애굽, 아라비아, 그리고 두로에 관한 멸망의 말씀이 그것이죠.

 

그만큼 이사야서의 구조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심판의 말씀이 나오고, 그 후에 이스라엘 주변국에 대한 심판이 나오죠.

그런 후에 이사야 24장은 이스라엘과 이방인 모두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언서에 자주 등장하는 구조인데 신약성경의 로마서도 마찬가지죠.

로마서 1장에는 이방인의 죄가 나옵니다.

로마서 2장에는 유대인의 죄를 고발하죠.

그렇다면 3장에서는 누구의 죄를 말하는 걸까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곧 인류 모두의 죄를 지적하죠.

 

그렇다면 유대인과 이방인들, 그리고 인류 모두의 죄를 고발하고 그 죄를 심판하시는 것으로 끝을 맺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유대인도 죄인이기는 마찬가지고 이방인들도 죄인이고 그리고 인류 모두가 죄 아래 놓였으니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길이 없죠.

하나님은 죄가 없는 거룩한 분이시기에 죄로 얼룩진 인간이 어찌 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겠냐는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위해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 존재하는 분이시죠.

그렇기에 이스라엘의 죄, 이방인의 죄, 그리고 인류 모두의 죄를 고발하면서 그 심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필요하다는 걸 말씀하죠.

하나님께서는 심판 중에서도 당신의 의를 덧입는 인간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고 그를 통해 영광받으시는 분임을 말이죠.

 

(깨달음)이것은 기원전 2,700여년 전에만 그런 게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요 주님의 재림때도 다르지 않습니다.

누가 주님의 재림 앞에 구원의 은혜를 덧입을 수 있겠습니까?

자기 자신의 힘이나 능력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덧입혀주시는 분이시죠.

그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 아닙니까?

 

(적용)만약 예수님께서 십자가 대속의 죽음으로 끝나버린 채 부활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기는 하셨겠지만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지는 못하셨겠죠.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주가 되시는 것은 부활의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지금 바울은 아그립바 왕의 요청으로 베스도 총독이 개최한 청문회장에서 자기 변론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자기 무죄를 입증하고자 변론하는 게 아니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생명의 복음을 청문회장에 참석한 이들에게 전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물론 바울은 자신의 옛 삶을 먼저 이야기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박해했던 지난 삶에 대해서 말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했던 것은 그것이 율법에 옳은 일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의로움을 좇는 길인 줄 알았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오의 빛보다 더 밝은 빛으로 찾아오셨을 때 어떻게 그가 변화되었습니까?

여태껏 자신이 보고 좇아왔던 것들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죠.

그때부터 바울은 이전처럼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박해하는 삶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았죠.

 

바울이 그렇게 복음을 전하며 살아온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바울을 향해 유대인과 이방인과 임금들에게 내 복음을 전할 “나의 택한 그릇”이라는 이유였죠.

그것은 바울 자신이 청문회장에서 고백한 것처럼 어둠에 사로잡힌 자들을 빛가운데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죠.

사탄의 세력에 붙잡혀 사는 이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이 곧 20절의 증언처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는 주님의 뜻을 받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떻습니까?

바울이 주님의 뜻을 받들어 1차와 2차와 3차에 걸쳐 복음을 전할 때 그 길이 늘 순탄하고 평탄했습니까?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바울이 가는 곳마다 기적이 일어나고 복음이 널리 전해지는 역사가 일어났죠.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핍박과 고통을 겪는 일이 발생했죠.

 

1차 전도여행 때 말라리아라는 풍토병에 걸려 죽을 뻔했고, 곳곳의 유대인들에게 모함을 받아 쫓겨나기도 했죠.

2차 전도여행 때는 루스드라에서 돌팔매질을 맞아 거반 죽었다가 다시금 살아났고, 빌립보 감옥에 붙잡혀 옥살이를 해야 했죠.

3차 전도여행 때는 아데미 신전의 부적을 파는 부적상들의 모함을 받아 에베소 시민들에게 고초를 당할 뻔한 일도 있었죠.

그만큼 바울은 굶주림에 처하기도 했고, 추위에 떨기도 했고, 배가 파선당하는 일도 겪었죠.

더욱이 자객이 모여서 바울을 죽이려고도 했고, 세 번 태장에 맞았고, 강의 위협과 강도의 위협을 수 차례 당했죠.

 

그런데도 바울이 어떻게 그 어려움과 고난을 꿰뚫고 나갈 수 있었습니까?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엘 샤다이 하나님’ 곧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모든 어려운 난관을 뚫고 나온 것이죠.

마치 99세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하고 말씀한 것처럼 말이죠.

그 말씀은 엘 샤다이 하나님께서 바울의 뒤에서 방패막이 되어 줄 것이니 그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온전하게 좇아 행하라,는 뜻이죠.

바울도 안짱다리에 대머리에 간질과 안질을 앓고 있는 연약한 자인데, 어떻게 그런 위협과 죽음의 위기를 꿰뚫고 온전하게 행했겠습니까?

