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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읽은 이사야 44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 다시 말해 바벨론에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나의 야곱, 나의 여수룬아’하고 불러주셨습니다. ‘여수룬’이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자기 손자가 자기에게 걸어올 때 ‘어휴, 이쁜 것’하고 부르는 애칭과도 같다고 했죠. 그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애칭까지 불러주신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이제라도 내게로 돌아오라는 뜻이었습니다. 그것이 너희들이 진정으로 살 길이요, 비록 포로생활에 붙잡혀 있지만, 내게로 돌아와 나에게 의탁하는 삶만이 회복의 길임을 명시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읽은 이사야 45장에서도 그 야곱, 그 여수룬을 향해 하나님께서 행하실 구체적인 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을 들어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포로생활하고 있는 유다 백성들, 다시 말해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에서 귀환하게 할 것이라고 약속해 주십니다.
그래서 본문 1-3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고레스는 페르시아의 대왕입니다. 그를 통해 세계 열국을 항복하게 하도록 하겠다고, 그 열왕들의 허리를 풀어 성문들을 다 열어 제치게 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꿔 말해 그 고레스 대왕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종이 될 거라는 뜻입니다. 바벨론이 세계를 재패하고 있을 그 무렵에 누가 과연 페르시의 고레스 대왕이 바벨론을 무너뜨릴 것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는 것이죠.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눈에 보이는 데로만, 눈에 보이는 통치자만 의식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너머에 당신의 섭리 가운데서 이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이 그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리고, 그 성문들을 모조리 다 열게 하는 것 같지만,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도 실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속에서 움직이는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너도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신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고레스가 세계 여러나라를 치는 것 같고, 각 나라들의 성문을 열게 하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그 모든 일을 주관하고 앞서 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페르시아의 고레스를 들어 바벨론 제국을 치시고, 세계 열강을 다 통치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까? 왜 그렇게 고레스가 나아가야 할 길을 하나님께서 앞서 나가시고, 그에 앞서서 새로운 길을 다 열어주시는 것입니까?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야곱, 나의 여수룬, 곧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열심 때문입니다. 그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때문이죠. 그래서 본문 4절 중반절에서는 “네 이름을 불러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네 칭호를 주었노라”할 정도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설령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이미 그들을 다 알고 계셨고, 그들을 사랑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9-10절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도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 아버지에게는 무엇을 낳았소 하고 묻고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낳으려고 해산의 수고를 하였소 하고 묻는 자는 화 있을진저.” 진흙을 비겨 멋지고 아름다운 도기를 구워내는데, 그 도기가 어찌 토기장이에게 왜 이렇게 따져 물을 수 이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마치 자식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왜 이렇게 나를 낳았느냐, 이렇게 낳을 거면 차라리 낳지 말 것이지, 하고 따져 물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유다 백성들 곧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벨론 땅에 포로로 끌려왔는데, 차라리 이럴 거면 우리를 왜 하나님의 선민이 되게 했느냐고, 왜 우리의 선조들은 그 무능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왔느냐고, 따져 물을 수 있겠느냐느 것입니다.
그런데 설령 그렇게 부모에게 항변하고, 토기장이에게 따져 물을 지라도, 그런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조차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지 않습니까? 그것이 실은 죄 가운데 있는 우리 자신을 향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시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토록 사랑하신 이유, 그들을 위해 믿지 않는 이방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까지 사용하셔서 그들을 해방시키고, 그들에게 포로귀환을 명하시고, 또 무너진 성읍도 재건하고, 성전의 기초도 다시 놓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지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만 천하의 하나님이심을, 온 우주의 통치자이심을 드러내고자 하신 까닭입니다. 바꿔 말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제사장 나라로 삼아, 모든 열방이 주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그 다리를 놓고자 하심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사람들은, 그 어떤 민족이든지, 그 어떤 나라든지, 강하고 힘있고 능력있는 것에 눈이 쏠리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있는 유다 백성들이 페르시아의 고레스를 통해 해방되고, 고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 일을 주도한 하나님을 다시금 믿고 의지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것이 본문 20-22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열방 중에서 피난한 자들아 너희는 모여 오라 함께 가까이 나아오라 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니며 구원하지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 무지한 자들이니라 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옛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세계 열방 중에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 자기 탐욕을 좇는 자들은 모두 패망할 것이요, 반대로 이 세상에 참 신이시오 모든 열방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다 구원을 받을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대의 고레스까지도 사용하셔서 당신의 친 백성인 이스라엘 자손들의 포로귀한을 명령하시고, 무너진 성전의 기초도 놓게 하시고, 예루살렘 성읍도 다시금 재건토록 하시는데, 그와 같은 이스라엘의 재건을 보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목격하고, 그 하나님께로 누구든지 돌아오면 모두가 구원을 받을 것이란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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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깊이 생각하며 살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살다 보면 눈 앞에 드러난 현실이 전부인 것처럼 보일 때가 많고, 그로 인해 기뻐하고 또 슬퍼할 때가 많지만,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에 눈을 뜨고 살아간다면, 현실 너머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깊이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이 바로 그 하나님이심을 말입니다.
더욱이 그 분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세상의 믿지 않는 자들을 통해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고, 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 모든 열방이 돌아오게 하시고, 구원을 받게 하시는 귀한 섭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통해 다른 믿지 않는 자에게 그 구원의 은총을 베푸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눈을 뜰 수 있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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