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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두로와 시돈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사야가 살던 당시에, 지중해 연안에 성행하던 상업과 물품교역의 중심 되는 두 도시가 바로 두로와 시돈이었습니다. 갈릴리에서 북쪽 해변가에 위치해 있던 도시가 두로였고, 두로의 북쪽으로 약 40km북쪽 해변에 지역이 시돈이었습니다. 본래 두로와 시돈에 사는 사람들은 베니게 사람이라고 성경에 기록된 ‘페니키아’ 사람들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왕국의 아합 왕의 아내로 바알 숭배를 조장하고 바알 선지자와 제사장을 데리고 온 이세벨도 바로 그곳 베니게 즉 페니키아 사람이었습니다. 페니키아 사람들은 농사짓기에 부적당한 레바논 산맥주위에 살았습니다. 그 때문에 산에서 나는 좋은 목재로 어선을 만들어 일찍부터 해상무역에 종사했던 것이죠. 그들이 교역한 도시는 수천 km떨어진 지중해 맞은 편 스페인까지 이를 정도로 이들은 지중해 무역을 장악했습니다. 그 덕분에 해상무역의 중심도시였던 두로와 시돈은 각종 진귀한 물건과 풍부한 곡물과 향품과 보석으로 가득 찬 도시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시돈에서부터 해상무역거래가 시작되었는데, 나중에는 두로가 시돈보다 더 번창한 도시가 됐습니다. 그만큼 두로와 시돈은 한 도시국가처럼 여겨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은 시돈에서부터 시작돼 두로까지 확대된 해상무역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두로 사람들을 향해 2절에서 “바다에 왕래하는 시돈 상인들로 말미암아 부요하게 된 해변 주민들”이라고 명명합니다. 그런데 3절에 보면 어떻게 두로가 무역의 중심시가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시홀의 곡식 곧 나일의 추수를 큰 물로 수송하여 들였으니 열국의 시장이 되었도다.” 두로와 시돈은 시홀 곧 나일강의 지류를 통해 나일 강 주변에서 나는 막대한 곡식과 열매를 세계 각국의 도시로 나르는 세계무역의 허브와 같은 역할을 했던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로와 시돈을 이집트에서 나는 거의 모든 종류의 과일과 곡식의 보고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집트에서 생산되는 막대한 양의 곡식과 무역거래를 하기 위해 가져온 세계 각국의 온갖 진귀한 물건과 희귀한 음식과 물품을 접할 수 있는 경이로운 도시가 된 것이죠. 그야말로 모든 즐거움과 진귀한 기쁨으로 가득 찬 희락의 성읍이라 알려졌고, 이 도시를 구경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두로와 시돈이 북적였던 것입니다. 그것을 7절에서 밝혀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옛날에 건설된 너희 희락의 성 곧 그 백성이 자기 발로 먼 지방까지 가서 머물던 성읍이냐?”하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아울러 8절에서는 그들이 누린 부와 명성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면류관을 씌우던 자요 그 상인들은 고관들이요 그 무역상들은 세상에 존귀한 자들이었던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냐?”