엘 샤다이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바울의 뒤편에 등이 되어주시고 방패막이 되어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깨달음)우리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죄와 허물 속에 사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행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엘 샤다이 하나님, 곧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우리의 등이 되시고 방패가 되시기에 가능한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나의 등 뒤에서 힘이 되시고 능력이 되심을 믿는 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길 때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닥쳐와도 능히 승리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2022년 한 해 에벤에셀로 함께 하신 하나님이시오, 2023년 여호와 이레로 함께 하실, 엘 샤다이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본문)오늘 본문은 바울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왜 그렇게 어려운 난관과 고난을 꿰뚫고 살아왔는지 증언해주는 말씀입니다.

본문 22-23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깨달음)바울이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지금까지 높고 낮은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증언한 이유가 뭐라는 것입니까?

하나는 구약의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을 전해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리스도 곧 메시아가 고난받을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점이죠.

바로 그 사실이 이미 구약에 기록돼 있고 모든 유대인들이 믿고 바랐던 사실이라는 점입니다.

바로 그 구약의 예언된 말씀이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성취되었고, 그것을 이스라엘과 이방 사람들에게 전해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구약성경이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말씀은 2천 년 전에는 ‘선지자들과 모세’라고 불렸습니다.

구약성경의 두 축이 율법서와 선지서이기 때문이죠.

그 율법서와 선지서의 핵심은 메시아 사상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패망하고 새로운 나라를 재건할 이가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통일왕국이었던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죽음과 더불어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분열되었죠.

그러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했고, 남왕국 유다는 주전 586년 바벨론 제국에게 멸망했죠.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유다 나라 곧 이스라엘은 페르시아 제국과 헬라제국의 지배를 받았죠.

오늘 본문을 읽는 당시의 시대에는요?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는 로마제국의 식민지 시대였죠.

 

그만큼 이스라엘 나라는 수백년 동안 나라를 잃고 이민족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어떤 민족보다 자신들의 나라를 재건하고 이민족을 몰아낼 구원자 메시아를 갈망하지 않았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400년간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킨 모세와 같은 메시아를 열망하는 것이죠.

 

그런 메시아를 선지서 어디에 기록하고 있습니까?

이사야 53장 2-9절에 예언하고 있죠.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는 실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는 메시아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구약의 경전으로 기록된 메시아인데도, 유대인들은 그런 고난당한 메시아가 아니라 강력한 메시아를 원한 것이죠.

그래서 바울이 전한 메시아,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들에게 전해도 그들은 그런 메시아를 거부한 것이죠.

왜냐하면 고난당한 메시아는 자신들의 민족을 해방시켜주고 외세를 몰아낼 힘도 능력도 없다는 뜻이었죠.

 

그만큼 유대인들의 심령 속에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받든다고는 하지만 고난당한 메시아는 원하지 않는 모습이 그것이죠.

적어도 자신들의 민족을 독립시켜주고 외세를 몰아낼 메시아라면 엄청난 군대를 지닌 메시아를 바랐던 것입니다.

바로 그 까닭에 그들은 바울이 전한 메시아 고난당한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했던 것이죠.

그리고 그런 메시아는 필요 없다면서, 그런 메시아를 전한 바울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깨달음2)그렇다면 고난당한 메시아만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전한다면 그것이 온전한 복음이겠습니까?

구약의 선지서에 고난당한 메시아만 기록돼 있다면 그것이 참 생명의 복음이겠습니까?

아니죠.

고난당한 메시아와 더불어 부활의 메시아를 전해야만 진정한 복음이 되는 것이죠.

 

바로 그와 같은 사실을 전해주는 선지서가 있습니다.

호세아 6장 1-2절 말씀이 그것이죠.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메시아로서 고난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셋째날에 우리를 일으키신다, 곧 그 분이 3일만에 부활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분이 먼저 다시 살아나셨기에,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곧 이 땅의 모든 인류에게 새 생명을 베푸시는 메시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고난당하고 죽어버리는 것으로 끝나버린다면 우리와 그 분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겠죠.

그러나 그 분이 십자가에 고난당하며 대속의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로부터 다시 살아나셨기에 이 땅에 모든 이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적용)바울이 지금 청문회장에서 변론하는 핵심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만큼 지금 청문회장에 참석한 이들에게 구약의 모세오경과 선지서에 예언된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주님으로 받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자신에게 찾아왔을 때 불가항력적인 그 은혜 앞에 자신도 메시아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듯이 말이죠.

그러니 지금 청문회장에 있는 모든 유대인과 이방인들도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 곧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맞이하라는 것이죠.

 

(주문)그렇다면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죠.

(은혜)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죽음의 심판에서 부활의 생명이라는 그 크신 은혜를 베푸시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그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너는 알고 있느냐?”

모든 인류가 죄 아래 놓여 있기 때문에 유대인도 이방인도 그리고 모든 인류도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한다는 것 말이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누가 감히 의롭다고 설 수 있겠느냐?”

바울도 예전에 자기 의로움에 갇혀 헛된 세상을 살아오지 않았더냐?”

