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벽묵상DewSermon/잠언

아굴의 잠언이니(잠30:1-33)

by 권또또 2022. 10. 27.
728x90
반응형

오늘 읽은 잠언 30장은 7개의 책으로 엮여 있는 잠언 중에 여섯 번째 책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이 잠언을 누가 썼는가? 본문 1절에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가 이디엘 곧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른 것이니라.”하고 밝혀줍니다. 이른바 ‘야게의 아들 아굴’이 쓴 것이죠. 그 아굴이 이디엘 곧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르고자 했다고 합니다. 이디엘과 우갈에게 교훈코자 한 것이란 뜻입니다. 그것은 마치 솔로몬이 그 아들들에게 교훈코자 쓴 잠언의 첫 번째 책과 두 번째 책의 내용을 연상케 합니다. 솔로몬도 그 아들들에게 바른 인생의 교훈을 얻도록 하기 위해 ‘솔로몬의 잠언’ 첫 번째 책과 두 번째 책을 엮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아굴’은 누구이겠습니까? ‘아굴’이란 히브리어 ‘아고르’(אָגַר)인데 그 뜻은 ‘모으다’( gathered)는 의미입니다. 물론 성경에서 ‘아굴’ 곧 ‘아고르’란 인물은 본문의 잠언 30장에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의 아버지 ‘야게’는 또 누구이겠습니까? ‘야케’(יָקֶה)라는 이름의 뜻은 ‘비난받을 게 없다’는 의미입니다. ‘야게’라는 이름 역시 성경을 통틀어 본문에만 나옵니다. 그래서 여러 성경학자들은 이 아굴이란 사람이 잠언서들을 ‘모은 실제 인물’이거나 혹은 솔로몬 자신을 그렇게 ‘수집가’, 잠언의 ‘수집가’로 밝혀놓은 게 아니겠는가, 하고 추정을 합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 아굴이 자기 아들들에게 교훈코자 이 잠언서를 썼다는 점입니다. 과연 그 아들들이 누구입니까? 1절의 말씀처럼 ‘이디엘’과 ‘우갈’입니다. ‘이티엘’(אִיתִיאֵל)이란 이름은 ‘하나님은 나의 행복’ 또는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는 뜻입니다. ‘이티엘’이란 이름은 성경의 느헤미야서 11장 7절에 유일하게 나옵니다. 이른바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이방 땅에서 디아스포라로 살다가 7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데, 1차 2차 3차에 걸쳐 포로귀환을 하죠. 1차 인솔자가 스룹바벨이었고, 2차 인솔자가 에스라, 그리고 3차 인솔자가 느헤미야였죠. 1차 인솔자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가 무너진 성전을 재건코자 했고, 2차 인솔자는 율법을 재강론코자 했고, 3차 인솔자 느헤미야는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면서 그 땅에 사람들이 살도록 독려했습니다. 사실 포로 귀환자들이 성전을 재건하고 성벽을 재건하면 모든 게 끝난 것 같았지만 그게 아니었죠. 성전과 성벽만 재건한 채 그곳에 사람이 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 전까지는 폐허더미의 예루살렘 성안에 누구도 살려고 하지 않았는데,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강권에 힘입어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민족의 기반, 성전과 성벽의 기반을 세우는 일이었죠.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느헤미야와 에스더는 지대한 공이 있는 것이죠. 마치 저와 여러분들이 무너진 교회를 다시금 재건하는 기반의 도구가 된다면 하나님 나라에 큰 공로가 있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바로 그런 폐허더미였던 예루살렘 성에 다시금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는데, 그 중 한 지파가 바로 베냐민 지파요, 그 중 한 사람이 ‘이디엘’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갈’(אֻכָל)은 누구인가? ‘우칼’이란 이름의 뜻은 ‘전능함’ 혹은 ‘유능함’을 의미입니다. 이른바 로마서 8장 31절처럼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하는 말씀처럼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대적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뜻의 의미죠. 그래서 이 우갈은 ‘아굴의 아들’이거나 혹은 ‘아굴의 제자’이지 않나 하고 성경학자들이 추정합니다.

