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오늘 본문은 이사야 13장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유다의 주변국가들에 대한 경고와 심판의 메시지 중 하나인데, 바로 모압에 관한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13장에서는 주로 바벨론에 관한 심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고, 어제 읽은 14장에서는 아침의 아들 계명성처럼 교만하기 짝이 없던 바벨론을 비롯하여 앗수르 제국과 블레셋에 관한 심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모압 족속에 관한 심판의 메시지를 담은 내용입니다.
역사적으로 모압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모압이 누구입니까? 최초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 그 성읍을 빠져나오면서 소알이라는 작은 성읍에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바로 그 작은 성읍에서 롯이 아내가 소금기둥이 되자, 더 이상 후손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를 안 롯의 첫째 딸이 아버지와 관계를 갖고서 임신을 했는데, 그래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모압입니다. 그 모압의 족속들은 후에 요르단 동편의 사해 가까운 곳에 위치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모압은 이스라엘과 혈연적으로 가까운 나라였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두 나라 사이의 상호 관계는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출애굽 직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지역을 통과하려고 했습니다. 그 지역을 통과해서 곧바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고자 했죠. 하지만 모압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뜻을 꺾었고, 거절해 버렸습니다. 심지어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이 성공하는 것이 너무 괴로워, 발람이라는 거짓 선지자, 곧 무당과 같은 발람의 입술을 빌려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려고도 했습니다. 그래도 안 되니까, 이른바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민23:8)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어찌 무당 주재에 꺾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도 안 되니까, 어떻게 합니까? 그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음행에 빠져들게 만든 일을 주동한 자가 바로 발람 선지자, 무당 발람이었죠. 그 까닭에 모압 족속들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신23:3)하는 저주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사사시대에는 어떠했는가? 모압 왕 에글론이 여리고까지 이스라엘 영토를 침략하여 18년 동안 이스라엘을 압제했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은 18년 동안 괴롭고 힘든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이죠. 룻기에는 베들레헴의 엘리멜렉이 기근을 피해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으로 이사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래서 시어미 나오미만 살아남은 채 남편 엘리멜렉도 죽고, 말론과 기룐 두 아들도 죽죠. 남은 것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두 며느리 뿐이었습니다. 후에 룻은 어머니를 따라 낯선 베들레헴에 사는데, 그곳에서 보아스와 재혼하여 다윗의 조상이 되는 은총을 덧입게 되었죠. 바로 이것이 여호와의 총회에 영원토록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그 제한의 족쇄를 푼 직접적인 계기였습니다. 바꿔 말해 여호와의 총회에 모압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은, 그들이 영원토록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누구든지 주님께 헌신하고자 하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죠. 모압 여인 룻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적극적으로 헌신했기에 구원의 족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런가 하면 다윗은 어떠했습니까? 장인 사울의 칼날을 피해 도망 다니는 동안 자신의 부모님을 모압 사람들에게 맡긴 적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또 어땠습니까? 솔로몬은 자신의 아내를 위해 예루살렘 앞 산에 모압의 신 그모스를 섬기는 산당까지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라가 나뉜 이후에는 모압 왕 메사가 북왕국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조공을 바쳤습니다. 물론 아합 왕이 죽은 후에는 모압의 메사가 이스라엘을 배반했습니다. 하지만 메사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연합군의 공격을 받게 되었죠.
그렇게 이스라엘과 모압은 서로 괴롭히고 또 괴롭힘 받는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결혼을 통해 가족이 된 경우도 있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안타깝고, 또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겠습니까? 모압 족속들, 모압 백성들이 이스라엘의 신앙,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공유하지 못했다는 점이죠. 그 때문에 모압 족속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만 한다고, 오늘 본문에서 역설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에 “모압에 관한 경고라. 하룻밤에 모압 알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며 하룻밤에 모압 기르가 망하여 황폐할 것이라”. ‘하룻밤에 모압 알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라는 경고는 밤에 멸망을 당한다는 뜻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어둠의 때에 그 나라가 돌연히 멸망한다는 말씀입니다.
모압 ‘알’은 모압의 수도 이름입니다. 오늘날의 ‘랍바’에 해당되는 지역이죠. 그런가 하면 모압 ‘기르’는 거대한 바위 위의 요새화된 도시를 가리킵니다. 이른바 모압 알의 남동쪽에 위치한 성읍이죠. 그래서 그 두 곳이 모압 지역에서 가장 화려하고 강력한 성읍인데, 실은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붕괴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그 어떤 사람도 막을 길이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모압 사람들은 국가적인 재난을 직면할 때 어떻게 뚫고 나갔는가? 자신들이 믿고 섬긴 우상, 곧 그모스 신이 있는 신전으로 달려가 울며 호소했습니다. 그들은 고대 근동지방의 애도 방식을 따라, 각기 자신들의 머리털을 밀고, 수염을 깎았고, 또 맨 몸에 굵은 베를 두르고, 지붕 위에서 오열하며 부르짖고 기도했죠. 하지만 그모스 신을 향해 아무리 그들이 통곡하며 기도한다 한들, 죽은 신이 어찌 응답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 그 신이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낼 길이 있겠습니까?
그 심판이 얼마나 극심한지 알고 있는 이사야 선지자도 그래서 5절을 통해 그렇게 탄식하는 것이죠.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도다 그 피난민들은 소알과 에글랏 슬리시야까지 이르고 울며 루힛 비탈길로 올라가며 호로나임 길에서 패망을 울부짖으니 니므림 물이 마르고 풀이 시들었으며 연한 풀이 말라 청청한 것이 없음이로다.” 모압을 향해 심판을 경고한 이사야 선지자마저도 모압의 그 비참한 실상 앞에 통곡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원수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극심한 어려움에 처하면 동정심이 이는 것과 똑같은 격입니다.
그들이 그처럼 멸망하고 황폐한 땅이 된 이유가 무엇인가? 앞서 읽은 6절 말씀처럼 ‘가뭄(6절) 때문이었습니다. 모압을 침공한 군사들이 전략적인 목적으로 모압을 향해 흐르는 수로를 차단해 버렸기 때문입니다.그때 모압 사람들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자신들이 믿는 그모스 신에게 나가 부르짖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이 믿는 신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죽은 신입니다. 시편 115편 4-8절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모압 백성들이 만든 신 그모스가 바로 그와 같다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모압 백성들이 끝까지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걸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끝까지 자기들의 신 그모스만을 섬기고 경배하느라,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모압은 하나님의 처절한 진노 앞에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0619797
그런데 그런 모습이 어디 모압 백성들 뿐이겠습니까? 오늘을 사는 세상 사람들도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분별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쾌락과 욕망을 마치 그모스 신처럼 떠받들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날에 모압이 멸망당한 것처럼,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이 그렇게 파멸당할 것을 우리는 분별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압 백성과 같은 자들을 향해 이사야 55장 6-7절을 통해 부르죠.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728x90
반응형
LIST
'새벽묵상DewSermon > 이사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아니한 까닭(사17:1-14) (0) | 2022.12.12 |
---|---|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지라(사16:1-14) (0) | 2022.12.12 |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사14:1-32) (1) | 2022.12.08 |
바벨론에 대하여 받은 경고라(사13:1-22) (0) | 2022.12.07 |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사12:1-6) (0) | 2022.12.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