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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사도행전

눈을 뜨게 하여(행26:16-18)

by 똑똑이채널 2022.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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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게 하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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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성화)요즘 새벽기도회가 끝나면 개인적으로 이른 아침에 사무엘상을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그중에 엘리 제사장과 관련하여 새롭게 깨달은 바가 있죠.

나이가 들어갈수록 몸이 비대해지고 눈이 쇠약해질 수 있다는 게 그것이죠.

물론 그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부분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영적인 부분을 말씀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엘리 제사장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죠.

홉니와 비느하스가 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를 도와 제사장 직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두 아들이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번제물을 가져오면 그것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도 전에 그들이 삼지창으로 빼내 먹는 것이었죠.

더욱이 성막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까지도 범하는 죄악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아들이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며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행위에 대해 엘리 제사장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단호하게 죄악을 꾸짖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백성들 앞에서 사죄할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엘리 제사장은 그저 형식적인 말만 전할 뿐이었죠.

“내 아들들아 그렇게 하지 말라. 너희들이 행한 소문이 좋지 않다. 너희들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겠느냐?”(삼상2:25)

 

그로 인해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하나님께서는 엘리의 두 아들을 심판하게 되죠.

그 당시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스라엘이 패하죠.

그러자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법궤를 전쟁터에 가져오면 이길 것으로 생각하죠.

 

그때 그 법궤 앞에 누가 서게 되는가?

바로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법궤 앞에 서게 되죠.

왜죠?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그들인데 적어도 법궤를 맡을 자격이 있다면서 법궤 앞에서 거드름피우는 꼴입니다.

그러자 법궤를 앞세운 전투에서 패해 법궤도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스하스도 그 전투에서 죽고 말았죠.

 

(깨달음)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성경은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 때에 엘리의 나이가 구십팔 세라 그의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삼상4:15)

“눈이 어두워서 보이지 못하더라”, 엘리가 나이가 들고 몸이 비대해서 눈이 침침해서 보이지 않았다는 뜻입니까?

그렇지 않죠.

성경에 기록된 인물들 중에 ‘눈이 어두워서 보이지 못한다’는 사람들은 그들의 육신적인 눈을 가리키는 게 아니죠.

그들의 영적인 눈이 어두워졌다는 것,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에서 멀어졌다는 것, 세상의 탐욕에 눈이 멀었다는 뜻이죠.

엘리 제사장도 육신의 눈을 넘어 영적인 눈이 그만큼 어두워졌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영적인 비대증 때문에 자식들을 바로 잡지 못했던 것이죠.

영적인 시력이 상실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령에 하나님의 법궤를 심어주지 못했죠.

그래서 전쟁통에만 법궤만 가져가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바로 잡아주지 못한 채 자기 아들들을 앞세워 보낸 것이죠.

그 결과 그 법궤도 이방 세력에게 빼앗겼고, 두 아들도 죽었고, 그 모든 소식을 들었을 엘리가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죽죠.

 

(적용)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떠한가?

나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육신의 시력은 서서히 떨어지겠지만 영적인 시력은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하고 생각했죠.

이것은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나이가 들고 점점 몸이 비대해지고 시력이 흐려질 때, 그때 우리가 더 살펴야 할 것은 영적인 둔감, 영적인 시력이죠.

오히려 그때 더욱 구하고 간구해야 할 것은 내 심령이 말씀의 빛 안에 거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점점 나이가 들고 육신이 무거워지고 시력이 흐릿흐릿할 때 내 심령에 빛되신 말씀이 임해야 어두워진 나의 영적 시력을 밝힐 수 있기 때문이죠.

 

예수님께서 아기 예수의 몸으로 이 땅에 태어나신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습니까?

온통 어둠과 죄악으로 물들고 있는 이 세상 사람들의 어둠을 몰아내고 그 심령 속에 빛되신 생명을 심어주시고자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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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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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지금 바울은 아그립바 왕의 요청으로 베스도 총독이 개최한 청문회장에서 변론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바울의 변증은 자기 무죄를 입증하고자 하는 변증이 아니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자 함이었죠.

바울은 그 청문회장에서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부정하고 교회를 짓밟은 삶을 살았던 지난 삶을 이야기했죠.

자신이 그렇게 살아온 것은 그 당시 모든 유대인들이 행하던 바요 자기 자신도 그들과 똑같이 행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던 자신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는지, 어떻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셨는지 변증했죠.

율법의 확신과 신념으로 가득찬 자신이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다메섹의 그리스도인들까지 체포해오려 했죠.

그때 그 길목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신 일을 그 청문회 장에서 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주님을 만나 장면에 대해서 어떻게 증언했습니까?

바울은 그날 자신을 찾아오신 주님을 향해 “주여 뉘시나이까?”하고 물었다고 했죠.

그러자 주님께서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하고 대답해주셨다고 했습니다.

물론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한 번도 주님을 만난 적이 없었고 주님을 박해한 적도 없었죠.

그러나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박해하는 것이 곧 주님을 박해하는 일임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바로 그 때부터 바울은 가는 곳마다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하지 않았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앞장섰죠.

