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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이사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사43:1-28)

by 똑똑이채널 2023.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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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43장 말씀도 어제 읽은 42장의 연장선상에 있는 말씀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 백성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에 관한 말씀이 이어지기 때문이죠. 그런데 오늘 그 유다 백성들을 향해 ‘야곱아하고 1절에 부르고 있습니다.

 

사람은 어느 정도 서로가 친밀한 가에 따라, 서로가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다르지 않습니까? 대개 공식적이거나 사무적인 관계에서는 그 사람의 직함을 부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친밀한 관계에서는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죠.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켜 ‘야곱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1)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이름’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야곱아’하고 부르는 그 이름 뒤에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창조’, ‘구속’, ‘지명’이라는 단어로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여기에서 ‘창조’, ‘구속’, 그리고 ‘지명’이라는 말씀이 차례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창조하셨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값을 주고 사셨고, 그들을 지명하여 불러내신 분입니다. 그렇기에 ‘야곱아’라고 이름을 부르시는 건, 그 부르시는 대상을 위해 기꺼이 행동해 오셨다는 뜻을 밝힌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 낮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사랑에는 예의와 격식을 넘어서기도 하지만, 사랑할수록 예의와 격식을 더 갖추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시기 위해 주님께서는 겉옷을 벗으셨고, 수건으로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셨다면, 응당 그렇게 땅바닥에 앉아, 겉옷바람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어도 될 일이지만, 주님은 다시금 겉옷을 두르시고, 정좌된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말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제자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발을 씻겨 주신 것이고, 사랑하기 때문에 다시금 격식과 예의를 갖춰 제자들에게 말씀을 주셨다는 것 말입니다. 그것이 곧 주님께서 행하신 바요, 오늘 우리들에게도 기꺼이 본받아 행하기를 요구하신 바였습니다.

사랑한다고 말을 하는 것은 쉽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발 밑에 내려가 그 발을 씻겨주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는 일입니다. 자기 인격을 내려놓지 않으면 그 섬김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는 사랑의 도를 보여주셨습니다. 사랑한다면, 기꺼이 아내의 발을, 또 남편의 발을 씻겨 줄 수 있는 것이죠. 사랑은 언어에 머무는 게 아니라 우리의 행동에 구체화되는 게 중요한 일임을 다시금 새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코자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재물삼았다는 점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우상을 섬기는 자들의 사랑은 거짓일 따름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은 본문 8절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 사람이 자신의 손으로 만든 것을 숭배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인격과 인격의 교제가 아닙니다. 인격이 자신의 손으로 만든 허상을 섬기는 것 뿐입니다. 거기에 아무리 정성을 쏟고, 사랑을 쏟아 부은들, 그 사랑은 공허할 뿐입니다. 자신이 만든 그 허상에 오히려 갇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것이 우상숭배의 실체입니다. 여기에는 아무런 인격적인 교류가 없는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10)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상의 본질은 ‘사람’이 만들었다는 데 있음을 말입니다. 사람에게는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일 따름입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자신의 손으로 우상을 만들고, 그것이 자신을 지었다고 말합니다. 스스로 그 안에 갇히고 속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숭배는 인격적인 교제가 아닌 ‘맹신’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내가 알려 주었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1-12)

하나님은 우리에게 맹신을 강요하시거나 신앙을 구걸치 않습니다. 대신에 당신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가 되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허상을 믿는 게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실체를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체이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구원이 과거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님을 의미합니다.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의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14절의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살았던 시대가 아닌 이후에 닥칠 미래의 일에 관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사야 시대에 바벨론은 이스라엘을 공격할 만한 세력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미래와 그 미래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의 사역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과거는 물론이요 현재와 미래에도 구원자는 하나님이심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본문 18-20절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옛 일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은 역사(歷史)를 무시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무리 시대가 어둡다 할지라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役事)는 현재에도, 미래에도 멈추지 않는다는 의미죠.

 

그렇기에 이제는 우리는 우리를 부르시는 그 부르심에 응답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시는 분입니다. 손가락으로 우리를 가리키며 부르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두루뭉술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구체적으로 다가온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우리를 ‘적격으로’ 또 ‘이름으로’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이 인격적인 부르심이 우상숭배와의 근본적인 차이를 만듭니다. 우상숭배에는 인격적인 교류가 없기 때문이 자신이 원하는 것만 주문하면 됩니다. 여기에는 그 어떤 의무도, 책임도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격적인 부르심에 응답한다는 것은 우리의 인격적인 변화, 존재의 변화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21)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크심을 내 속에 담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크심을 우리 안에 담을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한계와 연약함을 뛰어넘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우상숭배의 수준에 그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은 우리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 안에 무엇을 담는가 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 차이는 영원한 멸망과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를 갈라놓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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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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