이런 내용들을 종합해 볼 때 이 일곱 번째 잠언집인 잠언 30장의 말씀을 누가 썼겠는가? 솔로몬이 ‘아굴’이란 가명을 써서 그의 아들들에게 썼든지, 아니면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엮었던 6번째 잠언집처럼 느헤미야 시대의 한 지도자가 그 아들들 혹은 동시대의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교훈코자 엮었지 않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게 솔로몬이든 아니면 느헤미야 시대의 지도자든, 그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과 결코 무관치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말씀이요 교훈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 아굴이 그 아들들, 곧 이스라엘의 자손들 그리고 오늘을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에게까지 전해주고자 한 교훈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아굴의 잠언은 특이한 내용이 있는데, 어떤 유사한 그룹들을 ‘숫자’로 엮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7절에 내가 두가지 일을 주께 구하겠으니또한 11-14절까지의 끝부분에 무리가 있느니라, 15절 끝부분에도 서넛이 있나니 18절 끝부분에서도 서넛이 있나니, 21절 끝부분에도 서넛이 있나니, 24절과 29절 끝부분에서도 서넛이 있나니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들을 감안할 때 이 잠언 30장은 먼저는 1-14절까지는 아굴 자신의 겸손함을 밝혀주고 있고, 이어서 15-16절까지 ‘만족하지 못하는 것들’, 18-19절까지 ‘심히 기이히 여기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들’, 21-23절을 통해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이 견딜 수 없게 하는 것들’, 24-28절을 통해 ‘땅에 작고도 가장 지혜로운 것들’(24-28절), 그리고 29-31절을 통해 ‘잘 걸으며 위풍 있게 다니는 것들’(29-31절)에 대해서 밝혀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15-31절까지는 대부분 짐승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하지만 그 다섯 가지 부류는 단순한 짐승이기보다는 짐승을 빗댄 사람들의 모습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그 짐승들처럼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토록 짐승의 유형과 성격과 특징을 잘 분석하고 있는 아굴이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떻게 고백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본문 2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그렇게 다섯 가지 부류의 짐승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아굴 자신이 실은 짐승과 같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자기평가는 자신을 낮추고 다른 지혜자들에 비해 자신은 현저히 부족하다는 표현입니다.

 

그런 짐승 같은 자가 어떻게 성경의 저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저자를 택하시고 그들에게 영감을 주셔서 기록된 것이 바로 성경이죠. 하나님께서 들어 사용하시는 자는 최고의 조건을 갖춘 자가 아닙니다. 최고의 지식이나 경험이 없어도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을 수 있음을 아굴의 잠언을 통해서 배우게 되죠.

그렇게 자기을 낮춘 아굴은 2절 하반절에서 그렇게 또 고백합니다.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는 자는 사람의 총명이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총명이 있으면 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3절을 통해서도 밝혀주듯이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역시 자기 겸손의 고백입니다. 이는 야고보서 4장 6절에서 말씀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하는 말씀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지만 내가 체험한 하나님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주의 한 점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죠. 4절을 통해 그렇게 질문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여기서 묻는 ‘누구'는 곧 ‘하나님’이시죠. 그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초월적인 속성 곧 전지전능하심, 영원하심, 무소부재하심을 완벽하게 아는 이가 없다는 뜻이죠.

https://www.bookpod.co.kr/goods/goods_view.php?goodsNo=1000001131 

 

야긴과 보아스

북팟

www.bookpod.co.kr

오늘 잠언 30장을 통해 우리가 필히 기억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7-9절 말씀이죠.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헛된 것과 거짓된 것을 멀리하는 신실한 삶, 또 너무 배불러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거나 너무 가난해 하나님의 이름에 누를 끼칠까 두렵다는 기도문입니다. 그만큼 아굴은 자기 아들과 제자 혹은 이스라엘의 자녀들을 향해 매일매일 신실한 삶을 살아야 하고, 주어진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고, 겸손한 청지기로 최선을 다해 살 것을 주문하고 있는 기도문입니다. 오늘을 사는 저와 여러분도 이 두 가지 차원의 기도문은 평생 고백해야 할 내용이지 않나 싶습니다.

https://www.bookpod.co.kr/goods/goods_view.php?goodsNo=1000001130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북팟

www.bookpod.co.kr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