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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사도행전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행26:6-8)

by 똑똑이채널 2022.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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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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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엊그제 4개 지방 축구대회가 있어서 무안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그 차로 가는데 무당에 관한 이야기를 목사님들과 나눴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데 몇 천 만원짜리 굿을 한다는 것이죠.

 

그 무당 중에는 강신무가 있고 세습무가 있지 않습니까?

강신무란 내림굿을 받아서 무당이 되는 것이고, 세습무란 견습무처럼 배워서 무당이 되는 경우죠.

보통 외작두를 타는 무당들은 강신무로서 무당의 세계에서도 높은 단계로 알아주는 분들이죠.

 

하지만 아무리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 끝은 패가망신으로 끝나버린다는 점이죠.

귀신이 밤에 찾아와 무당에게 기도를 하라고 잠을 못 자게 하고 또 굿판을 벌여 돈을 벌면 그 돈을 다 탕진하게 만들죠.

그리고 1-3년은 신기가 대댄해서 잘 맞추는 것 같아도 4-5년만 되면 신기가 떨어지고 그 자녀에게 신을 받도록 귀신이 주도하죠.

일반 사람들은 집안에 화가 닥치거나 차를 사거나 배를 뛰울 때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무당을 불러 굿을 합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어떨까요?

예전에 전 단군교 교주인 김해경 목사 〈주여 사탄의 왕관을 벗었나이다〉로 유명한 그 분이 지방회에 와서 집회를 했다고 하죠.

이제 그 분이 집회를 끝내고 식사를 하는데 몇 몇 목사님들이 같이 밥을 먹으면서 자신을 봐 달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고 하죠.

물론 우스개 소리를 한 말일지 모르지만 목회자가 실제로 그 정도라면 기독교인들 중에 얼마나 많은 성도들을 무당을 찾아갈까 싶었습니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당을 찾아가 굿을 하고 무병장수하기를 바라는 욕망처럼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그릇된 것 아닐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참된 이유는 그 분이 천지만물의 주관자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생의 은혜를 베푸신 까닭이죠.

 

그런데도 무당을 찾아가 굿을 하듯이 내 화를 막고 복을 받기 위해서만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릇된 믿음임을 알 수 있죠.

 

(적용)실은 유대인들도 그런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솔로몬의 통치 사후에 남과 북으로 갈라진 이스라엘은 북왕국이 앗수르 제국에 의해 남왕국은 바벨론 제국의 의해 멸망했죠.

물론 남왕국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70년만에 포로귀환을 이루고 성전을 재건하고 살았지만 그 후에 페르시아에 로마제국에 압제를 받았죠.

 

그러니 구약성경의 선지자들은 끊임없이 메시아 곧 그 땅의 구원자를 하나님께서 보낼 것을 예언했죠.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스라엘 민족에게 메시아란 나라의 해방자요 민족의 독립자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 역시 정치적인 메시아 무병장수 부귀영화를 이룰 민족의 지도자를 메시아로 소망한 것이었죠.

 

그러나 우리가 신구약성경을 읽으면서 깨닫는 메시아는 그런 정치적인 메시아 부귀영화의 메시아가 아니죠.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주시는 메시아,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안식할 수 있도록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메시아였죠.

 

그만큼 하나님을 믿는 동기가 그릇되면 그 믿음의 가치와 방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찬양)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오직 주님만이 내 삶에 도움이시니

주의 얼굴 보기 원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온 맘과 정성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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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교보문고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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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바울은 신임 총독 베스도가 개최한 청문회장에 헤롯 아그립바 2세 왕 앞에 섰습니다.

아그립바 왕이 바울에게 말할 수 있는 권한을 허락하자 바울은 주늑들지 않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자 했죠.

그만큼 바울은 그 청문회장을 자기 변론을 위한 자리로 삼은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리로 삼았습니다.

 

그때 바울이 맨 처음 꺼낸 말은 자신의 삶을 모든 유대인들이 알고 있다는 것이었죠.

길리기아 다소 출신인 자신이 10대 후반에 예루살렘에 와서 모든 율법을 다 배우고 율법에 따라 살아온 삶을 모두가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청년을 지나 결혼할 무렵에는 율법에 더 열심이었고 율법에 어긋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서 감옥에 넣는 삶도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이었죠.

