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왕이 될 자가 해서는 안 될 일을 신명기 17장 16-20절에 말씀하셨죠.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그 명령은 이스라엘의 왕이 된 사울도, 그리고 다윗도 마찬가지요, 그것은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도 예외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남겼어도 그 업적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지키는 것에 따라서, 그 왕위와 그 자손의 왕위가 견고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어떻게 했습니까? 성전과 자기 궁궐을 건축하고, 뿐만 아니라 밀로 성, 예루살렘 성, 하솔 성, 므깃도 성, 게셀 성 등을 건축했고, 심지어 홍해 물가의 에시온게벨에 선박까지 축조할 정도로 위대한 업적과 공적을 남겼는데, 그런 일들과 맞물려 아주 자연스럽게 타락의 길을 걷지 않았습니까? 이른바 자기 친위대와 국경 수비대를 거느리기 위해 솔로몬이 병거를 거느린 게 1400대였고, 마병도 1만2천명을 둘 정도로 어마어마한 군사력을 확보해 놓고 있었죠. 그런데 그 말들을 애굽에서 사들여왔을 뿐만 아니라 헷 족속의 왕과 아람 왕들에게 더 나은 값을 주고 되파는 등 물물교역도 활발하게 행했던 솔로몬이었죠. 그것이 이방 왕들에게는 화려하고 멋지고 능력있는 모습처럼 보였을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자기 힘과 능력을 맹신하는 모습이었으니 결코 달가워할 리가 없었습니다.
그런 엄청난 병거와 마병을 거느린 모습이 열왕기상 10장 후반부의 모습이었다면, 11장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였습니까? 이전에 왕위에 오르자마자 세계 최강국인 애굽과 전략적인 제휴를 맺기 위해서 애굽의 바로 왕의 딸과 결혼을 했는데,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한 솔로몬이 이방 나라의 여인들,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돕과 시돈과 헷 여인들을 사랑하여 결혼했는데, 자기 부인 곧 후궁이 700명, 첩이 300명이나 되었죠. 그야말로 성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한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그때 하나님께서는 과연 무엇을 하셨습니까? 다윗과 언약을 맺어, 영원토록 너의 왕위를 견고케 해 주겠다고 언약하신 그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그런 타락의 길을 걸어갈 때 가만히 보고만 계셨습니까? 아니죠. 최초 열왕기상 3장에서 솔로몬이 왕이 되어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마리의 번제물을 잡아 드릴 때에 당부하셨죠. 네가 듣는 마음을 구했지만 네가 내 율례와 법도를 떠나지 않으면 부귀와 영화도 줄 것이고, 네 왕위와 네 후손의 왕위도 영원히 견고케 해 줄 것이라고 말이죠. 그 하나님께서는 그 때 뿐만 아니라 열왕기상 9장에서 솔로몬이 성전봉헌식을 마쳤을 때 다시금 나타나셔서, 그때도 약속하시길 네가 성전에서 기도하고 간구한 것을 내가 다 들어주겠다, 대신에 네가 내 율례와 법도 곧 말씀을 떠나지 않고 잘 지켜 행할 때에 그렇게 해 주겠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이 정말로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좇아 마병과 병거를 많이 두지 말고, 다시 말해 자기 힘과 권력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해야 했고, 더 나아가 많은 아내를 두지 말라고 한 그 율례와 법도를 좇아 아내도 많지 두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700명의 아내와 300명의 후궁을 두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때에도 침묵하신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때에도 두 번씩이나 솔로몬에게 그 일을 자행하지 말라고 촉구하셨습니다.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삼는 것이 결국은 네가 나와 멀어지는 길이니, 삼가도록 하라고, 두 차례나 성령님을 통해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솔로몬은 그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좇기보다, 성령님께서 탄식하시는 그 음성을 좇아 자기 삶을 절제하기보다, 오히려 그 방탕한 삶에 자기 자신을 내 맡기는 꼴을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제 살펴본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차마 보지 못하시고, 네가 나의 율례와 법도를 좇아 살지 않기 때문에 내가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줄 것이다, 대신에 네 아버지 다윗과 언약한 것이 있기 때문에 한 지파만큼은, 다시 말해 유다 지파만큼은 네 아들에게 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그토록 잠잠했던 이방 나라들이 서서히 솔로몬에게 반기를 들고,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상황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솔로몬의 신하였던 여로보암이 솔로몬에게 반역을 꾀하는 그 모습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모든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가? 솔로몬에게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어기고, 이방 신들을 좇는 그 모습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 것이죠.
