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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이사야

여호와께서 덮개를 두시며(사4:1-6)

by 똑똑이채널 2022.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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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과 회복이란 죽음과도 같은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 사람에겐 큰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주권을 상실해 보지 못한 나라의 국민들이 주권의 소중함을 알 리가 없죠. 중병으로 인해 아파보지 못한 사람은 치유와 회복의 참 기쁨을 알 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죄로 인해 인생의 비참함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죄로부터 해방과 구원의 참 기쁨을 알 까닭이 없죠. 나라가 패망하고 전쟁으로 인해 국토가 폐허더미가 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죠. 그들에게 간곡한 바람은 주권을 회복하는 것이자, 수치에서 벗어나 명예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은 그런 비참한 상태에서 있는 자들이 간절히 회복을 바라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소원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애원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들이 수치를 면하게 해 달라는 모습인데, 나라를 잃은 백성으로서 그런 소원을 품고 바란다면 자연스런 일이지만, 한 남자가 아닌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애원하는 모습은 비정상적인 모습이죠.

 

본문 1절에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다만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게 하여 우리가 수치를 면하게 하라 하리라 이것은 나라를 잃은 후, 남아 있는 자들이 완전한 회복을 위한 소원이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역부족인 모습입니다. 그 상황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 일곱 명의 여자가 한 남자의 부인으로 함께 살아갈지라도 좋겠다는 뜻입니다. 그 모습은 회복을 위한 바람이 아니라 오히려 비참한 상태의 모습이죠.

이 당시에 유다 사회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데려와 함께 사는 결혼생활을 했습니다. 남자에게는 아내를 부양할 의무가 주어졌죠. 먹을 것과 입을 옷도 제공해야 했습니다. 만약에 그런 경제적인 능력이 없다면 남자가 장가를 가기가 매우 힘들었죠. 하지만 4장 1절의 상황은 다른 모습입니다. 여인들이 남자에게 자신을 먹여주거나 입혀주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결혼만 해 달라는 간청입니다. 어떤 것도 좋으니, 그저 결혼만 해서 사회적인 지위를 획득하려고 하는 모습입니다. 그야말로 비정상적인 일부다처를 원하는데, 그런 모습은 회복이 아닌 비참한 상황을 그려주는 모습일 뿐입니다.

왜 그런 상태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유다의 죄악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4장 1절의 모습은 어제 읽은 3장 16절부터 시작된 예루살렘과 유다 여인들의 죄악과 미래에 있을 징벌에 관한 모습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1절은 회복이 아닌 죄악을 돌이키지 않는 여인들의 참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여인, 색욕을 쫓아 사는 여인, 화려하게 외모를 치장하는 여인들을 그냥 두지 않으시겠다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어제 읽은 3장 16-26절이 그 말씀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여인들을 향해 궁극적으로 3장 25-26절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너희의 장정은 칼에, 너희의 용사는 전란에 망할 것이며 그 성문은 슬퍼하며 곡할 것이요 시온은 황폐하여 땅에 앉으리라.”

이 말씀은 비단 여인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교만하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을 떠난 죄의 역사라 할 수 있죠. 범죄 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인간은 혼자서는 결코 죄를 이길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지 않고서는 인간은 결코 죄의 권세를 이길 수 없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믿는 사람은 결국에는 진리를 외면하게 되며, 죄가 죄인 줄 모르며 살아가죠. 그런 사람은 자기 영광을 누릴 수 있겠지만 그러나 모든 것을 잃고 비참함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일 뿐입니다. 물론 아무리 자기 중심적일지라도,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임하면 죄인에게 회심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회심과 그로 인한 회복은 부분적인 회복이 아닌 온전한 회복이죠.

그래서 본문 2-6절의 말씀이 회복에 관한 예언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2절에 그 날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놀랍게도 1절에서도 그 날에라는 말씀이 기록돼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도 똑같이 ‘그날에’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전혀 다른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1절의 ‘그 날에’는 절망의 그날, 심판의 그 날, 화를 당하는 그 날, 수치를 당하는 그 날입니다. 반면에 2절의 ‘그 날에’는 희망의 그 날, 회복의 그날, 긍휼의 그날을 뜻하죠. 그래서 2절에 그 회복의 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다만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게 하여 우리가 수치를 면하게 하라 하리라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여기에서 ‘그 날에’는 막연한 그날, 우연한 그 날이 아닙니다. 죄와 교만과 우상숭배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그 날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섭리의 날이라면, 그들에게 회복의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는 그 날 역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는 ‘그 날’입니다. 인간이 임의로 정하는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닌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대적인 시간 곧 카이로스를 뜻하는 시간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작정하실 때 완전한 회복이 이루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여호와의 싹”이 피어날 때 온전한 회복이 주어진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싹으로 시작될 때 그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우며 그 소산도 아름답고 풍성케 되는 것이죠. 더욱이 그 회복은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남아 있는 자들 중 선택받은 자들에게 거룩하다 칭함을 받는 회복이 주어진다고 말씀합니다. ‘거룩하다 칭함을 얻는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칭의’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칭의란 하나님의 긍휼로 인해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을 뜻합니다. 비록 죄에 유혹을 받는 연약함이 있다 할지라도, 한결같이 주님 안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해바라기처럼 살아갈 때, 오늘 우리를 향해서도 ‘칭의’의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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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YES24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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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칭의의 은혜를 본문 4절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하나님께서는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죄를 심판하신 후에 그 죄인을 의롭게 하시는 하시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이시기에, 죄에 대해서는 분명코 징계하셔서 그 영혼을 바로잡으시는 분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죄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자신의 처지가 호전되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회복이 아닙니다. 적폐청산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는데, 그것을 죄의 문제로 연결 짓는다면, 어쩌면 하나님의 심판과 긍휼의 면에서 비슷하지 않겠나 싶은 생각도 할 수 있는 것이죠. 물론 그렇게 적폐를 청산한다고 해서 완전한 회복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사회적인 제도와 법의 잣대로 심판하는 것은 그 영역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진정한 회복은 오직 법의 잣대가 아닌 하나님의 긍휼어린 은총으로만 가능할 뿐임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한 사람의 근본적인 인생이 변하지 않으면 바꿔 말해 어둠에 붙잡혀 있는 인생에게 생명과 진리의 빛이 임하지 않으면 법과 제도로 아무리 심판한다 해도 바뀌지 않기 때문이죠.

근본적인 죄의 문제가 해결되면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알게 됩니다. 본문 5-6절에서도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온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며 또 초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죄의 문제를 해결한 자들에게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고, 초막으로 그 더위와 풍우를 피하게 해 주신다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상징하는 말씀이죠. 그런 모습이 우리를 향한 미래와 희망되시는 하나님의 이끄심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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