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벽묵상DewSermon/전도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전8:1-17)

by 권또또 2022. 11. 8.
728x90
반응형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1절에 누가 지혜자와 같으며 누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이냐 사람의 지혜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의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 곧 세상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아는 통찰력을 가진 지혜자가 이 세상에 있느냐고 묻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17절에서 이렇게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에 대해 인간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대답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지혜자라 하는 사람이 세상일을 안다고 할지라도, 실상은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성경은 일침을 놓고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 사람들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지혜자를 찾아 다니고 또 스스로 지혜자인 척 합니다. 그래서 자기 미래의 어려움을 해소해 보고자 하고, 또 자기가 그런 인생의 혜안을 지닌 자인척, 그래서 인기를 끌고자 하기도 합니다. 복잡다단한 세상일로 인해 불안해하고, 도 어려움 때문에 겪게 되는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그렇듯 사물의 이치를 아는 지혜자를 찾아 다닙니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용한 점쟁이까지 찾아가 사물의 이치를 알려고까지 합니다. 마치 그 점쟁이가 또 무당이 자신의 불안과 고통을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죠. 뿐만 아니라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찾아가서 자기 인생의 문제를 묻기도 합니다. 그것은 종교인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종교인들 중에는 기도를 열심히 하면 불안한 마음이 해소되고 고통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일견 타당한 것 같지만, 얼마 전에도 말씀을 드린 것처럼, 그런 차원으로 마음의 불안이 해소되고 고통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 자기 재물로 신을 얼래고 달래는 미신을 숭배하는 자와 같은 격이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복종하고, 우리의 모든 내일을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우리의 내일을 위해 친히 염려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도 그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전적으로 의탁하지 못해, 나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는 수준이라면, 그것은 아주 연약한 상태의 신앙인과 같은 수준일 것입니다. 그런 목적으로만 기도한다면, 그래서 응답이 된다면 기뻐하고, 반대로 응답이 되지 못해 불안한다면, 과연 그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신앙인의 태도이겠는가? 우리는 한 번 쯤 깊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신앙인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내 인생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지, 불안하고 염려하기보다, 그 모든 일을 전적으로 주님께 맡기며, 그 모든 어려움 가운데서도 합력하여 선으로 이끌어 주실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인, 그가 바로 성숙한 신앙인이죠. 그런 신앙인이 되도록 하기 위해 주님께서 당신의 기도, 곧 주님의기도를 가르쳐 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기도를 통해 배운 내용이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에 꼭 기억해야 할 한 가지 것이 있습니다. 그 기도의 첫부분도 ‘파테르 헤몬’ 곧 ‘파테르’ 아버지라는 말이 맨 처음 나오고 있고, 마지막 끝 부분에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하는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는 것, 다시 말해 그 끝부분도 ‘아버지’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는 점이라고 했습니다. 왜 우리가 주기도문을 할 수 있는가? 왜 우리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따라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며 살 수 있는가? 내가 살아가는 나라도, 권능도, 영광도 그 모두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 아버지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나의 모든 삶의 주권이 내게 있는 게 아니라 나를 선택하시고 지명하여 ‘너는 내 것이라’ 부르신 주님께 그 모든 주권이 달려 있기에, 전적으로 맡기며 의탁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 신앙인이라야 어떤 일에도 불안하거나 불만족하지 않고, 자족하며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죠.

사실 인간이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치 앞을 알지 못하는 불확실한 미래 때문이기도 합니다.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거나, 잘 나가던 사업이 실패하거나, 더욱이 은퇴 후에 앞으로 100세 시대를 살아간다고 하는데, 만일 병상이 누어 3-40년을 지낸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별별 불안함과 막막함이 밀려들기 때문에 불안하는 것이죠.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를 알려주시면 미리 대비할 수 있을 텐데, 그러면 불안하지 않을 텐데, 하는 신앙인들이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오늘 본문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본문 7절입니다.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 인간은 그 누구도 자기 장래 일을 알 수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약속의 땅을 향해 떠나지 않았습니까?

그렇기에 인간은 자신의 장래 일을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실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렇죠. 그래서 나의 장래에 대한 지혜자를 찾고자 하거나, 혹은 무당이나 점쟁이를 찾거나 혹은 스포츠 신문의 오늘의 운세 같은 것에 현혹되어 살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 주위에는 이래라 저래라 인간의 장래일을 말해 주려는 사람들이 있고, 또 기를 쓰고서 그런 사람들을 찾아 해메는 이들이 있죠.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만일 인간의 장래를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비성경적인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인간의 장래일에 대해 그 누구도 알 수 있는 인간이 없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모든 불확실한 장래 일 가운데서도 가장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알고 있는 게 있습니다. 인간의 죽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인간의 장래일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죽는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는 하나님 앞에서 셈하심을 받는다는 사실도 확실하죠. 그러므로 우리는 불확실한 것을 알려고 하기 보다는, 분명한 사실 곧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실은 그런 내일을 내다보며 매일매일 바르고 알차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롭고 현명한 방법입니다.

오늘 전도자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이해하기 힘든 것은 악인과 의인의 행위에 대한 결과가 불공평한 사실이라고 고백하죠. 14절에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이라.” 우리가 생각할 때 의인은 잘되고 악인은 벌을 받았으면 좋겠지만, 세상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는 다르게 흐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이해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게 인생이라고 말하죠.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15절에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을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 무엇을 일깨워주는 말씀입니까? 나의 불확실한 내일을 알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생의 삶 가운데 하루하루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을 먹고 마심으로 즐거운 인생을 살라는 교훈입니다. 어떻게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게 성경적인 가르침일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노아의 시대와 소돔과 고모라의 시대를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장사하고 집을 짓다가 망했다고 기록하고 있죠. 하지만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은 죄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만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 때문에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 그것이 곧 죄입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0619796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교보문고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product.kyobobook.co.kr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것, 우리 인생의 내일에 대한 부분 때문에 두려워하고 걱정하기 보다 그럴 시간이라면 차라리 하루하루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일용할 양식을 먹고 마시면서 즐거워하는 것, 곧 자족하며 살라는 교훈입니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