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기원전 109년, 중국의 한나라가 고조선을 침략했습니다. 이유는 그것이었습니다. 고조선 주변나라들이 한나라와 무역을 하려 했는데, 고조선이 중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나라와 무역을 하고 싶으면 고조선을 통해서 해야 한다’ 그래서 한나라는 고조선에 물건을 팝니다. 그리고 고조선이 한나라의 물건을 다른 나라에 팝니다. 고조선은 물건을 만들지 않았으면서 중간에서 물건을 사고팔면서 돈을 벌었죠. 전문용어로 ‘중계무역’이라고 하죠. 하지만 한나라 입장에서는 탐탁지 않았습니다. 다른 나라와 직접 거래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로 인 해 고조선과 한나라 간에 전쟁이 벌어졌는데, 고조선이 무너졌겠습니까? 아니죠. 미리 전쟁을 대비하고 있었기에 고조선은 한나라에 대해 연전연승을 했습니다. 한나라는 그깟 작은 고조선에 패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고민에 빠진 한나라의 무제는 고조선의 우거 왕에게 항복하라고 사신을 보냅니다. 말이 항복이지 실은 그런 뜻이었죠. ‘내가 먼저 싸움을 걸어서 미안해. 우리 그만 싸우자. 근데 내 체면이 있잖아. 항복하라는 건 아니고, 그만 싸우기로 약속을 하자는 거야. 너희도 계속 싸우면 힘들잖아. 어때?’ 고조선의 우거왕도 계속되는 전쟁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왕자와 1만 명의 군사를 한나라에 보내고, 항복 아닌 항복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항복을 하러 가는데 군사 1만 명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죠. 한나라의 신하가 이 과정을 잘 처리 했어야는데, 고조선 군사들에게 무기를 놓고 오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조선의 왕자는 군사들과 함께 그냥 돌아와 버렸습니다. 화가 난 한나라의 무제는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신하를 처형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전쟁을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고조선을 이길 수 없었죠. 그래서 한나라는 고조선의 신하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나라의 공격을 얼마나 막을 수 있겠나. 결국은 패하게 될꺼야. 그러면 너희 모든 가족들은 죽음을 면치 못하겠지. 그 전에 너희 왕을 설득해서 항복해라’ 결국 신하들은 고조선의 우거 왕에게 항복을 권유합니다. 그러나 우거 왕이 거절하자 신하들이 우거 왕을 죽여 버렸습니다. 그래서 한나라에게 멸망당한 것이죠. 작지만 강한 나라 고조선은 그렇게 내부의 적 때문에 멸망했죠.
오늘 본문은 바벨론 제국의 멸망을 경고합니다. 그 원인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음을 알려줍니다. 본문 1절에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해변광야’란 바벨론 지역이 유프라테스 강의 범람으로 인해 자주 침수된 데서 붙여진 명칭입니다. 그렇기에 해변광야란 곧 바벨론에 대한 멸망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13장과 14장에서 이미 바벨론의 교만함에 대해 경고한 바 있습니다. 오늘 본문 21장에서는 바벨론의 멸망에 대해 다시금 경고하고 있습니다. 교만한 자의 최후는 혹독한 멸망뿐이라고 말입니다. 계속해서 1절을 보면 “적병이 광야에서, 두려운 땅에서 네겝 회오리바람 같이 몰려왔도다” 여기에서 ‘네겝 회오리바람’이란은 팔레스틴 지역에서 자주 발생하는 태풍을 의미합니다. 적병이 네겝 회오리바람 같이 몰려온다는 말은 태풍처럼 몰려오기에 손쓸 시간조차 없이 당한다는 말씀입니다.
바벨론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등 수 많은 물줄기로 둘러 쌓인 천연요새입니다. 다른 나라의 침략을 쉽게 방어할 수 있는 지역이죠. 뿐만 아니라 수운을 통한 무역으로 많은 부를 축적한 나라입니다. 그만큼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번영이 바벨론으로 하여금 교만한 마음을 품게 했고, 종교적으로 또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만든 요인이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강대국이었던 바벨론이었지만, 교만은 바벨론으로 하여금 메대 곧 메디아와 바사 곧 페르시아 대군에 의해 태풍에 휩쓸리듯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본문 2절입니다. “혹독한 묵시가 내게 보였도다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엘람이여 올라가고 메대여 에워싸라 그의 모든 탄식을 내가 그치게 하였노라 하시도다” 바벨론은 메대와 바사에 의해 멸망당했는데, 2절에는 ‘엘람’이라는 새로운 나라 이름이 나옵니다. 엘람은 본래 메대와 함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오래된 강국이었는데, 앗수르의 산헤립에 의해 멸망당해서 부족단위로 흩어진 나라입니다. 당시 바사는 엘람의 많은 부족 가운데 하나였는데, 흩어진 엘람의 부족들을 규합하여 ‘바사’라는 이름의 새로운 나라를 재건했습니다. 여기에 나온 ‘엘람’은 바사제국을 의미하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바사제국에 의해 바벨론이 순식간에 멸망했다는 뜻이죠.
