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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사도행전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행26:9-12)

by 똑똑이채널 2022.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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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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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성화)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집트의 노예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후 50일째 되는 날 시내산에서 언약식을 체결했고 성막설계도대로 7개월에 걸쳐 성막을 만들었죠.

 

출애굽한지 1년이 지난 2년 1월 1일 성막을 펼치고 모세를 불러 한달간 레위기의 율법을 가르쳤죠.

2월 1일에 광야행진을 준비하는데 20일 동안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머물 진영을 알려줬죠.

드디어 2월 20일에 은나팔 소리와 함께 행진을 시작했죠.

그때 남자 장정만 60만3천5백50명,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250만 명은 족히 되었겠죠.

 

문제는 행진하자마자 후미에 따라잡은 잡족들이 불평과 원망을 터트렸습니다.

그 뒤 가데스 바네아에 당도했을 때 12명의 정탐꾼을 보냈는데 40일만에 돌아온 그들은 두 가지 보고를 했죠.

10명의 정탐꾼은 그 땅이 포도와 무화과처럼 먹을 게 많지만 메뚜기 같은 우리로는 정복할 수 없다고 보고했죠.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능히 그 땅을 정복할 수 있다는 보고를 했죠. 

 

(깨달음)그때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밤새도록 통곡하면서 모세를 죽이고자 위협하고 원망했죠.

그러면서 다시금 애굽으로 돌아갈 지도자를 세우자고 할 정도였죠.

그러나 그 속에서도 여호수아와 갈렙은 모세와 아론과 협력해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했죠.

 

비율로 따지면 60만3천546대 4의 비율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능히 정복할 수 있는 비율은 0.001%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0.001%에 불과한 그들을 통해 가나안 땅을 정복케 하는 일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소수를 통해 일하신다는 걸 알게 하시는 일이었죠.

 

(적용)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일하시는 분이 아니란 사실 말입니다.

모두가 N0하는 일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능히 할 수 있다는 믿음의 사람 그 소수의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주님인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바울은 아그립바 왕의 요청으로 베스도 총독이 개최한 청문회장에 서서 자기 변증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변증은 자기 자신이 풀려나고자 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는 기회로 삼고자 함이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의 풍속과 율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헤롯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이 유대인으로 살아 온 것을 많은 유대인들이 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바울은 율법에 정통한 자로 율법에 불의함 없이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뜻이었습니다.

 

지금 자신이 이 청문회장에 선 것도 하나님께서 조상에게 약속하신 걸 소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죠.

구약시대 12지파의 후손들이 바라는 그 메시아에 관한 소망 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을 바라는 것 말이죠.

물론 그 자리에 참석한 대제사장 무리들과 수많은 유대인들이 소망하는 메시아는 정치적인 메시아였습니다.

로마를 몰아내고 유대의 정치와 경제와 권력을 다시금 되찾아 줄 그런 메시아 말이죠.

 

실은 바울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그런 메시아를 꿈꾸고 있던 바리새인이었죠.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 바울에게 찾아왔을 때 그때 비로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메시아를 알게 되었죠.

 

바로 그 메사아,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소망 때문에 지금 고소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면 십자가에 제물 되어 죽으신 예수님을 얼마든지 살릴 수 있는데도 왜 믿지 못하느냐고 반문했죠.

그것은 헤롯 아그립바 왕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참석한 대제사장 무리들과 유대인들을 향한 반문이었죠.

 

(깨달음)바울의 그 반문을 통해 우리가 지난 시간에 깨달은 바가 그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참된 소망은 이 세상의 것만이 아니라 이 세상 너머의 영생의 나라라는 사실 말입니다.

하지만 무당을 좇듯 자기 소원성취만을 위해 주님을 믿는 자들은 이 세상만을 소망하는 자들과 다를 바 없죠.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은 이 세상을 넘어 영생의 나라를 소망하는 줄 믿습니다.

 

(본문)오늘 본문은 그 이후에 바울이 증언하는 내용인데 본문 9-1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실까요?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원해)바울은 자신이 청년 시절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증언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당시에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최고의 율법선생 가말리엘에게서 율법을 사사받았습니다.

그 까닭에 바울은 앞날이 창창한 전도양양한 미래 지도자였죠.

 

바울을 연구한 학자들은 바울이 그 당시 대제사장 가문의 딸과 결혼했고, 그리스도인들을 제거할 권한까지 주었다고 말하죠.

그만큼 바울은 대제사장들로부터 합법적인 권한을 위임받아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짓밟는 선봉대장 역할을 했던 것이죠. 

바울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투옥시켰던 것도, 스데반 집사처럼 현장에서 쳐죽여야 할 그리스도인이 있을 때 즉석에서 찬성표를 던졌던 이유가 그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뿐만이 아니었죠. 

