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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이사야 10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1-4절입니다. 여기에는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더라도 죄를 짓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들을 계속 자행하면,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이 과연 무엇입니까? 1-2절에 “불의한 법령을 만들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가난한 내 백성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자기들의 이익과 기득권을 위해 불의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 내는 것, 그래서 가난한 사람과 고아와 과부같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고통을 가중시키고, 그들의 권리를 빼앗는 것, 그것을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는 것이죠. 성경은 일관되게 가난한 사람을 배려하고 보호하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곧 공동체를 세우고 보존하는 길이기 때문이죠. 그것이 곧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남왕국 유다 사람들은 온갖 우상 숭배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공동체의 약자까지도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것입니다.
그런 유다 왕국을 어떻게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예전에도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기 위해 인접한 블레셋이나 미디안 족속을 들어 막대기와 채찍으로 사용하셨던 것처럼, 이번에는 잔인한 정복자 앗수르 곧 앗시리아 제국을 들어 유다 왕국을 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이 본문의 두 번째 부분으로 5-19절까지 말씀이 그것입니다. 이사야서가 기록될 당시는 앗수르가 전성기를 맞이할 때였습니다. 앗수르는 강력한 군사적 힘을 동원하여 북 이스라엘을 이미 멸망시켰고, 이제 남왕국 유다까지 포위하여 예루살렘 성만 남게 되는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에 처하죠. 그로 인해 온 백성들은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 잡히는데, 이사야 선지자는 그런 상황에 대해 영적으로 해석을 해 주죠. “이 일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일입니다.”하고 말이죠.
그런 유다 백성들의 모습, 앗수를 들어 유다 왕국을 치시는 모습을 본문 5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앗수르 사람은 화 있을진저 그는 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내 분노라.” 이 말씀 앞에 나는 어떤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내 앞에 닥친 어려움과 아픔 속에는 하나님의 진노의 몽둥이 역할을 하는 사람이나 기관은 없는지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의 상황이나 현상만 보지 말고,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의도까지도 볼 수 있어야 하겠죠. 과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말이죠.
그런데 본문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몽둥이로 선택된 앗수르의 왕 산헤립은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면서 오만방자했음을 알려줍니다. 11-12절에 “내가 사마리아와 그의 우상들에게 행함 같이 예루살렘과 그의 우상들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하는 도다. 그러므로 주께서 주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하신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시리라.” 앗수르가 오만하게 행동할 때, 하나님께서 그 오만함을 책망하시고 그를 사용하신 목적이 다 이루어졌을 때에 결국은 그들이 멸망당할 것이라고 경고하시죠. 그것이 15절 말씀입니다.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같음이로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한다면 또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의미로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았든지 간에, 좋은 도구로든지 나쁜 일로든지, 어떻게 쓰임받았든지 간에, 결코 교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았다면 그것으로 그쳐야지, 그걸 자기 자랑거리로 삼는다는 앗수르 제국처럼 쓰임받고 난 뒤에 버림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본문의 세 번째 부분은 20-34절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악의 도구로 쓰임 받은 앗수르에 대하여 가져야할 태도와 영적인 의미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 위협적인 심판의 폭풍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어려움이 닥칠 때 처음에는 한동안 온 백성이 이 일에 대하여 크게 놀라고 근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위협의 내면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보라는 것이죠. 하나님은 왜 그토록 당신의 백성을 진노의 형벌에 내어 주시고, 이 땅에서 고통을 겪게 하십니까? 이에 대한 말씀이 20-21절에 있습니다.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고통을 겪게 하신 이유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여호와를 진실되게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죠. 또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남은 자”라는 말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실하게 살기를, 거룩하게 구별되기를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30절에 “네 오른손이 너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거든, 찍어서 내버려라. 신체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더 낫다.”고 하시죠. 우리 몸은 머지않아 썩어져버릴 것이지만 우리의 영혼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 16장 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그만큼 이 땅에서 아픔과 상처도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승리와 평화로 연결되게 해 주시는 것이죠. 지금 유다 백성들이 앗수르 제국에 의해 압제와 고통과 고난을 당하지만, 그것이 유다 백성들에게 유익을 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의 위협과 고난을 통해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온다면 말이죠. 그래서 24절에 그렇게 선포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시온에 거주하는 내 백성들아 앗수르가 애굽이 한 것처럼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가장 치열하게 공격을 당하고, 매를 맞는 기간일지라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혹독한 아픔과 고난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곧 끝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25절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오래지 아니하여 네게는 분을 그치고 그들은 내 진노로 멸하리라 하시도다.” 결국은 다 지나가게 돼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로마서 8장 18절 말씀과 상통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그것은 또 고린도전서 10장 13절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그렇죠. 유다 백성들을 앗수르 제국이 압제하여 고통과 고난을 겪는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시험하시는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하게 되면 그 무거운 시험들을 다 피할 길을 내시고, 능히 감당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27절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 날에 그의 무거운 짐이 네 어깨에서 떠나고 그의 멍에가 네 목에서 벗어지되 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
여기에서 말하는 ‘그 날’은 주님께서 정하신 날을 의미합니다. 지금 견디기 힘들만큼 괴로울지라도 주님이 정하신 그 날에는 미래와 희망의 날이 될 것이란 뜻입니다. 그 날이 오면 무거운 짐이 우리의 어깨에서 떠나고, 우리의 멍애가 벗겨질 것이란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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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유다 백성들이 어떻게 해야 될지,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 명확해지지 않습니까? 죄를 짓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들을 계속 자행하면,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고, 그로 인해 무거운 진노의 채찍과 막대기 앞에 고난을 겪지만, 그러나 진실되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끝까지 견디는 자에게 그루터기처럼, 남은 자들을 통해 다시금 일으켜 세워주셔서 그 가정과 가문도, 그 사회와 나라도 다시금 일으켜 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앗수르는 그렇게 강대했어도 역사의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지만, 남은 유다 백성들은 2천년 동안 나라없이 유리하며 살았어도 하나님의 보호 아래 그들은 아직도 건재한 나라가 돼 있죠.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이 세상에 보이는 것 너머에 모든 것을 쥐고 계시는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소망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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