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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사도행전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행25:23-27)

by 똑똑이채널 2022.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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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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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모든 나무에게는 생명과 질서의 법칙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겠습니까?

오래된 나무일수록 그리고 강인한 나무일수록 밑가지가 튼튼하다는 것이죠.

그 가지가 받쳐주기 때문에 새로운 가지가 힘차게 뻗어 오를 수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만약 오래되고 강한 가지들이 해마다 윗가지가 되고자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나무는 그런 가지들의 무게로 인해 꺾이고 결국은 죽게 될 뿐이겠죠.

해가 바뀌었는데도 지난 해에 나온 윗가지가 또 다시 윗가지로 있으면 그 나무는 죽은 나무와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깨달음)그것은 비단 나무뿐만이 아니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이치와 질서의 법칙이 동일합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부모가 밑가지가 되어야 하고 자식은 그 밑가지에서 뻗어 나가는 새로운 가지와 같은 것이죠.

그 가지가 더욱 튼튼하게 자라 또 다른 가지가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입니다.

 

그것은 기업도 그렇고 국가 경영도 그렇고 실은 교회도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공동체는 그 구성원들이 나이가 들수록 서로를 위해 밑가지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가지를 통해 새로운 가지가 뻗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새로운 성도가 나왔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오래된 성도는 ‘왜 나왔냐?’ ‘뭐하러 왔냐?’ 이렇게 말하면서 왠지 기선제압하려고 하면 될까요?

오히려 누가 새로 나왔든 ‘잘 나왔다’면서 먼저된 이들이 밑가지로 섬겨주는 게 정말로 중요한 일이죠.

 

그런데도 만약 오래된 구성원들이 매해 새로운 가지처럼 돋보이고자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공동체는 더이상 자랄 수 없가 없는 것이죠.

점점 썩게 되는 것이죠.

 

(적용)교회를 이루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교회를 이루고 있는 공동체 한 사람 한 사람들이 밑가지가 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입니다.

새로운 성도가 나왔을 때 오래된 가지처럼 받쳐줄 때 아름답고 선한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것이죠.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새로운 신임총독 베스도가 가이사랴에 온 지 3일만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예루살렘 대제사장과 지도층 인사들을 만났죠.

그때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무리들은 바울을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에 끌고 와 심문하자고 청원했죠.

그것은 정식 재판을 염두에 둔 게 아니라 바울을 이송하는 도중에 암살단을 통해 죽이려는 음모였습니다.

신임총독 베스도는 그들의 청원을 정중하게 거절하면서, 대신에 자신이 가이사랴에 내려가니 함께 가서 재판하자고 말했죠.

그때 베스도 총독을 따라나선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무리들은 바울을 다시금 심문했지만, 2년 전과 달라진 게 하나 있었죠.

2년 전엔 돈을 들여 변호사 더둘로를 고용했지만 그것이 아무 효과가 없다는 걸 알고 이번에는 직접 바울의 죄를 고소했죠.

바울도 그때 2년 전과 동일하게 하나님에 대해서, 성전에 대해서 어떤 죄도 짓지 않고 오히려 신실하게 복음을 전할 뿐이었다고 변호했죠.

 

그러자 양쪽 말을 다 들은 신임총독 베스도는 바울에게는 로마법을 위반한 어떤 죄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단지 있다면 유대인들의 율법과 신흥 종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문제였죠.

그때 신임총독 베스도는 바울을 풀어줄 수도 있었지만 예루살렘에서 온 대제상 무리들을 위해 정치적인 제스쳐를 썼죠.

“바울아, 네가 이곳을 떠나 예루살렘에 가서 산헤드린 법정에서 재판을 받겠느냐? 나도 그곳에 가겠다.”

그러자 바울이 뭐라고 대답을 했습니까?

지난 시간 살펴본 대로 바울은 “아닙니다. 로마 황제 가이사의 법정에 서겠습니다.”하고 말했죠.

로마 시민권자인 바울이 로마 황제의 법정에 서겠다고 말할 때, 더 이상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베스도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죠.

 

(깨달음)이와 같은 모습을 통해 지난 시간 깨달은 바가 무엇이었습니까?

만약 바울이 이때 “나는 죄가 없는데, 더 이상 나를 감옥에 가둬두지 말고 풀어주시오”라고 요청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바울은 비록 풀려날지 모르지만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무리들이 음모를 꾸며 쥐도새도 모르게 바울을 죽여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로마 황제의 법정에 서겠다고 한 것으로 인해 바울은 이때부터 군인들의 감시와 보호 속에서 로마로 이송받게 되죠.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섭리 속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입니다.

2년간 바울은 헤롯궁의 지하 감옥에 갇혀 지냈지만 그 속에서도 낙담하지 않고 주님을 더 앙망하며 주님의 뜻을 받들었죠.