 

그렇다고 바울이 그 청년시절부터 결혼할 무렵까지,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 불의하게 재물을 모은 사람도 아니었죠.

만약 바울이 헤롯 아그립바 왕이나 신임총독 베스도처럼 돈과 권력만을 좇는 사람이었다면 모든 유대인들에게 그렇고 그런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말았겠죠.

하지만 바울은 그들과 달리 정말로 율법에 어긋남 없이 불의한 재물을 축적함 없이 바르고 정직한 삶을 살았기에 모든 유대인들이 그를 다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도 그의 올곧음 그의 신실함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는 율법에 올인했다면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올인한 삶이었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러 1차 2차 3차에 걸쳐 복음을 전할때도 부정축재하거나 불의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와 같은 신실한 삶을 모든 유대인들이 아는 바라고 바울이 첫마디 말을 꺼냈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우리 자신들도 언제 어디서나 신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내 삶의 환경이나 상황이 바뀌어도 결코 신실한 삶을 내 팽개칠 수 없다는 것 말입니다.

 

(본문)오늘 본문은 그 이후의 상황을 전해주는 말씀으로서 본문 6-7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원해)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이 신문받는 이유를 밝히고 있는 말이죠.

그 이유에 대해 맨 먼저 말한 것은 하나님게서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라는 것입니다.

그 약속은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섬김을 통해 얻기를 ‘바라는 바’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바라는 까닭이니’ 또 ‘바라는 바’는 헬라어로 ‘엘피스’(ἐλπίς)입니다.

그 말은 ‘소망’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바라는 것은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 곧 이스라엘 12지파가 간절히 얻기를 바라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포함해 모든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을 받는 것, 그것이 자신이 소망하는 바요 이스라엘 민족이 소망하는 바라는 거죠.

 

(깨달음)그런데 그 소망으로 말미암이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바울이 소망하는 하나님의 구원과 이스라엘 12지파 곧 유대인들이 소망하는 구원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죠.

 

이스라엘 12지파 곧 유대인들이 소망하는 구원이 무엇입니까?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로마에 압제를 당하는 이 암울한 상황을 타개하고 이스라엘 민족의 독립을 가져올 메시아였죠.

지금 아그립바 왕 앞에서 함께 바울의 변론을 듣고 있는 대제사장 무리들도 실은 그런 독립 정치적인 독립 경제적인 번영의 통치자인 그런 메시아를 꿈꾸는 소망을 품고 있는 것이죠.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신들이 하나님께 구원받는 길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이 대부분의 유대인들 그리고 그 심문장에 참석한 대제사장 무리들이 바라는 하나님의 구원이죠.

마치 무당을 통해 액땜을 면하고 부귀영화만을 좇는 사람들과 똑같은 격이죠.

 

그렇다면 바울이 소망하는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입니까?

바울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들과 다르지 않는 소망을 품고 있었겠죠.

나라의 독립을 가져올 메시아, 정치와 경제면에서 로마를 몰아내고 모든 면에 부귀영화를 가져올 메시아를 만나는 것 말이죠.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부터는 어떤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게 되었습니까?

십자와 부활을 통해 죄와 사망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구원이었죠.

그 구원이야말로 인간의 욕심과 탐욕에서 자유케 하시는 구원이요, 실은 이 땅의 육신적인 구원을 넘어 영원한 구원을 베푸시는 것임을 알았던 것이죠.

이것이야말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믿는 참된 신앙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어떻습니까?

본문의 청문회장에 함께 참석한 대제사장 무리들 그리고 수많은 유대인들이 바울이 전하는 그 구원의 복음을 소망하지 않았죠.

오히려 지금 당장의 현실적인 문제 먹고 입고 살아가는 경제와 정치적인 해방만을 바라는 그런 소망을 꿈꾼 그들이었죠.

그러니 바울이 아무리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도 그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는 것이죠.

오히려 그들은 바울이 율법을 어지럽히는 자요 모든 유대인들의 참된 구원의 소망을 방해하는 자라면서 고발한 것이죠.

 

(전개)그래서 바울이 오늘 본문 8절을 통해 이렇게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실까요?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시나이까.”

