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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이사야서를 살펴보게 됩니다. 이사야서는 대부분 이사야 선지자가 이 두루마리 책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사야1장 1절을 비롯해 여러 부분에 걸쳐 자신이 쓴 것을 암시(2:1, 7:3, 13:1, 20:2, 37:2,6,21, 38:1,4,21, 39:3,5,8)하고 있고, 신약의 예수님과 사도들도 적어도 21번에 걸쳐 이사야가 쓴 이 두루마리를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죠.
이사야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눕니다. 1-39장까지 죄로 인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하나님의 모습을, 40-66장까지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과 회복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반부는 이사야 선지자가 충분히 기록할 수 있다지만, 후반부 포로귀환은 그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B.C.739-701년과는 다른 시대이기 때문에 누군가 편집한 게 아닌가 하고 추정을 하기도 합니다.
과연 이사야 선지가 활동하던 때가 어느 시기인가? 이미 솔로몬의 젊은 시절에 쓴 것으로 알려진 아가서, 그가 여러 명의 처첩을 통해 100명 이상의 자녀들을 낳으면서 지혜와 명철을 강조한 잠언서, 그리고 인생 말년에 20년간 헛되게 살아온 삶을 돌이키며 하나님께 돌아와 고백한 전도서, 그 내용들을 쭉 살펴봤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B.C931년 30살의 나이에 왕위에 올라 40년간 통치하다가 70살의 나이 곧 B.C.931년에 죽죠. 그 931년이 바로 통일왕국이 끝나는 시점이자, 남북분열왕국이 시작되는 시점입니다. 북쪽은 그때부터 19명의 왕들이, 남쪽은 20명의 왕들이 각기 통치했죠. 그런데 북왕국 이스라엘은 끝까지 악한 왕들이 통치하다가 결국 B.C722년에 앗수르 곧 앗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을 당했고, 남왕국 유다는 그들의 패망을 거울삼아 하나님을 경외해야했는데 똑같은 전철을 밟다가 B.C.586년에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당했죠. 차이가 있다면 북이스라엘은 앗수르 제국의 통혼정책에 의해 이방인들과 뒤섞여 살았던 까닭에 그 존재자체마저 사라져버렸지만, 남왕국 유다는 비록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해 1,2,3차에 걸쳐 포로로 끌려갔지만 다시금 하나님의 때에 1,2,3차에 걸쳐 고국으로 돌아와 존재기반을 마련케 됐다는 점입니다.
바로 그런 급변하던 시대 곧 기원전 8세기 경(B.C.739-701)에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는 네 명이 더 있습니다. 아모스와 호세아와 요나와 미가 선지자가 그들이죠. 그 중에 아모스와 호세아와 요나는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당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회개하도록 외친 선지자이고, 미가 선지자와 이사야 선지자는 남유다를 향해 하나님의 메신저 역할을 했던 선지자입니다.
이사야서는 크게 두 개의 부분으로 나눕니다. 1-39장까지, 또 40-66장까지로 말이죠. 그것은 신구약 성경의 권수와 비슷합니다. 구약이 39권, 신약이 27권이듯이 말이죠. 그래서 1-39장까지는 하나님의 의로우심, 거룩하심, 공의로우심에 대해서 밝혀주고 있고, 40-66장까지는 하나님의 영광, 긍휼, 은총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1-39장까지는 이스라엘과 열방을 향한 심판을 강조하고 있고, 40-66장까지는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반부와 후반부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와 모두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총 66장으로 돼 있는 이사야서는 크게 다섯 부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1-5장까지로 이사야 자신의 소개를 비롯해 이스라엘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있고, 두 번째 부분은 6장으로서 하나님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세 번째 부분은 7-39장까지로 이스라엘의 믿음에 대한 위기를 담고 있고, 네 번째 부분은 40-55장까지로 패역한 믿음을 지닌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시고 대속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담고 있고, 마지막 다섯 번째 부분은 56-66장까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변화된 미래의 회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1,292절로 기록된 이사야서는 2,461절로 된 시편이나, 1,533절로 된 창세기, 그리고 1,364절로 된 예레미야와 함께 구약성경가운데 꽤 긴 절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사야서에 담긴 신학사상, 다시 말해 이사야 선지자가 강조하고 싶었던 점은 무엇이었을까요? 이사야 선지자는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모든 신들 가운데 가장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도 거룩하신 분이시고, 그 누구보다도 공의로우신 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거룩하심과 공의로우심 앞에 그 어떤 죄인도 온전히 설 수 없고, 그들은 심판받는다는 것, 그것이 곧 그 분의 거룩하심과 공의로우심을 강조한 것입니다. 아울러 이사야 선지자는 이 두루마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에 ‘가지’, ‘돌’, ‘빛’, ‘어린이’, ‘왕’, 그리고 ‘종’이란 단어들이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메시아의 다시 오심, 곧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케 하는 내용이라는 점입니다. 아무리 큰 죄를 저질렀어도 주님 앞에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을 받을 때에는 그 밑둥이까지 잘려지는 것 같지만 머잖아 그 밑둥이에서 새로운 싹이 돋아나는 것처럼, 그 구원의 새 싹과 새 가지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1장 1절에는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그 기간과 자신의 출생에 관해 밝혀줍니다.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계시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때가 언제인가? 남왕국 유다의 왕 웃시야로부터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왕 때까지입니다. 이들의 통치에 관한 내용은 열왕기하 15-18장까지 이미 읽은 내용들입니다.