그렇다면 솔로몬의 이방 대적들은 누구였는가? 본문 14-22절까지는 에돔 사람 하닷이 솔로몬의 대적이 된 모습을, 또 23-25절까지는 다메섹에 사는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이 솔로몬이 대적이 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른바 이스라엘의 동쪽과 북쪽의 변방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적국이 된 상황입니다. 그때까지도 잠잠하던 그 나라들, 그때까지도 솔로몬 왕에게 조공을 바치던 그 나라들이 이제 등을 돌리고 적국이 된 상황입니다.
그리고 본문 26-40절은 솔로몬의 충성스런 신하 여로보암이 반역을 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과 자기 왕궁 뿐만 아니라 밀로 성과 하솔 성과 므깃도 성과 게설 성을 건축한 일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 밀로 성을 건축할 때 성실한 모습을 보인 부하 장수 여로보암이 있었는데, 그로 하여금 그 일에 감독자로 삼을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능력 있는 장수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를 실로 사람 선지자 아히야가 만나, 자기가 입은 옷을 열 두 조각으로 찢으면서, 여로보암아 네가 열 조각을 취하라, 다시 말해 솔로몬이 죽으면 나라가 분열될 것이니, 네가 10 지파를 취해 다스리도록 하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 것입니다. 이른바 솔로몬에게 이미 말씀한 바를 아히야 선지자의 입술을 통해 여로보암에게 전달하는 상황입니다.
그 이유를 본문 33절에서 이렇게 밝히시죠.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의 신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신 밀곰을 경배하며 그의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지 아니하여 내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과 내 법도와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함이니라.” 한 마디로 솔로몬이 이방 여인들의 치마폭에 빠져 나를 버리고 그 신들을 좇아 살기 때문에 내가 솔로몬의 나라를 쪼개서 10지파를 네게 줄 것이고, 한 지파 곧 유다와 베냐민 지파만 다윗의 왕위를 잇게 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론 선지자 아히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여로보암 장수에게 전달했을 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그 사실을 솔로몬에게 전달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본문 40절의 말씀처럼 여로보암은 자신을 죽이려하는 솔로몬의 낯을 피해 솔로몬이 죽기까지 애굽 왕 시삭의 밑에 지내게 된 상황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솔로몬은 40년간의 왕정생활을 마감하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이 세상에서 별세하게 되는데, 성경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시대를 예고하지만, 그 나라가 어떻게 될지 불을 보듯 뻔하지 않겠습니까?
이를 통해 우리가 깨닫는 바가 무엇입니까? 한 나라도 이럴 진데, 한 가정도, 교회도, 사업장도 외적인 화려함과 자기 능력을 맹신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신실한 말씀, 곧 언약의 말씀을 굳게 지키는 게 나라와 가정이 평안하고 장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주님.
솔로몬이 승승장구할 때 수많은 병거와 마병을 거느렸고,
성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해 700명의 아내와 300명의 첩을 거느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수차례 경고하셨는데도, 어긋난 길을 걷고 말았습니다.
그 일로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지는 모습을 예고합니다.
우리들의 가정과 일터가 견고케 되는 것은 세상의 화려함과 허영에 있는 게 아님을 깨닫습니다.
오직 영원하신 말씀에 기초를 둘 때임을 믿습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가정과 일터를 주춧돌로 삼으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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