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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사도행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행26:1-4)

by 똑똑이채널 2022.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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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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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성화)예수님을 두 번째 만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향해 한 말이 있었죠.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36)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예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실 메시아 곧 구원자란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그 말을 할 때 그 곁에 세례 요한의 제자 두 명이 함께 하고 있었죠.

이른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요한이었죠.

그들은 그들의 스승인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향해 “봐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할 때 그때부터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며 따르기 시작했죠.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그 제자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무엇을 구하느냐?”

들은 세례자 요한의 제자 두 명 이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1:38)

 

그 말씀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너희들이 나를 따르고 있는데 내게서 무엇을 구하느냐, 내게서 무엇을 얻고자 하느냐, 하고 물으신 것이었죠.

그때 두 명의 제자들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랍비여, 선생님, 어디에 계시는 것입니까?”

‘선생님, 어디에 살고 계십니까?’하는 뜻이었습니다.

 

왜 그들이 예수님이 살고 계신 곳을 물은 것이었을까요?

자신들이 여태껏 스승으로 모신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있었죠.

그러니까 자신들의 스승이 더 높은 스승을 소개했는데, 과연 그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을 직접 가서 보길 원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장 39절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까?

예수님은 그 두 명의 제자들에게 당신이 사는 모습을 다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 명의 제자가 예수님이 사신 곳을 보고서 함께 거했는데, 그때가 열시 곧 오후 4시경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몇시에 예수님이 사신 곳을 보고 몇 시간 동안 예수님께 함께 거했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예수님이 사신 곳을 보고 그곳에서 예수님과 동행하고 오후 4시 이후에 어떤 일이 있었냐는 것이죠.

두 제자 중 하나인 안드레가 곧장 형 시몬을 찾아가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어요’(요1:40-42)하는 말이었다는 점입니다.

 

안드레가 자기 형 시몬 베드로에게 왜 그런 말을 했겠습니까?

자기 스승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지 예수님이 사신 곳을 보니까 정말 그런 것이었죠.

어떠한 꾸밈이나 가식적인 삶이 아니라 자기 스승 세례 요한보다도 더 진실된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이죠.

그렇게 삶의 현장을 보고 나서, 이 분은 정말로 하나님의 어린양 곧 메시아요 구원자이구나, 하고 형에게 말한 것이었죠.

바로 그때부터 안드레는 예수님에 대한 호칭을 선생님에서 메시아 곧 구원자로 부른 것이었습니다.

 

(적용)예수님에게는 그만큼 세상의 랍비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삶이 스며 있다는 것을 안드레가 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가 그 삶에 베어 있다는 것을 안드레가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이 땅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진정한 메시아임을 삶을 통해 알게 된 것이었죠.

 

오늘을 사는 나 자신도 꾸미거나 가식없는 진실된 삶이 드러나 있는지 우리 스스로 알 수 있죠.

나를 아는 세상 사람들도 뭔가 꾸미거나 감춘 것 없이 진실되게 사는 사람이라고 말이죠.

그것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드리는 삶이요, 모습 그대로의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모습이죠.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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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2년간 헤롯궁의 지하 감옥에 감금된 바울은 베스도 총독이 개최한 청문회장에 불려나왔습니다.

그 자리에는 헤롯 아그립바 2세와 그의 아내 버니게 그리고 고관들이 서 있었죠.

더욱이 그 자리에는 신임 베스도 총독과 그의 부하 천부장들과 가이샤라 시의원들도 함께 하고 있었죠.

그들은 저마다 최고급 왕복과 관복과 의복을 입고 자신의 위치와 위세를 자랑하듯이 서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 비하면 2년간 지하 감옥에 감금된 바울의 몰골과 옷차림은 흡사 거지꼴과 다를 바 없었죠.

 

바울이 그렇게 거지꼴을 하고 그 청문회장이 불려나왔을 때 아그립바 왕은 바울에게 말할 기회를 줬죠.

바울은 그때 위축됨 없이 손을 내밀며 아그립바 왕 앞에 변증하는 걸 ‘다행’이라고 복이라고 말하죠.

 

그것은 20여년 전 다메섹 도상에서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신 것이기 때문이죠.

그때 주님은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나의 택한 그릇’이라고 말씀했죠.

그로부터 지난 20년간 1차,2차,3차 전도여행을 통해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음을 전했죠.

그러나 임금 곧 왕에게는 한 번도 복음을 전하지 못했는데, 드디어 왕 앞에서 복음을 전하게 돼서 감격하면서 손을 들어 찬양한 것입니다.

