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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전도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전12:1-14)

by 권또또 2022.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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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전도서의 마지막 장입니다. ‘전도서’란 본래 히브리어로 ‘코헬렛’, 그 의미는 ‘설교자’ ‘강연자’ ‘모임에서 가르치는 자’란 뜻인데, 전도서를 쓴 솔로몬은 이 전도서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가르치고자 한 교훈이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 교훈은 자기 삶을 반추하면서 깨달은 것이죠. 이른바 아버지 다윗에게 배다른 19명의 공식적인 아들들이 있었고, 그 중에 10번째 아들로 태어난 솔로몬은 결코 왕이 될 자격이 없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그가 왕위에 오르지 않았습니까? 아버지 다윗이 B.C.970 곧 솔로몬의 나이 30살에 아버지 다윗이 죽을 때 솔로몬이 그때 왕위에 오르죠. 그리고 재위 4년에 성전을 짓고, 또 자기 왕궁을 13년에 걸쳐 건축하는데, 그때부터 온갖 산해진미를 먹고, 모든 권력의 최정점에 서서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삼고, 그녀들이 가져 온 이방신상들까지 예루살렘 경내에 세우도록 다 허용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계시지 않고, 꿈 속에 나타나서 재차 경고하셨죠. 하지만 솔로몬은 자신을 왕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잊어버린 채 점점 권력과 탐욕과 욕정의 화신이 되어 수많은 자식들을 낳고 살았는데, 그러나 그의 인생 말년인 B.C.931년, 다시 말해 그의 나이 70세가 되었을 때, 자기 인생의 뒤안길을 돌아보건게, 그 화려했던 시절에 자신의 심령을 채워줬던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 그 모든 권세와 부귀영화과 수많은 처첩들과 수많은 자식들이 실은 다 바람을 잡고자 한 것처럼 ‘헛된 것’뿐이었다고 뉘우쳤죠. 바꿔 말해 내가 그렇게 헛된 삶을 살았으니, 이스라엘의 아들들이여, 너희 하나님의 자녀들이여, 인생이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이제는 100세 시대를 산다 할지라도, 그것은 밤의 한 경점과 같을 뿐이요, 그것은 손 한 뼘 길이보다도 더 짧은, 하루살이 인생 같은 것이니, 너희들만큼은 진정으로 영원한 진리와 가치있는 것을 건져올리는 삶을 살도록 하라는, 그런 교훈을 가르치고자, 이 코헬렛, 전도서를 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제도 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본문 1절에서도 그런 “청년의 때”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과연 그 청년의 때가 어떤 때입니까? 무엇인가 희망을 품을 수 있고, 뭔가를 소망할 수 있는 때이지 않습니까? 비록 무엇을 이루지 못했다 해도,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닐 수 있는 때입니다. 뭔가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본문 1절 하반절에 나오는 “곤고한 날”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바로 이 때는 ‘아무 낙이 없는 해는 노년기’를 칭하는 때입니다. 그래서 2절에 해와 빛과 달이 어둡기 전에에서 하는 말씀부터 7절의 영이 하나님께 돌아가기 전까지 라는 이 구절들은 노년기의 상황과 특징을 묘사하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얼굴도 쭈글쭈글해지고, 뺨의 윤기가 빠져 나가고, 그리고 눈이 침침해 눈물이 저절로 흘러 내리는, 그야말로 기력이 떨어져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그 때가 노년의 때이죠. 기억력이 쇠퇴하고 총명이 흐려지는 때, 이빨이 빠져 딱딱한 음식은 제대로 씹을 수가 없는 때, 그만큼 말수도 적어지고 백발이 되는 그때, 그 때가 바로 죽음을 앞둔 노년기의 때입니다.