하지만 그 2년 동안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무리들은 수많은 번제를 드렸어도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뜻만 고집했던 것이죠.

 

그래서 우리도 예배를 드리면 드릴수록 내 뜻을 꺾고 주님의 뜻을 좇아 나아갈 때 주님의 섭리 속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신다는 걸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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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오늘 본문은 그 이후의 상황을 증언해주는 말씀입니다.

로마 황제에게 상소한 바울의 의견을 들은 신임총독 베스도는 새로운 임무를 수행해야 했죠.

이른바 바울의 상소에 대해 로마 황제이 법정에 제출할 보고서를 작성해 보내는 게 그것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인데 때마침 며칠이 지나 갈릴리와 베레아지방의 분봉왕 아그립바 2세가 신임총독 베스도를 만나고자 찾아온 것이죠.

물론 아글립바 2세는 혼자 온 게 아니라 왕비 버니게와 여러 관료들과 호위병을 거느리고 왔죠.

 

아그립바 2세는 사실 헤롯 대왕의 증손자였습니다.

그는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이면서도 예루살렘성전의 감독권을 갖고 있었고 대제사장에 대한 임명권까지 갖고 있었죠.

아나니아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 이스마엘로 대제사장을 교체한 인물이 바로 아그립바 2세였던 것이죠.

그러니 그의 위세가 얼마가 셌겠습니까?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무리들은 헤롯 아그립바 2세에게 얼마나 또 잘 보이고자 했을지 능히 짐작할 수 있죠.

 

그런데 그의 왕비 버니게는 사실 그의 여동생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도 자신의 숙부를 포함해 두 남자를 거쳤던 버니게는 본문에서 자신의 오빠와 불륜에 빠진 것이었죠.

그러다 그 후에는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로마의 황제가 된 티투스 장군의 정부가 된 여인이 버니게였습니다.

 

바로 그 아그립바 2세가 왕비와 관료들과 호위병들을 거니라고 가이사랴에 왔을 때 신임총독 베스도는 바울의 이야기를 꺼낸 것입니다.

왜일까요?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소했으니 황제의 법정에 제출할 보고서를 작성코자 한 것이죠.

그를 위해 유대인의 종교법을 잘 알고 있는 아그립바 2세의 조언을 구하고자 한 것입니다.

 

(본문)오늘 본문은 바로 그 상황을 전해주는 말씀인데 본문 23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원해) 여기에 ‘위엄’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판타시아’(φαντασία)입니다.

그 뜻은 ‘화려함’(Pomp), ‘화려한 외모’(showy appearance)를 가리키는 말이죠.

‘위엄’이란 한 마디로 ‘보여주기식 쇼’(show), ‘과식’이라 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분봉 왕 아그립바는 유대 지방의 신임총독 베스도와 첫 대면을 위해 가이사랴를 찾아온 것 아닙니까?

그러니 신임 총독 앞에서 자기 자신을 얼마나 과시하고자 했겠습니까?

그래서 왕복 중에서도 가장 값비싼 자주색 왕복을 입었겠죠.

머리에는 띠 모양의 금 왕관을 썼을 것이구요.

 

아그립바 왕이 그렇게 꾸미고 나타났다면 왕비도 그에 버금가도록 꾸미지 않았겠습니까?

그녀도 가장 돋보이는 왕비복과 관으로 치장을 했겠죠.

더욱이 아그립바 왕을 수행하는 대신들 역시도 가장 화려한 관복을 착용했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그립바 왕과 그 수행원들을 맞이하는 신임 총독 베스도는 어떻게 했을까요?

그 역시도 대로마제국의 총독임을 과시하고자 가장 값비싼 주홍색 관복을 입지 않았겠습니까?

그 총독 밑엔 로마군으로 구성된 다섯 개 사단이 주둔하고 있고 다섯 명의 천부장이 거느리는데 그들고 마찬가지였겠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문에 참석한 이들은 ‘시중의 높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가이사랴 시의회의 의원들입니다.

그들 역시도 저마다 멋진 의복을 입고 그 자리에 나타났을 것입니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권력과 지위에 걸맞는 모습을 뽐내고자 ‘크게 위엄’을 갖추면서 자기 과시의 옷을 입고 참석한 거죠.

 

그런데 바로 그 장소에 바울은 어떤 모습을 하고 불려 나갔을까요?

바울은 지금 2년 동안 헤롯 궁의 지하 감옥에 감금된 상태였습니다.

바울의 옷차림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 비하면 누더기와 같은 옷을 입고 불려 나왔을 것입니다.

 

옷 뿐만 아니라 바울의 몰골은 또 얼마나 초췌했겠습니까?

머리나 수염인들 제대로 깎고 나타났겠습니까?