 

그렇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서 주님에 대한 인식의 지평이 열렸을 때 그때 주님께서 바울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지난 시간에 살펴 본 것처럼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하는 것이었죠.

본문 16절의 첫마디 말씀이 그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바울이 빛되신 주님을 만나 땅바닥에 꺼구러졌기에 다시금 일어서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육신적인 발로 일어서라는 뜻이 아니라 이제는 영적인 진리의 발걸음을 향해 나아가라, 하는 뜻이었죠.

이전에는 주님을 모른 채 세상의 욕심과 성공과 탐욕만을 위해 살아온 너의 인생을 이제는 주님의 진리와 생명을 위해 발걸음을 내딛으며 살라는 것 말이죠.

 

(본문)오늘 본문은 그 이후의 말씀인데 본문 17-18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원해)바울로 하여금 두 발로 일어서 걷게 하라는 주님의 참된 목적을 밝혀주는 말씀이죠.

어둠에 사로잡혀 있는 이스라엘과 이방인들, 사탄의 권세에 붙잡혀 있는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의 눈을 뜨게 해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눈을 뜨게 하다'는 헬라어 ‘아가이오’(ἀνοίγω)는 영어로 ‘to open’ 곧 ‘열다’는 말입니다.

아기 예수께 황금과 몰약과 유향을 가져온 동방박사들이 보배함을 ‘열다’할 때 이 단어가 쓰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며 음성이 들렸는데 그때 ‘열리다’할 때 이 단어가 쓰였죠.

또한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실 때, 혼인집 신랑이 왔을 때 그 문이 닫혀 있는데 ‘열어’ 달라고 할 때 이 단어가 쓰였죠.

 

(깨달음)그만큼 이 단어는 자기 스스로 열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요 누군가 외부에서 그 문, 그 눈, 그 보배함을 열어야 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주님을 만났을 때 그의 두 눈이 멀었고 다메섹의 직가에 있을 때 아나니아가 안수할 때 그 눈이 열리게 되었죠.

바로 그것처럼 앞으로 바울이 만나는 사람들 곧 이스라엘 이방인들에게 그 눈을 뜨게 하라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육신적인 눈을 뜨게 하라는 게 아니라 영적으로 죄와 사망의 어움에 갇혀 있는 자들, 사탄의 세력에 포획돼 있는 자들의 눈을 뜨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 바울을 통해서 가능한 게 아니라 바울을 통해 역사하실 주님께서 그들의 영적인 눈을 너처럼 뜨게 해줄 것이란 말씀이죠.

 

(적용)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내가 주님을 구원자로 만나기 전에는 우리도 실은 이 세상의 어둠과 죄악에 사로잡힌 자들 아닙니까?

내가 빛되신 생명의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우리 자신도 이 세상 공중권세 잡은 자 곧 사탄의 세력에 갇혀 있는 자들 아닙니까?

 

그런 우리에게 새 생명의 빛에 눈을 뜨게 해 주신 분이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아닙니까?

주님께서는 내 곁의 동료나 내 곁에 바울과 같은 자들을 통해서, 또 주님께서 직접 내가 찾아와 나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해 주신 것이죠.

 

물론 영적으로 비대해진 엘리 제사장과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영적인 눈을 뜰 수 있도록 역사하신 분이 우리 주님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빛되신 말씀앞에 영적인 눈을 감은 자들이요, 그 죄와 형벌을 스스로 자초한 자들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이 세상에 죽어가는 한 영혼이라도 주님 앞에 나와 새 생명에 눈을 뜬 자가 되기를 바라시는 주님인 줄 믿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바울처럼 영적인 눈을 뜨는 자로서 타인의 영적인 눈도 뜨게 하는 그런 은혜를 베푸시길 원하시는 것이죠.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엘리 제사장이 나이가 들어 비대해졌을 때 그의 영적인 시력이 점점 흐려졌는데, 너는 어떻게 살고자 하느냐?”

“여태껏 세상의 탐욕과 세상의 성공만을 위해 살아왔던 바울의 영적인 눈도 주님께서 뜰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지 않았더냐?”

“그 바울을 통해 주님께서는 두 발을 딛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도록 했는데 그것 역시 눈을 뜨게 하는 통로로 사용하려는 뜻이지 않았더냐?”

“어둠게 갇힌 이스라엘과 이방인들, 사탄의 권세에 포획된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주님의 생명에 대해 눈을 뜨게 하도록 말이다.”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도 이 세상이 돌아가는 일에 대해 눈을 뜨고 살아야 하겠지만 더욱더 영적인 눈을 뜨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몸이 점점 비대해지고 느려지고 시력도 흐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영적인 시력을 상실하면 영적인 암흑에 휩쌓이지 않겠느냐?”

“그러니 엘리 제사장처럼 영적인 암흑에 질질 끌려가지 말고 오직 영적인 시력을 더욱더 회복하여 주님께 눈 뜬 자로 살았으면 좋겠구나.”

“바울도 주님 안에서 영적인 눈을 뜬 자였고 그 모습 그대로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주님의 생명에 눈을 뜬 자가 되길 바라지 않았더냐?”