하지만 그 노년기와 그 청년기의 구분은 육체적인 것에 달려 있는 게 아닙니다. 오늘날 청년의 때를 산다 할지라도 사는 것의 의미나 기쁨을 깨닫지 못하는 청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반대로 노년의 때를 맞이했다 해도 삶 속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아 살아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싱싱하고 탱탱하고, 꿈많은 청년의 때를 살아도 삶의 진정한 의미와 기쁨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젊은이들은 영적인 노년기를 살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야말로 영적인 곤고함 속에 허덕이는 자들이죠. 반대로 내 육체의 감각이 떨어지고, 눈이 침침해도, 누군가를 위해 말 벗이 되어주고, 손을 잡아주고, 누군가에게 위로자의 삶을 살고 있다면, 누군가에게 생명의 통로로 살고 있다면, 진정한 삶의 의미와 기쁨을 누리고 있는 노인이 있다면, 그가 바로 영적으로 싱싱한 젊은 청년이죠. 물론 사람은 나이듦의 과정, 자신이 쇠약해지는 자기 한계를 결코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나이가 들어가면 초라해진다는 것을 스스로 절감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될까?’하고 푸념도 하고 넋두리도 한다고 하죠. 더욱이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가 죽거나, 또는 자식들이 출가하여 떠나는 등 이별과 헤어짐을 경험하면, 돛대 없는 배처럼 유랑하는 것 같은 쓸쓸함과 허전함이 깊이 밀려든다고 하죠. 그런 모습들이 노년의 인생에 더 깊은 절망감과 공허함으로 몰아넣는다고 합니다.

과연 그런 질문들이 우리에게 찾아 올 때, 과연 저와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인생은 다 그런 것 아니야?”하고 체념하며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아직 늦지 않았어.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봐야지”하고 또 다른 삶의 의미를 찾아 도전하며 사시겠습니까? 그도 아니라면 내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해 줄 그 누군가를 찾아 사랑을 애걸하며 다니겠습니까?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그런 모든 것들은 우리 삶을 더욱더 초조하게 만드는 것이고, 더욱 힘들게 하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하는 게 옳은 일이겠습니까? 오늘 새벽에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권면하십니다. 너는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하고 말입니다.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이 말씀은 과연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 말씀이겠습니까? 첫째로는 하나님께서 나를 소중하고 귀하게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의미 없이 우연이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사람 자체가 소중한 것은 아니죠. 사람이 소중한 것은 이 사람을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손길과 마음을 담아 빚었기에,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삶이 소중한 것이죠. 그래서 나이 들어가니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야, 할지라도, 그런 탄식 속에서도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고백이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으로 빚으신 분이시다, 하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곤고한 날이 찾아 올 때 우리는 그 분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그 분의 음성을 듣고자,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죠. 그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격려하시지 않겠습니까?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많이 힘들지, 걷기조차 버겁지.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내 품에 안기지 안으련?”하고 말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곤고한 날이 찾아올 때 저와 여러분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분께 의탁하길 바랍니다.

 

두 번째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말씀은 우리 삶의 목적과 의미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화려함과 찬란한 영광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모든 때가 지나면 다 사라지는 것들, 그야말로 헛된 것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 생명과 진리의 통로가 되는 삶, 죽어가는 영혼을 건져 올리는 그 도구됨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는 삶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자유지만, 그 일을 통해 모든 삶의 초점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 말입니다. 그를 위한 인생을 살 때 비록 겉모습이 초라할지라도 그 내면이 가장 아름답고 싱싱한 청년의 때와 같을 것입니다.

세 번째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상기하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기억하라”라는 히브리어 ‘우제코르’는 접속사 ‘와우’와 ‘자카르’의 합성어입니다. 그 뜻은 ‘기억하다’, ‘마음에 품다’, ‘상기시키다’라는 의미죠. 새가 알을 낳고 그 알을 품는 것 같이 말씀을 듣고 난 후 그 말씀을 품고 상기하다는 뜻입니다. 영화나 책을 읽고 리뷰 곧 감상평을 남기며 그것을 되새김질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모든 영화가 들의 풀과 같고, 꽃처럼 언젠가는 사라질 헛된 것들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 무궁토록 있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기에 그 말씀을 나의 삶에 되새김질 하며 사는 노인이 있다면, 그야말로 젊은이들보다 더 멋지고 싱싱한 삶을 살고 있는 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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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교보문고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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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인생 70, 곧 마지막 노년기의 때에 자기 뒤안길을 돌아보며 쓴 이 전도서를 통해, 진정으로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가치를 건져 올리는 삶을 살도록 교훈하는 이 코헬렛을 깊이 묵상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요 등불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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