그런데 그토록 활발한 무역과 교역으로, 부와 명예를 거머쥔 두로와 시돈 지역의 영화가 멸시를 받게 된다고 말씀합니까? 과연 누가 그렇게 하신다고 경고합니까? 9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렇게 멸시와 천덕꾸러리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화려한 두로와 시돈이 4절 말씀처럼 “산고도 겪지 못할 뿐만 아니라 출산도 못하고 청년들을 양육하지도 못하고 처녀들은 생육도 못하는 도시”로 전락한다는 것입니다. 7절에서는 그들의 옛 성읍 곧 희락의 성읍이 먼 지방에까지 가서 머물게 되는 슬픔의 성읍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지중해 연안에서 가장 화려하고 근사했던 도시, 지중해 모든 사람들이 동경했던 두로와 시돈에 대해,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의 입술을 통해 경고의 말씀을 선포케 하신 것입니다. 왜 그토록 화려하고 번영하던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 두로와 시돈이 이렇게까지 황폐하게 된 것입니까? 그 이유를 9절에서 설명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것을 정하신 것이라 모든 누리던 영화를 욕되게 하시며 세상의 모든 교만하던 자가 멸시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두로와 시돈이 경고하심을 받고 황폐하게 된 이유는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에스겔서 27장과 28장에서 두로에 대한 예언이 나오는데 거기에도 보면 28장 5절에 “네 큰 지혜와 네 무역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말미암아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하고 말씀합니다. 엄청난 중계무역으로 막대한 재물을 얻게 된 두로와 시돈은 그 마음이 교만해 진 것입니다. 그 교만으로 말미암아 두로와 시돈 가운데 이러한 재앙이 임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새번역으로 8-9절을 읽으면 이렇습니다. “빛나는 왕관을 쓰고 있던 두로, 그 상인들은 귀족들이요, 그 무역상들은 세상이 우러러보던 사람들이었는데, 두로를 두고 누가 이런 일을 계획하였겠느냐? 그 일을 계획하신 분은 만군의 주님이시다. 온갖 영화를 누리며 으스대던 교만한 자들을 비천하게 만드시고, 이 세상에서 유명하다는 자들을 보잘 것 없이 만드시려고, 이런 계획을 세우셨다.”
그처럼 하나님은 분명코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분이십니다. 시편18:27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 사무엘하22장 28절에서도 “주께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낮추시리이다.”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교만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마땅히 자신이 가져야할 자리나 위치보다 더 높은 곳에 자리매김할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그 사람이 하는 일, 그 사람이 가진 재물, 그 사람이 가진 지위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를 평가합니다. 그래서 많은 재물을 가진 자, 많이 배운 자, 소득이 많은 직업을 가진 자 , 힘과 권력이 있는 자, 그런 자가 세상에서 인정받고 대우를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는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계급을 떼어놓고 서야 합니다. 지식의 계급, 소유의 계급, 지위와 권력의 계급을 떼어놓고 서 있는 모습이 내 자리요, 내 위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외면에 붙은 계급장을 떼어놓게 하십니다. 두로와 시돈이 교만했던 것은 지중해의 모든 항구 도시에서 재력과 권력의 존재로 살았던 자신들의 모습이 실제로 자신의 실존인 양 착각했던 까닭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지중해 모든 도시들이 인정하는 자신의 화려하고 아름답고 고귀한 모습이 자신의 실제 모습이라고 자부한 것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겉모습만을 보시고 판단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단지 인간의 겉모습을 보시고 속아 넘어가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겉모습만이 아니라 속마음까지도 모두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을 우리 자신에게 비추면 어떻습니까?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설 때마다 마치 발가벗은 것 같이 서 있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의 눈동자는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살펴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마치 발가벗은 아이처럼 서 있게 되는 것이죠. 신실한 주의 사람들이 늘 겸손한 것은 그들이 겸손하려고 애 쓰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채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 지 깨닫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채 너무도 추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는 자신의 실존을 깨닫는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교만할 수가 없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그런 자들을 당신의 도구로, 당신의 나라를 위한 도구로 친히 사용하시는 거죠.
하나님은 두로와 시돈같이 교만한 자를 황폐케 하시지만, 두로에게도 칠십년이라는 시간을 정하셨고, 그 후로도 두로를 다시 돌아보셨습니다. 70년이 지난 후에 두로가 다시 해상무역을 하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더 이상 두로의 해상무역을 통해서 벋어 들인 소득은 두로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몫으로 가져가시고, 그것을 주의 신실한 백성을 위해 사용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본문 15-18절에 나와 있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자신의 실존을 모른 채 교만해 있는 자를 낮추시고, 자신의 실존을 철저히 인식하며, 정직하고 겸손히 주 앞에 사는 자를 높이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오늘 말씀을 통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십니까?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것처럼 서있는 우리 자신의 실존을 철저히 인식하도록 하십니다. 겸손한 척 하는 것이 아닌 실존에서 나오는 겸손의 삶을 살아가는 것 말입니다. 그럴 때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체험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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