바울은 모든 회당을 샅샅이 뒤져 마치 이를 잡듯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해냈습니다.

본문 11절에 나오는 ‘형벌하여’라는 헬라어 ‘티모레오’(τιμωρέω)는 ‘영예로운 복수’(avenger of honour)입니다.

자신의 명예를 수호하기 위해 처벌하는 걸 말합니다.

 

지금도 이슬람 국가에서는 ‘명예살인’이 자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이슬람의 율법을 심각하게 위반해서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으면 그 형제 중에서 그를 죽여서 명예를 되찾는 것을 말하죠.

 

본문에서 사용된 ‘형벌하여’ 곧 ‘처벌하다’ ‘심판하다’는 뜻이 그것입니다. 

바울이 생각하기에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이 유대교의 명예를 더렵혔기 때문에 그 명예를 수호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수한 것 말이죠. 

 

더욱이 바울은 그 명예살인의 범위를 유대 땅에만 국한시킨 게 아니었죠.

외국 성에까지 곧 예루살렘에서 213km 떨어진 다메섹의 그리스도인들까지 색출해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고자 했죠.

 

(깨달음)그런데 바울은 그처럼 유대교 내에서 전도유명한 지도자였지만 그리스도인들 입장에서 보면 어떻겠습니까?

그보다도 더 잔인하고 포학한 폭도도 없었겠죠.

그토록 율법에 능통하고 불의함이 없이 살았던 바울이란 자, 당대에 엘리트였던 그가 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짓밟는 폭도로 변했는가, 하고 말이죠. 

 

그것은 본문 9절의 말씀처럼 당시에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는 걸 당연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당시의 엘리트 청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잔인한 폭도로 변한 것은 모두가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이죠. 

당시에 예수의 추종자들을 지상에서 쓸어버리는 걸 모두가 의무로 여기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모든 유대교인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바울이 유대교를 수호하기 위해 교회와 성도들을 짓밟는 것은 스스로 사명이라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투옥시키고 죽이는데 찬성표를 던진 것은, 다메섹이라는 외국에까지 간 것은, 양심의 가책 없이 당연한 일로 여긴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당시 바울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색출코자 외국성까지 간 것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품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적용)그랬던 바울을 향해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와주셨을 때 어떻게 변했습니까?

여태껏 명예살인을 일삼아왔던 자기 행위가 정당한 줄 알고 자부심까지 가졌던 그 모든 일들이 흉측한 죄인의 길이었음을 알게 되었죠.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야 자신이 걸어온 길이 주님의 뜻과 역행하는 길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던 것이죠.

 

바로 그 이후부터 바울은 모든 유대인들이 가는 길을 좇지 않았습니다.

모든 유대인들이 외면하고 부정하고 명예살인을 계속한다 할지라도 바울은 그때부터 주님안에서 바른 길을 걷기 시작했죠.

 

그것은 마치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으로 다시금 돌아가고자 할 때 여호수와 갈렙처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걷기로 다짐한 것과 같은 격입니다.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지 못하겠다면서 애굽으로 돌아갈 지도자를 뽑자고 할 정도였죠.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만큼은 모세와 아론을 협력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자고 했습니다.

그것이 99.999%에 비해 0.001%도 못 미치는 수였지만 그것이 하나님 안에서 바른 길임을 믿었기 때문이죠.

 

바울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99.999%의 사라들처럼 예수님을 부인하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고 체포하는데 혈안이 돼 있었죠.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는 99.999%의 사람들이 걷는 길보다 오직 0.001%에 불과할지라도 진리와 생명의 길을 좇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0.001%에 불과할지라도 주님 안에서 바른 길 생명의 길을 걷길 원하시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죠.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주님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는 네가 걷고 있는 길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이더냐?”

“99.999%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할 때 0.001%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 길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는 것과 달리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진리와 생명의 길이었지 않더냐?”

“바울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99.999%의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을 부인하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길을 걷지 않았더냐?”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에는 0.001%의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주님 안에서 바른 길을 걷지 않았더냐?”

“너도 지금 모두가 N0할 때 주님 안에서 Yes하며 생명의 길 바른 길을 걷고 있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는 다수결이 중요한 게 아니라 주님의 뜻을 분별하며 걷는 이들이 더욱 중요하지 않더냐?”

“모든 유대인들이 정치적인 메시아만 바란 채 저 영원한 생명과 진리를 베푸시는 메시아는 저버렸지만 그걸 절대다수가 따르려 하지 않았더냐?”

“그러나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을 만난 이들은 주님 안에서 걷는 길만이 진리와 생명의 길임을 알지 않았더냐?”