그런 바울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와 만나주셨을 때 그 분이 구약에 예언된 참 메시아요 부활의 주님임을 알지 않았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지금 바울이 청문회장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을 너는 마음 속에 새겨야 하지 않겠느냐?”

유대인들이 나사렛 출신의 예수가 메시아일 리가 없다고, 힘도 권력도 군사도 없는 그가 어떻게 메시아일 수 있겠냐고 다들 부인하지 않았더냐?”

하지만 이사야서와 호세아서에 예언된 메시아는 고난받는 메시아요 부활의 메시아이지 않더냐?”

이 땅에 누가 인류의 죄를 위해 대속의 죽음을 고난받은 이가 있으며, 이 땅에 누가 죽음에서 부활의 역사를 이룬 분이 있더냐?”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너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고, 그 분이 사망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신 부활의 첫열매이지 않았더냐?”

그렇기에 오늘 너에게 그분만이 참된 메시아야 영원한 생명의 주님으로 너의 구주가 되지 않았더냐?”

주님의 그 은혜를 생각할때마다 이 세상 무엇보다도 그것을 가장 기쁜 소식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느냐?”

 

(찬양)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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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은 저주인가 | 권성권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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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미국의 유명한 페니 백화점의 설립자인 페니는 1929년에 사업이 너무 흔들려서 불안에 빠졌습니다.

불면증으로 고생하면서 무서운 고통까지 겪는 병에 걸리고 말았죠.

각종 약을 써 보고 진정제를 복용하였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고 사업 걱정이 극에 달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다음 날 아침이 되기 전에 자살할 마음을 먹고 아내와 아들과 친구들에게 유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쓰는 내용이 많아서인지 새벽녘이 되어 침대에 누웠습니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있는 병원의 예배실에서 찬송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너 근심 걱정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구주의 품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페니는 그 찬송소리를 들으며 벽에 기대어 앉으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이 사실일까? 정말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돌보실까?”

 

그때 그는 벌떡 일어나 예배실로 달려갔습니다.

그날 새벽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서 자기 자신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새 깊은 동굴 속에 있다가 밝은 빛으로 나온 것처럼, 지옥에서 천국으로 빠져나온 것처럼 자유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 후에 그는 모든 짐들을 주님께 내어 맡기며 하루하루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성실하게 살아가고 감사하게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한 기간이 되었을 때 그 백화점이 다시금 회생하는 은혜를 덧입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그때 이후에 그가 어떻게 변화되었겠습니까?

그도 사도 바울처럼 이전에는 자기 성공을 인생의 목표로 세웠다면 그 이후부터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백화점 대표가 된 것이죠.

 

(적용)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나는 어떻습니까?

나는 나의 힘과 능력을 철저히 주님께 의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는 이 세상의 성공이 목적이 아니라 주님 한 분만을 목적으로 살고 있습니까?

 

왜 우리가 내 무거운 짐을 주님께 내려놓을 수 있는 것입니까?

그 분이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이요 그 분이 나에게 영생을 주시려 부활하셨기 때문이죠.

그래서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맡길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회복케 하실 때 기쁨으로 다른 사람에게 부활케 하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죠.

 

(내기도)그렇기에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저도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어요.”

죄의 짐도 있고 부채의 짐도 있고,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면서 어려움이 있어요.”

이것을 내 능력이나 내 방법이나 내 힘으로 풀 수 없는 것들도 있어요.”

주님. 저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셔서 주님의 은혜 부활의 역사를 체험케 해 주세요.”

페니 백화점의 설립자도 그 힘에 겨워 괴로워하다가 그 찬송소리에 그의 영혼을 깨워주신 주님, 저에게 그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바울에게 찾아와주시고 만나주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그 은혜를 저에게도 베풀어주시길 원합니다.”

 

(찬양)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눈먼 날 볼수있게 주 내게 행하셨네

호산나 호산나 죽임 당한 어린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내가 건너야 할 강 거기서 내죄 씻겼네 이제 주의 사랑이 나를 향해 흐르네

호산나 호산나 죽임당한 어린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다시 사셨네

 

깊은 강에서 주가 나를 일으키셨도다구원의 노래 부를 예수 자유 주셨네

호산나 호산나 죽임당한 어린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다시 사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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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시간표 | 권성권 | 유페이퍼- 교보ebook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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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지금도 죄 아래 있는 자들을 심판하시는 분이시만 주님의 궁극적인 목적인 세상 모두가 구원받는 데 있습니다.

그를 위해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대속의 죽음으로 내 모셨지만 사망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케 하셨습니다.

인류의 모든 사람이 죄 아래 놓여 있기에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영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분밖에 없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무거운 짐들을 안고 살아가지만 그 무거운 짐조차 그 분께 내어맡기길 원하시는 주님이신 줄 습니다.

그때 내 죄의 문제, 내 인생의 문제를 주님께서 친히 해결해주셔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살아계심을 증언케 하는 바울과 같은 도구로 저와 여러분들을 친히 사용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 은혜의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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