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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사도행전

하나님의 도우심을(행26:19-23)

by 똑똑이채널 2022.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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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성화)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하며 고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애굽에서 해방을 맞이했습니까?
그들이 어떻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전답을 일구며 살 수 있었습니까?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한 일이었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군사력도 무기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애굽 전역에 죽음의 재앙이 들끓게 하셨고, 그때 애굽의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내보냈죠.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는 또 어떻게 했습니까?
요단강을 건널 때도 법궤를 맨 제사장들이 맨 앞장서서 요단강을 건널 때 홍해가 갈라지듯 그 강이 갈라지는 은혜를 더하셨죠.
그리고 그 가나안 땅의 중부와 북부와 남부를 점령할때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칼이나 무기력보다 여호와의 손이 승리케 해 주신 것이었죠.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해 주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한 자녀들의 인생에 든든한 백이 되어주신다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한 그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당신의 자녀들을 지켜주시고 승리케 해 주신다는 거죠.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죠.

(적용)우리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연약하거나 약해 있을 때 도저히 내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도 마찬가지죠.
그때 내 힘을 내려놓고, 내 지혜를 내려놓고, 내 방법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역사해주시는 줄 믿습니다.

왜냐면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만 천하에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분은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고, 당신의 자녀들을 친히 도우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기 위함이죠.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 바울은 아그립바 왕의 요청으로 베스도 총독이 개최한 청문회장에서 자기 변증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고자 변론하는 게 아니라 그 자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 앞에서 여태껏 자신이 어떤 과거 속에서 살아왔는지 밝혔죠.
다른 유대인들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을 때는 이 세상의 성공과 출세를 위해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들이는데 열심을냈다고 말이죠.
그것이 유대인의 율법에 올바른 일인 줄 알았고, 그것이 율법의 의를 이루는 줄 알았노라고 말이죠.

그랬던 자신이 예루살렘의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213km 떨어진 다메섹의 그리스도인들까지 체포하려고 가는 그 길목에 주님께서 나타나셨다고 했죠.
그때 부활하신 주님은 사울에게 “왜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했고, 바울은 한 번도 주님을 핍박한 적이 없었지만,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것이 주님을 박해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죠.
그때부터 바울은 자신이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지 않았고, 오히려 주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영생의 비밀을 전하는 복음전도자가 되었죠.

그것은 그 자신에게 찾아와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의 주님임을 직접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여태껏 이 세상의 허상에 사로잡힌 삶, 율법에 얽매여 살아온 삶, 그 삶이 얼마나 헛된 삶인지 알았기에 남은 인생을 복음전도자로 산 것이었죠.

바울은 주님께서 자기 자신을 그렇게 만나주시고 새 생명을 주신 이유가 있다고 변론했죠.
어둠에 사로잡힌 자들, 사탄의 세력에 사로잡힌 자들에게 빛되신 주님을 알게 하도록 하기 위해 자신을 찾아와 만나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청문회 장에 앉아 있는 아그립바 왕이나 베스도 총독이나 시의원이나 로마 백부장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율법의 의에 얽애며 자기 생을 갈아먹고 있는 수많은 유대인들도, 그리고 이방인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바로 그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도록 자신의 어둠을 벗겨주시고, 자신의 허상을 벗겨주셨다고, 바울이 고백하는 것이죠.

(본문)오늘 본문은 바울이 그렇게 유대인들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이유와 그 원동력이 무엇인지 밝혀주는 말씀입니다.
본문 19절을 보면 바울이 여태껏 그렇게 살아 올 수 있었던 이유를 증언합니다.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 하고”

바울이 지금까지 어둠에 사로잡힌 자들을 빛가운데로 인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거스르지 않았기 때문이란라는 거죠.
‘하늘에서 보이신 것’이란 주님께서 자신을 찾아오신 것, 그리고 주님께서 당부하신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원성)민수기 22장에 보면 모압 왕 발락이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도록 발람 선지자를 초청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때 발람은 나귀를 타고 가는데, 하나님께서는 천군 천사를 보내 나귀가 못 가도록 길을 막아서죠.
그리고 모압 왕을 만났을 때도 모압 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길 원하지만 하나님께서 오히려 축복하게 하시죠. 

그때 발람이 모압 왕 발락 앞에서 그렇게 말하는 게 나오죠.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민23:8)
하나님께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들이시는 게 목적인데 누가 그 뜻을 꺾겠냐는 거죠.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다는 것을, 일깨워준 것이죠.

(깨달음)지금 바울이 고백하고 있는 게 바로 그와 같은 고백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보이신 것, 생명을 주신 그대로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전하라고 일깨워주신 것을 내가 어찌 거스를 수 있겠냐는 것이죠.