 

(깨달음) 무슨 뜻입니까?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대제사장 무리들이여, 그리고 함께 참석한 유대인들이여, 왜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지 못하시는 것입니까, 하는 말이죠.

하나님께서 천지의 창조주이심을 믿는다면, 그 분에게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믿는다면, 얼마든지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죽음에서 살리신 것을 믿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하고 전한 것이죠.

 

왜죠?

자신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이죠.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도 능히 살리시는 분임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만났기 때문에 말입니다.

 

(원성)바로 그 예수님을 만난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믿음에 들어서게 된 것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고백을 하죠.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2:8)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찾아와 만나 주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선물을 부여해주셨기에 자신이 진정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구원의 선물을 받은 자는 이 땅의 부귀영화나 정치나 경제적인 부분의 메시아를 소망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의 구원을 받은 자는 이 세상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바울이 구원의 선물을 받은 것으로 끝나버렸습니까?

아니죠.

1차 2차 3차 복음전도 여행을 떠난 것도, 그리고 지금 청문회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것도 하나님의 선물을 받은 자답게 순종하는 모습인 것이죠.

구원의 선물을 받은 이후에 그 감정에만 충실한 게 아니라 그의 온 의지를 다해 주님께 복종시키는 삶을 산 바울인 것이죠.

 

무당을 믿는 자들은 한 순간의 액땜을 면한 것에 기뻐한 채 그의 의지를 다해 무당에게 복종하지 않습니다.

바꿔 말하면 무당을 믿고 굿을 하듯이 신앙을 지닌 자들은 그의 의지를 다해 주님께 복종하지 않는 법이죠.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구원받은 자들은 한 때의 감정뿐만 아니라 남은 일생도 주님께 복종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무당을 섬기듯 주님을 섬기는 자가 아니라 진정으로 구원받은 자로서 온 의지를 다해 주님께 복종하며 사는 은혜를 베풀길 원하시는 것이죠.

 

(주음성)그래서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지금도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무당을 찾아가는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아느냐?”
심지어 기독교 무당들을 찾아 기도받는 이들이 얼마나 많더냐?”

그렇다 한들 천하 범사의 때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때를 그들이 알고 있겠느냐?”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요 그 분안에서 영생을 믿는 것 아니더냐?”

그런데도 이 땅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단군교 교주였던 그에게 기도를 부탁하듯이 무당에게 굿을 하는 심정으로 믿고 있지 않느냐?”

본문 속에 등장하는 대제사장 무리들과 수많은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믿되 자신들의 정치적인 해방자 부귀영화를 이루어줄 그런 구원을 꿈꾸고 있는 것 아니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너의 믿음이 정말로 바울과 같은 믿음인지, 참되고 신실한 믿음인지 돌아봐야 하지 않겠느냐?”

너도 무당을 찾아가 굿을 하는 그런 기독교인들과는 달리 영원하고 참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으면 좋겠구나.”

하나님께서는 너를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기 위해 흥하게도 하시고 패하게도 하시는데, 그 모든 주권의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했으면 좋겠구나.”

본문 속에 등장하는 아그립바 왕이나 베스도 총독이나 대제사장 무리들은 이 땅의 권력과 금권에만 눈이 먼 종교인들의 모습이지 않더냐?”

오직 너는 바울처럼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넘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그 분 안에 거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찬양)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하나님 나의 마음 만져 주소서

하나님 나의 영혼 새롭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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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면 볼 수 있어요 | 권성권 | 유페이퍼- 교보ebook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도 그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들도 꿈을 꿀 수 없는 상태다.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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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에 기도할 때 그렇게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이 땅의 것, 이 땅의 부귀영화를 이루어주길 바라는 그런 소망으로 주님을 믿는 믿음이어서는 안되는 것이죠.

오직 죄와 사망에서 건져주신 구원의 선물, 그 선물은 이 땅의 것을 넘어 영원한 세계를 베풀어주시는 은혜 아닙니까?

 

그런데도 혹여 내가 무당을 좇아 굿을 하듯이 하나님을 섬기며 부귀영화를 꿈꾼 믿음이었다면 깨어나게 해 주세요.

오직 하나님을 나의 창조주 하나님으로, 오직 진리와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소망하며 살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 은혜가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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