 

(깨달음)중요한 것은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오늘 우리를 향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수시로 변덕을 부리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상황속에서 신실하게 우리의 삶을 주장하시는 줄 믿습니다.

 

(찬양)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 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본문)오늘 본문은 그 이후의 상황을 전해주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증언하고 있는 본문 3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원해)이 말씀을 원문 그대로 옮기면 이런 말이 됩니다.

‘아그립바 왕이여. 당신은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율법의 쟁점들에 관한 전문가이십니다’하는 뜻이죠.

 

왜죠?

이제 부임한 신임총독 베스도는 유대인의 율법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아그립바 왕은 예루살렘성전 성전 관리자인 대제사장에 대한 임면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만큼 그는 유대인들의 풍속과 율법의 쟁점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띄워준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자신의 상황에 대해 말할 터이니 ‘너그러이’ 잘 들어달라고 하는 것이죠.

 

그리고서 바울이 하는 말이 본문 4절에 나와 있는데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실까요?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원해2)바울은 본래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났습니다.

10대 후반에 예루살렘에 유학을 와서 최고의 율법 선생인 가말리엘 밑에서 율법에 대해 배웠죠.

그러다 청년기에 유대교의 신봉자가 되었고, 바리새파에 속한 사람으로서 율법의 신봉자가 되었죠.

그래서 율법을 어긴 자는 배척하고 그 반대편에 선 자들은 처단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유대교의 적대세력인 기독교인들을 죽이고 체포하는데 그 누구보다도 열심을 낸 이유도 그거였죠.그런 자신의 삶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활한 상황’으로 번역된 헬라어 ‘비오쉬스’(βίωσις)는 ‘삶의 양식’(way of life)입니다.

바울이 율법에 사로잡힌 그 바탕을 이루는 생활양식까지 다 드러나 있었다는 뜻입니다.

바꿔 말하면 그가 율법에 충실한 그 삶과 그의 내면적인 모습이 불일치나 불의함이나 꾸밈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그의 겉과 속이 일치하는 삶으로 누구보다도 투명했기 때문에 모두가 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삶은 일말의 숨김도 없이 매사에 그렇게 투명하게 살아왔다는 뜻입니다.

 

(깨달음)만약 바울이 그때까지 불의한 삶을 살았다면 모두가 그를 알아주고 인정해줬겠습니까?

그가 율법의 의를 부르짖으면서 부당하게 욕심을 챙기는 삶이었다면 스데반을 죽일 때 증인으로 서 있는 그의 삶을 누가 믿어주려 했겠습니까?

 

바로 그것이 예수님을 향해 세례 요한이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했는데, 그의 두 제자가 보인 반응과 같은 격이죠.

예수님께 나아갔는데, 예수님의 생활양식이 엉망이었다면, 안드레는 예수님을 향해 메시아라고 부르지 않았을 것이란 말이죠.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거짓없는 삶이었기에 모든 유대인들이 그를 알고 그를 믿어줬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이 꾸밈이나 가식이 없는 삶이었기에 안드레가 베드로에게 메시아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죠.

 

(원성)그런데 바울의 그 모습은 청년 시절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사도행전 20장을 보면 바울이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에게 유언을 남기는데, 그때의 말씀이 이렇습니다.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20:18

 

그 말씀을 헬라어 원문의 순서대로 번역하면 이런 의미입니다.

여러분도 알고 있습니다. 아시아에 첫발을 내디딘 이래 내가 여러분 가운데서 항상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말입니다

 

(깨달음)바울이 3차전도 여행 중에 에베소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지난 3년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에베소교회 장로인 여러분이 다 알고 있다고 한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들 앞에서 뭔가 감추거나 포장하지 않은 진실되게 살아온 삶을 말이죠.

에베소교회를 섬기면서 약한 사람들을 도운 일도, 주고자 한 삶도 다 알고 있지 않냐는 것이죠.

 

그만큼 바울은 청년때부터 주님을 영접한 이후 지금까지 감춘 것 없이 투명한 삶을 살아온 걸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청년 바울이 자신의 사욕을 채우고자 율법에 열심을 부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바울이 불의한 욕심을 채우기 위해 교회를 짓밟고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다면 어땠을까요?

바울은 아그립바나 베스도 총독처럼 불의한 재물을 숨기기에 바쁜 삶으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겠죠.

그로 인해 유대인들 중 누구도 그를 기억해주고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적용)그렇기에 오늘을 사는 나 자신은 어떠한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의 겉모습과 속 모습의 생활양식이 감춘 것이 진실되게 살아가고 있는 목사인지 말이죠.