웃시야(B.C792-740)왕은 열왕기하 15장 3절에 나오는 ‘아사랴’ 왕의 또 다른 이름이죠. 웃시야는 남왕국 유다의 10번째 왕입니다. 그는 52년을 다스렸는데, 교만한 그는 문둥병에 걸려 별실에 거해야 했고, 그 아들 요담으로 하여금 대리청정케 했죠. 그가 죽자 그 아들 요담(B.C750-732)이 11번째 왕으로 전면에 나섰는데 19년을 다스립니다. 그런데 요담이 왕위에 있을 때 아람 나라의 왕 르신과 북왕국 이스라엘이 연합작전으로 쳐들어오게 됩니다. 그 위태한 상황에 그만 요담은 숨을 거두고, 그 아들 아하스(B.C.744-728)가 12번째로 왕위에 오르죠. 그는 20세에 왕위에 올라 16년을 통치합니다. 웃긴 일은 연합군이 쳐들어왔을 때 아하스가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푸셨고 연합군이 물러갑니다.
그렇다면 응당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섬겨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그는 앗수르 왕에게 머리를 굽히고 도움을 요청하죠. 더욱 가관인 것은 앗수르의 신을 숭배하고 그 제단까지 본떠서 유다 땅에 만들도록 지시했다는 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신에게 인신제물을 바친 왕이었고, 성전의 문까지 폐쇄해버린 왕이었죠. 왜 그가 그렇게까지 했는가? 왜 앗수르에게 고개를 숙이고, 그 나라의 신을 숭배하게 하며, 그 신에게 인신제물을 바치고, 성전의 문까지 닫아버렸는가? 앗수르 제국이 북왕국 이스라엘의 19번째 왕 호세아는 물론이요 그 나라를 완전히 멸망시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의 흐름일 뿐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바라봐야 했는데, 영적인 눈이 가려진 그는 오직 눈에 보이는 세상 권력에 빌붙고자 머리를 조아렸던 것이고, 그 나라의 신을 숭배코자 인신제물까지 바쳤던 것이죠. 그런 상황에서 그는 죽고, 이어서 13번째 유다 왕으로 등극한 인물이 있죠. 그가 바로 히스기야(B.C.728-699) 왕입니다.
그가 왕위에 오를 때 더욱더 정세가 급변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을 잠식한 앗수르 제국이 남유다까지 집어 삼키려고 쳐들어왔죠. 그때 히스기야가 어떻게 하는가? 그 아버지 아하스 왕처럼 그들에게 머리를 굽신거리고 그들의 신을 숭배하고자 성문을 열어줬는가? 아닙니다. 그때 하나님의 선지가 이사야가 나서서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도록, 전능하신 하나님,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독촉했죠. 그렇게 주변 정세가 위태하던 8세기 경에 이사야는 활동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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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는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아모스’란 선지자 아모스가 아니라 유대 전승에 따르면 웃시야 왕의 아버지인 ‘아마샤’의 형제라고 하죠. 그러니까 웃시아 왕에게 삼촌뻘로서 얼마든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조언하고 호통을 칠 수 있었고, 그런 모습은 손자 뻘인 웃시야의 아들 요담이나 증손자 뻘인 아하스 그리고 고손자 뻘인 히스기야에게도 통할 수 있었던 것이죠.그러나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B.C698-643)에게는 그의 메신저 활동이 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그는 이사야를 톱으로 켜서(히11:37) 죽였다고 유대 전승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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