(전개)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받든 바울이 여태껏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그 삶이 평탄했습니까?
아니죠.
1차와 2차와 3차 전도여행 때 귀신이 떠나가고 병든 자가 고침받고 복음이 퍼져나간 일도 있었죠.
하지만 1차 전도여행 때는 풍토병에 걸린 일도 있었죠.
2차 전도여행 때는 돌에 맞아 죽기도 했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온갖 모욕과 수모를 받기도 했죠.
3차 전도여행 때도 온갖 수모와 수치를 당하는 일도 있었고, 예루살렘에 와서도 자객들이 죽이려는 살해위협을 받았죠.

그와 같은 고통과 고초와 수치와 죽음을 당한 일에 대해 고린도전서 11장 24-27절을 통해 고백하죠.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깨달음)바울이 1차와 2차와 3차 전도여행을 통해 복음을 전하러 다녔는데, 그때 당한 고통들이 이루 말로 할 수 없다는 거죠.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다는 것이죠.
또 세 번 태장으로 맞았다는데, 그 태장은 납을 넣어서 만든 것인데,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태장을 맞은 것이죠.
또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거반 죽게 된 일도 있었고, 배가 파선한 일도 있었고, 강과 강도의 위험을 당했죠.
그 이에도 주리고 목마르며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고백을 하는 것이죠.

(본문2)우리가 이런 고통을 당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어쩌면 지레 겁을 먹고 중도에 포기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위협과 고통과 매맞음과 죽음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일을 완수하게 되죠?
바울이 스스로 완전한 자였거나 능력이 출중했기 때문인가요?
바울은 그 이유에 대해 오늘 본문 21-22절을 통해 바울 스스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원해)바울은 유대인들이 자신을 성전에서 잡아 죽이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와서 나실인 서약을 지키는 이들을 돕고자 했는데 졸지에 에베소에서 온 유대인들이 난동을 피우는 바람에 그렇게 죽을 뻔한 일을 말한 것이죠.

그때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 한 일은 이방인을 유대인처럼 동등한 존재로 간주한 데 있었죠. 
유대인들은 자신들만 하나님의 선민이요 자신들 외에 이방인들은 개나 돼지처럼 짐승같이 여겼죠.
그런 이방인에게도 어떻게 구원이 임할 수 있냐면서 용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더욱이 유대인들은 바울을 율법과 성전을 모독했다면서 바울을 죽이려 한 것이었죠.
그리고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염병처럼 불순분자여서 가는 곳마다 소요를 일으키게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런 이유로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고자 했지만, 그 모든 것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고통과 협박 속에서도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앞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깨달음)바울이 온갖 박해와 살해 위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이었습니다.
자기 능력 때문에, 자기 가진 지식 때문에, 자기가 누린 배경 때문에 그 모든 박해와 살해 위협을 이길 수 있다고 고백한 게 아니죠.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던들 바울은 결코 그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없었다는 고백입니다. 

(적용)우리가 알고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짓밟는 폭도였던 바울을 당신의 은혜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라비아 광야와 바울의 고향 다소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그를 새롭게 빚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나바를 통해 바울을 안디옥교회의 공동목회자로 불러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년간의 목회 훈련을 거친 바울을 다시 전도자로 불러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로 하여금 3차 전도여행을 통해 지중해 세계를 누비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도록 인도해주셨죠.

그 속에서 죽음과 직면하고, 투옥당하고, 매를 맞고, 각종 위험과 추위 그리고 배고픔과 싸워야 하는 형국이었죠.
바울이 강철체력을 지닌 초인이라서, 모든 지병을 이길 수 있는 능력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그것은 ‘하나님의 도우심’ 덕분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고백도 이와 같아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것이죠.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의 뜻을 받들다가 어려움을 당할 때 그 어려움을 이기게 하시는 도움을 베푼다는 것이죠.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다가 어려움에 처할 때 그때 전능하신 도움의 손길을 베풀지 않겠느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빠져나올때도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손으로 그들을 도와주셨던 것처럼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도 그들의 군사력과 무기력보다도 하나님의 손길이 훨씬 크지 않았더냐?”
“바울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들어 1차 2차 3차 선교지를 누비면서 복음을 전할 때 온갖 고통과 살해위협을 당할때도 주님께서 도움의 손길로 붙들어주지 않았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의 뜻을 받들어 순종하는 가운데 어려움을 당할 때 친히 전능하신 손길로 도와주지 않겠느냐?”
“네가 죄악된 세상과 결탁하지 않으려 발버둥치며 하나님께 순종할 때 주변에 돕는 사람의 손길을 주님께서 붙여주지 않겠느냐?”
“네가 세상의 유혹을 뿌리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자 할때도 온갖 어려움과 핍박 속에서도 전능하신 손길로 너를 도와주지 않겠느냐?”
“바울이 파산당하고 매를 맞고 태장을 맞고 배고픔과 살해위협을 당할 때도 주님께서 도움의 손길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너에게도 그런 은혜의 손길을 베풀어주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을 하나님의 경외하는 자녀들을 친히 책임져주시 인도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시니 말이다.”

