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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이사야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사14:1-32)

by 똑똑이채널 2022.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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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어제 읽은 13장에 이어서 이스라엘을 포함한 주변 국가들에 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먼저는 이스라엘 나라 곧 남왕국 유다에 관한 메시지이고, 두 번째로는 신흥강대국 바벨론에 대해서, 세번째로는 앗수르 제국에 의해서, 그리고 네번째는 블레셋을 향한 메시지를 들려줍니다.

 

그 중에 1-11절은 이스라엘 나라 곧 남왕국 유다에 관한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로 하여금 유다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다가 다시금 귀환할 것을 예언토록 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본문 1절에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혀줍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그들의 땅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가 야곱 족속과 연합하여 그들에게 예속될 것이며” 남왕국 유다 백성들이 뭔가를 잘했고,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잘 순종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포로귀환의 은혜를 베푸신다는 게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 때문입니다.

이것은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집나간 둘째 아들을 기다리고 품는 아버지의 마음과 똑같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받아서, 타국에 나가 흥청망청 다 써버리지 않았습니까? 더 이상 먹을 게 없자 종 일을 하면서 돼지쥐염열매를 먹었죠. 그때서야 안 되겠다 싶어서 아버지 품을 그리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 날도 어김없이 아버지는 집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동구 밖에서 서성이는 모습이었죠. 바로 이와 같은 마음이 유다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의 패역한 삶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으로 품어 안으신 것입니다. 비록 그들을 바벨론이라는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을 들어 그들이 포로로 끌려가도록 했지만,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마음이십니다. 이것이 실은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들을 향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시기도 합니다.

 

본문의 두 번째 나라는 바벨론입니다. 왕은 한 나라를 대표하죠. 그렇기에 바벨론 왕은 바벨론 전체를 대표하는 말씀입니다. 그 왕, 그 나라 백성들은 이런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고 성경은 밝혀줍니다. 본문 12-14절입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보통 이 말씀을 사탄 곧 마귀를 빗대어 은유적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1차 대상, 다시 말해 그 시대의 역사적인 실제 상황을 지나치면서까지 은유적인 해석으로 바라보는 것도 문제죠. 본문에서 말하는 ‘아침의 아들 계명성’은 1차적으로 신흥강대국 바벨론을 칭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바벨론 제국의 힘이 너무나도 강성하기 때문에 주변국들은 바벨론 왕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했고, 그 나라의 왕과 군사력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죠 그런데 그 왕의 교만이 하늘을 찌르는 듯 했고, 그의 권세도 영원할 것 같다고 생각한 게 문제죠. 그 왕과 그 백성들이 아무리 치고 솟아 오른다 한들, 그 결말은 15절 말씀으로 끝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스올’이란 곧 ‘지옥 구렁텅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높아지려는 자들은 그처럼 한 없이 추락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바벨론 제국은 그 당시의 또다른 약소국이었던 메대 바사의 연합군 곧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바벨론 제국의 왕은 새벽별 곧 계명성처럼 빛날 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명성이 하늘처럼 솟아 오르고 있었지만, 그로부터 170년 후에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1차 대상, 곧 바벨론 제국을 향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의 예언임을 기억해야 할 바입니다. 이런 1차 대상으로 성경을 해석한 다음에, 2차 대상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바벨론처럼 어떤 나라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어떤 피조물이든지, 자기 스스로 하나님보다 교만하려는 것들은 모두 스올에 떨어진다고 말입니다. 바로 그 2차 대상에 마귀요 사탄도 들어갈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2차 대상에만 머물지 말아야 할 게 있죠. 곧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도 비춰보고 해석하는 게 중요하죠.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 바벨론 제국처럼 그 나라의 왕처럼 교만하고 패역하다면, 그 영화는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으로 끝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제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 가는 꽃이 없고, 어떤 막강한 권력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것말입니다. 중국을 호령하던 진시황제가 영원한 권력과 생을 위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사후에도 권력을 누리기 위해 병마용과 함께 묻혔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파라오도 불사를 위해 피라미드에 자신의 처소를 마련했습니다. 이 땅에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이 없는데도, 인간들은 그렇게 한낱 이 땅의 작은 권력과 힘을 영원할 것으로 착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본성은 바벨론 왕의 본성과 같은 게 없는지, 마귀 사탄의 속성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는지, 늘 스스로를 점검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의 세 번째 나라는 앗수르입니다. 그 앗수르와 관련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 가운데 당신의 일을 계획해 나가신다는 것을 24절에서 말씀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여기에서 ‘맹세하여’라는 히브리 단어, “싸바”는 ‘일곱 번 말하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확고부동한 주님의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는 단어입니다. 앗수르의 멸망은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앗수르의 멸망만이 하나님의 결연한 의지 가운데 있는 것은 아니죠. 우리를 향한 구원과 보호하심도 성경의 어떤 예언보다도 확고하시죠. 하나님은 우리를 버려두지도 않으시고, 그분의 계획 가운데 우리를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그분의 치밀한 계획과 보호 속에 살아가는 존재임을 우리 자신이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자신을 믿는 것에 대해서는 익숙한데 반해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그 분의 경영하심을 신뢰하는 것에는 적극적이지 못할 때가 있죠. 왜냐하면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의 기대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죠. 앗수르의 멸망은 예언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의 회개를 촉구하기 위해 요나를 보낸 바 있습니다. 열왕기하 14장 25절에도 요나 선지자의 활약상이 나온바 있었고, 또 요나서도 바로 앗수르 제국의 수도 니느웨 성읍에 대한 회개를 촉구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요나는 그때 니느웨 백성이 회개하든 말든 상관치 않고 조용히 소곤대는 목소리로 회개를 외쳤는데, 왜냐 그들이 싫어서 말이죠. 일제가 우리나라를 압제하듯 북이스라엘을 앗수르 제국이 압제한 것을 요나 선지자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미워서 차라리 회개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심판을 선포했는데, 좌우를 분별치 못하는 어린 아이들은 물론이요, 짐승 떼까지도 다 금식시키면서, 왕과 백성들이 회개에 동참했죠. 그래서 그들의 심판을 한 때 하나님께서 유예시켜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은 한 때 뿐이요, 더욱 포악한 앗수르 제국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끝내 실행되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것을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로 하여금 선포하게 하신 것이죠.

 

마지막 네 번째 나라는 블레셋입니다. 유다를 집요하게 괴롭혔던 블레셋 나라는 남왕국 유다의 10번째 왕인 웃시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점차 남 유다 성읍을 하나둘 점령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남왕국 유다 백성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군사력과 힘이라면 마땅히 점령할 줄 생각했고, 자기들 뜻대로 유다의 왕도 갈아치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10대 왕 웃시야가 죽고, 그 아들 곧 11대 왕 요담도 죽고, 12대 왕 아하스도 죽자, 이번에는 13대 히스기야를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 히스기야가 하나님 앞에서 종교개혁을 단행하고, 블레셋까지도 격퇴시킨 왕이었죠. 어떻게 그런 능력을 행할 수 있었는가? 하나님께 속한 히스기야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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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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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대신에 교만치 않는 하나님의 사람, 다시 말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하루도 그분께 속한 겸손한 주님의 종들로 살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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