“그렇기에 바울이 주님의 길을 좇다가 핍박을 받고 심문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 길이 진리와 생명의 길임을 알기에 0.001%가 걷는 그 길을 좇아가고 있지 않더냐?”

“주님께서는 너도 그 길을 좇아 뚜벅뚜벅 걷길 원하지 않겠느냐?”

 

(찬양)영광의 길 너 걷기 전에 갈보리길 너 걸으라 

내 모든 것 주께 맡긴 후 하늘 문을 바라보라 

하늘 가는 다른 길 없네 오직 예수 오직 한 길 

갈보리길 걸어가신 주 그 길 따라 너 걸으라 

하늘가는 다른 길 없네 다만 한 분 나의 예수 

부활의 주 말씀하시네 갈보리 길 너 걸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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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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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예수님을 재판한 빌라도는 예수님에게는 죽일 죄가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직 대제사장 무리와 기득권 층이 시기와 질투심으로 예수님을 재판에 회부한 걸 알게 되었죠.

하지만 그때가 유월절 명절이라 명절을 맞이해 백성들의 요청에 따라 죄수 한 명을 석방해 주는 관계가 있었죠.

그래서 빌라도 총독은 범죄 행위가 뚜렷한 강도 바라바를 내세워 예수님과 그 사람 중에 누구를 풀어주길 원하느냐고 물었죠.

 

그런데 빌라도의 예상과 달리 대제사장 무리들은 유대 군중들을 선동해 중범죄자 바라바는 풀어주고 예수님을 죽이라고 소리쳤죠.

그때 그 많은 유대인들 중에 강도 바라바 대신에 예수님을 풀어주라고 한 유대인들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모든 유대인들이 만장일치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깨달음)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들의 만장일치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죠.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모습이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길이라고 해서 반드시 올바른 길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원칙이 인권과 자유와 평등과 법치를 기본으로 다수결 원칙입니다.

대통령의 선출도 국회의결도 모두가 다수결로 결정이 됩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5천만이라고 할 때 대통령이 되기 위해 5천만 모두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이번에도 0.73%차로 더 득표해서 대통령이 되었죠.

 

물론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대통령직이 마냥 보장되는 건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 때봤듯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사유화해서 헌법의 정신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 대통령은 국민 절대다수가 물러나라고 하면 물러날 수밖에 없죠. 

왜냐하면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그렇죠. 

 

(적용)그런데 믿음의 원칙은요?

믿음의 원칙은 죄성을 지닌 인간의 다수결 원칙을 따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죄성을 지닌 인간의 대중성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주님을 신뢰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죠.

절대 다수 곧 99.999%가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할 때 그 길을 따랐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쯤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0.001%에 불과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히는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길이었죠.

 

지금 청문회장에 선 바울도 0.001%불과할지 모르지만 모두가 부정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좇고자 할 때 그 길을 통해 주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내기도)오늘 그렇기에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주님,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은 민주주의 다수결의 원칙이나 99.999%의 표에 달려 있는 게 아님을 알게 해 주시네요.”

“모두가 주님을 부정하고 진리와 생명의 길을 짓밟을지라도 0.001%처럼 바울과 같이 저도 주님의 길을 걷게 해 주세요.”

“모두가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해도 여호수와 갈렙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길을 걷게 해주세요.”

“바울도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예루살렘은 물론 외국 성읍까지 좇아가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걸 정당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 생명의 주님을 만난 이후에는 모두가 부정할지라도 그 길이 옳다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걸었어요.”

“저도 99.999%가 부정하고 비웃고 조롱할지라도 0.001%해당하는 소수 무리처럼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어주세요.”

 

(찬양)영광의 길 너 걷기 전에 갈보리길 너 걸으라 

내 모든 것 주께 맡긴 후 하늘 문을 바라보라 

하늘 가는 다른 길 없네 오직 예수 오직 한 길 

갈보리길 걸어가신 주 그 길 따라 너 걸으라 

하늘가는 다른 길 없네 다만 한 분 나의 예수 

부활의 주 말씀하시네 갈보리 길 너 걸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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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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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에 기도할 때 내가 지금 걷는 길이 99.999%의 다수결의 사람들처럼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길을 좇고 있는가?

아니면 0.001%의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바울처럼 진리와 생명의 길을 좇고 있는가?

주님을 모를때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자 외국 성읍까지 좇아갔던 바울이었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에는 절대다수가 주님을 부인해도 오직 그 길을 좇고 있는 바울입니다.

 

주님, 저도 주님이 가신 진리와 생명의 길을 좇게 해 주시옵소서.

모두가 No하고 주님을 비웃고 예수님 믿는 걸 조롱해도 0.001%의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주님가신 길을 따라 살게 해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며 복된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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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도 그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들도 꿈을 꿀 수 없는 상태다.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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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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