예배당 안에서 성도로 사는 모습이 삶속에서도 신실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죠.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주문)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투명한 삶을 사는 은혜를 베푸시길 원하신다는 것이죠.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안드레와 요한이 예수님의 말씀만 믿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여긴 것은 아니지 않았더냐?”

예수님이 살고 있는 그의 거처를 보고 안드레가 자기 형 베드로에게 메시아를 만났다고 말하지 않았더냐?”

예수님은 그만큼 겉만 번지르한 말을 하신 분이 아니라 그의 삶도 꾸미거나 감춘 것 없이 다 드러내며 살지 않았더냐?”

청년 시절에 바울도 뭔가 꾸미거나 불의한 재물을 탐하는 삶이었다면 누가 그를 다 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오히려 그가 감춘 게 많고 불의를 좇고 탐하는 삶이었다면 그의 삶을 누군들 알 수 있었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하나님 보시기에 너의 동료들이 보기에 겉과 속이 감춘 것 없이 투명한 삶을 살고 있느냐?”

하나님 앞에서도 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살고 있고, 사람들 앞에서도 감춘 것 없이 진실되게 살고 있느냐?”

하나님께서는 네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교회에서나 세상 속에서나 투명하고 진실된 삶을 원하지 않겠느냐?”

바울의 신실하고 투명한 그 삶을 통해 구원의 통로로 삼은 것처럼 너를 통해 그런 역사를 이루길 원치 않겠느냐?”

 

(찬양)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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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주일 저녁에 두 명의 젊은이가 타락하기를 작정하고 도박장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도박장 바로 옆에는 한 작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도박장으로 들어가던 두 청년 중 한 명은 우연히 교회 입구에 적혀있던 주일의 설교제목을 봤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라고 쓰여 있었죠.

 

그 글귀를 보자 그 청년의 마음에 갑자기 죄 의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다른 친구에게 “야, 우리 오늘 도박장에 가지 말고 교회에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한번 결심을 했으면 가야지. 교회라니 무슨 소리야?”라며 단번에 거절했죠.

 

결국 한 사람은 처음 결심한 대로 도박장으로 갔고, 다른 사람은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그 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 청년은 설교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 때 회심한 청년은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 미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 클리브랜드(Cleveland) 대통령입니다.

이전에 그가 그런 삶을 살아왔던 걸 그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바였죠.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는 그 순간, 30년 전 도박장을 선택했던 젊은이는 감옥에서 자신의 친구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기사를 읽게 되었죠.

그는 친구의 취임 소식을 듣고 가슴을 치며 후회했습니다.

과거 한 순간의 선택이 자신들의 삶을 얼마나 다르게 만들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에 말입니다.

 

(적용)오늘 우리 자신의 모습도, 앞으로 보여주게 될, 우리의 모습도 그와 똑같지 않겠습니까?

내가 무엇을 쫓아 사는지, 내가 무엇을 품고 사는지, 그 신실함 속에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결정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부족하지만 부족한대로 주님 앞에 사람 앞에 감추인 것 겉이 투명하게 드러내 주님을 섬길 때, 주님은 복되게 하신 줄 믿습니다.

내 능력이나 내 기술 내 재능보다 오직 주님의 은혜를 더 구하며 주님의 신실한 자녀로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많은 것을 움켜쥐려고 주님의 길을 떠나서 사는 삶이 아니라 부족해도 주님을 더욱 가까이 하며 영원한 것을 선택할 때 축복의 문을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

 

(내기도)그러니 우리가 주님 앞에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할지 알 수 있겠죠.

“주님, 순간이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게 된다는 걸 깨닫습니다.”

“저희들이 무언가를 선택할 때 겉과 속이 다른 것을 선택하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늘 한결같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을 떠나는 도박장과 같은 삶이 아니라 주님을 더욱 가까이 하는 삶을 택하여 살게 하소서.”

“세상 사람들이 나를 보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을 알 수 있도록 늘 바른 길을 택하며 살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님께 인정받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주님의 자녀임을 인정받게 하시옵소서.”

“그 삶이 주님을 찬양하는 삶이요, 주님께서 복주시는 삶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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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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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들여다보는 쇼윈도 곧 진열장과 같은 삶입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듯이 우리의 순간순간이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투명한 삶을 선택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런 모습이 쇼윈도처럼 어디에도 숨기거나 감추는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사람들 앞에 진실되게 살아갈 수 있기 바랍니다.

그때 주님과 모든 유대인들, 모든 에베소교회 장로들이 바울을 알고 있는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을 주님과 사람들이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복된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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