(찬양)주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지난날의 잘못을 사하여 주옵소서. 
주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지난날의 허물을 사하여 주옵소서. 
주여 주여 나의 죄를 위하여- 주여 주여 십자가를 지셨네-. 
주님 가신 그 길을 나도 걸어야 하네- 주님 가신 그 길을 나도 걸어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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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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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창세기 17장 1절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십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

하나님께서 구십구세의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 그것이었습니다.
너는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 하고 말이죠.

그런데 과연 아브라함이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하게 행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하죠.
이 세상 어떤 인간이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하게 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행한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뒤편에 서 주시겠다는 뜻이죠.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것은, 내가 너의 뒤를 봐주는 백그라운드가 될테니 온전하게 행하라, 하는 뜻이죠. 

(깨달음)그런데 과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기에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시라’하는 말씀 때문에 그렇죠.

‘전능한 하나님’이란 히브리어는 ‘엘 샤다이’(אֵל-שַׁדַּי)입니다.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하나님, 뭔가 부족함이 없는 ‘충분자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다고 하는 것은 그 분에게는 모든 것이 충분한 분임을 말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75세된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약속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죠.
그로부터 25년이 지나 100세가 되기까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훈련시켰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99세가 되었을 때 ‘내년 이 맘 때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죠.
그 말씀 그대로 100세가 되었을 때 아들을 낳게 되었는데, 그것이 가능한 것ㄹ은 하나님은 엘 샤다이 하나님, 곧 부족함이 없는 충분자이시게 가능한 일이었죠.

바로 그 능력으로 본문의 바울을 친히 인도해주셨고, 지켜주셨던 것입니다.
지난 날 교회를 짓밟은 폭도였던 바울을 전능자의 손길로 건져내주셨고, 1차2차3차 전도여행때 겪은 고난과 배고픔과 매맞음 속에서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전능자의 손길로 보호해주셨던 것입니다. 

사실 바울 역시도 인간의 연약함을 지녔고, 안질이요 간질이라는 지병을 달고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 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 하나님께서 바울의 백그라운드가 되어주셨던 것이죠.
그 때문에 초지일관 흔들리지 않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위한 복음 전도자로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기도)그래서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저도 살다보면 주님 앞에서 흔들릴 때도 있고 세상의 유혹에 넘어갈 때도 있어요.”
“이토록 연약한 자인데도 지금껏 주님의 은혜 속에 주님을 의지하며 살게 하신 것도 주님께서 전능하신 손길로 붙잡아주심임을 믿어요.”
“바울도 지병이 있고 연약하기 짝이 없는데도 그가 주님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은 엘 샤다이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붙잡아주셨기 때문이에요.”
“주님, 저를 향하신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까지 부족하고 연약해도 언제나 주님께서 나의 백그라운드가 되어 주심을 믿고 나아가게 해 주세요.”
“그리하여 주님께서 저를 천국으로 부르시는 그날까지 흔들리지 않고 주님을 경외하며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증인으로 살게 해 주세요.”

(찬양)이제 내가 살아도 주 위해 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 위해 죽네
하늘 영광 보여주며 날 오라 하네 할렐루야 찬송하며 주께 갑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이제 내가 떠나도 저 천국 가고 이제 내가 있어도 주 위해 있네
우리 예수 찬송하며 나는 가겠네 천군 천사 나팔 불며 마중 나오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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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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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금껏 주님의 자녀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전능하신 주님의 손길로 보호하시고 인도해주신 은혜입니다.
때로 내가 연약하고 세상 유혹에 넘어갈지라도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전능하신 주님의 손길 때문입니다.

바울이 바울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연약한 지병을 앓고 있던 바울이 3차 전도여행까지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전능하신 손길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빠져나온 것도,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도, 모두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 때문에 가능한 것이어었죠.

앞으로도 우리가 주님의 뜻을 받을어 살 때 온갖 어려움과 고난을 당해도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당신의 손길로 친히 도와주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 은혜가 넘쳐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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