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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이사야서 51장은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그 종국에는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입니다. 바벨론의 포로기간은 70년 이었죠. 거의 한 세대가 지나갔고, 3차에 걸친 포로귀환이 진행됐습니다. 539년 고레스 왕이 바벨론을 무너뜨렸고, BC539년 바벨론을 페르시아 제국에 합방시켰을 때, 고레스는 대왕은 이주정책을 바꿔 포로귀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때 유대민족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한하게 된 것이죠. 그 당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바벨론과 세계 도처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약 200만 정도 되는데 그중 5만 명이 귀향하기로 결정합니다. 다들 타향살이에 익숙해 있는데, 굳이 집과 전토가 다 황폐된 그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적은 수가 돌아간 것이죠.
그래서 1차 포로귀한 이후에, 성전재건 사업이 진행됐습니다. B.C.515년 세스바살의 조카였던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조력으로 성전의 기초를 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은 사실, 고레스 대제의 아들 캄비세스 2세가 525년 이집트를 정복한 이후 522년에 갑작스레 죽게 되어, 바사제국이 2년 동안 내전에 휩싸이고, 급기야 정통 왕실 출신이 아닌 다리오가 왕으로 등극을 하죠. 그는 각 지역을 20개 지역구로 구분하고 각 지역마다 총독을 세웠습니다. 그 중 하나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니엘이기도 하죠. 그런데 그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던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반란을 벌였고, 급기야 페르시아 군대를 파견했지만, 패하고 말죠. 그것이 일명 마라톤전투였습니다. 엎친데 더친 격으로, 이집트에서도 반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즈음 성전재건은 B.C. 515년에 마쳤는데, 유대에 남아 있던 잔존 세력들로 인해 예루살렘은 폐허로 남아 있었죠. 그 사악한 세력들이 바로 사마리아의 출신의 산발락과 암몬 사람 도비야, 아라비아 사람 게셈 등이었죠 더욱이 그 뒤의 성전과 율법에 대한 영적 무관심으로 인해 유대 공동체성이 소멸될 상황에 놓였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영적 거인 둘을 보냈는데, 그들이 바로 에스라와 느헤미야였습니다. B.C.458년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1세는 에스라로 하여금 2차 포로귀환을 하도록 지도자로 임명했고, 445년에는 느헤미야로 하여금 3차 포로귀환의 인솔자가 되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런 사악한 세력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52일 만에 성전재건을 완공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기 70년과 3차 포로 귀환기를 모두 합하면 약 160여년의 기간이 걸립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내해야 했던 것이죠. 주변 정세도 불안하던 때요, 바벨론 제국내에서도 고난과 역경의 세월을 감내해야 했고, 또 페르시아아 장악해서 포로귀환을 하지만 모두가 다 돌아간 것도 아니고, 또 성전 방해꾼들도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그런 각종 불안과 공포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내하기란 쉬운 게 아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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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속에서 오늘 읽은 51장 1절에 사용된 두 단어, 곧 ‘반석’과 구덩이‘는 엄청난 영적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게 됩니다. 1절에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그리고 2절에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라고 말씀합니다. 이게 과연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 창세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뿌리도 없이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여 세워진 뼈대 있는 민족임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곧 지금의 절망과 낙담의 상황 속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라는 위로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아브라함과 사라를 세우신 그 하나님, 복이 되게 하신 그 하나님이 반드시 3절에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하시면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그 후손들에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으로 소개합니다. 본문 6절에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헤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또 8절에 “나의 공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하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깨졌다 다시 맺는 게 아니라, 그때로부터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토록 지속된다는 것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이어서 이사야는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10절에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출애굽 사건을 상기시킨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어둠과 사망의 권세로부터 건져 주신 그 하나님의 능력을 그 후손들이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너희 선조들로부터 새겨 들었던 하나님의 전능하신 역사를 안다면, 지금의 상황도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가라는 주문이죠. 물론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온 이스라엘 백성들 중 많은 사람이 현지화되지 않았겠습니까? 이미 면에서 보면 이스라엘 자손의 후손으로 사는 것보다 차라리 바벨론 사람으로 사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의 2세와 3세를 거쳐 가면서, 그들에게 언약한 하나님의 약속은 더 이상 큰 의미와 가치를 지니지 못했을 수 있겠죠. 그래서 그렇게 흩어진 200만 명 가운데 5만 명만 귀환하게 된 것도 그런 뜻이었죠. 물론 그 뒤로 3차에 걸친 포로귀환이 있었고, 성전을 재건하고, 성벽을 재건하고, 급기야 무너진 예루살렘 성안에 사람들이 들어가 살기 시작했지만, 그렇게 결정하고 순종하기까지, 그 일은 결코 쉬운 게 아닙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순종하는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있었고, 그런 그들을 절대적으로 격려하고 능력을 부어주신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곧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신 ‘반석’의 의미요, ‘구덩이’ 속에서 그들을 건져내신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본문 11절을 통해 궁극적으로 그런 은총을 더할 것이라고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여호와께 구속 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11절은 51장의 주제 구절입니다. 그만큼 하나님만이 영원하시고 구속자이신 하나님이요, 그렇기에 그 분을 경배하고 예배하라는 뜻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어떤 누구도 그 변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로인해 얻게 되는 기쁨을 빼앗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때로 위험과 위협이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현실에 닥친 문제들과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도 우리 영혼을 하나님께 깊이 뿌리 내지리 못하게 하는 요소들이죠. 그로인해 바벨론 포로기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영적 무관심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때일수록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본문 16절입니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말하기 위함이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낙담해 있거나, 영적인 무관심 속에 있을 때도 우리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 자신을 향해 친히 ‘내 백성’ ‘내 자녀’라고 부르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렇게 친밀하게 부르시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총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는 주님의 음성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탄식하는 상황이 올 때에도, 그 속에서 박탈감과 슬픔 속에 잠겨 있기보다, 도리어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며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과 시선을 고정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때 반석이신 하나님, 깊은 구덩이에서 건져주신 그 은총을 저와 여러분들에게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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