전승에 따르면 바울은 키가 작고 대머리였고 눈썹은 일자였고 코는 메부리코였고 다리는 안짱다리였습니다.

그들 모두가 가장 화려한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위엄을 갖춘 모습에 비하면 바울은 그야말로 초췌한 모습 그 자체였겠죠.

 

(깨달음)하지만 그들의 화려한 모습과 바울의 초라한 모습을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어떻겠습니까?

바울의 모습이야말로 오히려 가장 아름답고 선한 모습 아니겠습니까?

그 자리에 참석한 이들은 저마다 값비싼 관복과 의복을 입고 나타난 자들입니다.

어떻게 하면 한 단계 더 오를까 하는, 자기 욕망에 찌든 악취만 진동하는 모습이죠.

 

그들에 비해 바울의 몰골은 흉측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의 심령 속에는 생명과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 차 있었죠.

그러니 바울의 모습은 겉사람은 후패하나 그 속은 더 깊은 생명의 향기가 배어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적용)과연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울은 언제 어느 때나 주님 안에서 밑가지임을 자처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부터 지금까지 생명의 질서와 법칙을 거스른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자신이 복음을 전한 곳에서도 자신의 기득권을 내세우며 윗가지로 군림하려 한 적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언제나 복음의 증인으로 사람들을 복음 위에 세워 주는 밑가지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가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죠.

그의 외모는 비록 초라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의 삶에서는 항상 생명의 향기가 스며 나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그립바 왕과 그 부하들과 그 자리의 심문 내용을 통해 조서를 쓰고자 한 신임총독 베스도와 그 부하들은요?

그들은 저마다 화려한 관복과 제복을 입고 자기 자신을 과시하며 언제나 윗가지가 되고자 한 자들 아닙니까?

지금보다도 더 높은 가지가 되고자 안달하던 그들에게는 언제나 대립과 분열과 다툼만 난무하게 되는 것이죠.

 

(원성)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한 것 아닙니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

 

(깨달음)자기 자신을 부인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밑가지가 되는 걸 말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뜻을 받드는 공동체에서 밑가지로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이 곧 주님을 따르는 삶이니 말입니다.

 

바울이 바로 그런 삶을 살았던 것이죠.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우리 주님은 주님의 뜻을 받드는 공동체에서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밑가지가 되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죠.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주님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나는 네가 주님의교회 공동체에서 밑가지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세상 사람들은 해를 더할수록 더 높은 자기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려고 하지만 주님의교회에서는 그 반대의 길을 걸어야 하지 않겠느냐?”

헤롯 아그립바2세와 그 왕비와 부하들도, 신임총독 베스도와 천부장들도, 가이사랴의 시의원들도 저마다 자신의 자리와 입은 옷을 뽐내며 더 높은 자리를 안달하는 자들 아니더냐?”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큰 나무의 생명과 질서의 법칙처럼 이름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밑가지가 되는 걸 기뻐하지 않겠느냐?”

바울이 언제나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의 밑가지로 자처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나무가 큰 나무가 되고 그 나무가 더 튼튼한 나무가 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그 나무를 지탱하는 밑가지들이 더 든든하기 때문이지 않더냐?”

주님의교회를 받드는 너도 주님보시기에 든든한 밑가지가 되는 걸 너무나도 기뻐하지 않겠느냐?”

네가 교회의 기둥같은 밑가지가 될 때 너를 통해 새로운 가지가 더 아름답게 뻗어나가지 않겠느냐?”

그 길은 언제 어디서나 너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묵묵히 짊어지고 나아갈 때 너를 통해 주님께서 역사하시지 않겠느냐?”

 

(찬양) 당신의 그 섬김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겸손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믿음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충성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주님이 기억하시면 족하리 예수님 사랑으로 가득한 모습

천사도 흠모하는 아름다운 그 모습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순종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사랑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찬송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헌신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주님이 기억하시면 족하리 불타는 사랑으로 가득 찬 모습

천사도 흠모하는 아름다운 그 모습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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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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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생명이 있는 나무는, 더 견고하고 아름다운 나무는, 언제나 밑가지가 잘 받쳐주기 때문이죠.

회사도 기업도 국가도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교회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를 주님의교회에 밑가지가 되어 더욱더 생명있는 나무 더 아름답고 견고한 나무와 같은 교회가 되길 원하실 것입니다.

본문 속에 등장하는 헤롯 아그립바2세나 왕비나 그 밑의 관료들은 물론이고 신임총독 베스도와 그 밑의 군사들도 다들 윗가지만 되고자 한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언제 어디서나 자기 자신을 부인하며 주님의 밑가지가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을 위한 밑가지로 살아갈 때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 더욱 아름답고 선한 가지들을 뻗어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와 같은 은총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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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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