“너도 영적인 생명과 진리에 눈을 뜨게 하신 그 주님의 통로로 네 곁에 있는 이들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하는 자로 살면 좋겠구나.”

“주님께서 바울에게 그 은혜를 베푸셨던 것처럼 오늘의 너에게 그런 은혜를 베풀어주지 않겠느냐?”

 

(찬양)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

그 빛난 영광 온 하늘 덮고 그 찬송 온 땅 가득해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찬송 가운데 서신 주님

주님의 얼굴은 온 세상 향하네 권능의 팔을 드셨네

주의 영광 이곳에 가득해 우린 서네 주님과 함께

찬양하며 우리는 전진하리 모든 열방 주 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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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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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우리가 하는 다윗는 이스라엘 나라에서 영원히지지 않는 다윗의 별, 곧 국기에까지 새겨 있을 정도로 추앙받는 인물이죠.

신앙적으로 참된 표상을 제시하는 다윗입니다.

 

그러나 그도 흉측한 사탄의 하수인으로 포획된 때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충직한 신하였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일이 그것이었죠.

그 일로 아이를 잉태한 밧세바였는데, 그에 대해 알리바이를 꾸미고자 그 남편을 전쟁터에서 불러들였지만 그게 허사로 돌아가자 적진의 칼에 죽게 만들고 말았죠.

 

그만큼 “내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십계명 제 10계명을 범한 죄를 저지른 다윗이었죠.

물론 그 뿐만이 아니라 “간음하지 말라”는 제7계명도, “살인하지 말라”는 제6계명도 저질렀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제 9명도 범했고, 안식일이면 위선된 모습으로 번제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기만하는 모습이었으니 실은 십계명 전부를 어긴 자였죠.

 

(깨달음)왜 다윗이 이런 죄악의 나락으로, 사탄의 세력에게 포획된 채로 살게 된 것이었습니까?

그의 영적인 눈이 상실되었기 때문이죠. 과연 그때가 언제 어느 때의 상황이었습니까?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삼하11:2)

 

‘저녁 때’ 곧 어둠이 내리깔리던 때였습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때였습니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진다고 모두가 그런 타락의 길을 자초하는 것은 아니죠.

적어도 이때 다윗의 상황은 주변 정세가 다 평안했고, 모든 든든히 채워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만큼 사울 왕에게 쫓기거나 적의 침략에 대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정도로 하나님에 대해 갈급한 상황이 아닌 것이죠.

그러니 그런 죄악의 어둠이 다윗의 시선을 가려버린 것이요, 영적인 시력이 어두워질 때 그의 죄의 세력들이 급속하게 파고든 것이었습니다.

 

(적용)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내 삶의 상황이 바쁘고 힘들고 고달프면 하나님을 의지하며 영적인 시력이 더 민감하고 더 총총해질 수 있죠.

하지만 내 삶의 상황이 엘리 제사장처럼 비대해질 때, 내 상황이 안전하고 풍족해질 때, 그때 우리도 다윗과 같은 죄악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하는 것이죠.

 

바로 그를 위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게 사도 바울과 같은 모습 아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이 영적으로 타락하지 않도록 그가 만나는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던 것이죠.

그것의 그의 영적 시력을 주님 안에서 지키는 길이요, 그것이 바울의 영적 시력을 더욱 말갛게 회복케 하시는 은혜인 것이죠.

 

(내기도)그러니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저도 다윗처럼 제 삶이 바쁘고 힘들 때 주님을 찾다가도 평안하고 비대해지면 타락할 수 있는 연약한 자임을고백합니다.”

“주님, 바울에게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을 붙여주신 것은 그의 영적 시력이 타락하지 않도록 배려하신 주님의 은혜였네요.”

“주님. 저도 나이가 들어갈 때 제 삶이 비대해지는 그 때도 더욱더 깨어 있게 하시고, 어떤 환경에서도 주변 사람들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해주는 주님의 도구로 사용해 주세요.”

 

(찬양)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너의 우편에 그늘 되시니

낮의 해와 밤의 달도 너를 해치 못하리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너의 환난을 면케 하시니

그가 너를 지키시리라 너의 출입을 지키시리라

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너의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으신 너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다

천지 지으신 너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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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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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나이가 들고 몸이 비대해지는 상황속에서도 우리의 영적 시력이 흐려지지 않도록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입니다.

더욱이 우리 주변에 어둠에 사로잡힌 자들, 사탄의 세력에 붙잡힌 자들을 우리 곁에 붙여주신 이유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그들 속에서 영적으로 깨어 있는 자로 살도록, 그들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하는 주님의 통로가 되도록 말입니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은 주님께서 경고하시고 싸인을 보냈어도 그의 두 아들도 결국은 영적인 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다윗도 평안하고 안전하다 할 그때에 어둠의 환경에 포획된 자였지만 그러나 눈물로 통회자복하며 회복케 하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셨죠.

바울도 스스로 타락하지 않도록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통로로 삼으신 이유도 그의 영적 시력이 타락하지 않게 하신 은혜였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은혜가 충만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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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교보문고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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