본문 5절입니다.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 파수꾼을 세우고 먹고 마시도다 너희 고관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 적병이 쳐들어온다는 파수꾼의 경고를 듣지만, 바벨론 왕궁이나 군사들은 여전히 식탁을 베풀고 잔치를 열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입니다. 더욱이 고관들에게 말합니다.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하고 말입니다. 방패에 기름을 바르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이 실은 적군이 내리치는 칼날이 미끄러져 빗겨가게 하려는 전술을 뜻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날로 말하면 군대의 총기분해를 말하고, 또 녹슬지 않게 기름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이른바 군인들이 매일같이 총기를 분해해서 기름을 칠함으로 녹슬지 않게 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죠.
군인은 자기 총을 애인 다루듯이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군대 들어가면 제일 먼저 총기를 분해조립 하는 방법을 배우고 매일같이 그 부품을 기름걸레로 닦아서 녹슬지 않도록 보관해야 합니다. 그래야 총을 쏴야 할 급박한 상황이 왔을 때 방아쇠가 당겨지지 않는 황당한 일을 겪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이처럼 기본적인 준비조차 취하지 않았던 바벨론은 적병이 쳐들어온다는 파수꾼의 보고를 듣자마자 함락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본문 8절입니다. “파수꾼이 사자 같이 부르짖기를 주여 내가 낮에 늘 망대에 서 있었고 밤이 새도록 파수하는 곳에 있었더니 보소서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시되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시도다” 파수꾼은 밤낮 쉬지 않고 망대를 지키며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교만함 속에서 조금도 전쟁에 대비하지 않던 바벨론 왕과 군대장에게, 충실한 파수꾼이 아무리 보고한다 한들, 결코 경계태새도 갖추지 않을 것입니다. 바꿔 말해 파수꾼의 보고는 그 고관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 아무리 강대한 적국이 처들어 온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을 능히 이겨낼 수 있다는 교만과 자만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바벨론은 최고의 강대국이었지만, 교만 앞에서 버틸 수 있는 강대국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증명해 준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패망은 외부의 적에 기인한 게 아니라 내부의 적, 곧 교만이 더욱 무섭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아무리 평안하고 안전하다 해도, 그 평안과 안전이 우리를 교만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능력이 있고, 승승장구하고, 모든 것을 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바벨론 제국처럼 교만하게 되면, 한 순간 그 모든 탑들이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닫는 게 중요할 것입니다. 매사에 겸손하게 살면 그만큼 존귀함을 더 받게 되죠.
본문 11-17절까지는 ‘두마’와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두마는 에돔의 한 성읍을 가리키는 말이고, 아라비아는 에돔과 바벨론 사이에 있는 사막지역입니다. 두마에 대해서는 아침이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곧 밤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 말은 두마가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쳐 일시적인 평화를 누리지만, 결국에는 바벨론의 침략으로 다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가 하면 아라비아에 대해서는 한때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아라비아였지만 앗수르에 의해 비참한 신세가 되어 도망자처럼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0620580
두마와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의 말씀을 통해 깨닫는 교훈이 무업니까? 오늘은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 같지만 내일은 그 평화가 사라질 수 있다는 거죠. 오늘은 물질적으로 부유할지라도 내일 죽음이 찾아오면 그 재물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내일을 장담하며 사는 존재가 아니라 오늘 하루의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며 사는 겸손한 자들이 돼야 하는 것이죠.
728x90
반응형
LIST
'새벽묵상DewSermon > 이사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여호와께 돌리고(사23:1-18) (1) | 2022.12.19 |
---|---|
이를 행하신 이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사22:1-25) (1) | 2022.12.18 |
도움을 구하던 나라가 이같이 되었은즉(사20:1-6) (1) | 2022.12.15 |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 나의 기업 이스라엘(사19:1-25) (2) | 2022.12.14 |
추수하기 전에 꽃이 떨어지고(사18:1-7) (0) | 2022.12.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